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금의환향(錦衣還鄕) (3)
명운은 가볍게 기침을 한 뒤, 만족 족장 자이안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다음과 같은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식량을 지원할 것이다.”
자이안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어떠한 조건입니까?”
명운은 바로 조건을 이야기했다.
“첫째, 무역로에 대한 불가침.”
이 첫 번째를 어겼기 때문에 지난 전쟁이 발발했던 것이었다.
이것을 어긴다면 만족은 식량 지원이 문제가 아니라 부족 자체가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두 번째, 식량이 부족할 경우 석하자에 통보할 것.”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다.
“세 번째 매년 가을 석하자에 서북상단과 말을 거래할 것. 이때 가격은 초원과 같은 가격일 것.”
세 번째 조건은 기본적으로 서북상단에 유리한 것이었지만, 물량에 따라 만족에 유리할 수도 있었다.
‘세 가지 조건 모두 어렵지 않다.’
자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명운이 오른손 식지를 세웠다.
“마지막 조건이 하나 더 있네.”
마지막 조건.
자이안은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을 강조한 것을 보면 어려운 조건일 것 같다.’
그는 하나쯤은 지키기 힘든 조건이 끼어 있어야 앞뒤가 맞는다고 생각했다.
명운이 말했다.
“삼 년에 한 번씩 십만대산으로 세 명의 젊은이를 보내게.”
“삼 년에 한 번 말입니까?”
“삼 년이 지나면 처음에 온 이들이 다음에 오는 이들과 교대를 하게 될 걸세.”
삼 년에 한 번씩 세 명의 인질을 십만대산으로 보내라는 말.
자이안이 물었다.
“세 명의 젊은이는 어떻게 선발하면 됩니까?”
중원 제국의 대장군부에서 인질을 잡을 경우, 족장이나 족장 가문의 젊은이를 지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것은 자네 마음대로 하게.”
자이안은 눈을 크게 떴다.
“조건이 없단 말입니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한 조건이었다.
명운이 대답했다.
“출신과 성별은 물론 어떠한 조건도 내걸지 않겠다. 단지 만족이어야 하고, 서른을 넘지 않은 젊은이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서숙에서 머물게 될 것이다.”
자이안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 조건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명운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강 총관.”
“예, 공자님.”
“그대가 족장과 함께 식량에 대해 논의하라.”
명운은 말을 마치고는 요새 안으로 돌아 가버렸다.
이는 실무자인 강하원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가 요새로 돌아오자 함께 나갔던 종영세가 질문을 던졌다.
“공자님, 조건이 너무 너그러우신 것 아닙니까?”
명운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어려운 조건을 내걸면, 그들은 그 조건을 지키지 못할 걸세.”
명운은 지키지 못할 조건을 내거는 것은 그들의 반란을 부추길 뿐이라고 생각했다.
‘만족은 지난 정벌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들이 지금 해낼 수 있는 것은 살아남는 것 정도일 것이다.’
물론 공녀나 인질 같은 조건을 더욱 높여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명운은 그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자들을 쥐어짜는 것은 불필요한 행동이다.’
잠시 뒤.
강하원이 돌아왔다.
“어찌 되었나?”
“콩과 쌀을 각각 천 석씩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예상보다는 요구 물량이 적었다.
“그거면 되겠나?”
“겨울의 절반이 지나갔으니, 그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명운이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토로번으로 가서 식량을 조달할 생각입니다.”
“배분은 이곳에서 할 것인가?”
“그러합니다.”
명운이 시선을 동쪽으로 돌렸다.
“하면, 토로번에 있는 신교 상단의 협조가 필요하겠군.”
“서북상단이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명운은 서북상단을 위해 세 번째 조항을 넣었다.
강하원은 서북상단이 이번 거래에 협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강 총관, 초원에서 천 석은 적은 양이 아닐세.”
소가 끄는 수레로 백여 대.
강하원은 서북상단의 능력이라면, 그 정도 숫자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족하면 다른 상인을 끼우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자네가 직접 처리할 것인가?”
“그럴 예정입니다.”
“누구를 데려가겠나?”
강하원이 대답했다.
“종영세와 관흠이면 될 것입니다.”
명운이 말했다.
“초원에는 식량이 부족한 부족이 여럿 있네. 그들이 습격해 올 수도 있으니, 하후문과 정문도 데려가게.”
하후문과 정문은 신강이문이라는 위명으로 초원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 * *
식량을 지원받은 부족들은 명운을 대공자라 부르며, 그의 공덕을 칭송했다.
하나 동전에 양면이 있고, 하늘에 밤낮이 있는 것처럼 식량을 지원받지 못한 부족들은 명운의 허술함을 비웃었다.
“노예를 풀어 준 것도 모자라 식량까지 지원해 준다고?”
“그런 허수아비가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
“천마신교 따위는 하나도 두렵지가 않다!”
하지만 실제로 천마신교의 영역을 침범하는 부족은 없었다.
그들은 천마신교의 만족 토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신강이문이 아직도 석하자에 주둔하고 있다.”
“지금은 무리야.”
그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명운 일행은 석하자를 출발했다.
하후문은 이를 너무 이른 출발이라 생각했다.
“공자님, 눈이 녹은 다음 출발하시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명운은 하후문의 물음에 고개를 흔들었다.
“눈이 완전히 녹으면 오히려 길이 힘들다네.”
“마차가 없는데도 말입니까?”
“마차만큼은 아니지만, 말도 진창을 힘들어한다네.”
초원길 중 일부는 눈이 녹으면 진창으로 변했다.
진창을 걷는 것은 사람이나 말이나 모두 힘이 들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
그들은 토로번을 지나 약강이라는 작은 마을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흘을 더 걸어 청해에 도착했다.
