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97
그래서 마차 여행을 계획했다. 헌데 그 계획을 새나가고 말았다. 덕분에 마차를 다시 구해야 할 정도로 일행이 늘어나 버렸다.
바늘 따라가는 실처럼 줄줄이 사람들이 붙은 것이다. 당연히 조설연과의 오붓한 시간 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모두 표국 입장에서 보면 엄청나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럴 때면 혹처럼 느껴졌다.
“사람 마음이 그래서 간사하다고 하는 거로군.”
형표는 허탈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후, 표국의 일상으로 녹아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염혜미의 질문에 조설연은 속으로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목적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저 단형우가 어딘가로 간다고 하니 우르르 따라붙은 것뿐이었다.
“요녕(遙寧)으로 가고 있어요.”
“요녕? 그렇게 먼 데로 가는 거였어요? 거길 왜 가는 건데요?”
하남표국이 있는 허창에서 요녕의 성도인 심양까지 관도를 타고 가려면 거의 삼천 리를 이동해야 했다. 종칠의 마부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단기간에 갈 수 있는 거리는 결코 아니다.
게다가 이번 여행은 그저 목적지로 빨리 가기 위한 여행이 아니다. 주변 풍광도 구경하며 여유 있게 가는 여행이다. 사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빨리 갔다 오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조설연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함꼐 오래 있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이 생길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단형우와 함께할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터져나갈 듯했다.
“단오라버니께서 볼일이 있으세요.”
단형우의 일이라고 하자 마차 안의 분위기가 일순 바뀌어 버렸다. 단형우는 여전히 신비로운 존재였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충분히 기대가 되는군요.”
제갈린의 의미심장한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여행에서 어쩌면 단형우에 대한 비밀을 캘 수 있을 만한 단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차 안은 순식간에 여인들의 수다로 시끄러워졌다. 그 소란에 적응을 못하고 어색하게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당호관과 영사였다.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밖에 있을 걸 그랬군.’
무림매이 발칵 뒤집혔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하나의 소식때문이었다. 주작단주는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맹주에게 보고했고, 그 즉시 모든 간부가 모여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주작단주, 그게 사실이오?”
모이자마자 장로 중 하나가 소리 높여 물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같은 눈으로 주작단주를 쳐다봤다. 주작단주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천마성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주작단주의 확인에 장내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다른 사안 같았으면 웅성거리느라 소란스러웠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만큼 천마성은 무서운 곳이었다. 아니, 마인들의 움직인다는 것이 무서운 일이었다.
맹주인 파산검 독고운이 침묵을 깨트렸다.
“천마가 직접 움직였나?”
“그런 듯합니다.”
주작단주의 말에 독고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세히 보고해 보게.”
“천마를 비롯한 천마성의 핵심 고수들이 신강을 떠났다 합니다. 다만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디로 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신강과 청해에도 무림매의 눈과 귀가 숨어 있다. 천마성이나 주요 마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다.
마인들의 습성 상 잘 뭉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수십 단위로는 뭉쳐 다닌다. 물론 아주 강한 마인의 경우에는 홀로 다닌다.
길가다 맞아죽을 정도만 아니라면 마임들은 혼자 있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혼자 있어야 피를 먹어도 더 많이 먹고, 음행을 저지르더라도 여자를 혼자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림맹이 신강과 청해에서 하는 일은, 많은 마인들이 뭉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과 천마성의 감시다. 그것만 조심하면 마인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무림은 거의 끝장이라고 봐야 했다. 그만큼 마인들의 힘은 무서웠다.
천마성은 큰 세력이고 힘이지만 독고운의 힘으로 막고 있었다. 마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금마공이다. 평생 일궈온 마공이 단숨에 깨져 버리는데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천마성이 움직였다.
“뭔가 확신이 있다는 뜻이로군.”
천마는 무공만 강한 사람이 결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웬만한 사람들보다 생각이 깊은 편이다. 그런 천마가 움직였다면 뭔가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금마공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인가?”
맹주가 말을 할 때마다 방에 모인 장로들을 비롯한 무림맹 간부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사실 맹주와 제갈중천은 다른 자들이 모르는 비밀을 하나 알고 있다. 검마는 금마공에서 자유롭다. 아직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드러난 정황만으로는 분명히 그렇다. 천마는 검마를 만나기 위해 신강을 벗어난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아직 완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다른 마인들도 함께 움직였을 것입니다.”
말을 꺼낸 사람은 제갈중천이었다. 그리고 모두 그 말에 수긍했다.
