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청성제일검 (3)
서역에서 가져온 물건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이번 상행은 정말 대성공입니다!”
활짝 웃는 이는 이조장 제갈민중이었다.
“내가 다 잘될 거라고 했잖아요.”
환한 미소의 주인공은 상단주 일.
그리고 그 옆에서 돈을 세고 있는 이는 총관 경은이었다.
이들은 모습은 개방제자가 아닌 성도 상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어디서 온 것들인지 모르겠군.”
“징글징글하단 말이지. 서역에서 이곳까지 마차와 수레를 끌고 올 줄이야.”
“그러게 말이야. 여기서 십이 년을 있었지만, 저런 자들은 처음이군.”
간혹 차마고도에서 성도로 송이나 각종 광물을 팔러 오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서역에서 직접 성도까지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서역 상인들이 늘어나면 장사하기 힘들어질 겁니다.”
“자네 말대로 서역 상인들이 늘어난다면 그렇겠지.”
배가 나온 상인의 한마디에 홀쭉한 상인이 눈을 깜빡였다.
“그 말씀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서역 상인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한다는 말이던가?
배가 나온 상인이 제갈민중과 표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보게, 저들이 대단한 이득을 가져가는 것 같지만, 실은 아니라네.”
홀쭉한 상인이 말끝을 올렸다.
“저렇게 많은 이득을 봤는데, 이득을 보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상단주 주변에 있는 표사의 수를 세어 보게. 그리고 저들에게 줄 돈을 계산해 보면 답이 나올 걸세.”
상인들은 표사와 호위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서역에서부터 저들을 고용했다고 하면…….”
배가 나온 상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 얻은 이익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이 날아갈 걸세.”
“하면 표사들만 대박이 난 것이군요.”
배가 나온 상인이 제갈민중을 지목하며 말했다.
“그래서 저 친구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일세.”
제갈민중은 일행 중 가장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가져간다고 하더니, 딱 그 꼴이군요.”
“서역 상인들이 이곳까지 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지.”
두 상인은 일과 제갈민중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같은 시각.
명운은 정탐을 마치고는 대나무가 그려진 동굴로 돌아왔다.
이 동굴은 죽림선인이라는 도인이 도를 닦았던 곳이라고 했다.
“그가 돌아왔습니까?”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왔네.”
청성파 장문인 자허도장의 귀환.
서진은 검을 잡았다.
“드디어 때가 되었군요.”
명운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사흘 뒤에 움직이지.”
순간 서진이 미간을 좁혔다.
“여기서 사흘을 더 기다린다는 말씀입니까?”
“일과 경은이 돌아갈 시간이 필요하니까.”
명운은 최소한 그들이 청성파 세력권을 벗어날 때까지 만이라도 시간을 끌고자 했다.
“대주님께서는 부하들을 아끼시는군요.”
“부하를 아끼지 않는 장수는 성공할 수 없네.”
“모든 우두머리가 부하를 아끼는 것은 아닙니다.”
명운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
두 사람은 차가운 동굴에서 며칠째 머무르고 있었다.
“서진, 편지는 준비되었나?”
서진이 두 번 접힌 편지를 들었다.
“천원대에서 써 왔습니다.”
“그래도 되는가?”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었다.
“청성제자라면 모두 아는 곳을 적었으니, 괜찮을 것입니다.”
“시간은?”
“내일이라고 적었으니, 언제 보내도 상관없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끝을 올렸다.
“증거도 준비했나?”
서진이 품속에서 피 묻은 천 조각을 꺼냈다.
명운은 그것을 보고는 재차 물었다.
“그것이 증거가 될 수 있나?”
“죄를 지은 자의 마음 정도는 흔들 수 있을 것입니다.”
“흠…… 상대가 움직이지 않으면 곤란하네.”
서진은 자신이 있었다.
“이 조각은 여인의 치맛자락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매의 치맛자락으로 위조를 한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명운이 벽곡단을 꺼내며 물었다.
“후회하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청성산을 떠난 것을 말일세.”
서진이 대답했다.
“그때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형제에게 사실을 밝힐 기회는 없었나?”
“없었습니다. 그때는 목숨을 구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명운의 질문이 이어졌다.
“목숨을 구한 뒤,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지 않나?”
서진이 두 손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라고 물어도 되겠나?”
서진의 목소리에 짙은 감정이 실렸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으니까요.”
“배신?”
“장문 사숙을 믿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아들이 죄인이라고 해도 합당한 벌을 내리리라 생각했습니다.”
명운은 낮게 신음했다.
“으음, 하지만 그는 아들에게 벌을 내리는 대신 자네를 공격했단 말이군.”
“어리석은 믿음이었습니다. 장문인의 아들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다른 생각을 해야 했는데 말입니다.”
명운은 살짝 말머리를 돌렸다.
“이번 일이 끝나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서진이 두 눈을 감으며 답했다.
