DEMON RAW novel - chapter 94
무황성이 껄끄러운 이유는 그들이 정사(正邪) 중간이라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파에 가깝겠지만 무황성은 철저히 정사간의 분쟁을 외면해 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무공을 갈고 닦아 강재니는 것분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황성이 모든 일을 손 놓고 구경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황성이 움직인 일은 몇 번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모를까, 일단 한 번 움직이면 문파들은 부서져 나갔고, 문파들의 모임이 와해될 정도로 화끈했다.
무황성이 왜 움직였는지, 그리고 왜 그들을 박살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제갈중천은 그 이유를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었다.
무황성 역시 이익에 따라 움직였다. 제갈중천이 판단하기에 무황성은 지극히 이기적인 단체였다.
“그러니 파고들 틈이 있을 거란 말이지.”
제갈중천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런 시기에 무황성만큼 매력적인 곳은 없을 것이다. 단번에 무림맹의 위상과 힘을 한 단계 높여줄 수 있는 최고의 패였다.
물론 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말이다.
최극. 단순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 앞에 붙는 별호와 함께 듣는다면 결고 단순하다 할 수 없는 이름이다.
무황(武皇). 그것이 최극의 별호였다.
최극은 무황성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천하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무림 최고의 정보단체인 무영가(無影閣)이 바로 무황의 비밀 정보조직이었다.
최극은 야망이 큰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야망을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야망을 위해서 무황성을 교묘히 이용해 왔다.
무황성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상계의 흐름이 변화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대부분 어느 한 상단에게 도움이 되어 있다. 이름조차 없고 여기저기 산재해 있어 다른 상단의 관심조차 끌지 못하지만 그 규모만큼은 대단했다. 그리고 무황성의 도움으로 성장세가 계속되는 상단이었다.
무황성의 움직임은 비단 상단의 흐름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다. 무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정보에 관해서라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황성의 움직임은 정보의 흐름마저도 뒤틀어 버릴 수 있었다. 덕분에 몇몇 정보단체가 힘을 잃었고, 정보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살수들도 힘을 잃고 어딘가로 흡수되어 갔다.
그 모든 일이 바로 무황의 머리에서 나온 계책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무황뿐이었다. 무황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여유와 강한 무공이었으니까.
최극의 방은 무황성에서 가장 놓은 곳에 위치한다.
무호아성이 있는 곳은 섬서의 중간 부분이다. 성도인 서안 부근에 위치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에 세워져 있고, 주변에는 별 다른 마을도 없기 때문에 어찌 보면 황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규모만큼은 상당했다. 그리고 그 규모에 어울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성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최극은 자신의 바에서 성 안을 둘러보는 것을 즐겼다. 최극의 방은 그것을 위해 사방에 커다란 창이 뚫려 있었다. 최극의 시선은 그 창을 통해 무황성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멋지군.”
무황성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공에 열ㄹ의를 가진 자들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상당수는 열의를 넘어서 거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최극은 그런 자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 모두가 무황성의 힘이다.
한참 동안 밖을 내다보던 최극은 몇몇 기척들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이내 문 밖에서 최극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주님,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게.”
최극은 망설임 없이 대단했다. 방금 말한 사람은 무황성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총관이다. 그는 무황성에서 유일하게 무(武)에 미쳐 있지 않은 사람이다.
총관과 함께 있는 사람들의 기척은 모두 셋이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도를 흘리고 있었지만 최극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에 불과했다.
이내 문이 열리고 총관의 모습이 보였다. 총관은 가볍게 최극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손님들을 안으로 들였다.
최극은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총관의 등을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무황성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바로 총관이다. 그리고최극에게 가장 믿을 만한 사람도 바로 총관이다.
최극은 그렇게 총관을 쳐다보다가 문득 시선을 돌려 방으로 들어선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십은 되어 보이는 남자 둘과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 한 명이었다.
“그래, 날 찾아오셨다 했소?”
최극은 그렇게 말을 꺼내고는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 편히 앉아서 얘기를 하는 게 좋겠군. 앉으시오.”
최극이 먼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 순간 농밀한 기의 안개가 바닥으로 화악 깔렸다. 서 있던 세 사람은 그 갑작스런 기운에 깜짝 놀랐다.
‘과연 무황이로군.’
무황은 단순히 앉는 동작 하나로 세 사람이 기세를 완벽히 눌러 버렸다. 세 사람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인사가 늦었군요. 저희는 무림맹에서 나왔습니다.”
여인이 서둘러 말을 꺼냈다. 그녀는 무림맹 주작단의 부단주 임화영이었다. 서둘러 말을 꺼내지 않으면 최극에게 휘둘릴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극은 그녀를 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무림맹에서 왔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소. 무슨 일로 날 찾아왔소? 우리 성은 무림맹과는 왕래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림맹과 무황성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우호라……?”
