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청성제일검 (1)
허름한 객잔의 가장 값싼 방.
침상에는 듬성듬성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작은 방은 침상이 둘이나 놓여 있어 짐을 놓고 나면 몸을 가눌 곳이 없었다.
탁.
송이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내려놓은 이는 천원대 부대주 서진이었다.
“대주와 부대주가 이렇게 함께 나서도 되는 겁니까?”
부대주는 대주의 부재 시 천원대를 이끌 책무가 있었다.
서진의 앞에 앉은 이는 천원대주 명운이었다.
“이번 일은 자네의 복수니까.”
두 사람은 서장 고원에서 송이를 따는 사람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었다.
명운이 털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편히 말해도 되네.”
그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사방에 기를 뻗어 감시하는 자를 찾았다.
그러나 느껴지는 것은 생쥐 몇 마리뿐이었다.
‘이런 낡은 객잔에 감시가 붙을 리가 없지.’
서진은 한쪽 이가 나간 찻잔에 물을 따른 뒤 한 모금을 마셨다.
“차가 아니라 물이군요. 맛도 좋지 않습니다.”
명운이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 물, 며칠은 되었을 걸세. 이런 객잔은 처음인가?”
서진이 잔에 남은 물을 바닥에 쏟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입니다.”
그는 명운이야말로 이런 객잔에 묵어 본 적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대주님은 어떻습니까?”
“나? 나는 좀 있지.”
“예?”
낡고 이가 빠진 침상을 경험한 것은 지금의 명운이 아니라 과거의 명운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나?”
“대명궁에 이런 곳이 있었습니까?”
명운이 그의 말을 받았다.
“대명궁이라. 어머니도 없는 막내가 서러운 일을 당하는 것은 대명궁이 아니라 황궁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서진은 명운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속하, 그것까지는 몰랐습니다.”
그는 명운이 막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어머니가 없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괜찮네. 남의 가정사를 자세히 아는 이가 얼마나 있겠나?”
명운은 신발과 겉옷을 벗은 뒤, 침상에 누웠다.
“며칠 만에 누워 보는 침상인지 모르겠군.”
두 사람은 말이나 나귀 없이 이동했기 때문에 들판이나 나무 아래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대주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내 계책이 지나치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런 낡은 객잔이나 송이 장수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명운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이렇게 치밀하게 계책을 짜도 어긋나는 것이 세상의 일이라네.”
서진은 침상에 몸을 기댔다.
“청성산에서 무공을 배울 때는 무공만 익히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라면?”
“아름다운 아내와 드높은 명성, 그리고 천하제일의 무공 말입니다.”
명운은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지었다.
“자네에게도 그런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군.”
“대주님께서는 없으셨습니까?”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없었네.”
명가의 막내아들에게 무공은 출세의 도구가 아닌 생존의 도구였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무공을 배웠을 뿐이다.’
그러나 그 무공조차 그의 목숨을 구해 주지 못했다.
명운은 명각에게 가슴이 뚫리던 그 날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명각의 그 눈빛과 목소리를 어찌 잊는단 말인가?’
서진이 말했다.
“점소이도 오지 않는 객잔이군요.”
“송이를 따는 산사람에게 돈 냄새가 날 리 없지 않은가?”
“가난한 산사람이란 말이군요.”
명운은 이쯤에서 대화를 끊고자 했다.
“불침번은 교대로 서지.”
“먼저 주무실 겁니까?”
“이쪽이 선택해 주는 것이 좋지 않나?”
서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쪽이 더 편하긴 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끊기자마자 명운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서진은 그 소리를 들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어지간히 피곤하셨던 모양이야. 저녁도 안 드시고 주무시는군.”
무공이 뛰어난 고수라고 해도 천 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이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천성 근처까지 말을 타고 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원래 그의 계획은 사천성 근처까지 말을 타고 온 뒤, 표국의 표사가 입는 옷으로 갈아입은 뒤 백옥현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하나 명운은 그것으로는 무림맹의 눈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 말을 타고 온 사람과 걸어서 온 사람은 분명 차이가 날 걸세.
그는 서장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송이가 든 바구니를 메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의 옷에 붙은 먼지는 산사람의 행색과 같아졌다.
‘천 리가 넘는 거리를 걸었으니, 개방의 거지들조차 눈길을 주지 않았지.’
명운과 서진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짚신을 여섯 번이나 바꿔야 했다.
‘신도 가죽신이 아니고, 짚신이라.’
그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청성산에서 무공을 연마할 때는 이런 무림인이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청성파 도인들은 깨끗한 도복에 정갈한 도관, 부드러운 가죽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마교와 무림맹은 이런 작은 부분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닐까?’
