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금의환향(錦衣還鄕) (5)
“그 말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네요. 검기를 쓰지 못하는 자가 검기를 쓰는 고수를 이길 수 있다면, 그는 절정고수라 할 수 있다.”
검기를 사용하는 고수는 그렇지 않은 자에게 거의 지지 않았다.
사마진이 그의 말을 받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검기를 쓰지 않고도 능히 검기를 제압할 수 있다면, 그를 절정고수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명운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승패는 여러 변수에 의해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무위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는 무극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강기 정도는 필수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마진이 말끝을 올렸다.
“하, 운이 쉽게 인정을 안 하네.”
“누님?”
“좋아, 이건 어때? 구파일방의 장문인을 이길 수 있다면, 그자는 무극일까? 아닐까?”
구파일방의 장문인은 무림맹을 대표하는 고수들이었다.
“그들을 이길 수 있다면, 초절정고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극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생각하는 무극은 강기인가?”
“강기는 필수이고, 말 그대로 무의 극에 달한 자입니다.”
사마진이 명운의 잔에 술을 채우며 물었다.
“천마신공을 익힌 교주님처럼?”
“그렇습니다.”
사마진이 술이 든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탁.
“그러면 넌 무극은 아니어도 초절정고수 이상이라 할 수 있겠네?”
그녀는 명운이 구파일방의 장문인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명운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잔을 빙글 돌렸다.
“제가 초절정고수일까요?”
“날 쉽게 이겼으니까.”
명운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그날 누님의 검에는 살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명운은 생각했다.
‘진이 죽음을 각오하고 검을 썼다면 쉽게 끝나지 않았겠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마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살기가 없는 것은 네 검도 마찬가지였어. 아니, 오히려 나보다도 더 무뎠지. 윗사람을 상대하는 검이었으니까.”
서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조건은 같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누님께서는 서로 같은 조건이었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오히려 네 조건이 더 좋지 않았을 거야.”
“그게 무슨…….”
사마진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난 첫 승부에서 져서 살짝 독이 올라 있었거든. 내가 살검(殺劍)을 쓰더라도 네가 충분히 피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 그래서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지. 하지만 넌 전력으로 싸울 수 없었을 거야. 네가 전력으로 검을 휘두르면 난 막을 수 없었을 테니까.”
명운은 말없이 잔을 비웠다.
‘맞는 말이다. 난 전력으로 검을 쓸 수 없었다.’
그가 잔을 비우자 사마진이 그의 잔에 술을 채우려 했다.
한데 주전자의 술이 나오다가 멈추고 말았다.
“이런, 주전자가 비었네.”
사마진이 가볍게 탁자를 두드렸다.
탁. 탁.
“술!”
그녀의 외침에 시녀 한 명이 들어와 술이 가득 담긴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시 계속되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거야. 더 불리한 상황에서도 넌 날 쉽게 제압했다.”
명운이 물었다.
“아버지와 누님이 싸우면 어떻게 될까요?”
사마진이 대답했다.
“네가 말한 것처럼 천마신공이 무극이라면, 내가 처참하게 패하겠지. 하지만 난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이렇게 돌려 말하고 있었다.
– 어쩌면 네가 교주님보다 강할지도 몰라.
명운은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천마선을 펼치던 명각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천마신공을 완성한 명각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번에는 사마진이 물었다.
“거의 이 년 가까이를 보지 못했어.”
“일 년 하고 반입니다.”
“그래, 일 년 하고 반이라고 하자. 운, 나와 대결했을 때보다 더 강해졌지?”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명운은 서역을 여행하며 나름 성과를 얻었다.
“조금은 나아졌을 겁니다.”
“나도 쉰 것은 아니야. 한번 붙어볼까?”
명운은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보고는 넌지시 말했다.
“누님, 술이…….”
술이 취한 상태로 검을 휘두르는 것은 위험하다.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마진은 그의 지적을 받자마자 단숨에 잔을 비웠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술 몇 잔에 취하고도 자명단주라 할 수 있겠나?”
명운은 가능한 부드럽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고집을 피운 것 같군요. 서역에서 성과가 제법 있었습니다.”
사마진이 선 채로 물었다.
“어떤 성과인가?”
“기를 휘감는 자를 만나, 새로운 방법을 배웠습니다.”
