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95
“아네. 사실상 협상을 진행한 것은 자네였겠지. 그래도 무황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얻을 건 얻지 않았겠나.”
임화영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새삼 두 부단주가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네의 그런 성격을 내가 이용한 걸세. 덕분에 무황성의 힘을 싼값에 얻지 않았는가.”
“예?”
임화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싼값이라니. 무림맹이 무황성에 퍼주기로 약속한 것들은 상당했다.
“그래서 자네를 선택한 걸세. 그래야 무황이 의심을 덜 하지 않겠는가. 사실 내가 자네에게 알려주고 준비시킨 것은 별 것 아닐세. 무황성을 움직이는 대가로는 아주 싼 편이지.”
제갈중천은 여전히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서 있는 임화영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자네에게 참으로 미안하네.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은 내 잘못했네. 그러니 자네도 이제 마음을 풀게나.”
마음은 벌써 풀린 지 오래였다. 임화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살짝 감격한 눈빛으로 제갈중천을 쳐다봤다. 사실 그냥 돌려보냈어도 할 말이 없다.
자신은 그런 사실도 모를뿐더러 설사 미리 알았다고 하더라도 임무가 내려진 이상 해내야만 하는 일 아니었던가.
그런데 제갈중천은 일개 부하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의 치부를 밝힌 것이다. 누군가를 이용했다는 사실은 자칫 약점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임화영은 공손히 포권을 취했다.
“이미 모두 풀렸습니다. 군사께서는 심려 마시고 무림매을 위해 힘써 주십시오. 저는 제 위치에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임화영의 대답을 들은 제갈중천의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납네. 정말 고마워.”
임화영은 포권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물러갔다. 제갈중천은 그런 임화영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이번 일을 주도하게 한 걸세. 마무리가 쉽거든. 어쨌든 미안하네. 끝까지 이용했으니……’
제갈중천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임화영이 사라진 자리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 나름대로 미안함의 표현이었다.
“자아, 이제 무황성을 얻었으니 한시름 놓을 수 있겠군. 슬슬 맹주께 보고를 올려야겠어.”
마음이 홀가분하니 몸도 개운해진다. 맹주의 집무실로 향하는 제갈중천의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단형우 일행이 하남표국으로 돌아오고 열흘이 지났다. 단형우는 다시 처음 하남표국을 떠나기 전과 같은 일사으로 돌아갔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검왕과 검마는 하남표국의 연무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둘은 항상 함께 검무를 췄고, 하남표국에서 무(武)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검무를 구경했다.
물론 구경한다고 해서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검왕과 검마의 수준이 너무나 높았다.
당호관과 당문영은 잠시 당가의 분가로 돌아가 밀린 일을 처리한 후, 하남표국으로 와서 살다시피 했다. 나중에는 형표가 그들에게 거처까지 마련해 줬을 정도였다.
당호관과 당문영이 돌아온 것을 기점으로 당가 무사들이 뻔질나게 하남표국을 드나들엇다. 두 사람이 돌아온 시기는 당연히 우문혜가 돌아온 시기와도 일치했다.
우문혜는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남표국에서 살았다. 직접 형표에게 방을 내달라고 요구까찌 했다. 형표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따. 우문세가는 현재 하남표국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였으니까.
염혜미는 여전히 천섬을 휘둘렀고, 제갈린은 그녀가 쉬는 동안 천섬을 연구했다.
그렇게 일행은 차츰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상으로 빠져들었다.
“못 보던 새 정말 많이 변했네.”
우문혜는 약간 놀라면서도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 앞에는 조설연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었다.
“그런가요? 전 그대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정말 많이 변했어.”
조설연은 그렇게 말하는 우문혜를 쳐다봤다. 물론 미소는 여전히 잃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우문혜와 대화를 나눠 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항상 함께 있었지만 정작 친해질 시간은 없었다.
우문혜는 언제나 단형우만을 바라봤고, 조설연에게는 마음의 여유가 모자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우문혜는 잠시 못 보는 동안 확연히 달라진 조설연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조설연도 이제는 표국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 여유가 생겼다.
“그보다 우리를 부른 이유가 뭐야?”
우문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이 자리는 조설연이 만들었다. 표국에 거처하는 여인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좀 더 친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여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다들 쉽게 모였다.
조설연은 우문혜와 살짝 거리를 두고 앉은 제갈린과 당문영을 쳐다봤다. 제갈린 옆에는 염혜미가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덕분에 염혜미는 우문혜와 가까이 앉을 수밖에 없었고, 직접적으로 그녀의 미모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염혜미는 그런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지금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천섬에 관계된 것뿐이었다. 천섬을 휘둘러 더 좋은 몸을 만드는 것, 무공을 익히는 것, 그리고 천섬을 준 단형우와 천섬을 연구하고 있는 제갈린에 대한 관심뿐이었다.
‘이렇게 가끔 모여서 얘기를 나눴으면 해요. 특별한 얘기가 아니라도 좋으니……’
조설연의 말에 우문혜까 주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바라던 바였다. 우문혜에게는 조설연을 살피고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단형우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이었다.
