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진짜와 가짜 (3)
서장(西藏) 파천궁(破天宮).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 천마의 후예라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 십만대산의 천마신교는 가짜이며, 언젠가는 진짜가 그들을 벌할 것이다.
천마신교 오대 교주 명주호가 십만대산을 다스리던 시절.
파천궁은 일제히 봉기했다. 그들은 서장에서 키운 힘을 바탕으로 청해와 십만대산을 침공했다.
“치열한 접전이 있었고, 파천궁 사람들은 거의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짜들이 본교에서 훔친 비전을 사용하여 전세를 역전시키고 말았습니다.”
노인의 말에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정말 나쁜 자들이군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훔친 비전을 사용하다니!”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옳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운 줄을 모르며, 비겁한 데다가 염치까지 없는 자들이죠.”
“다음은 어떻게 되었나요?”
아이들의 물음에 노인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파천궁 사람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으나 가짜들의 수가 많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곳으로 물러났고, 그들에게 빼앗긴 비전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비전을 완성했나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결국 완성을 했답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밝아졌다.
“와, 완성했군요!”
“지금은 누가 그 비전을 가지고 있죠?”
노인이 대답했다.
“비전은 교주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노인이 교주라 칭한 인물.
그는 파천궁의 교주 천혁(天赫)이었다.
천혁은 이곳 파천궁 사람들에게 천마의 화신이자, 진정한 천마의 후계자로 불리고 있었다.
그는 전각의 가장 높은 방에서 어깨가 넓은 중년인과 마주 앉았다.
“자네의 말에 따르면 명가의 어린것들이 소꿉놀이에 나섰단 말인가?”
중년인이 보고한 내용은 명운의 혼사와 명정의 곤륜파 침공 등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천혁이 혀를 찼다.
“쯧, 평화가 계속되니, 진정한 싸움이 무엇인지 잊은 모양이로군.”
“성존께서 아신다면, 호통을 치실 것입니다.”
“그래, 각은 어떻게 하고 있지?”
파천궁은 비밀리에 명각을 지원하고 있었다.
“금선방을 움직여 절강성을 공격할 예정입니다.”
“우리의 도움은?”
“수왕(水王)이 갈 예정입니다.”
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왕이라면 괜찮겠지.”
수왕은 풍왕(風王), 빙왕(氷王), 화왕(火王)과 함께 사왕(四王)이라 불리며, 파천궁의 무력을 상징했다.
“진백청에게 요청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천혁이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진 가주가? 어떠한 요청인가?”
“삼공자를 견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천혁이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흐흠, 삼공자를?”
“세력을 제법 키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것은 곤란하지.”
“제가 갈까요?”
천혁이 말끝을 올렸다.
“풋내기 하나를 잡는 데 사왕까지 나설 이유가 있나?”
“그러면 누굴 보낼까요?”
천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지.”
그의 앞에 고개를 숙인 중년인은 사왕 중 풍왕이라 불리고 있는 자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진 장로의 요청을 기각하겠습니다.”
풍왕이 물러가려는 순간 천혁이 손을 들었다.
“잠깐.”
풍왕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속하, 교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의 청을 기각할 필요까지는 없네.”
“그 말씀은?”
“그에게는 내가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말하게.”
지금 당장 움직이진 않겠지만, 삼공자의 신변에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를 제거할 것이다.
‘일에 방해가 되는 자를 살려 둘 이유는 없지.’
풍왕은 그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천혁이 확인하듯 물었다.
“그리고 오공자 명정이 곤륜산을 친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오공자 명정과 그의 외숙 원우형의 적풍대가 곤륜산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천혁이 오른손을 빙글 돌렸다.
“그쪽은 손봐야 할 것 같군.”
풍왕은 고개를 갸웃했다.
“삼공자가 아니라 오공자를 치는 것입니까?”
천혁이 반문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이번 일은 그대가 직접 가서 처리하게.”
풍왕은 명을 받은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모두 처리하는 것입니까?”
천혁이 답했다.
