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0)
10화 호위무사 (2)
귀주석가가 대산팔가에 이름을 올린 지도 이백 년.
그들은 세 명의 좌사(左師)와 다섯 명의 우사(右師), 그리고 아홉 명의 사대호법을 배출했다.
그러나 최근 십 년 동안은 좌우양사는 물론 사대호법조차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것이 전부인가?”
가주의 물음에 석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전언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가주 석준명이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낮게 신음했다.
“으음, 교주님께서 칠공자를…….”
석비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주님, 교주님의 말씀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석준명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교주님의 말씀에 어찌 의미를 두지 않는단 말인가?”
석비연이 대답했다.
“교주님은 칠공자가 보여 준 변화에 호기심을 가진 것뿐입니다. 그 호기심에 가문의 흥망을 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칠공자 명운을 아꼈다. 그래서 명운이 후계자 경쟁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운은 피와 음모가 난무하는 후계자 경쟁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을 닦으며 살아가는 훨씬 행복할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생각은 과거 명운의 생각과 같았다.
하나 교주가 된 명각은 두 사람의 생각과 달리 명운을 살려 두지 않았다.
“음……. 이대로 머물고자 하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옳겠지. 하나 최근 석가는 지나치게 침체되어 있네.”
사대호법조차 배출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 그에게는 짐이 되고 있었다.
“가주님.”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배는 움직이지 않는다. 전대 가주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라네.”
석비연은 걱정이 앞섰다.
“부디 신중하게 생각하시길…….”
석준명이 오른손을 들며 물었다.
“비연, 그대는 이번 일과 칠공자를 어떻게 생각하나?”
석비연은 교주의 측근이자 대명궁의 온갖 소식들을 갈무리하는 시녀장이었다.
그가 그녀의 의견을 묻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 부면 때, 칠공자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대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석준명은 한 번 더 물었다.
“장공자와 나이가 차이가 크게 나는 막내이니, 부족한 것이 당연할 수밖에. 비연, 네 진심을 듣고 싶구나.”
석비연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운을 칭찬하게 되면, 가주께서는 일을 크게 벌이실 것이 뻔하다. 운에게는 미안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녀는 명운의 소소한 행복을 지켜 주고자 했다.
“막내인 것은 둘째치고, 칠공자는 무공조차 익히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 그가 후계자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티끌인가?”
석비연이 덧붙이듯 말했다.
“어쩌면 티끌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석준명은 두 눈을 감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대는 상황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군.”
석비연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귀주석가가 아닌 명운을 위해 반대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좋은 말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석준명이 눈을 감은 채로 말을 받았다.
“사과할 것까지는 없네. 그대도 석가를 걱정해서 하는 말일 테니까.”
“가주님, 이번 일은 가볍게 흘려넘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석비연은 모든 일이 잘 정리되었다고 생각했다.
“비연.”
“예, 가주님.”
“그래도 난 해 보고자 하네.”
석비연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가주님!”
석준명이 말했다.
“최근 칠공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우리 쪽에 접근하려는 움직임도 있고 말이야.”
석비연이 다급하게 말을 받았다.
“가주님, 그것만 가지고 대업을 결정하실 수는 없습니다. 부디 숙고하여 주십시오.”
석준명은 눈을 감은 채로 오른손을 흔들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있는 것보다는 실패한다고 해도 뭔가를 해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네.”
그의 뜻은 확고해 보였다.
“가주님.”
석준명이 목소리를 낮췄다.
“비연, 세상에는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만 있는 것이 아니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본교의 가르침은…….”
“본교의 성전에 따르면 세상은 힘으로 지배하는 자와 그 힘에 쓰러진 자만이 존재하지. 하나 세상은 본교의 가르침과 달리 돌아가네.”
천마신교에서 신교의 가르침을 부정한다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과 같았다.
“가주님.”
석준명이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와 나 사이 아닌가? 본심을 말한다고 해도 탓하지 말게나.”
그는 석비연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물론 석비연도 가주인 그를 믿고 따랐다.
“하면 가주님께서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석준명이 대답했다.
“칠공자를 키워 보고 싶네.”
“그다음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를 균형을 무너뜨리는 저울추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네.”
“그 말씀은…….”
석준명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칠공자가 우리 뜻대로 커 준다면, 대업을 이루지는 못해도 누군가의 승리를 도울 수는 있지 않겠나?”
결국, 그도 명운의 승리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 다른 공자의 승리를 돕는 역할을 맡긴다는 말씀입니까?”
석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라고 해도 그 역할은 할 수 있지 않겠나?”
석비연도 이 말에는 동의했다.
“그것은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흐른다면 칠공자나 우리에게 큰 이득이 없지 않겠습니까?”
석준명이 두 손을 모았다.
“그래서 미리 말하지 않았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큰 이득을 바라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패자가 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이득이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석비연이 물었다.
“칠공자가 우리의 뜻을 받아들일까요?”
석준명이 되물었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한다면 그가 우리의 제안을 수락할까?”
“가주님.”
“난 사실을 말하는 것이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사람은 말일세. 꿈을 꾸고 있을 때 가장 큰 힘을 낼 수 있다네.”
석준명은 명운에게 비밀로 한 채 이번 일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앞으로 내딛는 힘이 다를 테니까.’
