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99
“슬슬 대련을 할 때가 되었던가?”
검왕과 검마의 몸에서 은근한 기세가 피어오르자 당호관이 급히 나서서 둘을 뜯어말렸다.
“자자, 고정하십시오. 두 분께서 이러시면 마차 안에 있는 애들이 불안해합니다.”‘
당호관의 말은 꽤 효과적이었다. 검왕이 기세를 거두었다. 마차 안에는 검왕이 애지중지하는 염혜미도 있었으니까.
“끄응, 내가 말을 말아야지.”
“잘 아는군.”
검왕의 눈이 다시 한 번 사납게 빛났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며 기세를 죽였다.
검왕과 검마를 뜯어말린 당호관이 눈에 내력을 집중해서 앞을 살폈다. 검왕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을 거라 했으니 분명히 누군가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한동안 살피던 당호관도 눈을 빛냈다. 한 무리의 무사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복장으로 보아 팽가에서 나왔음이 분명했다.
“호오, 팽가에서 마중을 나왔군요. 헌데 우리가 지금 팽가로 가고 있었던 가요?”
당호관이 목적지를 모를 리 없다. 그만큼 팽가의 등장이 흥미롭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하북에 들어서기 무섭게 그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일행의 행보에 관심이 있다는 뜻 아닌가.
당호관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과연 일행 중 누구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흐음, 제갈소저와 십대고수 정도인가. 뭐, 우리 문영이도 보통은 아니지.”
당호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추측했다. 지금 일행 중 팽가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은 그 셋 정도였다.
그리고 최근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는 화중화(花中花) 우문혜도 관심을 가질 만했다.
당호관이 그렇게 추측을 하는 동안 어느새 일행은 팽가 무사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팽가 무사들 역시 길을 막듯 가로로 길게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마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종칠은 마차를 멈추면서 나직이 투덜거렸다. 예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물론 단형우가 있었으니 안전하긴 했지만 유쾌한 기억은 절대 아니었다.
종칠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근처에 있어도 결코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살마들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면 얘기다 다르다. 앞에 늘어선 사람들은 팽가의 정예 무사들이었다.
그들의 귀에는 종칠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대번에 인상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그들을 팽가로 초대하는 입장이었으니까.
팽가 무사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마차 지붕을 쳐다보며 포권을 취했다.
“저는 팽만호라고 합니다. 여러분을 초대하라는 가주님의 명을 받고 나왔습니다.”
팽만호는 팽가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였다. 비록 나이는 아직 서른에 불과하지만 팽가 가주보다 강하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고강했다.
상대는 십대고수 중 둘이다. 팽만호 정도 되는 고수는 보내야 격이 맞다. 적어도 팽가에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팽만호의 정중한 포권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검왕과 검마가 동시에 당호관을 쳐다봤다.
당호관은 두 사람의 눈길을 받으며 속으로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팽가라지만 다짜고짜 길을 막고 초대라니 좀 너무하지 않소?”
당호관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팽만호의 눈이 살짝 빛났다. 팽만호는 한눈에 당호관이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소한 자신의 적수가 될 정도의 고수였다.
팔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몸속 깊숙이 갈무리한 투쟁심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투기글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팽만호는 급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조설연을 그렇게나 원하던 조카의 모습을 떠올리니 쉽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팽만호는 당호관을 향해 다시 한 번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죄송합니다. 반드시 모시고 싶은 마음에…… 어쨌든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여행도 원하신다면 모두 팽가에서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팽만호가 저자세로 나오니 당호관도 어쩔 수 없었다. 당호관은 검왕과 검마, 그리고 단형우를 쳐다봤다. 이곳에서 최소한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셋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왕과 검마가 단형우를 쳐다봤다. 결국 단형우가 결정을 해야 할 듯했다.
단형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단 급한 건 없었다. 팽가에 들렀다 가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가고 싶은 마음이 일지도 않았다. 즉,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었다.
단형우는 검왕에게 결정하라고 말하려다가 문득 조설연이 떠올랐다. 이런 일은 조설연이 결정하는 것이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차 안에 있는 다섯 여인은 갑자기 마차가 멈추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팽가가 웬일일까요?”
당문영의 얼굴에 호기심이 일었다. 다른 여인들의 얼굴에도 조금씩 궁금증이 어렸다.
팽가는 오대세가 중 하나다. 상당한 힘을 가진 가문이었다. 관심이 가는 것이 당연했다.
제갈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팽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검왕이나 검마의 힘을 얻으려 하는 것도 아니었다. 팽가라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거니와, 검마의 경우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게다가 천마성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고.’
제갈린도 정기적으로 세가의 정보망을 이용하고 있었다. 당연히 천마성과 무황성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팽가가 검마와 접촉한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조설연 역시 궁금했따. 그리고 그때 단형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조설연은 깜짝 놀랐다. 전음이 아니었다. 뇌리로 직접 침투해 들어와 의지를 전달했다. 그것은 정말로 그저 ‘의지’에 불과했다. 라고 말한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지 실제로 그런 말이 들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단형우의 의지였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놀라야 하는 건가요.’
