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금의환향(錦衣還鄕) (6)
한 시진 뒤.
명운은 귀주석가 가주 석준명과 마주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석준명이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사를 받았다.
“그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두 사람의 인사는 담백했다.
“서역에서 가져온 선물입니다.”
명운이 내놓은 선물은 한 장의 비연갑이었다.
이 비연갑은 연목으로 만든 나무 상자에 고급스럽게 포장되어 있었다.
‘아라산에서 얻은 것 중 가장 품질이 나쁜 것이지만, 중원에서는 이 정도 물건도 보기 힘들다.’
검은 몰라도 갑옷의 질은 서역이 중원보다 나았다.
석준명이 비연갑을 들어 올리며 말끝을 올렸다.
“이것은?”
“보다시피 비연갑입니다.”
석준명이 넉살 좋게 웃었다.
“허허허, 노부가 공자께 선물을 받는 날이 다 오는군요.”
명운이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을 받았다.
“언제까지 지원만 받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석준명은 비연갑을 다시 상자에 넣었다.
“이번에 천원대주로 승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모습은 딱 여기까지였다.
다음 순간, 석준명이 목소리를 낮췄다.
“공자님, 이 노부가 공자님께 한 가지 조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명운은 자세를 바로 했다.
“가주님의 조언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공자님, 대업을 위해서는 지혜도 좋지만, 일정 수준의 무공은 필수입니다.”
“무공 수련을 부지런히 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신강에서 돌아온 석주는 태도를 바꾸었다. 그는 명운의 명석함과 지혜를 칭찬하면서 그를 소교주로 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석준명은 석주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아닌 힘이 필요하다.’
모략과 책략을 짜는 것은 모사의 역할.
그는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무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자께서 더 높은 수준의 무공을 원하신다면, 이쪽에서 합당한 스승을 찾아보겠습니다.”
석준명은 명운이 어떠한 경지에 들어섰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때문에 그는 명운에게 새로운 스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스승 말입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의 무공으로는 후계자 경쟁에서 이기기 힘듭니다.”
명운은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
“가주님, 이번 제안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석준명은 그의 말에 얼굴을 굳혔다.
“공자님, 노부의 제안은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가주께서 걱정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나 제 무공은 가주님의 생각처럼 약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석준명은 걱정을 거둘 수가 없었다.
“공자님!”
명운이 오른손을 든 뒤 손바닥을 세웠다.
“일 년 안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괄목할 만한 성과입니까?”
“만약 그것을 보여 드리지 못한다면, 셋째 형님을 지원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일 년 안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삼공자 명원의 아래로 들어가겠다.
석준명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공자님, 자신감은 좋지만, 과하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독이 되진 않을 겁니다.”
석준명이 물었다.
“일 년 안에 보여 주실 성과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시고 계십니까?”
“세상이 놀랄 정도는 되어야겠죠.”
“세상이 놀랄 정도라니…….”
명운이 그의 말을 끊었다.
“신교와 무림맹, 양쪽 모두 놀랄 성과면 어떨까 합니다.”
그는 단순히 일 년을 벌기 위해 이런 제안을 한 것이 아니었다.
‘슬슬 이쪽도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
지금까지는 명각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낮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후계자 경쟁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일 년 안에 명각은 반드시 움직인다.’
그는 명각의 움직임에 맞춰 자신도 움직이고자 했다.
석준명은 명운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쪽은 공자님을 믿겠습니다.”
그는 일 년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상황이 되더라도 이쪽에는 삼공자라는 패가 있다.’
석준명은 명운이 실패하더라도 귀주석가 입장에서는 손해가 아니라고 계산했다.
* * *
탁.
바둑판 위에 돌을 놓는 이는 교주 명증이었다.
“좋은 수라 생각합니다.”
명증과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은 부교주 유청이었다.
유청은 신교제일검이라는 별호를 지니고 있는 검의 달인으로 부교주 이전에는 신교좌사를 맡았었다.
“하지만 이번 대국을 주도하는 것은 자네의 하얀 돌이 아닌가?”
탁.
유청이 다음 돌을 놓으며 말을 받았다.
“좋은 수이긴 하지만, 하나의 수로 대국을 뒤집는 것은 무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성이 유씨가 아닌 명씨였다면, 권좌에 이름을 올린 것은 명증이 아닌 그였을 것이다.
“청, 자명단주가 와병 중이라고 하더군.”