하후문은 청해에 도착하자마자 두 팔을 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청해입니다!”
모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청해다!”
천마신교 교도들에게 청해는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명운은 담담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대산까지는 아직도 길이 머네.”
그들은 산길이 아니라 초원길을 돌아갈 것이기에 앞으로 두 달은 더 걸어야 했다.
“공자님, 그래도 청해 아닙니까?”
하후문과 호위무사들은 청해에 도착한 것을 크게 기뻐했다.
일은 그들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죠?”
명운의 대답은 담백했다.
“고향에 왔으니까.”
청해에 들어선 뒤에는 신교 사람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덕령에서는 백호대 사람들을, 청해호에서는 현무대와 적비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동쪽을 향해 걸었다.
십만대산에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명운 일행은 대명궁에 도착했다.
“칠공자님께서 돌아오셨다.”
강하원의 한마디에 현무대 무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명운과 일행은 동문을 통과해 대명궁 안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대명궁입니다!”
“정말 돌아왔군요!”
몇몇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했다.
명운은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번 여행이 너무 길었던 것 같군.’
일 년 하고도 반년.
명운은 어느덧 열여덟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가 서숙에 이르자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이 앞으로 나와 허리를 깊이 숙였다.
“다녀오셨습니까?”
명운은 그녀를 보고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경은, 그간 잘 있었나?”
일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설마, 이 여인이 공자님의 정인?’
그녀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경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오래 걸리셨습니다.”
경은은 자기도 모르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명운은 머쓱한 나머지 말에서 내려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괜찮아.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느냐?”
강하원은 그 모습을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호위무사들과 서숙의 하인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 하느냐! 어서 짐을 옮겨라!”
일은 하인들과 함께 짐을 나르려는 하후문에게 다가갔다.
“하후 대협, 저 여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요?”
하후문이 대답했다.
“경 총관이라고 하지.”
“경 총관이요?”
“공자님의 제자야.”
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아, 그렇군요.”
그녀는 사부와 제자 사이라면 각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저 눈빛은 조금 그런데 말이야.’
일은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의 눈빛을 알고 있었다.
‘일함 군주의 눈이 딱 저랬으니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서숙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다음 날.
명운은 좌사부를 찾아가 양대충에게 지난 정벌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좌사님의 도움으로 만족을 토벌하고, 공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양대충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일 년이나 늦은 보고인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양대충이 웃음을 지우며 말했다.
“일어나게.”
명운이 자리에 앉자 시녀들이 차를 내왔다.
“서역의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들었네.”
“서쪽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서역의 여러 군주에게 대영웅의 칭호를 받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명운은 그 물음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과한 칭호라 생각합니다.”
“과한 칭호라. 그렇다면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단 말이군.”
“과장 된 소문이 퍼져 나가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양대충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운, 소문이 하나 더 있네.”
“어떤 소문 말씀입니까?”
“그대와 도민국 군주와 혼담이 있다고 하더군.”
명운은 겨울 동안 석하자에 머물렀으나 일부 상인들은 눈길을 뚫고 서쪽과 동쪽을 왕래했다.
그들을 통해 명운의 혼담이 십만대산에 전해진 것이었다.
그는 일함과 혼담을 부인하지 않았다.
“도민국 국왕께서 제게 딸을 내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절했나?”
“거절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양대충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흠…… 그렇다면 앞으로 어쩔 생각인가?”
명운이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버님께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할 생각입니다.”
“그대로 혼사를 진행할 생각인가?”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언젠가는 그렇게 하겠다.
양대충은 쓴웃음을 지었다.
‘운은 막내라서 여유가 있는 모양이군.’
후계자 경쟁에 나선 공자들은 최대한 아군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략결혼에 나서고 있었다.
그에 반해 명운은 십만대산의 권력과 상관없는 도민국 군주와 결혼하려 하고 있었다.
“교주님은 언제 뵐 생각인가?”
“허락이 떨어지는 대로 뵐 생각입니다.”
“다행이군.”
“다행인 겁니까?”
양대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명운, 교주님의 명을 전하겠다.”
명운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천원대 부대주 명운, 교주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의 공식 직함은 아직 천원대 부대주였다.
양대충이 살짝 목에 힘을 주었다.
“명운, 그대를 천원대 대주에 명하노라.”
천원대 부대주에서 대주로 승진.
그러나 명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좌사님, 천원대 대주는 대대로 무림맹 투항자가 맡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양대충이 대답했다.
“그것은 관행이었을 뿐, 본교의 법은 그렇지 않네.”
명운은 원래 천원대 대주였던 고창준이 걱정되었다.
“그럼, 고 대주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고 대주는 오래전에 백호대 부대주로 승진했네.”
대주에서 부대주로.
그러나 양대충은 그것을 승진이라 말하고 있었다.
이는 사신대 중 하나인 백호대와 투항병으로 이루어진 천원대의 격차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무릎을 꿇고 있을 생각인가?”
명운은 그의 물음에 몸을 일으켰다.
“천원대 대주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만족 정벌에서 큰 공을 세우지 않았나?”
“동생으로서 형을 구한 것뿐입니다.”
양대충이 물었다.
“원의 일은 들었나?”
삼공자 명원.
명운은 그의 일을 모한국에서 이미 들은 바 있었다.
“폐관수련에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폐관은 끝났네.”
명운이 멈칫했다.
“벌써 폐관수련이 끝났단 말입니까?”
“흑살대 대주로 발령이 났거든.”
흑살대는 명천의 휘하에 있던 부대였다.
‘대주는 귀살검주 이승원.’
귀살검주 이승원은 명각이 교주가 된 다음에도 흑살대 대주로 있었다.
‘결국, 내 검에 죽었지.’
그런 그가 흑살대 대주에서 물러났다는 것은 역사가 크게 변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