최극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무림맹처럼 큰 곳이 우리와 잘 지내 준다면 나쁠 것은 없소만……”
최극의 말에 임화영이 환하게 웃으며 품에서 뭔가를 꺼내 조용히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 생각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이것은 무림맹이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책이었다. 그것을 보는 최극의 눈이 미약하게 빛났다.
“호오, 칠성연환검진(七星漣環劍陳)이라.”
“저희 군사께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무림맹의 군사는 제갈중천이다. 최극은 고개를 끄덕였따. 칠성연환검진은 제갈세가에서 최근 복원에 성공했다고 전해지는 꽤 오래된 절진이었다.
“허헛, 제갈세가의 재지(才智)는 따를 자가 없다더니 그 말이 맞는 듯하오.”
최극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고민했다. 그에게 있어 이것은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무황성에는 고수가 즐비하다. 하지만 그뿐, 제대로 된 무사단이 없다. 강력한 힘을 가진 한 사람이 이끄는 한 개의 부대도 만들지 못했다. 개개인의 힘이 강하다 보니 그런 점이 너무나 어려웠다.
고수가 많으면 좋지만 최극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
그래서 최극이 눈을 돌린 것이 바로 검진이었다. 대부분의 고수들은 검진의 힘을 빌려 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중에는 검진에 관심이 있는 자들도 있게 마련이다.
제대로 된 검진이 있다면 그런 자들을 모아 무력부대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무력부대는 최극에게 아주 커다란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칠성연환검진은 그런 면에서 있어서 정말로 최고라 할 수 있다. 최극도 그것이 어떤 검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동안 검진에 대한 연구를 꽤 많이 했기 때문이다.
칠성연환검진을 펼치기 위해서는 최소 일곱 명이 필요하며, 인원이 그 이상이면 더 강력한 검진을 펼치는 것이 간읗다.
게다가 여럿이 하나를 공격하기에도, 또 여러 명을 동시에 공격하기에도 적합하다. 적의 공격을 막는 것에도 적합하며 수많은 적을 돌파하는 데도 유용하다. 그야말로 만능에 가까운 검진이었다.
“그래도 이것을 받을 수는 없소.”
최극은 결국 그것을 거부했다. 그 말에 방 안에 있던 세 사람이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거부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뭔가 목표가 없다 하더라도 칠성연환검진은 그 자체로 보물이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저 성의일 뿐입니다. 부담 가지지 마시고 그냥 받으세요.”
임화영이 재차 권했지만 최극은 한 번 결정한 사항을 번복할 사람이 아니었다.
“됐소. 뭐 그다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최극은 손을 들어 단호히 말한 후, 빛나는 눈으로 세 사람을 쳐다봤다.
“하긴 천하의 무황께서 이런 검진이 필요하실 리가 없지요.”
임화영은 그렇게 수긍하고는 책을 다시 품에 넣었다. 그녀의 눈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책을 받지 못한 최극이 아쉬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주지 못한 그녀가 아쉬워했다.
최극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최극은 무림의 정세에 지나칠 정도로 밝았다. 그들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봤다. 그리고 왜 그들이 자신에게 찾아왔는지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대화를 주도하는 여인은 주작단의 부단주, 그리고 그녀의 양 옆에 앉아 있는 두 남자는 각각 청룡단과 백호단의 부단주였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소?”
최극의 말에 임화영이 잠시 머뭇거렸다. 임화영이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최극이 선수를 쳤다.
“우리 무황성과 손이라도 잡으려고 온 것이오?”
최극의 말에 임화영은 다시 입을 다물었따. 정곡을 찔려 버렸다.
“뭐 나쁠 것은 없지.”
최극이 그렇게 말하자 임화영의 얼굴에 대번에 밝아졌다.
“그럼 저희의 요청을 수락해 주시는 것입니까?”
“하지만 좋을 것도 없고.”
최극은 마치 그녀를 가지고 노는듯했다. 임화영은 내심 화가 치밀었지만 상대는 무황,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칼자루는 그가 쥐고 있으니 그녀로서는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최극이 지그시 임화영을 쳐다봤다. 임화영은 최극이 말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갔다. 임화영에게 있어서 그 시간은 마치 며칠 밤낮처럼 길게 느껴졌다.
“왜 말을 하지 않는 것이오?”
먼저 입을 연 것은 당연히 최근이었다. 임화영은 물론이고 그녀 옆에 앉아 있는 두 사람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예? 저, 저는……”
“우리는 무림맹과 손을 잡아도 그만, 안 잡아도 그만이오. 무황성이라는 것이 어차피 그런 사람들만 모인 곳이니 당연하지 않겠소?”
“그, 그야 그렇습니다만……”
임화형은 애가 탔다. 가만 생각해 보니 당연했다. 지금 아쉬운 것은 무림맹이다. 대외적인 힘이 약화되고 있으니 무황성의 힘이라도 빌려 단단하게 장벽을 치겠다는 의도였다.
“아……!”