“나쁘지 않지.”
다른 사람들도 흔쾌히 허락했다. 그녀들 역시 이런 자리가 싫지 않았다. 가끔 이렇게 모여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즐거울 것이다.
그 즐거움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준다면 그것은 그녀들에게 큰 힘이 될 테니까.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조금씩 어색함이 사라져 갔다. 다섯명의 여인이 만들어 내는 말의 홍수는 꽤 대단했다.
어색함이 사라지고 격의가 조금 걷히자 자연스럽게 모두의 공통된 관심사가 얘깃거리로 떠올랐다.
“그나저나 우리 단공자님은 얼마나 강하신 걸까?”
우문혜가 눈을 빛내며 말을 꺼내자 모두의 눈이 빛났다. 그녀들이 생각하기에 ?㈎荑?단형우는 천하제일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신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단숨에 장사에서 허창까지 날아온 사람이다. 그것도 일행을 주렁주렁 달고서.
하지만 그런 믿을 수 없는 술법 같은 걸로 강함을 정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무위는 조금 다를 테니까.
“무황이나 천마와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문영이나 우문혜가 몇 가지 의견을 내놓았지만 그녀들이 판단할 수 없는 문제였다. 무황을 만나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니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단형우가 무황보다 약하다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만큼 단형우가 그녀들에게 보여준 인상은 너무나 강렬했다.
“어쨌든 십대고수에 들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건 확실하지. 안 그래?”
그 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다. 검왕을 일검에 물리친 사람이 십대고수에 못 들면 누가 들겠는가.
우문혜는 그 말을 하고 약간 장난스런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흐응, 소문을 한 번 내볼까? 조금만 소문을 내도 단번에 십대고수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
우문혜의 말에 모두 눈을 빛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제갈린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던 제갈린이 우문혜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자, 우문혜는 살짝 아미를 찌푸렸다.
“왜? 내가 보기엔 아무 문제없는데? 단공자님처럼 대단한 분이 이렇게 묻혀 있단느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제갈린은 우문혜의 일리 있는 말에도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어차피 알려질 거예요.”
제갈린의 표정에는 약간의 불안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소협의 힘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나 있어요. 어떻게든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길 거예요. 차라리 알려지지 않는 것이 상황에 대처하기 훨씬 쉬운 법이죠.”
제갈린의 말을 모두 수긍할 수는 없었지만 계획은 접기로 했다.
“아깝긴 하지만 내가 물러나지. 그럼 너도 의견을 내봐. 우리 단공자님이 얼마나 강한 거 같아?”
우문혜는 눈을 빛내며 제갈린에게 대답을 종용했따. 누가 뭐래도 제갈린은 백봉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여인이다.
머리 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다는 제갈세가에서도 최고라고 알려진 백봉이니 사람을 보는 눈이나 파악하는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날 것이 분명했다.
네 여인의 시선이 호기심을 가득 담고 제갈린에게로 향했다. 제갈린은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십대고수가 한꺼번에 덤벼도 안 될 거예요.”
제갈린의 대답에 일순 방 안에 싸늘한 한기가 맴돌았다. 설마 제갈린이 이렇게나 대단하게 평가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아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력을 모조리 끌고 와도 상대가 안 될지도 모르지요.”
이어진 제갈린의 말은 그녀들을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진자 그렇다면 그걸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십대고수 중에는 검왕처럼 혼자 독보천하 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황처럼 자신의 세력을 가진 사람도 많다. 특히 이번에에 새로 십대고수가 된 천영은 정천맹을 이끌고 있지 않은가.
제갈린의 말대로라면 정천맹을 비롯해 무황성과 천마성, 그리고 소림과 무당의 모든 고수가 몰려와도 단형우를 상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화, 황당한 농담을 진담처럼 하네.”
우문혜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응수했다. 하지만 그녀도 어렴풋이 진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만일 단형우가 정말로 그 정도로 강하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강한 힘을 누군가 교묘하게 이용하려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우문혜를 비롯한 방 안에 있는 여인들은 저마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 떠올라 버린 것이다. 내심 제갈린이 왜 그렇게 불안한 표정을 지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갈린의 의견을 수긍할 수도 없었다. 그건 말도 안 되니까.
물론 말을 한 당사자인 제갈린도 크게 과장해서 얘기를 했다.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들도 약간이나마 경각심을 갖게 될 것 아닌가.
어쨌든 제갈린의 한 마디 덕분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분위기는 쉽게 원래대로 돌아가기 어려워 보였다.
여인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사실 단형우에 대한 소문은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었다.
혈마회에서 단형우의 이름이 커지는 것을 막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천하를 진동시키고도 남았다.
단형우는 검왕과 검마, 패룡을 굴복시켰다. 혼자서 십대고수 중 셋을 패퇴시켰으니 이름이 높아지지 않을 수가 없었따. 게다가 사천에서 단형우가 벌인 일은 목격자가 너무나 많았따.
