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청성제일검 (4)
서진이 검을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세상에 가서 사매에게 사죄해라!”
그는 원수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고자 했다. 바로 그 순간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려왔다.
파악!
이윽고 반으로 잘려 나간 서진의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럴 수가!”
서진은 크게 놀라 뒤로 물러났다.
“누구냐?”
누군가 멀리서 검기를 날려 서진의 검을 반으로 가른 것이었다.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내가 펼친 기막(氣膜) 밖에서 날아온 검기다.’
그가 펼쳐 놓은 기의 범위는 대략 십여 장.
‘검기로 실검을 자르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한데 십여 장 밖에서 검기를 날려 검신을 잘랐다. 이것은…… 어쩌면 검기가 아닐 수도 있다.’
명운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검강(劍罡)이었다.
‘검강을 쓸 수 있는 상대라면 퇴각하는 것이 옳다.’
무극의 경지에 오른 고수와 맞붙어서는 승산이 없었다.
“목숨을 구할 기회를 주었건만, 어째서 다시 돌아와 그 목숨을 버리고자 하는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장년의 도사였다.
“장문 사숙!”
번준은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아, 아버지.”
그를 구한 것은 청성파 장문인 자허도장이었다.
서진은 얼굴을 굳혔다.
“사매의 원혼을 갚고자 돌아왔습니다.”
자허도장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내가 마음을 먹었다면, 네가 도망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십여 년 전 서진은 도망친 것이 아니라 그가 놓아준 것이었다.
서진은 반토막 난 검을 세웠다.
“이제 와 놓아준 것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까?”
자허도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그때 끝을 보았어야 했다.”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양심이 서진의 목을 베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하나 그 양심 덕분에 아들의 팔이 잘렸구나.’
서진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장문 사숙! 그것이 정녕 청성의 정의입니까!”
자허도장이 서진에게 물었다.
“넌 청성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서진이 하늘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늘처럼 맑은 정의입니다!”
“그럼, 그 맑은 정의를 위해 죽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서진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자허도장을 노려보았다.
“청성의 정의가 아니라 당신의 아들을 위해 죽으라는 말이겠죠!”
자허도장의 음성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번준이 내 아들이 아니라도 나는 이 사건을 묻었을 것이다.”
“뭐라 하셨습니까!”
“청성제자가 사매를 겁간하여 자결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을 어찌 강호에 알릴 수 있겠느냐? 만에 하나 그 사실이 청성 밖으로 흘러 나간다면, 청성제자는 강호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아들이 아니라 청성의 명예를 위해서 사건을 은폐했다.
자허도장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서진은 납득할 수 없었다.
“당신은! 사매의 죽음을 뭐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자허도장은 어느덧 서진의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청성제자라면 청성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것이 목숨이든 순결이든 말이다.”
명운은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청성이라는 이름에 영혼마저 사로잡히고 말았다.’
자허도장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아니,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청성의 완전무결함을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희생시킬 각오가 된 사내였다.
명운은 몸을 일으켰다.
“서진, 비키게! 자네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네.”
서진은 그의 외침에 뒤로 두 걸음을 물러섰다.
“공자님.”
자허도장은 작은 사당 뒤에서 나타난 명운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너는 누구냐?”
명운이 대답했다.
“당신의 미혹(迷惑)을 베어 줄 사람.”
“미혹이라고?”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지금부터 검으로 알려 주겠다.”
명운은 묵검을 뽑았다.
스릉.
자허도장은 명운의 나이가 약관에 불과한 것을 보고는 낮게 웃었다.
“후후후,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구나.”
청성제일검(靑城第一劍).
그가 이 별호를 가지게 된 것은 무려 십팔 년 전이었다.
장장 십팔 년 동안 그는 청성을 대표하는 검호(劍豪)였다.
‘내가 청성제일검에 올랐을 때, 저 아이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명운이 검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일 합에 끝날 수도 있으니, 전력을 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허도장은 그의 말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더니, 네가 딱 그 꼴이구나.”
명운은 청성파 삼대제자보다도 어려 보였다.
청성산에는 그와 같은 또래 제자만 오십 명이 넘었다.
‘많은 이가 청성을 위해 죽었다. 어린아이 하나가 더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겠지.’
자허도장이 서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아이에게 기대어 다시 돌아온 모양이구나.”
서진은 그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장문 사숙,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자허도장은 비웃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단 일 합에 끝내 주마.”
그는 명운과 승부를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이 아이가 어떠한 검법을 쓰는지. 어떠한 내력을 가졌는지.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리라.’
자허도장은 명운을 베어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하고자 했다.
명운은 자허도장의 검에 감겨 있는 기를 확연하게 읽을 수 있었다.
‘상당한 수준의 내력이다.’
