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진짜와 가짜 (2)
“공자님, 일은 왜 따라오고 있는 거죠?”
경은의 물음에 명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라니?”
“수행원으로 지목하지 않으셨잖아요.”
“일은 수행원이 아니야.”
이번에는 경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수행원이 아니라고요?”
명운은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노예야.”
“예?”
“몰랐나?”
뒤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일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습니다. 전 주인님의 노예입니다.”
경은은 눈을 크게 떴다.
‘공자님이 노예를 부리신다고? 초예나 초하를 데려왔을 때도 이런 말씀은 안 하셨다.’
그녀는 명운이 일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공자님은 그렇다고 치고, 다른 이들은 왜 아무 반응도 없는 걸까?’
정문이나 종영세의 표정은 담담함을 넘어 태연했다.
그들이 이러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일의 과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예가 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목숨을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일은 아라산의 살수였다.
도민국, 아니 천산의 여러 나라에서 아라산의 살수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녀도 이것이 공자님의 배려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명운은 슬며시 화제를 돌렸다.
“천원대 부대주에 서진이 올랐다지?”
하후문과 정문은 신강에서 서진과 함께 싸운 사이였다.
“만족 족장을 잡은 공으로 승진한 모양이군요.”
“족장을 잡았으니,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진이 일조장에서 승진해 부대주가 된 것은 명운의 계획대로였다.
‘하나 내가 대주가 되는 것은 계획 밖의 일이었다.’
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무력행사가 쉬워진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하지만 대주가 된다는 것은 이동에 제약이 생기게 된다.’
천원대의 원정이라면 모를까?
이제 천원대를 버려두고 멀리 떠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공자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진 말인가?”
“그렇습니다.”
명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들 말대로 공을 세웠으니, 진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네.”
그들은 바로 천원대를 향하지 않았다.
경은은 경로가 다른 것을 알고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했다.
“공자님, 이쪽은 천원대로 가는 길이 아니지 않습니까?”
“들릴 곳이 더 있어.”
“그곳이 어디죠?”
명운은 짧게 대답했다.
“우가촌.”
우가촌에는 명장 금석이 살고 있었다.
다음 날.
명운은 우가촌 입구에서 정문을 호출했다.
“정문.”
“예, 공자님.”
“자네는 나를 따르고, 나머지는 이곳에서 기다리게.”
하후문과 종영세는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다.
“공자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경은은 자신이 다시 제외되자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명운은 그녀의 시큰둥한 얼굴을 보고는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경은에게 선물하는 것을 잊었군.”
경은은 명운이 내민 선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그것은 커다란 홍옥(루비)으로 만든 목걸이였다.
“네게 잘 어울리라 생각했다.”
“공자님, 이렇게 비싼 물건을 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이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명운이 내민 홍옥 목걸이는 대명궁의 귀부인들도 쉬이 가질 수 없는 보물이었다.
“경은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찰 수 있겠어.”
“군주님이 계시잖아요.”
명운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는 국왕 폐하께서 내리신 선물이 많아. 하지만 경은에게는 나밖에 없잖아.”
나밖에 없다.
이 한마디는 경은의 가슴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럼, 다녀올게.”
그는 손을 흔들고는 정문과 함께 우가촌 안으로 떠났다.
경은은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후문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종영세에게 말했다.
“하, 이거 큰일인데? 공자님께 완전히 반한 것 같군.”
종영세는 한때 그녀에게 마음을 둔 적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는 왜 서역에서 돌아올 때 선물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후문이 그의 팔을 툭 쳤다.
“그게 우리와 공자님의 차이겠지.”
그는 웃었지만, 종영세는 웃을 수 없었다.
* * *
금석은 검은 돌덩어리를 받자마자 미간을 좁혔다.
“이것은 귀한 물건이군요.”
명운이 물었다.
“가능하겠나?”
“글쎄요. 저도 처음 만지는 물건이라.”
명운이 금석에게 건넨 물건은 바로 현철이었다.
현철은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로 구하기 힘든 재료였다.
그 때문에 명장이라 불리는 금석조차도 현철을 가공해 본 적이 없었다.
“자네가 못하면 곤란해.”
금석에게 현철은 귀한 물건이자 도전의 대상이었다.
“시도는 해 보겠습니다만,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강 총관에게 편지를 쓰게.”
강하원은 천원대에 합류하지 않고 서숙에 남아 있었다.
“검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명운이 묵검을 툭 치며 대답했다.
“이것과 같으면 좋겠네.”
“그간 검법이 늘지 않으셨습니까?”
“크게 늘진 않았네.”
금석이 명운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말했다.
“검법보다는…… 키가 많이 자라셨군요.”
그가 명운을 처음 만난 것은 폐관수련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그런가?”
“옆에 호위무사보다 더 크십니다.”
신강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명운은 정문보다 크지 않았다.
‘서역을 여행하면서 키가 자랐단 말인가?’
명운은 그의 말에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조금 더 길게 만들어도 되겠군.”
“키가 크다고 꼭 긴 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소에 따라서 긴 검이 방해될 때도 있으니까요.”
건물이나 좁은 길 안에서 싸울 때는 검의 길이가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 그대로 만들어 주게.”
명운은 처음부터 묵검과 같은 검을 하나 더 가지고자 했다.
“알겠습니다.”
금석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명운이 물었다.
“그런데 말일세. 검을 한 자루만 만들 수 있는 것인가?”
금석이 멈칫하며 대답했다.
“음, 이 정도 양이라면…….”
“하나 더 만들 수 있다면, 이 친구 것도 만들어 주도록.”
정문은 명운의 말을 듣고는 크게 놀랐다.
