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진짜와 가짜 (5)
쏴아아아.
도신(刀身)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붉은빛이었다.
“헉… 헉… 헉…….”
거친 숨.
도왕(刀王) 팽현각은 생각했다.
‘이토록 거친 숨을 내쉬는 것이 얼마 만이던가?’
그는 미간을 좁히며 호흡을 조절했다.
“후흡…….”
몸은 이미 만신창이 그러나 칼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내가 쓰러지면 모두가 죽는다.’
그는 대도를 세웠다.
“화룡도법(火龍刀法)은 명불허전이구려.”
여유 있게 말을 받고 있는 사내.
그는 한 자루의 검을 들고 서 있었다.
나이는 대략 서른 살 전후.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이토록 젊은 자가 자신의 대도를 흘린다는 사실을.
“놈!”
사내의 발아래에는 조카의 시신이 있었다.
‘지켜 주지 못했다.’
동생에게 그의 아들을 지켜 주겠노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팽현각은 그 말을 지킬 수가 없었다.
힘이 없었기에.
무력했기에.
그는 팽가의 가졸(家卒)들을 지킬 수가 없었다.
쉬익!
도기가 실린 대도가 하늘이라도 쪼갤 듯 쏟아져 내렸다.
파악!
팽현각의 대도가 벤 것은 사내가 아닌 조카의 시신이었다.
“큭!”
그는 이를 악물며 왼쪽으로 대도를 움직였다. 바로 그 순간 왼쪽 허벅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팍!
짧은 파열음과 함께 피가 튀어 올랐다.
‘칼을 멈추면 끝이다!’
팽현각은 이를 악물고 대도를 끝까지 뻗었다.
촤악!
그 일격 덕분에 상대는 연격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섰다.
“역시 도왕, 수인검(水刃劍)을 끝까지 펼치지 못한 것은 오랜만이구려.”
사내는 이미 승리를 거둔 것처럼 여유가 넘쳤다.
팽현각은 두 손에 마지막 내력을 불어넣었다.
‘이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타탁. 타탁.
빗방울이 숨이 끊어진 자의 시신을 때렸다.
검을 든 사내가 차갑게 말했다.
“뒤쪽의 싸움도 끝난 것 같군요.”
팽현각은 미간을 좁혔다.
‘뒤쪽? 허 장로가 당했나?’
개방장로 허약삼은 조금 전까지 뒤쪽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의 상대는 마교의 이공자 명각이었다.
“이쪽도 슬슬 끝내 봅시다.”
팽현각은 이를 악물었다.
“놈!”
상처 입은 맹수의 포효.
사내는 검을 틀어쥐었다.
철컥.
“싸움은 입이 아닌 검으로 하는 것입니다.”
팽현각은 대도를 든 채 앞으로 내달렸다. 상처 입은 다리도 이 순간만큼은 상처를 입지 않은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할 수 있다.’
그의 대도가 섬광(閃光)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참(斬)!”
이윽고 사내의 몸이 가로로 크게 베어졌다.
파악!
대도가 멈춘 순간.
팽현각은 깨달았다.
‘베지 못했다.’
살아 있는 자를 벤 느낌이 아니었다.
‘무엇을 베었단 말인가?’
사내의 목소리가 그의 뒤에서 들려왔다.
“겨우 그것이오?”
어느 틈에 뒤로 돌아간 것일까?
팽현각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대도를 움직이고자 했다.
그러나 사내는 그가 공격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윽고 검격(劍擊)이 쏟아졌다.
솨아아아!
대도를 들었지만, 막을 수 있는 공격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팍! 팍! 파팍!
거친 소리와 함께 핏방울이 튀어 올랐다.
‘이 공격은 검기(劍氣)인가?’
서른 살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사내가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마교에 이런 고수가 있었단 말인가?’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반격을 가해야 했다.
팽현각은 남아 있는 진기를 모두 끌어 올렸다.
“하합!”
기합과 함께 몸을 비틀었다.
‘단숨에 벤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도는 허공을 치고 말았다.
“큭.”
허공을 친 다음 돌아온 것은 지독한 통증이었다.
그의 가슴에 박힌 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팽 가주, 처음보다 대도가 많이 느려졌소이다.”
사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팽현각의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았다.
촤악.
검이 뽑힌 자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허…….”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의식이 흐릿했다.
‘이렇게 죽는단 말인가?’
도왕이라는 위명으로 천하에 이름을 알린 지 십칠 년.
그는 그 위명이 덧없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구나.’