“대주님, 아니 공자님께 충성을 다할 생각입니다.”
“남은 인생은 그것으로 족한가?”
“남은 인생을 다 바친다고 해도 공자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명운이 아니었다면 복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자네의 행복이나 기쁨은?”
“사매가 죽은 그날, 행복이나 기쁨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명운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에게 사매가 사랑하던 사람이었느냐고, 묻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일 테니까.’
그는 벽곡단 하나를 입에 넣고는 진기를 가다듬었다.
사흘 뒤.
명운은 편지와 피 묻은 천 조각을 가지고 청성산으로 떠났다.
그는 청성제자들의 눈을 피해 장문인이 머물고 있는 상청궁으로 향했다.
‘구파일방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만큼 낡은 전각이 많군.’
그는 조심스럽게 낡은 전각 사이를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뒤, 장문인의 거처에 스며들었다.
‘인기척이 없다.’
명운은 장문인의 책상에 편지와 피 묻은 조각을 내려놓았다.
‘이쯤이면 되겠지.’
그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인기척이 느껴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명운은 재빨리 지붕 위로 몸을 숨겼다.
“그래서 장문께서는 어떻게 하시기로 하셨단 말인가?”
“비검수을 보내기로 하셨네.”
“비검수를?”
“그렇다네.”
청성비검수(靑城秘劍秀).
그들은 청성검법의 심득(心得)을 깨달은 자들로 청성파를 대표하는 무력 집단이었다.
이들은 간혹 화산파의 매화검수와 비교되었으나 강호에서 명성은 전자에 미치지 못했다.
“절강에 비검수를 보낸다면 청성은 어떻게 되는 건가?”
“장문께서 계시지 않나.”
“흠, 그래도 사천에서 일이 벌어진다면 곤란할 텐데 말이야.”
“그때는 아미파나 당문의 협조를 얻는 수밖에.”
일대제자들은 절강성에 보낼 토벌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흠, 편지를 회수할까?’
청성비검수가 떠난 다음 일을 벌인다면, 청성파는 그들을 추격하는 것이 힘들 터였다.
끼익.
누군가 문을 열고 장문인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흠…… 회수는 늦은 것 같군.’
명운은 편지 회수를 깨끗이 포기했다.
* * *
서진이 결전 장소로 지목한 곳은 북산 아래에 위치한 대묘(大墓)였다.
“사방이 트여 있어서 몸을 숨길 곳이 여기밖에 없군.”
명운이 여기라 말한 곳은 망자(亡子)를 위한 작은 사당이었다.
“매복할 곳이 없으니, 자허도장은 의심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대묘를 결전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사방이 열려 있는 만큼 포위를 당할 위험이 적다.’
매복과 포위.
한마디로 대묘는 공격과 수비, 양쪽 모두 이점이 없는 곳이었다.
“떨리나?”
“떨리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겠죠.”
명운은 사당 뒤에 몸을 숨겼고, 서진은 대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자허도장은 내가 상대할 테니, 무리하지 말게.”
“번준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번준은 자허도장의 아들로 사매를 겁간하고 살해한 패륜아였다.
“자허도장을 베고, 바로 청성산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번준이 머무는 방과 서재를 확실히 알아 두었다.
‘자허도장이면 모를까? 번준 정도는 소리 없이 처리할 수 있다.’
한마디 덧붙이면, 자허도장의 출가하기 전 이름은 번흠으로 그는 양산번가 출신이었다.
서진이 말했다.
“공자님, 세상에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 것 같습니다.”
“자네답지 않은 말이군.”
“하늘이 절 공자님과 만나게 했으니, 분명 있는 것입니다.”
서진은 오늘의 복수를 의심하지 않았다.
‘자허도장은 이곳에서 쓰러질 것이다.’
잠시 뒤, 앞쪽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그가 오는 것 같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음을 보냈다.
– 이곳에서 기다리겠네.
서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정면을 주시했다.
다가오고 있는 이의 모습이 점점 커졌다. 이윽고 그의 얼굴에 달빛이 비췄다.
“넌!”
놀란 서진을 향해 상대가 냉소했다.
“아버님께서 나오시리라 생각했나?”
약속 장소에 나온 것은 자허도장이 아닌 그의 아들 번준이었다.
“번준!”
서진은 이를 악물었다.
번준은 그의 분노한 얼굴을 보고는 냉소했다.
“서역으로 도망친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사매의 한을 풀지 못했는데, 어찌 달아날 수 있단 말이냐?”
번준이 혀를 찼다.
“쯧쯧, 그 멍청한 계집 말인가?”
서진의 눈썹이 곤두섰다.
“사매를 모욕하지 마라!”
번준은 서진을 놀리듯 말했다.
“실로 멍청한 계집이 아닌가? 순순히 옷을 벗고 다리를 벌렸다면, 차기 장문의 아내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을 텐데 말이야.”