마인들은 중원에 들어오고자 하는 욕심이 가득했다. 실제로 지난 번 천기자의 비동이 나타났을 때 수많은 마인들이 몰려오지 않았던가.
물론 모든 마인이 달려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그들이 확신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모여든 마인들은 지나칠 정도로 욕심이 많은 마인들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만일 정말로 금마공을 넘어설 방법을 찾았다면 다른 마인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그리고 천마가 다른 마인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일단 중원 무림에 혼란이 닥쳐와야 천마가 노리는 바도 훨씬 이루기 쉬워질 테니까.
“제갈 군사의 말이 옳소. 아마 아직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오. 아니, 어쩌면 아직 그것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
독고운은 그렇게 말해 방 안 분위기를 조금 풀어지게 한 후, 말을 이었다.
“이번 기회에 무황성의 힘을 한 번 보는 것이 어떻겠소?”
독고운의 말에 제갈중천이 고개를 숙였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다른 장로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무황성을 움직일 수 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힘 안 들이고 코를 풀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과연 진정 무황과 천마가 싸우면 어떻게 될지 그 결과가 궁금하기도 했다.
“괜찮은 방법이군요. 헌데 무황성을 움직일 수 있겠소?”
장로 중 하나가 묻자 제갈중천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제갈중천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회의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장로들과 간부들이 모두 돌아간 후, 제갈중천은 독고운과 둘만 남아 심각한 표정으로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했다.
“정말로 무황성을 움직일 수 있겠나?”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쉽습니다. 승부욕이 강한 자들이니까요.”
독고운은 그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무황성이나 천마성이나 사실 비슷한 자들끼리 모인 집단이다. 한쪽은 마인이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않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보다 맹주님.”
“말해 보게.”
제갈중천은 잠시 뜸을 들이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들을 움직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갈중천이 말하는 ‘그들’이 누구인지 독고운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독고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그저 확실히 마무리하기 위함일 뿐입니다.”
제갈중천의 말에 독고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한 게 좋겠지. 하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건 무황성일세. 괜히 자존심을 건드려 봐야 좋을 것은 없지 않나.”
독고운의 말은 확실히 옳았다. 무황성 사람들은 무와 승부에 미쳐 있는 자들이다. 천마성 고수와 대결하는데 다른 힘이 개입된다면 달가워 할 리가 없었따.
“굳이 개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확실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아직 그들은 금마공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제야 독고운도 제갈중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확실히 제갈중천의 말이 옳다. 뭐든지 확실히 해 두는 것이 좋다. 특히 마공을 익힌 마인들에 관한 것이라면 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 되도록이면 검마와 만나기 전에 처리하는 것이 좋겠어.”
독고운의 말에 제갈중천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다.
그들이 갈 곳은 너무도 뻔했다. 검마를 만나고자 한다면 하남표국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일단 그 정보를 무황성에 흘리고 적당히 그들을 부추긴다면 분명히 움직일 것이다. 무호아이 거절해도 상관없었다. 무호아성은 무황이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었으니까.
제갈중천은 모든 것을 정리한 후, 거처에 들었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침상에 던졌다.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피곤했다. 처리한 일도 많은데다가 터진 사건들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천마가 직접 움직이다니.”
자그마치 천마가 직접 움직였다. 잘못하면 무림에 있는 모든 문파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천마가 죽는다고 해서 정마대전(正魔大戰)이 벌어질 리는 없다. 그러기에는 마인들의 유대감이 너무 엷었으니까.
하지만 천마가 금마공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그때는 정말로 무림이 위태로울 것이다.
오랜 기간 사파와 싸운 덕분에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무인의 수는 늘었을지언정 전체적인 체력이 많이 약해졌다.
만일 정말로 정마대전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거지.”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중원 무림을 노리는 세력은 마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흔히들 새외라 불리는 곳에 있는 거대한 세력들이 호시탐탐 무림을 노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북해빙궁이다.
예전에도 한 번 쳐들어왔던 적이 있으니 다시 올 수도 있다. 아니, 더욱 칼을 날카롭게 벼리며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뇌황이 다시 나타난 것도 아니니……”
예전 북해빙궁이 쳐들어왔을 때는 뇌황이 막았다. 하지만 지금 뇌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벼락을 마음대로 다뤘다는 뇌황의 무공도 실전된 지 오래다.
당가에서 그것을 복원하고 있따고 하지만 아직 성공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몇 가지 소문은 난 것 같지만 그나마도 확실치 않았다.