이틀 뒤.
현원도장이 이끄는 파사대가 미산(米山)에 도착했다.
그들은 출발이 닷새나 늦어지는 바람에 지금에서야 미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흩어져 있는 시신들은 모두 무림맹 무인들의 것이었다.
“사숙! 팽 가주의 시신입니다!”
“무엇이라?”
현원도장은 경공을 전개해 사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패, 팽 가주!”
믿을 수가 없었다.
‘하북팽가의 도왕이 절강의 이름 없는 산자락에서 숨을 거두다니!’
죽은 이는 그만이 아니었다.
“팽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쪽은 제갈세가 사람들입니다!”
“여기 개방제자들과 허 장로입니다!”
미산의 산자락에 무림맹 선견대가 전멸해 있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도왕 팽현각은 십대고수 중 한 명으로 그 위명이 구파일방 장문인들과 같았다.
개방장로 허약삼 또한 약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이름 없는 산자락에서 숨을 거두었다.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있었지만, 현원도장은 한기(寒氣)를 느꼈다.
“즉시 시신을 수습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현원도장은 망자를 위한 예를 취하며 생각했다.
‘이들이 전멸했다면, 우리도 전멸할 수 있다.’
파사대의 전력은 선견대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다시 말해 선견대를 전멸시킨 이들이라면, 파사대 또한 얼마든지 전멸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위험하다.’
금선방 정벌은 언감생심.
현원도장은 파사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남파가 전멸했을 때,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다.’
그는 마교가 정예 병력을 절강에 투입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마교주나 부교주가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절강에 왔다면, 이는 그의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부님, 시신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여기에 일단 묻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묘를 쓰자는 말이었다.
현원도장은 제자의 의견에 목소리를 높였다.
“가묘를 쓸 시간이 없다. 마을에서 수레를 빌려 와라.”
“알겠습니다.”
파사대 대원들은 두 대의 수레에 선견대의 시신을 나눠 담고는 북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 * *
무림맹 총단.
구파일방 장문인들이 속속 이곳에 도착했다.
“청성파 자허도장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무당파 현진도장께서 당도하셨습니다.”
정오가 지나자 와병 중인 아미파 장문인과 항주로 떠난 형산파 장문인을 제외한 여덟 명이 대전에 모였다.
분위기는 무거움 그 자체였다.
“흠.”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무림맹주 남궁민이었다. 구파일방 장문인을 소집한 것은 바로 그였다.
“절강에서 잇달아 참사가 났습니다.”
그의 말을 받은 것은 종남파 장문인 나운(羅運)이었다.
“절강의 혈사(血事)는 이미 들었습니다.”
“그래도 모두에게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화산파 장문인 진명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지요.”
남궁민은 절강성에서 있었던 일을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 있었던 습격은 물론 해남파 고수들과 선견대의 전멸까지.
그는 감정을 배제한 채 차분하게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무당파 장문인 현진도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의 한숨이 끝나자 화산파 장문인 진명도장이 입을 열었다.
“절강에서 대혈겁이 일어났으니, 이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개방의 용두방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절강이 멀다 하여 관심을 두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종남파 장문인 나운이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구파일방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이번 일은 해결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소림 방장 혜명대사(慧明大師)가 두 눈을 감으며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화산파 장문인 진명도장이 그에게 물었다.
“방장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혜명대사가 눈을 뜨며 대답했다.
“소림은 청해와 신강의 마교를 맡겠소이다.”
소림사는 중원에 남아 동진하는 마교를 막겠다는 말.
진명도장은 무당파 장문인 현진도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당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소림 다음 배분은 무당이었다.
절강에는 현재 현진도장의 사제인 현원도장이 파견되어 있었다.
“사반을 보내리다.”
무당사반.
그들은 무당파를 대표하는 후기지수들이었다.
종남파 장문인 나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사반이라면 믿을 수가 있지요.”
무림맹주 남궁민이 현진도장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무당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현진도장은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감사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무당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무당 다음은 화산이었다.
화산파는 이럴 때면 항상 내미는 패가 있었다.
“화산은 매화검수를 보내겠소이다.”
화산파에서는 매화검법의 극의를 깨우친 이들을 매화검수라 불렀다.
“매화검수 또한 믿을 수가 있죠.”
화산 다음에는 종남, 종남 다음에는 청성과 개방이 잇달아 지원을 약속했다.
이윽고 무림맹주 남궁민이 말했다.
“상당한 전력이 모였지만, 이들을 이끌 지휘자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산파 진명도장이 그의 말을 받았다.
