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2)
12화 연전연승 (1)
경은은 십만대산 외곽에 위치한 묵가촌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평범한 농부였지만, 숙부 경철은 달랐다.
그는 십만대산 외곽을 지키는 백호대에 선발될 만큼 뛰어난 무인이었다.
경철은 틈나는 대로 조카에게 무공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했다.
– 대명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공을 익혀야 한다.
그는 경은이 천마신교의 무력집단에 들어가길 바랐다.
하나 경은이 선택한 곳은 서숙이었고, 하는 일 역시 시녀에 지나지 않았다.
“무공을 배웠다고 했던가?”
경은이 치마를 잡은 채 몸을 낮췄다.
“그러합니다.”
그녀는 지금 지하 연공실에 명운과 단둘이 서 있었다.
“네가 익힌 무공을 보고 싶구나.”
명운의 지시에 경은은 멈칫했다.
“공자님, 이 복장으로는…….”
그녀는 시녀들이 즐겨 입는 푸르고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명운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치마를 불편해하는 것을 보면, 익히고 있는 무공은 권각을 주로 사용하는 권법이나 각법인가? 흠…… 검법은 새로 가르쳐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을 뿐이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나 장소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그였다.
경은은 하는 수 없이 두 손을 모았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긴 치마를 입은 채로 동작을 펼치기 시작했다.
휙!
주먹을 뻗자 바람이 흘러나왔다.
‘역시 권법이군.’
명운은 세 초식을 본 뒤, 그녀가 펼치고 있는 권법이 흑랑표권(黑狼彪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흑랑표권을 사용하는 곳은 많지 않다.’
천마신교에서 흑랑표권을 사용하는 곳은 백호대와 현무대, 그리고 대산노가가 있었다.
‘설마 대산노가 출신은 아니겠지.’
그녀가 대산노가에 연을 대고 있다면,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산노가는 넷째 형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경은은 발경을 할 때 치마가 거슬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곤란해.’
그녀가 이마를 찌푸린 순간 명운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
경은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공자님, 부족한 모습을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명운은 사실 그녀의 무위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을 보인 것은 그녀의 내력이었다.
“흑랑표권을 익혔는데, 누구에게 배운 것이냐?”
경은은 명운이 자신의 권법을 알아보자 가볍게 놀랐다.
‘공자님은 무공을 모르시는 것이 아니었나?’
앞서 대산검법을 펼쳐 보인 바 있었지만, 그 성취가 높아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무공을 보는 눈은 일류였다.
“숙부께 배웠습니다.”
명운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숙부에게 배웠다면 내력을 밝히는 것이 어렵지 않겠구나.’
그가 물었다.
“네 숙부가 누구이지? 아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경은이 두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숙부의 이름은 경철. 지금은 백호대 십이조 조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백호대 조장이라면 안심할 수 있었다.
‘백호대라면 팽헌충과 같은 소속이란 말이군.’
명운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백호대라면 믿을 수 있지. 검법은 배웠느냐?”
“대산검법을 펼칠 수 있습니다.”
정은은 아직까지 명운이 그녀에게 어떠한 일을 맡길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무공 수위를 확인하는 것을 보면 대련 상대가 되어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열두 살 소년의 대련 상대라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 명운이 바란 것은 대련 상대가 아니었다.
“서숙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나?”
“삼 년 되었습니다.”
삼 년이면 명운과 꽤 오래 지냈다는 말이었다.
그는 미간을 좁혔다.
‘왜 얼굴이 기억나지 않지?’
그는 자신을 시중들었던 시녀들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 그녀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외원에서 주로 일을 한 것일까?’
명운은 머릿속 생각을 지우고는 품속에서 단환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먹어라.”
경은은 명운이 내민 단환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
‘이것은…….’
천마신교에서는 극독이나 독충이 들어간 단환으로 금제를 거는 일이 종종 있었다.
“고, 공자님.”
명운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먹지 못하겠느냐?”
경은은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용서받을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 단환만은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
경은은 명운을 살해하고 도망칠 생각까지 했다.
명운은 그녀를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흠……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구나.”
경은이 고개를 들었다.
“오해라니요?”
명운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손에 쥔 것은 칠성단이라 한다.”
칠성단.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경은은 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칠성단이 무엇입니까?”
명운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칠성단은 일곱 개의 단환으로 되어 있다. 일 년에 하나씩 칠 년을 복용하게 되면, 반 갑자의 내공을 얻을 수 있는 보물이지.”
반 갑자는 삼십 년을 뜻했다.
즉, 칠 년 동안 일곱 개의 단환을 모두 먹는다면, 삼십 년의 내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찌 이런 보물을 제게 주시는 것입니까?”
경은의 표정은 다소 나아졌지만, 의문을 모두 떨어낸 것은 아니었다.
‘칠성단이라고 속인 뒤 다른 약을 먹일 수도 있다.’
천마신교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으면 곤란했다.
명운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일곱 개의 단환 중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네가 가진 내력은 모두 소실되며, 이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여자로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죽는 것은 아니지만, 폐인으로 살게 된다는 금제.
그녀의 손에 들린 칠성단은 극독만 아닐 뿐, 그 원리는 같았다.
‘결국, 금제구나.’
경은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공자님.”
명운이 머리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칠 년이다. 그사이 다른 마음을 먹지 않으면, 네 무공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
경은은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신교도가 되었으니, 이는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일지도…….’
그녀가 또렷한 음색으로 말했다.
“공자님을 따르겠습니다. 하나 한 가지만은 알고 싶습니다.”
명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을 알고 싶단 말이냐?”
경은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어째서 저입니까?”
서숙에는 다른 시녀들도 많았다.