“공자님, 현철검은 그 값을 헤아릴 수가 없는 신병(神兵)입니다.”
“석가를 버리고 나를 따라왔지 않나. 이것은 그 대가라고 생각하게.”
정문은 그 대가를 오래전에 받았다고 생각했다.
“공자님께 받은 화운심공 덕분에 무공이 크게 늘었습니다.”
“화운심공은 계산에서 빼도록 하게. 그것은 예전에 자네가 나를 구해 준 대가이니까.”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고, 금석은 허리를 굽혔다.
“하면 한 자루를 더 만들겠습니다.”
원래는 정문의 검법을 보고 검을 만들어야 했으나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명운이 말끝을 올렸다.
“이 친구의 검법은 보지 않는 건가?”
그의 물음에 금석이 걸음을 멈췄다.
“검법을 볼 수 있는 겁니까?”
“자네는 사용자의 무공을 보고 검을 만들지 않나?”
금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검법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훨씬 좋지요.”
세 사람은 함께 언덕 위로 올라갔다.
정문은 그곳에서 일혼검법(一魂劍法)을 펼쳐 보였다.
슉! 슈슈슉!
빠른 검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허초가 적고 초식이 대부분 간결하다.’
일혼검법은 검신 최무량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은 그가 아닌 그의 제자가 만든 것이었다.
‘제자가 만들었지만, 이 검법에는 최무량의 검론이 그대로 녹아 있다.’
화려함보다는 건실함.
기교보다는 힘.
일혼검법은 초식 하나하나를 중시한 최무량의 검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합!”
기합과 함께 크게 검을 휘두르자 검풍이 일어났다.
금석은 정문의 검법을 끝까지 보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훌륭하군요.”
명운의 평가도 좋았다.
‘내력이 깊어지니, 검에 힘이 붙었다.’
그는 조광도 정문을 쉬이 제압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 * *
천원대로 돌아온 명운.
그는 가장 먼저 부대주 서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잘 있었나?”
서진은 명운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내였다.
“공자님, 아니 대주님 덕분에 이렇게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자네가 공을 세워 승진한 것이 아닌가?”
서진이 선 채로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주님께서 길을 알려 주시지 않았다면, 이곳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명운이 만족 족장 우루무를 그에게 넘긴 일을 길을 알려 주었다고 돌려서 표현했다.
“길을 알려 주었다. 괜찮군.”
명운은 안부 인사를 끝낸 뒤, 천원대의 논공행상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서진은 자세를 고치며 대답했다.
“신강에 갔던 이들은 대부분 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용맹을 인정받아 조장이나 부조장으로 승진하기도 했습니다.”
명운이 재차 물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아니 이곳에 남은 이들은 어찌 되었나?”
서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대주님, 공을 세우지 않았는데 어찌 상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명운은 그 반문에 가볍게 혀를 찼다.
“쯧, 그러면 곤란하지.”
서진은 그의 말을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곤란하다니요?”
명운이 대답했다.
“많은 대원이 신강에 갔으니, 남은 이들에게 일이 몰렸을 걸세. 평소보다 훨씬 힘들었겠지.”
“흠, 그것은 그렇습니다.”
평소의 경계 임무는 물론 좌사부에서 명한 잡무 또한 남은 이들만으로 해결해야 했다.
결국, 이곳에 남은 이들은 동료들이 돌아올 때까지 밤잠을 줄이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대주님께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살피고 계신다.’
명운이 말했다.
“작은 것이라도 괜찮으니, 이곳에 남았던 이들에게 상을 내리도록 하게.”
“그것은 대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명운이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대주님께서는 무림맹 출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천원대는 무림맹에서 투항한 무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천원대 대주는 대대로 무림맹 출신이 맡았다.
그러나 새로 대주가 된 명운은 무림맹과 거리가 멀었다.
“상으로 충성을 사라는 말인가?”
서진이 말끝을 아래로 내리며 답했다.
“충성은 살 수 없더라도 반감은 줄일 수 있겠죠.”
“음, 내가 대주가 되어 반감을 가진 이가 있단 말인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운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아예 없지는 않다. 흠, 투항한 자들에게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는 말이겠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내렸다.
“알겠네. 그럼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게.”
서진은 굳은 음성으로 명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명운은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예전에 자네와 했던 약속 기억하나?”
순간 서진의 눈빛이 바뀌었다.
“어찌 그것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좋아. 머지않아 그 일을 해결할 걸세.”
서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해결이라면, 청성파 장문인을 척살한다는 말인가?’
명운이 그에게 약속한 것은 사매의 복수였다. 그리고 그 대상은 구파일방 중 하나인 청성파 장문인 자허도장과 그의 아들이었다.
서진이 굳은 음성으로 물었다.
“대주님, 진심이십니까?”
명운은 짧게 대답했다.
“진심일세.”
서진은 심호흡을 길게 했다.
“대주님, 이번 일…… 어떻게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반년 안에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반년.
기한은 길지 않았다.
서진은 복수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자기도 모르게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명운은 그의 눈빛에 살기가 도는 것을 보고는 오른손을 들었다.
“서진.”
“예, 대주님.”
“급하게 갈 필요는 없네.”
“급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철저히 준비할 것입니다.”
명운은 그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준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번 일 하나만을 보고 살아온 사내니까.’
그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준비가 되면, 내게 보고를 하게.”
서진은 의자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았다.
“존명!”
그로서는 기다리고 기다렸던 복수였다.
‘자허도장과 원수의 목을 베어, 사매의 넋을 위로하겠다.’
명운은 돌아서는 그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살기가 너무 짙다.’
그는 서진의 몸에서 뻗어 나오고 있는 날카로운 기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