흑사방을 단신으로 몰락시켰고, 홍택호에서는 진천뢰를 가진 수적들을 박살냈다.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혈마회의 힘은 대단했다. 그 모든 소무을 사전에 차단했다. 혈마회는 아니, 혈마자는 단형우가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원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단형우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무영은 장막 앞에서 부복한 채로 혈마자의 명을 기다렸다. 혈마자는 무영이 부족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말이 없었다.
“조서단에서 정말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나?”
혈마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무영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그는 고개를 슬쩍 들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놀라운 일이군. 천기자의 안배로 키운 백 명의 기재가 모두 죽었다고?”
혈마자는 믿기 어려웠지만 조영과 서영은 함부로 단정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 그놈 혼자서 천하를 제집처럼 돌아다녔단 말인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하루 만에 장사에서 허창으로 이동한 것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이번에는 함께 이동한 사람들이 있어서 완벽히 확인했습니다.”
“대체 그놈의 정체는 뭔가? 설마 신선이라도 된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니지만 뭔가 기묘한술법을 알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다면 검영과 마영의 협공을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혈마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검영과 마영, 그리고 검영대와 마영대가 단형우에게 무너진 사실이 떠올랐다. 조금 아깝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혈마자가 앞으로 할 일에 그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만큼 혈마회의 힘이 커진 것이다.
“일단 그놈의 술법이 뭔지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로군.”
“조서당에 지시를 내려놓겠습니다.”
무영은 즉시 대답했다. 혈마자는 그런 무영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장막이 시선을 가리고 있었지만, 혈마자의 눈을 막을 수 는 없었다.
“천중산은?”
“발굴 중입니다.”
무영은 대답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중산의 일은 덕분에 혈마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영은 아직도 며칠 전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천중산에 널베 펼쳐진 그 진법을 뚫을 수 있는 파진도(破陳圖)를 던져 주던 혈마자의 모습을 말이다.
“서둘러라.”
혈마자가 원하는 것은 그곳에 있다는 혈영검과 천기자가 남긴 책, 그리고 하나의 궁(弓)이었다.
진법을 뚫을 수 있는 이상 그것들을 발굴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무영은 자신이 가질 수 있었던 천기자의 책을 가질 수 없다는 허탈감에 빠져 있었지만 그건 그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였다. 뭔가를 획책하기엔 혈마자의 능력이 너무 뛰어났다.
“존명.”
무영은 그렇게 대답한 후, 꺼지듯 사라졌다.
혈마자는 무영이 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마치 손 안에서 맴도는 벌레를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친구의 검
단형우는 오늘도 느긋하게 허창 저잣거리를 거닐었다. 항상하던 일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단형우에게는 그래도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뿜어대는 후끈한 삶의 열기는 언제나 단형우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오늘도 그렇게 삶의 향기를 느끼며 걸음을 옮기던 단형우는 문득 잊었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너무도 오래되어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만 간직하던 기억이었는데 갑자기 떠올라 버렸다.
단형우는 고개를 내려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을 쳐다봤다. 검집에 들어가 있었지만 그 예기는 단형우의 허버지를 간질였다. 가만히 살피니 검집이 많이 망가졌다.
검집에 검날이 닿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예기만으로도 검집 정도를 상하게 하는 것은 충분했다. 그 정도로 날카롭고 대단한 검이었다.
자신에게 검을 건네준 친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친구가 부탁했던 말도 떠올랐다.
“찾아봐야겠군.”
단형우의 머릿속에 형표가 떠올랐다. 악세기의 집인 악가장을 단번에 찾아준 형표 아닌가. 이번에도 분명히 친구의 집을 찾아줄 것이다.
?㈎珥?발걸음을 돌려 하남표국으로 돌아갔다.
형표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그 와중에도 단형우를 위해 시간을 냈다. 현재 하남표국은 형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조설연이 의도적으로 뒤로 물러난 탓이었다.
사실 조설연은 하남표국을 형표에게 줄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가장을 다시 일으킬 생각이었다. 물론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덕분에 형표는 처음 하남표국을 세울 때보다 훨씬 더 바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관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형표는 최근 표두와 표사를 대거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일을 추진하느라 엄청 바빴지만 단형우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형표에게 있어 단형우는 하남표국의 근원이었다. 단형우가 있기에 하남표국이 있고, 더욱 커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단형우지만, 실력만큼은 천하제일인이라 굳게 믿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꽤 구체적이로군.”
형표는 슬쩍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예전 악가장을 찾을 때는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식이었다. 사실 형표가 악가장을 단번에 찾아낸 것도 운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대장장이라……”
대장장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주어졌다. 물론 천하에 대장장이가 수없이 많지만 단형우가 제시한 단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쉽지는 않을 걸세. 그러니 며칠 기다리게.”
형표의 말에 단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장 찾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갑자기 떠올랐기에 말해 본 것이었다. 지금 말해 두지 않으면 다시 잊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형표에게 얘기해 둔 것뿐이다.
형표라면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제갈린은 앞에 놓인 천섬을 유심히 살폈다. 오늘 또 선들이 늘어났다. 염혜미가 수련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선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