그는 거대한 세력이나 강대한 무공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강인한 의지가 천마신교를 지탱하고 있다고 추측했다.
같은 시각.
정문과 하후문은 개방 거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방에 있어도 시선이 느껴지는군.”
하후문이 말끝을 올렸다.
“우리는 어차피 시선을 받는 역할이 아닙니까?”
그들은 명운과 서진이 은밀히 잠입할 수 있도록 무림맹의 시선을 끄는 미끼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일 말이야. 윗사람 역할을 제대로 하던데?”
“어떻게 보면 즐기는 것도 같습니다.”
명운은 서역에서 온 일을 상단 선두에 세워 무림맹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방 밖에서는 일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것밖에 없는 거냐! 제대로 된 요리를 내오란 말이다.”
그녀는 술을 마시며 점소이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정문이 그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일 말이야. 상단주 행세를 제대로 하는군. 솔직히 놀라울 정도야.”
“경 소저는 어떻고요? 깐깐한 총관 그 자체입니다.”
경은은 일의 아랫사람으로서 상단의 회계와 다른 상회와 거래를 맡고 있었다.
툭. 툭.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하후문이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요?”
“점소이입니다. 시키실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는 일찍 잘 걸세. 돈이 필요하다면 상단주께 잘 보이도록.”
점소이는 돈 냄새를 맡고, 그들에게 접근했던 것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정문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 마음 편히 대화도 나누지 못하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개방 거지들이 뒷골목에 모였다.
“어때?”
“시끄러운 녀석들입니다.”
“확실히 수상한 구석이 있긴 합니다.”
얼굴이 누런 거지가 물었다.
“어디가 수상한가?”
“사내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 계집만이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얼굴이 누런 거지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것은 고용된 자와 고용한 자의 차이일세.”
“예?”
“사내들은 계집에게 고용되었으니 마음 편히 술을 마실 수 없지만, 계집들은 사내들을 고용했으니, 그들을 믿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일세.”
오른편에 서 있던 거지가 손뼉을 쳤다.
“사형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때, 말석에 있던 거지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냥 계집이 술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얼굴이 누런 거지가 순간 얼굴을 굳혔다.
“아장.”
“예, 사형.”
“넌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내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곳에 모인 거지들은 전부 술을 좋아했다.
“스님이 아니라면 다 술을 좋아하겠죠.”
“그래, 바로 그런 것이다.”
얼굴이 누런 거지는 상단을 감시하라 명을 한 뒤에 감나분타로 전서구를 달렸다.
감나분타에 도착한 전서구는 다시 금천으로 전해졌고, 금천에서는 그 전서를 성도로 보냈다.
성도에는 분타가 아닌 향이 있어 사천성 분타들을 통솔했다.
“향주님, 전서입니다.”
향주는 사결제자로 구파일방의 이대제자 또는 오대세가의 호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 왔나?”
“백옥현입니다.”
“백옥현에서?”
곁에 있던 이결제자 한 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백옥현이라면 서장과 닿아 있는 곳 아닙니까?”
“별일은 아닐 걸세.”
향주는 전서를 펼쳐 그 내용을 확인했다.
“서역에서 상단이 하나 왔는데 상단주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이며, 술을 좋아한다는 내용이군.”
이결제자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남쪽에서는 혈겁이 났는데, 서쪽은 평온하군요. 서역에서 상단이 온 것만으로 전서를 보내다니 말입니다.”
“그들을 나무라지 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이렇게 전서라도 보내는 것이 좋네.”
향주는 개봉총타로 보낼 전서를 적기 시작했다.
“향주님,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것입니까?”
“전서를 적고 있지 않나?”
“예? 이런 일로 말입니까?”
“평소 전서를 주고받지 않으면, 실제로 일이 일어났을 때, 실수할 수도 있네.”
향주가 전서를 보내는 이유는 총타로 향하는 전서가 제대로 도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 *
무림맹주가 이끄는 토벌군이 도착하자 절강의 마교 세력은 썰물처럼 사라져 버렸다.
혹자는 그들이 남쪽 산지(山地)로 도망쳤다고 했고, 어부들은 그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도주했다고 했다.
“이렇게 허망할 때가 다 있습니까?”
무당파 현원도장의 물음에 무림맹주 남궁민이 얼굴을 굳혔다.
“이쪽의 수를 완전히 읽히고 있는 모양입니다.”
“읽히다니요?”
“우리가 개봉으로 돌아가면, 녀석들이 다시 나타나서 절강을 위협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절강에서 일을 벌인 마교 세력과 정면으로 맞붙는 것이었다.
‘녀석들은 이쪽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있다.’
그는 무림맹에 마교의 비선이나 비첩이 여럿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분간은 이곳에 머무를 것입니다.”
