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청성제일검 (2)
“쌀가게로 가나요?”
명운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서진이 대답했다.
“쌀값은 이곳이나 백옥현이나 비슷하단다.”
여기서 미리 쌀을 사들일 필요가 없다는 말.
명운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서진을 쫓았다.
“그렇군요!”
두 사람은 시장을 빠져나와 북문으로 향했다.
서진이 작은 목소리로 명운에게 물었다.
“우리를 쫓는 이가 있습니까?”
명운이 전음으로 답했다.
– 아직은 없네.
두 사람은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는 북문을 빠져나왔다.
이때까지 그들을 주시하거나 쫓는 이가 없었다.
서진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개방거지들은 우리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군요.”
“송이를 팔러 온 산사람에게 무슨 관심이 있겠나? 붉은 머리 서역인이라면 모를까?”
천라지망을 펼친 것이 아니라면, 농부나 산사람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 번도 물어보지 않는 것이 섭섭하군요. 미리 여러 대답을 준비했는데 말입니다.”
“개방거지들과는 마주치지 않는 게 제일일세.”
명운은 개방의 이목이 얼마나 까다로운 자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개방에 비하면 청성파는 장님이나 다름이 없지.’
두 사람은 길이 굽어지는 곳에 이르자 눈짓으로 신호를 교환했다.
– 지금일세.
명운이 전음을 보내자 두 사람은 동시에 바위 위로 올라섰다.
“지금부터는 길로 가지 않을 걸세.”
“알고 있습니다.”
단파현에서 청성산까지는 대략 백여 리.
두 사람은 길이 아닌 산을 타고 이동할 생각이었다.
서진이 앞서 걸으며 물었다.
“경공을 전개할까요?”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필요 없네. 우리는 추격전을 벌이는 것이 아닐세.”
그는 괜한 일로 힘을 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서둘러 일을 처리하면 일과 경은이 돌아갈 시간이 없게 된다.’
두 사람은 길에서 벗어나 산을 타기 시작했다.
“서진,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어떤가?”
서진이 쓴 표정을 지었다.
“다 그대로인데, 사람만 바뀌었더군요.”
“아는 사람은 보지 못했나?”
“보지 못했습니다.”
서진이 청성산을 떠난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소년에 불과했던 사형제들도 다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숲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서진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대주님, 역용을 하면 길로 이동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는 이렇게 산을 타며 이동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서진, 역용은 티가 난다네.”
“신교의 역용술은 무림맹 이상이 아니었습니까?”
역용술은 화장이나 가면으로 얼굴을 감추는 기술을 말했다.
명운이 대답했다.
“역용술로 얼굴은 숨길 수 있지만, 발걸음이나 손동작은 숨길 수가 없다네.”
무공을 익힌 자의 몸놀림은 마치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깜빡이는 것과 같아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개방의 거지들이라면, 무공을 익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고수가 작정을 하고 무공을 감추고자 하면, 한두 시진 정도는 감출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내내 그것을 감추는 것은 무리였다.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서진은 명운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했다.
“대주님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도 무공을 익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역용을 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를 말해 주겠네.”
“무엇입니까?”
“난 인피면구가 싫다네.”
가장 뛰어난 인피면구는 사람의 얼굴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다시 말해 최상급 인피면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을 죽여야만 했다.
서진이 목소리를 낮췄다.
“대주님, 대주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 화를 내실지도 모릅니다.”
명운이 그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화를 낼지도 모르는 말이라면 하지 말게.”
“아뇨. 그래도 하고 싶습니다.”
명운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말일세. 의외로 속이 비비 꼬인 친구군.”
서진은 그의 말에 화를 내지 않았다.
“신강에서부터 쭉 생각했습니다. 대주님은 말입니다. 천마신교 사람 같지가 않습니다.”
명운은 그의 말에 피식하고 웃었다.
“훗, 그럼 내가 어느 문파 사람 같나?”
서진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무당은 지나치니, 종남파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천원대 대주, 아니 신교의 칠공자에게 종남제자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대주님께서는 여러모로 신교 사람들과 다릅니다.”
서진은 걸으면서 생각했다.