임화영은 그제야 최극의 말을 이해했다. 무림맹이 얻는 것이 있다면 무황성도 그래야 한다. 헌데 아직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사실 준비한 것은 많았다. 제갈중천으로부터 여러 가지 당부를 들었고, 그녀 나름대로도 많은 준비를 했다. 하지만 너무 당황해 준비한 것들을 하나도 꺼내놓지 못했던 것이다.
임화영은 그때부터 준비한 말들을 쏟아냈다. 최극은 한동안 그녀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리고 간간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최극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을 때마다 임화형은 더욱 열심히 말을 끄집어 냈다.
임화영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무황성을 나섰다. 어쨌든 무황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결국 무황성과 무림맹이 손을 잡은 것이다.
물론 많은 것을 주어야 했다. 하지만 무황성의 힘은 그 모든 것을 줄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청룡 부단주와 백호 부단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이건 무황에게 말려든 것이다.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내고 간신히 원하는 답을 얻어낸 꼴 아닌가. 그것도 상대는 가만히 있는데 알아서 갖다 바치다니.
두 부단주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지만 임화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 역시 그런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무황성의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상당히 서둘렀기 때문에 생각보다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어서들 오게.”
제갈중천의 얼굴은 상당히 밝았다. 이미 무황성과 전서구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동안 상당 부분 진척이 있었다.
“염려해 주신 덕분에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임화영은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남은 두 사람도 포권을 취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제갈중천이 그런 것을 놓칠 리 없다. 제갈중천은 빙긋 웃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얼굴이 좋지 않군.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라도 있는 겐가?”
청룡 부단주와 백호 부단주는 제갈중천의 말에 서로 눈치를 살폈다. 백호 부단주는 주작 부단주인 임화영의 눈치를 잠시 살핀 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손해를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황성의 힘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백호 부단주는 말을 살짝 얼버무렸다. 모든 일을 처리한 것은 임화영이다. 자칫 그녀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제갈중천은 그런 그들의 마음을 벌써 다 알고 있었다.
“그렇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군.”
제갈중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 사람을 하나하나 쳐다봤다.
“무황성의 힘이 크긴 하지만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될 것은 없어 보이는가.”
“그, 그것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이다. 그들이 판단하기에는 그랬다. 제갈중천은 미소를 잃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하지만 무황성과 손을잡으면 우리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네.”
“하지만 이곳 무한에 지부를 설치하는 것까지 무림맹이 해 준다는 거슨……”
“허허헛, 그게 무슨 문제인가. 사실 그것 때문에 무황성과 손을 잡았는데.”
“예?”
백호 부단주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체 그런 낭비를 왜 한단 말인가.
“무황성의 힘을 적절히 이용하려면 그 힘이 근처에 있어야겠지. 섬서에 있는 무황성을 움직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제갈중천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건 너무했다.
“그래도 결국 칠성연환검진까지 넘겨줬는데……”
이번에는 청룡 부단주였다. 사실 그의 불만은 바로 그것이었다. 굳이 받지 않겠다고 거절한 칠성연환검진을 임화영이 거의 억지로 떠맡기다시피 넘겨 버린 것이다.
“허허헛. 내가 미리 지시를 내렸네.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넘기라고. 그래야 무황성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
제갈중천의 말에 청룡 부단주와 백호 부단주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갔다. 결국 두 사람은 그렇게 수긍하고 물러갔다. 물론 개운한 얼굴로 돌아가진 못했다. 여전히 앙금이 남은 것이다.
두 사람이 물러나자 임화영도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려 했다. 차마 그들과 함께 갈 수는 없었다. 그녀의 마음에도 앙금이 남은 것이다. 물론 그 앙금은 두 부단주들로 인해 생겼다.
“잠시 기다리게.”
제갈중천은 막 몸을 돌리려던 임화형을 불러 세웠다. 제갈중천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어려 있었다. 꽤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가라앉혀 주는 미소였다.
임화형은 다시 몸을 바로 하고는 제갈중천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제갈중천이 자신을 따로 부를 일이 뭐가 있겠는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게. 다 내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니까.”
제갈중천의 뜬끔없는 말에 임화영이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 두 사람의 마음에 남은 앙금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질 걸세. 이번 일에 대한 결과가 곧 나타날 테니까.”
“아……!”
임화영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제갈중천은 자신의 마음을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화영의 솔직한 감사에 제갈중천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다 내가 부족해서 그리 된 것을…… 사실 난 자네를 이용했네.”
“예?”
제갈중천의 말은 임화영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임화영은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갈중천은 그런 임화영을 보며 말을 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무황은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인물이라네. 생각보다 야심이 많은 사람이지.”
임화영은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만일 그런 사람이라면 처음 자신이 칠성연환검진을 내밀었을 때 그것을 받았어야 한다. 얼마간 주저하더라도 반드시 받아어야 했다. 헌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마치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모두 예상했네. 그가 검진을 받지 않을 것부터 그것을 이용해 자네의 심기를 흩트리고 협상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리라는 것을.”
“하,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