“그나저나 린이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얼마 전 제갈린이 서찰을 하나 보내왔다. 거기에는 당분간 무림맹에서 나가겠다고 쓰여 있었다.
별다른 이유도 적혀 있지 않으니 답답하긴 했지만 제갈린이 하겟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제갈린이라면 분명히 뭔가 중요한 이유가 있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거라 믿었다.
제갈린은 제갈세가의 미래다.
제갈린을 제외한 승룡단은 오늘 무림맹에 도착했다. 하원후의 표정이 과히 좋지 않았지만 그냥 넘겨 버렸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기엔 너무 상황이 복잡했다.
결국 제갈중천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그러는 사이 날이 밝아 버렸다.
제갈중천의 하루는 상당히 일찍 시작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을 맹주와 함께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갈중천에게 용무가 있는 사람은 이렇게 그가 일어나는 시각에 맞춰 방문을 해야 한다.
오늘도 제갈중천에게 용무가 있는 사람이 딱 시간에 맞춰 찾아왔다.
“제갈 군사님, 상평입니다.”
상평은 제갈중천 아래서 잡일을 하는 사람이다. 제갈중천은 그를 안으로 들었다.
“들어오게.”
상평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품에서 서찰 두 개를 꺼내 공손히 내밀었다.
“어제 오후 늦제 도착한 서찰입니다.”
“누가 전해 주던가?”
“하나는 산서(山西) 태원문(太原門)에서 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천맹에서 온 것입니다.”
상평의 말에 제갈중천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태원문은 현재 승룡단주를 맡고 있는 하원후의 출신문파다. 하원후는 태원문주의 아들이다.
당연히 태원문도 무림맹 소속이다. 군사에게 서찰 정도 보내는 것은 별 것 아니었다. 하지만 정천맹은 다르다.
“이리 줘 보게.”
제갈중천은 상평의 손에서 서찰을 받아들였다. 상평은 서찰을 전해 주자 공손히 허리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갔다.
제갈중천은 상평이 나가는 것도 못 보고 허겁지겁 서찰을 펼쳤다. 놀랍게도 두 서찰은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허어, 이것 참.”
제갈중천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흐뭇한 기분도 들었다.
“하긴, 우리 린이 정도라면 누구나 탐낼 만하지.”
태원문에서 온 서찰은 하원후와 제갈린을 맺어주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정천맹에서 온 것은 정천맹주가 제갈린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제갈중천은 새삼 제갈린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기했다. 정천맹주를 만난 것은 극히 짧은 시간일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인상이 깊었으면 이렇게 절절히 원한단 말인가.
“이건 마치 혼인을 안 시켜주면 납치라도 할 가세 아닌가. 허허헛.”
제갈중천이 기분 좋게 웃었다. 실제로 서찰에 납치하겠다고 쓰여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글의 기세가 충분히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허허헛.”
누구와 손을 잡아도 의미가 있다. 하원후는 장래 무림맹주가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그리고 정천맹주는 비록 나이는 조금 많지만 대단한 사람이었다. 제갈중천이 감탄할 만큼.
하원후를 잡으면 앞으로 무림맹에 더 많이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갈세가의 힘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천맹주를 잡으면 무림맹과 연합하는 것도 꿈도 아니게 된다. 다시 거대한 무림맹으로 탈바꿈 할 수 있는 것이다.
제갈중천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마차 지붕 위에는 세 사란이 서 있었다. 단형우가 앉지 않으니 검왕과 검마도 앉지 않았다.
“하여간 무뚝뚝한 놈들하고 같이 가려니까 숨이 다 막히는구나.”
검왕은 연방 투덜거렸다. 검왕도 사실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아니, 세상에는 과묵하다고 알려졌다.
단형우를 만나면서 분위기가 조금 밝아지고, 염혜미의 병을 고치면서 성격이 바뀌어 버렸다고 느껴질 정도로 달라졌다.
물론 그래도 수다스럽거나 경망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형우와 검마는 그런 검왕에 비해 너무나 말이 없었다.
“답답하니까 말이나 좀 해 봐라.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게냐?”
검왕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마부 종칠이었다.
“요녕(遙寧)으로 가고 있습니다.”
“요녕? 갑자기 요녕에는 왜? 모용세가랑 무슨 일이라도 있나? 설마 혼사를 진행하러 가는 건 아니지?”
“혼사는 무슨, 그런 거 아닙니다.”
종칠의 버릇없는 대답에 검왕의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따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