단형우와 함께 있으면 매번 놀라게 된다. 한 꺼풀 껌질을 벗겨냈다 싶으면 이렇게 또 다른 경지를 보여준다. 그것도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조설연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놀란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마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사뿐히 마차 밖으로 내려섰다.
조설연이 나타나자 팽가 무사들이 살짝 동요했다. 특히 가장 앞에 있던 팽만호의 눈이 상당히 커졌다.
조설연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팽만호 앞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조설연의 물음에 팽만호는 살짝 벌어졌던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 이유가 조설연 때문이라고 바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주님꼐서 하남표국과 친분을 다지길 원하고 계시네.”
팽만호의 어투에 마차 지붕에 있던 당호관과 영사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조설연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팽만호의 눈을 쳐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 잠시 들르도록 하지요.”
조설연의 대답에 팽만호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탁월한 선택이네. 그럼 어서 마차에 오르게. 우리가 호위를 할 테니.”
팽만호의 말투는 상당히 다정했다. 마치 한 식구를 대하는 듯했다.
이내 다시 마차가 출발했다. 이번에는 팽가 무사들을 줄줄이 달고 움직여야 했다. 북경 근처에 있는 팽가를 향해.
마차는 팽가 무사들이 호위해 준 덕분에 별다른 일 없이 팽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팽가의 정문은 마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활짝 열려 있었다. 이것도 모두 팽가 무사들과 함께 간 덕분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여인들은 생각보다 대단한 팽가의 규모에 살짝 놀랐다.
“꽤 대단하네. 그저 오대세가라기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건 생각 이상인걸?”
우문혜의 감탄에 일행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혜가 놀랐다는 것은 팽가의 규모가 우문세가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문세가가 최고의 금력을 가진 가문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녀의 놀람은 대단한 일이었다.
제갈린 역시 속으로 엄청나게 놀랐다. 그녀가 보는 관점은 다른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세가의 규모보다는 건물의 배치나 세세한 곳에 숨겨진 다양한 기관진식에 더 눈이 갔다.
“건물 배치가 심상치 않군요. 세 개의 진(陳)을 뒤섞어 놨어요. 정말로 교묘한 배치네요.”
제갈린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만일 자신이 천섬을 연구하며 비약적으로 실력이 늘어나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팽가에 펼쳐진 진법은 대단했다.
‘대체 누가 이런 대단한 진을 설치했을까?’
처음 떠오른 사람은 천기자였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진의 흐름이 천기자와는 많이 다르다. 천기자는 이런 식보다 훨씬 더 논리적인 진을 추구한다.
“어떤가? 대단하지?”
제갈린은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팽만호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의 말이 틀리지 않기에 대답해 주었다.
“대단하네요. 제갈세가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하하핫, 그렇게 평가해 주니 정말로 기분이 좋군. 다른 곳도 아니고 제갈세가와 비견될 정도라니 말이야. 하하하핫!”
팽만호의 웃음에 제갈린이 살짝 말을 덧붙였다.
“진을 설치한 사람의 능력이 정말로 대단하네요. 감각적이에요. 그냥 진 세 개를 던졌는데 우연히 맞물렸다고 생각될 정도로요.”
팽만호의 웃음이 뚝 그쳤다. 제갈린은 그의 눈에 담긴 경악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맺혔다.
우연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우연이 아니다. 진법가는 확신이 없다면 절대 진을 설치하지 않는다.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알기 때문이다.
팽가에 진을 설치한 사람도 분명히 어떤 확신을 가지고 진을 설치?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제멋대로였다.
‘나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제갈린은 팽가에 펼쳐진 진을 꿰뚫어 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진 세 개를 뒤섞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하지만 지금의 제갈린이라면 가능했다.
“그래도 일단 진이 발동하면 파훼하기는 쉽지 않겠네요.”
제갈린의 말에 팽만호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방금 제갈린이 한 말은 진을 설치한 진법가가 해 준 말과 똑같았다.
“뭐, 그렇다고 하더군. 어쨌든 이렇게 세가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만든 진법은 누구도 쉽게 뚫지 못하는 것이 최고 아니겠나. 하하핫.”
제갈린은 팽만호의 말에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지만 굳이 꺼내지 않았다.
사실 이런 식으로 설치한 진은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다. 진을 개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정확히 파훼법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진을 뜯어고칠 수가 없다. 그것은 이 진을 설치한 진법가가 직접 하더라도 마찬기지다. 지나치게 감각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역시 진은 논리지.’
제갈린은 천섬을 연구하면서 그것을 더욱 확연히 느꼈다. 간혹 기의 흐름만 파악하고 감각에 의지해 진을 설치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예전 제갈린은 그런 자들의 천재성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천섬을 연구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 절실히 깨달았따.
그 깨달음을 굳이 여기서 떠벌일 필요는 없었다. 팽가에는 이 정도 진이면 충분하다.
“자자, 가주님이 기다리시겠네. 어서 가지.”
팽만호가 걸음을 빨리했다. 더 이상 제갈린과 진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행은 팽만호의 안내에 따라 커다란 전각 앞에 도착했다. 팽만호는 그 앞에 멈춰 잠시 일행을 살폈다.