“진이 뒤늦게 상사병에 걸린 모양입니다.”
명증이 말끝을 올렸다.
“상사병이라고?”
“지난밤에 운이 자명단을 다녀갔다고 하더군요. 밖으로 나온 것은 아침이었다고 합니다.”
명증은 혀를 끌끌 찼다.
“운이 상대라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은가?”
그는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았던 여인이 막내아들인 명운에게 넘어간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유청은 명증이 무엇 때문에 미간을 좁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운은 어리고 약하지요. 그것이 그녀의 모성애를 자극했을 수도 있습니다.”
“흠, 약하기 때문에 끌렸다?”
“교주님은 반대로 너무 강했습니다.”
명증이 좁혔던 미간을 폈다.
“그럴 수도 있겠군.”
두 사람은 사마진이 상사병이 낫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명운과 비무로 내상을 입어 회의에 나올 수 없었던 것이었다.
검은 돌이 바둑판 위에 놓였다.
탁.
“교주님, 좋지 않은 수입니다.”
유청은 바로 검은 돌의 맥을 끊었다.
탁.
명증은 그의 날카로운 수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쪽의 수에 잡념이 들어간 모양이야.”
“운은 교주님의 아들입니다.”
“알고 있네.”
“부러우십니까?”
명증이 대답했다.
“난 거짓말을 못 한다네.”
유청이 말끝을 올렸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이상하군요. 전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명증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훗, 자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이쪽은 그냥 지켜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지켜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운이 아니니까요.”
유청은 명천과 명각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명가의 후계 구도에 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명가의 싸움이 아닌가?’
그는 어느 쪽이 교주가 되던 자신의 운명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은퇴 후 장로의 길을 걷겠지.’
명증이 화제를 돌렸다.
“자네 제자는 어떠한가?”
“여전히 폐관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흠, 어둠과 고독을 즐긴단 말인가?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군.”
부교주 유청의 제자 장연비는 벌써 오 년째 폐관수련 중이었다.
“진에게 당한 패배가 너무 아팠나 봅니다.”
장연비가 폐관수련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사마진과 비무였다.
“같은 여자에게 패했기 때문인가?”
장연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인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사마진과 비슷했으며, 외모는 시녀들과 서 있으면 눈에 띄는 정도였다.
“그보다는 같은 나이였다는 게 더 충격이었을 겁니다.”
신교제일검의 이름을 잇겠다.
장연비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동년배인 사마진에게 완패함으로써 그녀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폐관을 끝내면 사신대 대주 자리 정도는 맡을 수 있겠지.”
“그 정도면 폐관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명증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그 정도인가?”
“적어도 혜선단 단주 정도는 되어야겠죠.”
보위산 정벌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혜선단주에 오르는 것은 장공자 명천이 되었을 것이다.
유청은 자신의 제자 장연비가 사마진과 마찬가지로 삼단의 단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혜선단주는 괴롭겠군.”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아서 말입니까?”
“자네도 잘 알고 있군.”
“승진으로 잘 마무리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명증이 검은 돌을 바둑판 위에 놓으며 물었다.
“혜선단주에서 승진이면 어디로 올라간단 말인가?”
유청이 돌을 잡으며 말을 받았다.
“누군가는 이번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위산 정벌 말인가?”
“우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남기남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기남은 사대호법 중 필두였다.
명증은 유청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남기남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혜선단주를 넣자는 말인가?”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실패한 것은 천인데 이득을 보는 것은 자네군.”
유청이 하얀 돌을 놓았을 때였다.
시녀장 석비연이 안으로 들어섰다.
“교주님, 칠공자가 입전하였습니다.”
그녀는 명운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정식 호칭을 사용했다.
명증은 그녀의 말에 오른손을 들었다.
“들라 하라.”
그는 바둑을 두며, 명운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잠시 뒤.
명운이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소자, 아버님을 뵙니다.”
명증은 아들에게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명운에게서 어떠한 느낌도 받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이구나.”
“폐관수련을 끝낸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명증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서역은 어땠느냐?”
“이채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래?”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유청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바둑판을 응시했다.
하나 귀나 머릿속은 이미 두 사람의 대화에 쏠려 있었다.
‘흠, 괴이하구나. 고수도 하수도 아닌 이 느낌은 뭘까?’
그 역시 교주 명증과 비슷한 느낌을 명운에게 받았다.
“어떤 경험을 했느냐?”