기를 휘감아 사용하는 자.
그녀는 바로 일이었다.
‘일은 내공심법을 배우지 못해 내력이 크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발에서 느껴지는 기는 분명 주목할 만했다.’
사마진은 다시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렇게 말을 하니까. 더욱 보고 싶잖아. 가자, 연공실로!”
그녀는 명운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누님?”
“어서!”
“…….”
명운은 자신의 소매를 잡고 앞서 나가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는 누나가 아니라 여동생 같군.’
자신보다 키가 컸을 때는 그래도 연상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제는 키도 그보다 작았고, 동안 덕분에 나이 차이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 * *
쿵.
연공실 문이 닫히자마자 사마진이 검을 뽑았다.
스릉.
명운은 그녀가 다짜고짜 검을 뽑자 두 손을 흔들었다.
“누님,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사마진은 살짝 취해 있었기 때문에 볼이 불그스름했다.
“어서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지금 당장 새로운 성취를 보여 달라고.”
명운은 생각했다.
‘하, 이런 상황은 조금 곤란한데 말이야.’
그러나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명운은 묵검을 빼 들었다.
스윽.
사마진은 그의 검이 여전히 묵검인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서역에서 수많은 명검을 선물 받았는데, 왜 아직도 그 검을 쓰고 있는 것이지?”
“좋은 검이니까요.”
고수 중에는 손에 익은 애병(愛兵)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사마진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운은 한번 마음에 든 것은 쉬이 바꾸지 않는 모양이군. 좋아, 이쪽에서 먼저 가겠어.”
명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알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마진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이것은 거의 기습에 가까운 일격이었다.
하지만 명운은 그녀의 검을 받아 낸 뒤 착(着)의 수법으로 뿌리쳤다.
사마진은 검이 크게 오른쪽으로 휘자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검에 기를 휘감는 것인가?”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하면?”
명운이 왼손을 앞으로 내밀자 그의 손에서 검기와 동등한 기운이 맺혔다.
“수강? 아니, 수기(手氣)인가?”
사마진은 뒤로 물러나면서 검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오냐! 받아 주마!’
그녀는 명운의 손에 모인 기운을 자신의 검기로 받아치고자 했다.
그러나 명운의 손을 떠난 기(氣)는 하나가 아니었다.
슈슈슈슉!
수십 가닥의 기운.
사마진은 눈을 부릅떴다.
‘저 기운 하나하나가 검기와 같을 것이다.’
그녀는 하나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 날아오던 수십 가닥의 기운이 크게 비틀리면서 하나로 모였다.
‘이것은?’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수법이었다.
‘피, 피할 수 없어!’
사마진은 있는 힘을 다해 명운의 공격을 받아쳤다.
‘이까짓 거!’
자신의 전력이 담겨 있는 검이라면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콰앙!
폭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휘몰아치는 기운은 그녀의 검을 부러뜨려 버렸으며, 그녀의 옷은 선 채로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헉…….”
내상을 입었는지 입에서는 선혈이 흘러나왔다.
‘뭐가 이런 게 다…….’
거센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그녀의 몸이 튕기듯 날았다.
명운은 그 모습을 보고는 급히 몸을 움직였다.
‘위험해!’
그는 사마진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그녀를 받아 내는 데 성공했다.
털썩.
명운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후우…… 무사히 받아 냈다.’
그가 사마진을 안은 채 물었다.
“누님?”
사마진의 입가에는 붉은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바보.”
“네?”
“네가 아니면, 누가 무극이란 말이야? 그리고…….”
사마진이 가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책임져.”
명운은 그녀의 옷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엉성하게 감겨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이, 이것은!”
강호에서 시집을 가지 않은 여인의 나신을 보았다면, 이는 그냥 물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마진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먼지를 훌훌 털어 버리듯 말했다.
“농담이야. 운은 이미 혼인을 약속한 정인이 있잖아.”
일함 군주가 없었다면 농담에서 끝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녀와 혼인이라. 진과 같은 절세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정혼자가 있었다.
명운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다음 순간, 사마진이 시선을 돌리며 말끝을 올렸다.
“정말로 죄송하면, 교주님의 권좌를 차지하던가?”
교주의 권좌.
천마신교 교주에게는 한 가지 특권이 있었다.