“가주님을 모두 만날 수는 없네. 그러니……”
사람을 선별해서 데리고 들어가겠다는 뜻이다. 그 말에 일행 모두의 인상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당호관은 사태가 심각하게 꼬이지 않게 하기 위해 급히 나서려 했다. 검왕이나 검마가 날뛰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 뻔했다.
“상관없다.”
당호관은 막 말을 꺼내려다 갑자기 들려오는 말에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단형우가 한 말이었다. 당호관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일단 단형우가 말한 이상 그게 해야만 한다.
당호관이 어색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물론 일행 모두 놀란 표정으로 단형우를 쳐다보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팽만혼느 기묘한 표정으로 단형우을 쳐다봤다. 팽만호가 단형우에게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함께 오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별로 비중이 없는 인물이라 여긴 탓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잠시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해야지.’
그것이 팽만호가 판단한 단형우였다.
어쨌든 팽만호는 미리 생각한 대로 단형우와 영사, 그리고 종칠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각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몇몇 여인들이 강하게 반발하려 했지만 단형우가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고는 그냥 얌전히 팽만호를 따라갔다.
일행이 모두 들어가자 종칠이 또 투덜거렸다.
“젠장, 이거 서러워서 원.”
따로 숙소를 안내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 전각 앞에는 함께 팽가로 왔던 무사들이 눈을 부라리고 서 있었다.
종칠은 그 무사들을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에휴휴. 조금 쉬다보면 나오겠지.”
“하하하, 뭐 쟁자수나 호위의 신세가 다 그렇지 않은가.”
영사가 붙임성 있게 종칠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종칠과 영사는 그래도 나름대로 꽤 친해졌다.
영사라고 검왕과 검마의 틈바구니에 있고 싶었겠는가. 영사는 마차가 이동할 때 자주 종칠 옆 마부석에 함께 앉았다.
팽가 무사들은 바닥에 주저앉은 두 사람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들에게 말하진 않앗지만 이곳은 팽가의 주요 인물들이 모여 있는 전각이었다.
“뭐 나야 이런 대접 받는 게 익숙하지만…….”
종칠은 그렇게 말을 흐리며 단형우를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종칠이 기분 나쁜 이유는 단형에 대한 대접 때문이었다. 아무리 팽가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단형우에 비할 수 있겠는가.
“대체 왜 이런 대접을 받고 가만히 계시는 건지, 나 같으면 그냥 다 쓸어버릴 텐데.”
종칠이 작은 목소리를 중얼거렸다. 물론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게 말한다 해도 팽가 무사들의 귀에 닿지 않을 수는 없었다.
팽가 무사들의 안색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들도 경거망동할 수 없다.
팽가 무사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이곳을 지키라는 임무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팽만호의 명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결국 무사들 중 셋이 남고 나머지가 나서기로 결정을 내렸다.
팽가 무사들 중 하나가 종칠에게 다가갔다. 종칠은 그 모습을 보며 흠칫 놀랐다. 혹시 자신이 중얼거린 말을 들었나 싶어서였다.
너무 열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혼잣말이었지만 그 말을 팽가 사람들이 들으면 큰일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보게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조금 더 널찍한 장소로 옮겨서 쉬는 게 어떤가? 술이랑 요깃거리도 좀 준비해 줄 수 있네만.”
종칠은 의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할 따름이죠, 으헤헷.”
종칠이 벌떡 일어섰다. 영사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조용히 넘어가기는 그른 듯싶었다.
영사는 가만히 팽가 무사들의 면면을 살폈다. 하나같이 수준이 높았다. 팽가에서도 고르고 고른 무사들인 듯싶었다. 사령당의 백사단 정도였다. 게다가 수가 스물이 넘으니 자신 혼자로는 턱도 없었다.
‘끄응, 골치 아프게 됐군.’
그래도 걱정은 되지 않았다. 단형우가 함께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형우만 있다면 천하가 다 덤벼들어도 두렵지 않다. 영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따.
팽가 무사들이 종칠을 데리고 간 곳은 팽가의 연무장이었다. 확실히 넓긴 했지만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제야 종칠도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 많이 무뎌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때는 눈치로 먹고 살던 쟁자수였다.
‘젠장, 들었군.’
그것밖에 이유가 없었다. 이런 으슥한(?) 곳으로 자신을 끌고 올 이유는 말이다.
“자,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팽가 무사들은 연무장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빛냈다. 어쨌든 손님의 일행이다. 겉으로 표가 심하게 나면 곤란했다.
물론 데리고 온 하인을 때리거나 죽였다고 문제가 커질 리 없겠지만.
‘뭐 대주님이 적당히 처리해 주시겠지. 저놈이 한 말을 들었다면 대주님이 먼저 나서셨을 테니.’
팽가 무사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생각이었다. 당연히 대주는 팽만호였다. 그들은 팽가 최고이 무사들로 구성된 맹호대(猛虎隊)였다.
“헤헤, 왜, 왜 이러십니까? 저희는 팽가의 손님인데……”
종칠이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도망갈 수도 없었다. 어느새 연무장 입구도 맹호대 무사 셋이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