그녀는 그가 평소 접점이 없던 자신을 주목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명운의 대답은 간결했다.
“이미 무공을 익혔고, 그것을 펼쳐 내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래서 널 선택했다. 궁금함은 풀렸느냐?”
경은이 몸을 일으키며 두 손을 모았다.
“앞으로 공자님의 검이 되어 싸우게 되는 겁니까?”
명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 검이라고? 그 실력으로는 어렵지.”
그는 경은의 실력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성.’
이성은 하수에 속하는 단계로, 천마신교에서는 단이나 대에 들어가기 전 기초를 쌓는 자들이 이에 해당했다.
“싸우는 것이 아니라면 왜 무공을 익힌 절 뽑으신 겁니까?”
명운은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을 해야 납득을 할 것 같구나. 칠성단을 복용하면 다 말을 해 주겠다.”
경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칠성단을 입안으로 넣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삼켰다.
“이제 말해 주십시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계획을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경은은 명운의 말을 듣는 동안 눈이 점점 커졌다.
모든 것이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달랐던 것이다.
* * *
관흠과의 대결 사흘 전.
조광은 지하 연공실로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드디어…… 준비가 된 건가?’
그는 다소 긴장한 상태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곤 문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속하, 조광이 왔습니다.”
끼익.
문이 양쪽으로 열리자 눈이 큰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광은 그녀를 보고는 굳은 음성으로 물었다.
“제 스승님이십니까?”
여인은 피식 웃음을 터트린 뒤 몸을 돌렸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녀의 말에 조광은 머쓱한 얼굴이 되었다.
‘스승은 아닌 모양이구나.’
북쪽에 병풍 하나를 제외하면 연공실은 텅 비어 있었다.
“왔는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할 수 없는 목소리는 병풍 뒤에서 흘러나왔다.
조광은 병풍 뒤에 인물이 자신을 가르칠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광입니다.”
병풍 뒤에 숨은 것은 바로 명운이었다. 그는 경은이 준비한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이 가면에는 목소리를 바꿔 주는 작은 장치가 붙어 있었다.
“검을 쓴다고 들었다.”
조광이 자세를 고치며 대답했다.
“주작대에서 검을 배웠습니다.”
“사용하는 검법은?”
“대산검법과 기련검법을 익혔습니다.”
대산검법은 천마신교의 기본 검법이었고, 기련검법은 주작대원들이 흔히 사용하는 검법이었다.
“적풍대 출신과 싸울 것이라 들었다. 맞는가?”
조광이 명운의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명운이 말했다.
“적풍대에서 사용하는 검법은 추풍검법이다. 들어 본 적은 있겠지?”
조광은 실제로 추풍검법을 본 적이 있었다.
‘종영세와 싸울 때 사용한 검법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는 삼 초식 안에 추풍검법의 네 번째 초식을 사용할 것이다.”
추풍검법에는 서른두 개의 초식이 있었다.
하나 명운은 네 번째 초식을 콕 찍어 이야기했다.
조광은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네 번째 초식은 추혼낙월(秋魂落月)이라 한다.”
명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인이 검을 빼어 들었다.
스르릉.
그녀는 연공실 한가운데로 나아가 검을 휘둘렀다.
‘정면으로 깊이 찌르는 검.’
조광은 이 초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추혼낙월?”
명운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 그 초식이 추혼낙월이다. 그 초식을 기억하라.”
조광의 앞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여인은 당연히 경은이었다.
그녀는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명운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한번 하라!”
명운의 지시에 경은이 추혼낙월을 다시 한번 펼쳤다.
이윽고 명운이 물었다.
“기억하느냐?”
조광이 대답했다.
“기억할 수 있습니다.”
“추혼낙월을 펼칠 수 있겠느냐?”
조광은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그리고는 경은이 보여 준 추혼낙월을 그대로 따라 했다.
검이 멈추자 명운이 경은에게 물었다.
“제대로 펼쳤느냐?”
경은은 눈썰미가 좋았기 때문에 조광이 다르게 펼친 부분을 바로 지적했다.
“보법이 어긋나 있습니다.”
명운은 조광을 나무라지 않았다. 대신 그가 추혼낙월을 완벽하게 펼칠 수 있도록 경은에게 초식을 반복하라 명했다.
“잘 보고 기억하세요.”
조광은 경은의 초식을 본 뒤, 그것을 다시 펼쳐 보였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이 과정을 여섯 번쯤 반복했을 때, 경은이 비로써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에는 완벽했습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 천재는 아니군.’
조광의 재능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좋다. 이번에는 그 아이에게 초식을 사용해 보거라.”
조광은 명운의 지시에 멈칫했다.
“제가 든 검은 진검입니다.”
그는 자칫 잘못하면 경은이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상관없다.”
명운의 한마디에 조광은 검을 들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경은은 자세를 잡은 뒤 미소를 지었다.
“오세요.”
조광은 심호흡을 한 뒤, 추혼낙월을 펼쳤다.
휙!
길게 앞으로 찌르는 검.
하나 그의 검은 경은의 몸에 닿지 못했다.
‘이, 이것은…….’
그가 검을 앞으로 뻗는 순간 경은이 몸을 비틀며 검을 흘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오른손을 뻗어 조광의 목젖을 노렸다.
물론 경은의 검은 조광의 목젖 바로 앞에서 멈췄다.
“실전이었다면 목이 꿰뚫렸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조광은 자신보다 어린 여자에게 패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 한 수는 원비유가(遠飛有嘉)라 한다. 완벽하게 연마하면 적풍대 꼬마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조광은 검을 회수하며 두 손을 모았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의 이 한마디는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