‘구파일방에서 시작했더라도 일가를 이뤘을 분이다.’
그는 명운을 다른 어떤 이보다도 높이 평가했다.
* * *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자 산에 깊은 어둠이 내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걷기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명운과 서진은 어둠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대로 청성까지 갑니까?”
명운이 대답했다.
“소금현(小金縣)에서 하루 쉴 걸세.”
“현성에 들어가는 겁니까?”
“그럴 리가?”
“하면 노숙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지.”
서진은 걸음을 옮기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계속 걷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서진이 입을 열었다.
“대주님,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요?”
“나보다는 자네가 이곳을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이곳은 서진의 고향, 명운의 질문은 합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산속은 저도 처음입니다.”
“서진, 설마 여기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니겠지?”
서진이 그에게 되물었다.
“대주님, 길이 아닌 곳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겁니까?”
명운은 우문현답이라 생각했다.
“그렇군. 우리가 걷고 있는 이곳은 길이 아니지. 무의미한 질문을 하고 말았군.”
무림인들은 밤에는 하늘의 별자리, 낮에는 태양의 위치를 보고 방향을 잡았다.
서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해가 떨어진 방향과 밤하늘에 북두칠성을 보고 나아갈 방향을 정했다.
“대주님, 대주님께선 무공을 숨기고자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명운은 자신의 무공을 숨기기 위해 만족 정벌 때, 연기를 펼친 바 있었다.
“예전에는 그랬지.”
“그 말씀은…… 이제 사정이 바뀌었다는 겁니까?”
“후계자 경쟁이 끝날 때까지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대주님의 무공을 천하에 알릴 때가 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왜? 이번에도 자네의 공으로 하고 싶나?”
서진은 명운 덕분에 만족 족장을 사로잡는 대공을 세운 바 있었다.
“아닙니다.”
“자네가 원한다면 이번에도 그렇게 해 줄 수 있네.”
한 번 정도는 공을 더 양보할 수 있다는 말.
서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대주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면, 위에서 절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자네를 크게 승진시켜 준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위에서 제 무공을 의심할 것입니다.”
명운이 낮게 웃었다.
“후후후, 그건 그렇지. 청성파에서 쫓겨난 제자가 청성 장문인의 목을 벤다.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지.”
서진이 목소리를 굳혔다.
“대주님, 쫓겨난 게 아니라 도망친 겁니다.”
두 사람은 현성의 불빛이 보일 때까지 산을 타고 이동했다.
이윽고 서진이 손가락으로 불빛이 나오는 곳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곳이 소금현입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럼 이쯤에서 쉬면, 되겠군.”
서진은 미간을 좁혔다.
“또 나무 아래입니까?”
“나무 위에서 자도 상관없네.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서진은 할 수 없다는 듯 아름드리나무를 찾았다.
“여기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불침번은 교대로 서도록 하지.”
“대주님부터 쉬시죠.”
명운이 나무 아래 발을 뻗으며 말했다.
“사양하지 않겠네.”
그는 쉴 때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음 날.
두 사람은 벽곡단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명운은 벽곡단을 입에 털어 넣고는 미간을 좁혔다.
“이 지겨운 것을 또 먹게 되는군.”
“대주님은 벽곡단을 아주 싫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폐관수련을 할 때 지겹게 먹었거든.”
명운은 평소에도 즐겁게 먹을 수 있는 벽곡단 제조를 초예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서숙에 도착하면 꼭 잊고 만단 말이지.’
그는 혀를 차며 송이가 들어 있던 바구니를 멨다.
바구니에는 지팡이로 위장된 검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이를 버릴 수가 없었다.
“오늘은 청성산에 도착할 겁니다.”
“도착해도 며칠은 움직이지 않을 걸세.”
서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바로 손을 쓰지 않는 겁니까?”
명운이 대답했다.
“이번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필요하네.”
그는 기회가 딱 한 번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한 번을 놓치면 모든 것이 곤란해질 것이다.’
오늘도 선두에 선 것은 서진이었다. 그는 도중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앞을 막는 것을 쳐 냈다.