현원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무림맹주와 토벌군은 마교에 투항했던 문파들을 다시 무림맹의 깃발 아래로 복속시켰다. 그리고는 마교에 적극 협조했던 자들을 단죄했다.
“여섯 명을 처형하고, 열두 명의 무공을 폐했습니다.”
남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습니다.”
이번에 상벌을 맡은 것은 형산파 장문인 악흔이었다.
“맹주께 묻고자 합니다.”
“어떤 일입니까?”
“이곳에 얼마나 머무르실 예정입니까?”
절강성은 최근 마교와 접전이 있었던 보위산과는 만 리가 넘게 떨어져 있었다.
무림맹의 주력이 이곳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감숙성에 부담이 될 터였다.
남궁민이 대답했다.
“적어도 일 년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악흔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이곳에 일 년이나 머무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하면 감숙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감숙은 소림에서 잘 막아 주리라 생각합니다.
소림은 이미 백팔나한을 감숙성 난주 청장사(靑牆寺)로 보내 보위산의 천마신교를 압박하고 있었다.
악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불초가 맹주께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악 장문의 말씀, 귀를 열고 듣겠습니다.”
악흔이 주변을 둘러본 뒤에 말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이쪽에서 역공을 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떤 역공 말입니까?”
“마교 놈들이 북쪽과 남쪽에서 이처럼 공격해 오니, 막는다고 해도 그 피해가 적지 않습니다. 이참에 대산을 공격하여 뿌리를 뽑는 것이…….”
남궁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대산을 친다면, 정사대전이 될 터인데 누가 선봉에 선단 말입니까? 악 장문께서 서시겠습니까?”
악흔은 그의 물음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사대전에서 선봉에 선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문파를 피의 제물로 삼아 대산으로 가는 길을 연다는 뜻이었다.
악흔은 물론 무림맹주인 남궁민조차 이런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정사대전으로 문파가 멸한다면 죽어서 선대를 어찌 볼 수 있단 말인가? 무림맹에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장문인과 문주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는 오래전에 명운이 꿰뚫어 본 무림맹의 약점 중 하나였다.
* * *
일이 이끄는 상단은 감나현을 지나 금천현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곧장 나아가면 청성산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남동쪽이 아닌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기서 남쪽으로 삼백 리를 가면 강정현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다시 동쪽으로 곧장 나아가면 바로 성도입니다.”
“성도에 우리 물품을 팔 수 있는 큰 시장이 있는 것이 사실이냐?”
“물론입니다!”
제갈민중은 주변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다.
개방거지들은 붉은 머리 여인 일과 제갈민중의 대화를 바탕으로 상단의 목적지를 추측했다.
– 서역 상단 목적지는 성도.
성도 향주는 보고를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단이 성도로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시를 물릴까요?”
이결제자의 물음에 향주가 대답했다.
“그들이 곧 도착하게 될 단파는 청성파의 영역이니, 그러는 것이 좋겠군.”
단파현에는 청성파 속가 제자가 운영하는 표국과 상단, 그리고 무관이 있어 청성파의 세력권이라 할 수 있었다.
이곳까지 계속 상단을 추적하는 것은 개방으로서는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은 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할 필요는 없겠지.’
향주는 단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청성파가 그것을 해결하리라 생각했다.
‘단파를 지나면 그다음은 아미파의 영역이다. 이쪽도 우리가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개방이 신경을 써야 하는 곳은 사천의 외곽 지역이었다.
사천성 단파현.
명운과 서진은 이곳에서 가지고 온 송이를 팔았다.
상인이 철로 된 저울에 송이를 달았다.
“서른 근이 훌쩍 넘는군요. 이곳까지 송이를 가져오는 사람이 드문데, 고생하셨습니다.”
“값은 얼마나 됩니까?”
“은으로 두 냥입니다.”
은자 두 냥이면 작은 수레에 쌀과 밀을 적당히 실을 수 있었다.
물론 명운과 서진은 수레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거래하겠습니다.”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손바닥 위에 은자 두 냥을 올렸다.
“멀리서 온 것 같아 후하게 쳐드린 겁니다.”
이는 거짓말이었다.
서른 근의 송이를 성도에 내다 팔면 은자 다섯 냥은 족히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서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산사람처럼 허리를 굽혔다.
“덕분에 아이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명운 또한 함께 인사했다.
“다음에 또 어르신과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상인은 두 사람의 인사에 거만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대들은 내가 아니면 곤란했을 거요.”
두 사람은 상인에게 거듭 인사를 한 뒤에 상점을 나왔다.
명운은 텅 빈 바구니를 보며 생각했다.
‘일과 함께 가는 길은 여기까지다.’
그와 서진은 이곳에서 상단과 헤어진 뒤, 청성산으로 향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