그것은 첩이 아닌 정실부인을 여럿 둘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중원의 황제와 격(格)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권좌라. 설마 교주가 되어 자신을 아내로 삼아 달라는 것인가?’
그의 시선이 그녀와 마주쳤을 때였다.
사마진이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려 그와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운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어. 게다가 방금 내가 내뱉은 말은…….’
그 한마디는 연인에게나 할 법한 말이었다.
‘설마 내가 운에게? 바보 같은!’
사마진은 명운과 자신의 나이 차이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부정했다.
‘술을 너무 마셨기 때문이야.’
술에 취해서 실수를 저질렀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자 했다.
사마진이 명운을 밀어내며 말했다.
“혼자 설 수 있어.”
그러나 명운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누님, 아직이에요.”
명운이 손에 힘을 주자 사마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놔. 일어날 수 있으니까.”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그녀가 내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몸을 움직이면 내상이 깊어질 것이다.’
그는 그녀의 혈도를 찍었다.
팍! 팍! 팍!
그러자 사마진이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슨?”
그녀는 순식간에 항거불능 상태가 되고 말았다.
명운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로 손에 힘을 주었다.
“그대로 있으세요.”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부드러운 기가 그녀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지금은 그녀의 내상을 치료하는 것만을 생각하자.’
사마진은 그의 기가 자신을 감싸 안자 눈을 감았다.
‘운, 바보 같은 녀석, 너무 강해졌잖아. 그리고…… 너무 괜찮은 사내가 되었어.’
그녀는 소년의 성장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키만 커지리라 생각했던 것인가?’
사마진은 자신이 명운을 얕보았다고 생각했다.
‘달라지는 것은 키나 무공만이 아닌데 말이야.’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명운의 매력에 빨려들어 갔다.
‘운의 품, 따뜻하고 좋다.’
사마진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누님?”
“조금 더 그냥 이대로 있고 싶어.”
명운은 고개를 끄덕인 뒤, 더 많은 기운을 불어넣었다.
* * *
명운이 서숙으로 돌아온 것은 해가 뜬 다음이었다.
“두 사람 눈이 왜 그래?”
그가 말을 건넨 두 사람은 경은과 일이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경은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 했으나 일은 그렇지 못했다.
“주인님을 밤새 기다렸으니까요.”
명운은 그녀의 대답에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먼저 자라고 했거늘.”
그는 자신을 수행한 조광과 하후문을 돌려보내면서 아주 늦게 될 것이라 전했다.
그럼에도 경은과 일은 아침이 될 때까지 그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다들 들어가서 자는 것이 좋겠어.”
“사부님은요?”
“난 괜찮아.”
“자명단에서 주무시고 오신 건가요?”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틈은 없었어.”
“네?”
“그곳에서 일이 있었으니까.”
경은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 식사라도 하셔야죠.”
명운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역에서 돌아온 뒤로 경은은 그에게 뭐라도 하나 더 해 주고 싶어 했다.
‘어찌 보면 이쪽이 더 누님 같다고 할까?’
제자가 아니라 친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명운이 아침 식사를 마치자 경은은 그제야 숙소로 향할 수 있었다.
“점심을 챙겨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점심에는 또 다른 곳으로 나갈지도 모르니까.”
경은은 깊이 허리를 숙인 뒤, 그의 서재를 빠져나갔다. 그녀와 교대하듯 안으로 들어온 것은 강하원이었다.
“착한 아이입니다.”
명운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강 총관, 태화전에서 연락은 없었나?”
태화전은 교주 명증의 거처였다.
즉, 명운은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없었는지 묻고 있었다.
“아직 없습니다.”
“그래?”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생각보다 늦는군.’
바로 만나지는 못해도 약속 날짜는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좀처럼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다.
“오늘은 석 장로가 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석 가주가?”
“공자님의 명성이 올라가자, 그들도 마음을 놓고 서숙을 찾아올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명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전면에서 나서도 될 만큼 이쪽이 컸다는 뜻이겠지.”
“좋은 쪽으로 생각하시는 것이 어떨지요?”
“나도 그들을 탓하고 싶진 않아. 그들 덕분에 만족 토벌이 가능했으니까.”
귀주석가에서 제때 말과 보급품을 보내 주지 않았다면, 그의 구원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그는 귀주석가를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