서진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놈!”
그는 검을 뽑았다.
스릉.
번준은 서진이 검을 뽑았음에도 긴장하지 않았다.
“서진, 네가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서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벨 것이다.”
“그래?”
서진은 검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번준 또한 검을 뽑았다.
스르릉.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십 년 전에도 지금도 넌 내 상대가 되지 못해.”
“갈(喝)!”
서진은 거친 고함과 함께 검격을 뿌렸다.
슈슉!
번준은 여유 있게 그의 검을 피했다.
“언제나 똑같군. 변초가 없는 검 말이야.”
상대를 놀리는 것 같았지만, 그의 평가는 제법 정확했다.
‘좋게 말하면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변화가 적어 알기 쉬운 검이라 할 수 있다.’
명운은 아직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슉! 슈슉!
공격하는 것은 서진이고, 물러서는 것은 번준이었다.
“날 베겠다는 것은 말뿐이었나?”
서진은 두 손으로 검을 잡았다.
“죽어라!”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두른 일검.
이 일검은 동작이 너무 컸기 때문에 상대가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번준은 서진의 검세에서 벗어나며 말끝을 올렸다.
“그래서 사매의 일기는 어디 있지?”
그가 대묘에 나온 것은 범행을 담은 사매의 일기를 가지고 있다는 편지를 썼기 때문이었다.
“네 놈에게 알려 줄 것 같으냐?”
번준은 혀를 찼다.
“그래? 그럼 죽인 다음 찾아보는 수밖에 없겠군.”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공세로 전환했다.
슈슈슈슉!
날카로운 찌르기가 잇달아 서진의 가슴을 노렸다. 하나 서진은 상대의 공격에 위축되지 않고 검을 뻗었다.
번준은 그의 공격에 크게 놀랐다.
‘검을 막지 않는다고? 함께 죽자는 말이냐!’
동귀어진(同歸於盡).
이렇게 된다면 손해를 보는 것은 그였다.
“큭.”
번준은 검을 물리면서 재빨리 뒤로 물러났고, 서진의 검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삭!
그는 검을 피한 뒤, 두 걸음을 더 물러났다.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면, 놈과 양패구상(兩敗俱傷)이 되었을 것이다.’
번준은 서진을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친 것이냐!”
서진에게 자신의 생사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번준을 베는 것만 생각했다.
“네 놈을 죽이기 전까지는 미칠 수가 없다!”
번준이 혀를 차며 말했다.
“넌 그 계집이 널 좋아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착각이다.”
서진은 검을 뻗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사매가 대사형을 사모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는 사매를 좋아했지만, 사매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번준은 사매의 복수를 하고자 하는 서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놈을 좋아하는 계집을 위해 목숨을 건단 말이냐?”
휙!
간발의 차이로 서진의 검이 그의 소매를 스치고 지나갔다.
“네놈이 무엇을 안단 말이냐!”
번준은 목소리를 높였다.
“모르는 것은 네 놈이다! 그 계집은 내가 죽인 것이 아니야! 단지 대사형의 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자결한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밝히면 서진의 기세가 꺾이리라 생각했다.
‘그 계집은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서진의 검은 조금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네놈이 사매를 더럽혔기 때문에 사매는 자결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타앙!
두 사람의 검이 처음으로 부딪혔다.
“큭.”
번준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가 지금까지 서진과 검을 마주치지 않았던 것은 내공에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놈이!”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서진의 검을 밀어냈지만, 그 덕분에 검초가 흔들리고 말았다.
팍!
짧은 마찰음과 함께 핏방울이 떨어졌다.
투. 투툭.
서진은 상대가 지혈할 틈도 없이 밀어붙였다.
“죽인다!”
번준은 그의 사나운 공격에 당황했다.
“그, 그만!”
명운은 번준의 낭패한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승부는 서진이 이겼군.’
검격의 날카로움이나 빠르기는 번준이 우세했다. 하지만 그의 검에는 한 가지가 결여되어 있었다.
‘실전 경험.’
번준의 검법은 사형제 간의 비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무를 펼칠 때는 악독한 살수나 팔을 내어 주고, 상대의 목을 베는 것 같은 수는 절대 펼치지 않는다. 따라서 사문의 비무는 공수가 번갈아 가며 바뀌는 형태가 된다.’
목숨을 건 싸움은 공수를 번갈아 주고받는 비무와 달랐다.
어느 쪽이든 결정적인 순간을 잡으면,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때까지 검을 물리지 않았다.
파악!
긴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비명을 내지른 쪽은 번준이었다. 그는 양패구상을 각오하고 달려든 서진의 검을 막기 위해 왼팔을 뻗었고, 서진의 검은 그대로 그의 왼팔을 잘라 버렸다.
“내, 내 팔이!”
오른손은 아직 검을 잡고 있었지만, 계속 싸우는 것은 누가 보아도 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