“이번에는 맹주께서 직접 출진하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구파일방의 정예가 모였으니,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림맹주뿐이다.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종남파 장문인 나운이 진명도장의 말에 동의했다.
“맹주께서 맡아 주신다면 뒷말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용두방주 또한 남궁민을 지지했다.
“맹주께서 깃발을 드시면, 맹의 사기가 크게 올라갈 것입니다.”
남궁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의 의견이 그러하다면, 제가 깃발을 들어 보이겠습니다.”
무림맹과 구파일방은 출전에 앞서 이번 일전에 절강대전(浙江大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 *
백옥현(白玉縣)은 서장에서 사천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위치했다.
끼익. 끼익.
수레의 바퀴 소리와 함께 상단이 나타났다.
“정지!”
목소리를 높인 것은 창을 든 병사였다. 그는 현성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수색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상단의 선두에 선 것은 중년 표사였다.
“나리, 무슨 일이십니까?”
병사가 얼굴을 굳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못 보던 이들인데 어디서 왔느냐?”
“저희는 청허에서 오는 길입니다.”
청허는 서장 북동쪽에 위치한 도시였다.
“청허에서 왔다고?”
병사는 말 위에 타고 있는 붉은 머리 여인을 주목했다.
“저 여인도 청허 사람인가?”
표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저분은 상단주로서 혼비국 사람입니다.”
“혼비국?”
“저 뒤에 선 세 상인 모두 혼비국에서 왔다고 합니다.”
병사가 계속해서 물었다.
“상단주는 혼비국 사람인데, 넌 청허 사람이란 말이냐?”
“아닙니다. 저희는 나곡(那谷) 사람인데 청허에서 고용되었습니다.”
표사는 그렇게 말을 하며 엽전 몇 개를 병사의 손에 쥐어 주었다.
병사는 얼굴을 굳혔다.
“그 말, 믿어도 되겠지?”
중년 표사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수레를 가리켰다.
“안을 보십시오. 모두 서역에서 가져온 물건들입니다.”
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통과!”
그의 외침과 함께 수레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상단이 통과하자 성문 옆에서 볕을 쬐고 있던 거지가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허리야.”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았다. 그러고는 다음 순간 발을 빨리했다.
거지가 달려간 곳은 작은 움막이었다.
“사형! 사형!”
그의 목소리에 얼굴이 누런 거지가 두 팔을 벌렸다.
“아! 왜 잠을 깨우고 그래.”
얼굴이 누런 거지의 허리춤에는 두 개의 매듭이 있었다.
즉, 그는 개방의 이결제자였다.
“수상한 자들이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뭐?”
“붉은 머리를 한 여인이 상단주라고 합니다.”
백옥현은 서장과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역인의 출입이 잦았다.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여인이 상단주라니까요?”
“그게 이상해?”
“사형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얼굴이 누런 거지가 허벅지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네 놈은 이상한 것도 많다.”
“사형, 상단주가 서역 여자라니까요.”
“이놈아, 서역이 아니라 중원에도 여자 상단주가 여럿 있다.”
“전 처음 봅니다.”
“네 놈이 처음 본다고 해서 이 이야기를 분타에 올릴까?”
“사형!”
얼굴이 누런 거지가 다시 돌아누웠다.
“그렇게 이상하면, 네가 감시해. 백의개 둘을 써도 좋다.”
백의개는 아직 매듭을 하나도 받지 못한 개방제자를 말했다.
거지는 이결제자의 말에 고개를 크게 숙였다.
“사형, 감사합니다.”
얼굴이 누런 거지는 사제의 말을 귀찮게 생각했지만,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녀석은 의외로 감이 좋단 말이지.’
끼익. 끼익.
대로를 움직이던 수레가 멈춘 곳은 작은 객잔이었다.
“이 근처의 객잔은 여기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붉은 머리 여인이 아미를 찌푸리며 말했다.
“할 수 없네요. 오늘은 여기서 쉬죠.”
말에서 내린 여인은 바로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 앞에서 표사 행세를 했던 사람은 천원대 이조장 제갈민중이었다.
일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께서는 잘 들어오셨겠죠?”
제갈민중이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누군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천성에 들어왔으니, 말을 조심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은 제갈민중의 지적에 어깨를 으쓱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시하네요. 제대로 된 술집 하나 없는 마을이라니!”
객잔 뒤쪽 골목에 있던 백의개 하나가 그녀의 말을 듣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사천성에 들어온 이상, 개방의 감시는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