명운은 서역에서 있었던 일 몇 가지를 그에게 알려 주었다.
명증은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도시를 삼킬 만큼 거대한 모래 폭풍이라.”
“그밖에도 신기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 외에는 없었느냐?”
명증은 아들이 성취에 대해 묻고 있었다.
그러나 명운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품속에서 한 통의 편지를 꺼냈다.
“도민국 국왕의 서신입니다.”
그가 내민 편지는 한자와 서역 문자로 나뉘어 적혀 있었다.
명증은 편지를 받은 뒤, 빠르게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흐흠,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도민국 국왕이 보낸 서신은 명운과 일함의 혼사를 다루고 있었다.
명증은 편지를 다 읽은 뒤, 유청에게 넘겼다.
“자네도 읽어 보게.”
유청은 편지를 명증보다 더 빠르게 읽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두 사람의 뜻이 이와 같다면, 이쪽에서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명증이 시선을 명운에게 돌렸다.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명운이 두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혼사를 연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명증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승낙이나 거절이 아니라 연기를 해 달란 말이냐?”
“제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혼인을 늦춰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은 도민국의 군주가 마음에 든다는 말이구나.”
명운이 아버지의 말을 받았다.
“일함은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자명단주와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위라 생각하느냐?”
유청은 짓궂은 질문이라 생각했다.
‘이는 운을 시험하는 질문이구나.’
명운은 아버지의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자명단주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대답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명증과 유청,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래서 진이 병이 난 것이군.’
‘연상은 아무래도 사랑을 받기 힘든 모양입니다.’
그들은 명운이 사마진의 뛰어난 미모를 흘려넘길 만큼 일함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명증은 가볍게 기침을 한 뒤에 물었다.
“흠. 그렇다면 넌 도민국의 부마가 될 생각이냐?”
“아버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리할 생각입니다.”
명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혼사를 허락하마.”
명운은 그의 허락에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명증은 명운이 고개를 들자 말끝을 올렸다.
“혼사를 미뤄 달라고 했는데, 얼마나 미루면 되겠느냐?”
혼사를 오래 미룬다면, 사마진이 말한 것처럼 도민국에서 파혼을 거론할 수 있었다.
명운은 미리 생각해 둔 것을 이야기했다.
“삼 년이면 될 듯합니다.”
명증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천마신교의 공자는 혼례를 결정한 뒤 삼 년 뒤에야 혼례를 올릴 수 있다. 이렇게 말을 해 달라는 것이구나.”
“서신으로 적어 주시면, 소자가 그것을 도민국에 전달하겠습니다.”
명증은 고개를 흔들었다.
“신교 공자와 도민국 군주의 혼인이다. 정식으로 사절을 보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들의 혼사를 가볍게 처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버님?”
명증이 오른손을 들었다.
“일국의 군주와 혼인이니, 이쪽도 절차와 예를 지켜야 한다.”
그는 고개를 석비연에게 돌렸다.
“비연.”
“예, 교주님.”
“그대는 누가 사절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나?”
석비연이 답했다.
“군주와 혼인이라면, 적어도 장로급 인사가 혼인 사절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로급 인사인가?”
명증은 고개를 끄덕인 뒤, 유청에게 시선을 돌렸다.
“청, 그대가 도민국으로 가주겠나?”
유청은 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제가 말입니까?”
“신교의 부교주가 혼인 사절로 간다면, 두 집안이 단단하게 연결되지 않겠나?”
명증은 일방적으로 혼례를 연기한다면,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사절단에 힘을 주고자 했다.
“그것은 그렇습니다만.”
“자네가 가준다면, 운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걸세.”
명증은 시선을 다시 명운에게 돌렸다.
“운, 무엇하느냐? 부교주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지 않고.”
명운은 즉시 유청에게 몸을 돌렸다.
“부교주님께서 도민국으로 가 주신다면,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유청은 쓴 약을 먹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으음…….”
그는 두 부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완전히 걸려들었군.’
여기서 거절하는 것은 모양새가 너무 좋지 않았다.
유청은 하는 수 없이 혼인 사절을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교주님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명증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잘 생각했네.”
석비연은 생각했다.
‘혼인사절로 부교주님을 보낼 정도라면, 교주님은 운을 정말 중히 생각하고 계시는구나.’
지금까지 천마신교에서 혼인 사절로 부교주를 보낸 일은 전례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