“목격자가 남으면 곤란하니, 모두 처리하게.”
풍왕은 모두 죽이라는 엄명에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존명!”
그는 말을 마친 뒤 연기처럼 사라졌다.
홀로 남은 천혁은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가교의 전력을 줄일 좋은 기회다.’
그는 곤륜파의 반격으로 위장해 적풍대를 전멸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가교를 쓰러뜨릴 수 없다.’
천마신교에는 적풍대 외에도 사신단과 삼단 등 수많은 무력 집단이 있었다.
천혁은 미간을 좁혔다.
“각을 교주에 올린 뒤, 조금씩 가교의 전력을 제거한다. 쯧, 성미에 맞지 않는 계책이야.”
이윽고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말을 받았다.
“교주님, 이백여 년 전의 실패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이백여 년 전의 실패.
그것은 노인이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던 파천궁의 십만대산 공격을 뜻했다.
“알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십만대산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는 치밀한 계책을 이용하고자 했다.
* * *
명운은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이는 비쩍 마른 노인이었다.
노인의 이름은 백암귀라 했다.
“형제간의 우애를 생각해서라도 큰형님을 따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명운이 냉소했다.
“겨우,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이곳까지 오신 것입니까?”
“공자께 나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명운이 재차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백암귀가 당당한 태도로 답했다.
“어느 가문이나 막내가 형들을 누르고 권좌를 물려받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막내라면, 가능성이 큰형과 손잡고 실리를 취하는 것을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명운은 차갑게 말을 받았다.
“그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음 순간 백암귀가 목소리를 높였다.
“공자님! 장공자님께서는 공자님을 높이 평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평가는 이후에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값을 높이 쳐줄 때 팔아라.
명운은 여전히 냉랭했다.
“높이 평가해서 내린 결론이 이것입니까?”
백암귀는 자신이 과한 요구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논객(論客)답게 철면(鐵面)을 펼쳤다.
“장공자께서 권좌에 오르시면, 공자님께 부교주 위를 내리실 것입니다.”
명운은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것 참, 겨우 부교주 위로 나를 회유하려고 온 것인가?’
그는 손을 내저었다.
“부교주 위가 탐이 나긴 하지만, 이 일은 제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한마디에 백암귀가 말끝을 올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명운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노객께서도 알고 계신 것 아니었습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대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석 장로님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닌 귀주석가의 뜻이 먼저다.
그의 한마디에 백암귀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씀은…… 제가 지금까지 한 말이 모두 의미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제 뜻을 바꾸고 싶으시면 석 장로님을 설득하는 것이 더 빠를 것입니다. 제가 원한다고 해도 그분께서 거절하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백암귀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장공자께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미련을 두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운은 앉은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백암귀는 그의 말에 허리를 숙였다.
“공자님께 어찌 전송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노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몸을 돌린 뒤 명운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백암귀가 사라지자 부대주 서진이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입니까?”
명운이 비스듬히 앉았던 자세를 고치며 대답했다.
“백암귀라는 자일세.”
“백암귀라면 장공자의 측근 아닙니까?”
장공자 명천의 측근들은 십만대산의 유명 인사였다.
“날 설득하려고 왔다더군.”
“대주님을 말입니까?”
“흔한 거짓말이지. 백암귀는 이쪽의 사정을 알아보려고 온 것일세.”
“그렇군요.”
서진은 탁자 위에 작은 책자를 내려놓았다.
“이번 일의 계획서입니다.”
명운은 그가 내민 책자를 펼쳤다.
‘흠, 예상대로 철저하군.’
그는 계획서를 읽으며 물었다.
“이대로 실행한다면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서진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공자님의 무공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내가 자허도장을 이긴다고 전제하면?”
“십 할입니다.”
십 할이면 실패가 없다는 뜻.
명운은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계책의 성공을 자신하는군.”
“성공하지 못할 계책이라면 대주님께 가져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명운은 그의 계획서가 철저하게 짜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쪽의 생각을 들어 보겠나?”
“귀를 열고 경청하겠습니다.”