“대주님, 그 개자식을 보면 바로 튀어 나갈지도 모릅니다.”
“사매의 원수 말인가?”
서진이 거칠게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답했다.
“그 녀석만은 제 손으로 죽이고 싶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지.”
두 사람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만 움직였다.
점심을 먹을 때쯤에는 대읍에, 해가 질 때쯤에는 청성산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저 산이 바로 청성입니다.”
청성산은 웅장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산이었다.
“절경이군.”
명운이 주목한 것은 산 아래 펼쳐진 월성호(月城湖)였다.
“호수에서 위로 이어지는 길이 있나?”
다른 곳은 몰라도 청성산만큼은 눈을 감고도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서진이 대답했다.
“호수 쪽 길로 올라가면 자운각(慈雲閣)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더 위로 나아가면 상청궁(上淸宮)입니다.”
상청궁에는 청성파 장문과 일대제자들의 숙소가 있었다.
명운은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자네는 여기 남게.”
서진이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주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여기 남다니요?”
“흥분하지 말게. 오늘은 그냥 둘러보는 것뿐이니까.”
“저도 가겠습니다.”
명운은 오른손을 들었다.
“안 되네.”
“대주님, 왜 그러십니까?”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나? 자네가 과거의 인연을 보면 참지 못할 수도 있네.”
서진은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오늘은 대주님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명운이 그를 다독이듯 말했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
“죄송합니다. 속하가 의욕이 앞서서 일을 그르칠 뻔했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닐세. 자네의 복수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네.”
그는 서진을 남겨 둔 채 혼자 정탐에 나섰다.
스슥.
앞으로 내딛는 발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언제 어디에서 청성제자를 만날지 모른다.’
그는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움직였다.
월성호에 이르자 근처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것이 보였다.
‘이 시간에도 고기를 잡는 건가?’
그는 어부들과 최대한 거리를 두며 청성산으로 향했다.
* * *
“어떻게 되셨습니까?”
명운이 돌아온 것은 아침이 다 되어서였다.
“운이 좋았네.”
“운이 좋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명운이 주변을 훑어보며 대답했다.
“자허도장이 무림맹 총단에 갔다가 며칠 뒤에 돌아오는 모양이야.”
자허도장이 청성파를 비운다는 것은 두 사람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큰일 날 뻔했군요.”
“내가 그러지 않았나? 계획이란 아무리 철저하게 짜도 어긋나는 법이라고.”
명각이 절강성에서 일으킨 혈겁은 예상 범위 밖의 일이었다.
그 덕분에 구파일방 장문인들이 소집되었고, 자허도장 또한 무림맹 총단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며칠만 더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 관왕묘나 사당에서 기다리면 될 듯하네.”
그는 비루한 옷과 부스스한 머리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서진이 말했다.
“북산에 가면 몸을 숨길 곳이 많을 겁니다.”
“북산인가?”
“청성산에는 북산과 남산이 있는데 도관(道館)이 있는 곳이 남산이고, 구도자를 위한 동굴과 암자가 있는 곳이 북산입니다.”
서진의 말에 따르면 청성제자들이 머무르는 곳은 남산이었고, 장도릉이나 범장생 같은 선인들이 수련했던 곳이 바로 북산이었다.
“그러면 북산으로 가면 되겠군.”
명운과 서진.
두 사람은 밤을 틈타 북산으로 움직였다.
“청성파는 경계를 세우지 않는 모양이군.”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궁과 관에는 야경을 도는 이가 있으나 산문이나 산에는 사람을 세우지 않습니다.”
이는 천마신교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그것도 그렇고, 청성산까지 와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명운이 입술 끝을 올렸다.
“지금까지 우리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군.”
“제 기억에 따르면 최근 백 년 안에는 없었습니다.”
“백 년인가?”
“사천성에서 문제가 일어난 경우는 많지만, 청성산을 직접 공격해 온 적은 없었습니다.”
명운은 속으로 혀를 차며 생각했다.
‘쯧쯧. 넷째 형이 용기를 좀 냈으면, 백 년간의 금기를 깰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물론 사공자 명준이 청성파를 정면에서 공격했다면, 그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