석비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주님, 이번 일…… 칠공자에게 잔인한 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는 진심이 섞인 말이었다.
석준명이 모았던 두 손을 풀며 물었다.
“잔인한 일이라. 힘없는 막내로 잊히는 것이 더 잔인한 일 아닐까?”
석비연은 그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일이 이렇게 되는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교주님께 가주님의 생각을 전하겠습니다.”
석비연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잠깐.”
석비연이 멈칫했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 당장 전하지는 말게.”
석비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때를 기다리시는 겁니까?”
석준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칠공자가 우리 뜻에 합당한 인물인지 한번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
석비연이 재차 물었다.
“합당한 인물이 아니라면 이번 일을 없던 일로 하실 겁니까?”
석준명이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가능하다면 이번 일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 * *
“헉… 헉… 헉…….”
조광은 거친 숨을 내쉬면서 미간을 좁혔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통과인가?’
그는 보위산에 가지 않기 위해 나머지 사내들과 한 시진 이상 격렬한 비무를 펼쳤다.
“제길…….”
욕을 하며 단내를 풍기고 있는 사내는 관흠이었다. 그는 조광보다도 더 지쳐 보였다.
‘보위산에 끌려갈 수는 없단 말이다.’
그의 옆에 서 있는 하후문은 눈썹을 곤두세운 채 정면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
이윽고 강하원이 입을 열었다.
“오늘 평가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다들 숙소로 돌아가 쉬도록.”
그의 한마디에 다섯 사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후우…….”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눌 힘도 없어 보였다.
명운은 다섯 사내를 훑어보고는 강하원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았나?”
강하원은 자세를 풀지 않은 채 대답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자들이라 생각했습니다만, 필사적인 모습을 보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는 명운의 뒤에 서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흙 속에 진주, 아니 돌 사이에 박혀 있는 사금을 찾아내다니,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대체 어떤 자들이기에 이런 재능을 찾아낸단 말인가?’
명운이 재차 물었다.
“강 총관, 그들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나?”
“분명 있습니다.”
“키워 보겠나?”
이번 물음에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명운이 잠시 뜸을 들인 뒤 물었다.
“저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
강하원이 대답했다.
“제가 가르친다면 조장급 무인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 그 이상을 원하신다면 다른 스승을 불러와야 할 것입니다.”
명운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 총관, 불가능한 일을 말하는군.”
강하원도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자님의 스승도 초빙하지 못하는 마당에, 호위무사들의 스승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는 자신이 다섯 사내의 스승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제가 가르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서숙의 총관으로 일하면서 제자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하원이 각오를 다지며 주먹을 꾹 쥐었다.
“무리하고 싶지 않아도 지금은 무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허투루 가르칠 생각이 없었다.
이날 저녁.
명운은 강하원을 불러 식사를 같이했다.
두 사람이 식사를 같이하는 것은 보름 만이었다.
“호위무사들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 보았네.”
강하원이 젓가락을 멈추며 물었다.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자네가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네.”
강하원이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공자님께서는 제 무공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명운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것이 아닐세.”
“그럼, 어떤 이유입니까?”
“시간이 문제일세. 강 총관은 서숙의 일만으로도 힘들지 않나?”
시간 부족.
이것은 강하원도 익히 알고 있는 문제였다.
하나 서숙의 재정을 생각하면 다른 스승을 초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힘들어도 제가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명운이 젓가락을 쇠고기 조림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다른 스승을 구했다네.”
자신의 스승을 구하지 못하는 명운이 스승을 구했다?
이는 그가 아닌 다른 이들이 움직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명운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혹시일세.”
강하원은 명운의 배경이 된 자들이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인재를 구하고, 그들의 지도까지 맡겠다는 말인가?’
그들이 모든 일을 다 한다면, 이쪽은 확실히 편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의지하면 할수록 그들의 입김에 휘둘릴 가능성도 커졌다.
‘그건 곤란하지.’
강하원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명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공자님.”
명운이 쇠고기 조림을 든 채로 말했다.
“그쪽에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더군.”
강하원이 말끝을 올렸다.
“조건이라면, 어떤 것입니까?”
“지하 연공실에서 호위무사들을 가르칠 것이며, 서로 얼굴을 보는 일이 없게 하라는군.”
강하원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가르친다면,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명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내가 가르치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지 않겠나?’
그는 직접 다섯 명의 호위무사를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게 가장 나은 길이니까.’
강하원은 분명 고수였다.
하지만 다섯 호위무사의 능력을 최대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명운과 같은 절정고수의 지도가 반드시 필요했다.
명운이 반문했다.
“강 총관, 가르치는 방법은 그쪽에서 고민할 문제가 아닌가?”
강하원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그들이 가진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나 그들의 장기짝이나 바둑알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그는 배경이 되는 자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그들의 도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쯤은 알고 있네. 그리고 때가 되면…… 스스로 일어날 걸세.”
스스로 일어난다.
언젠가는 그들에게 벗어나 자립을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공자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명운이 넌지시 물었다.
“섭섭한가?”
강하원이 대답했다.
“섭섭한 것이 아니라 걱정이 될 뿐입니다.”
명운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총관을 나태하게 만들었으니, 내 죄가 크구나.’
그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