“내 생각에 따르면, 이 계책의 성공 가능성은 오 할 정도일 걸세.”
오 할.
쉽게 말해 반반이라는 뜻이었다.
서진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째서 오 할밖에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명운이 대답했다.
“자네의 계책은 자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사천성과 청성파로 짜여 있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 머릿속에 있는 사천성과 청성파라니요?”
명운은 오른손 식지를 세웠다.
“넷째 형 때문에 사천성의 신교 세력은 거의 전멸을 했네. 자네가 쓴 계획서는 그것을 반영하고 있지 않아.”
서진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명운의 말대로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사천성을 바탕으로 이번 계획을 짠 것이었다.
“그리고 달라진 것이 하나 더 있네.”
서진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어떤 것입니까?”
“넷째 형이 사건을 일으킨 이후, 무림맹은 사천성의 방비를 강화했네. 이는 청성파와 아미파에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일세.”
“그 말씀은…….”
명운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직접 가 보지 않아서 정확히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무림맹과 개방의 일결제자들이 곳곳에서 길목을 지키고 있을 걸세.”
일결제자.
그들은 개방에서 결을 허락받은 가장 아래 제자들이었다.
‘무공은 높지 않으나 지리에 밝고, 그 수가 많아 사람들은 그들을 개방의 이목(耳目)이라 부른다.’
서진은 미간을 좁혔다.
“그렇다면 길을 이용하기에 쉽지 않겠군요.”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길이 아닌 곳으로 이동한다면, 청성산에 이르기 전에 지치고 말 걸세.”
“지친 상태로 자허도장을 상대하면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허도장의 무위도 그대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를 걸세.”
서진이 청성파를 떠난 시간만큼 자허도장의 무공도 강해졌을 터였다.
“계획서를 다시 작성하겠습니다.”
명운이 책자를 돌려주며 말했다.
“내게 계책이 하나 있네. 들어 보겠나?”
서진은 목소리를 굳혔다.
“귀를 열고 듣겠습니다.”
그는 이번 계책으로 공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내 계책이 아니라도 사매의 복수를 할 수 있다면 상관이 없다.’
명운은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계책을 이야기했다.
서진은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주님이십니다. 계책에 빈틈이 없습니다.”
명운이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진, 내 의견을 너무 과신하지 말게. 나도 사천성을 직접 가 본 것은 아닐세.”
서진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그것까지 고려해서 계책을 수정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기대하겠네.”
“존명.”
백암귀에 이어 서진까지 밖으로 나가자 경은이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섰다.
“하…… 식사가 다 식고 말았네요.”
명운이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태 날 기다린 것인가?”
“식사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오시지 않으시니까요.”
천원대에서 그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것은 경은이었다.
“미안하게 되었군.”
“다시 덥히고 있으니, 기다려 주세요.”
명운이 그녀에게 물었다.
“경은, 무공은 수련하고 있는 건가?”
경은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수련하고 있는 것이 아니군.”
경은은 이곳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사부님을 도울 수 있다면, 전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명운이 짧게 말했다.
“미안해.”
경은은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사부님은 사부님만으로 끝나는 분이 아니시잖아요.”
“내가 사부로 끝나지 않으면?”
“사부님은 사부님이면서 공자님이십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였다.
명운은 목소리를 낮췄다.
“경은, 이번 일이 끝나면, 내가 직접 무공을 봐주도록 할게.”
그가 말한 이번 일은 청성파 장문 자허도장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을 제거한다면,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명증이 교주가 된 이래 천마신교의 손에 목숨을 잃은 구파일방의 장문인은 없었다.
이는 천마신교와 무림맹이 크게 싸운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부님, 전 정말로 괜찮습니다.”
명운이 말했다.
“내가 괜찮지 않아.”
“…….”
“경은은 내 첫 번째 제자야.”
명운은 나름 그녀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사부가 되어서 제자를 책임지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그는 자신의 사부 왕준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사부님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내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해 주셨다.’
명운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전수하지 못하더라도 성의를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부의 의무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제자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