서역에서 싸웠던 남궁준도 이 정도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검에서 나오는 것이 검기인지 검강인지가 중요하다.’
그는 자허도장의 무위가 자명단주 사마진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검에 실려 있는 기는 진의 것보다 깊다.’
휙!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푸른빛이 쏟아졌다.
‘온다!’
명운은 묵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전력을 다해 푸른빛을 베었다.
그 순간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쾅!
‘검강은 아니다.’
검강이었다면 뒤로 밀려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검기 또한 아니다.’
검기였다면 이러한 기의 폭발이 일어날 리 없었다.
그는 자허도장이 펼친 푸른 기운이 검강과 검기 그 사이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검에 실려 있는 것은…… 평범한 내력이 아니다.’
지금까지 단 하나의 흠도 없었던 묵검이었다.
하나 조금 전 공격은 그 결이 달랐다.
‘묵검의 검신이 푸른 기운을 받아친 부분만 시퍼런 색으로 변했다.’
자허도장은 명운이 자신의 일격을 받아 내자 눈을 크게 떴다.
“내 검격을 받았다고?”
그의 이 일격을 받아 낸 자는 명운이 처음이었다.
‘믿을 수가 없구나. 약관에 불과한 풋내기가 내 청광검(靑光劍)을 받았단 말인가?’
번준 또한 얼굴을 찌푸렸다.
“아버님의 청광검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이 세상에 존재했단 말인가?”
그는 아버지 자허도장이 천하제일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천하제일인이라 여겼던 자허도장의 일격은 약관에 불과한 젊은이에게 막히고 말았다.
명운이 검을 아래로 내리며 물었다.
“연격이 없다는 것은 일격으로 승리를 자신했기 때문인가?”
자허도장은 검을 휘두른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허, 기괴한 녀석이구나. 감히 본 도장에게 설교를 하고 싶은 것이냐?”
명운은 대답 대신 검을 움직였다.
묵검이 천천히 큰 호를 그렸다.
이 한 수는 사마진을 쓰러뜨렸던 가형검이었다.
‘가형검으로 끝을 내겠다!’
자허도장은 묵검에 시선을 두며 미간을 좁혔다.
‘내가 모르는 검법의 기수식인가?’
그가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진 직후, 명운의 발아래로 살기가 흩어졌다.
‘뭔가 온다!’
흩어지는 살기를 느꼈다는 것은 그의 무위가 사마진보다 위라는 뜻이었다.
‘이것은?’
명운의 발아래로 흩어졌던 살기가 위로 솟아올랐다.
“어림없다!”
자허도장이 검을 들었을 때였다.
정면에 있던 명운이 보이지 않았다.
‘위험하다?’
자허도장은 노련한 검호였다. 모든 감각이 그에게 위기를 알렸다.
일그러진 공기의 흐름이 왼쪽에서 느껴졌다.
‘왼쪽!’
자허도장은 검에 내력을 실었다.
다음 순간 기의 폭발이 그의 몸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콰쾅!
폭음과 함께 자허도장이 삼 장 밖으로 날았다.
“크윽.”
명운의 검격은 막았으나 그 검에 실린 힘은 모두 막지 못한 것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는 무림맹주(武林盟主) 남궁민이나 무당검존(武當劍尊) 현진도장도 이와 같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명운의 공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슉!
강렬한 검기가 자허도장을 향해 날았다.
“합!”
자허도장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검기를 받아쳤다.
쾅!
다시 폭음이 일며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손아귀가 아픈 것을 넘어 기혈이 끓어올랐다.
‘괴, 괴물 같은!’
검과 검이 격돌할 때마다 파열음이 아닌 폭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도대체 저자는 얼마나 내력이 강한 것인가?’
자허도장의 내력은 그의 사부 명인도장을 넘은 지 오래였다.
역대로 따져도 청성파 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하나 그가 상대하고 있는 청년은 기준을 세울 수 없을 정도의 검격을 마구 퍼붓고 있었다.
탁.
그가 간신히 땅에 두 발을 디뎠을 때였다.
수없이 많은 검기가 마치 화살처럼 날아왔다.
‘검기를 만천화우(滿天花雨)의 수법으로 날린다고?’
하늘을 가득 메운 꽃의 비.
지금 그를 향해 내리는 것은 꽃이 아니라 검기였다.
‘이것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자허도장은 부상을 각오한 채 검을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를 향해 날아오던 검기가 뒤틀리면서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듣도 보도 못한 검격.
피할 수 있었다면, 피했을 것이다.
‘막을 수밖에 없다.’
자허도장은 검을 들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기운을 때렸다.
‘사라져라!’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실이 끊어진 연처럼 허공을 날았다.
이번에는 허공에서 어떠한 동작도 취할 수 없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부딪힌 것은 대묘 입구에 세워진 돌사자였다.
그 모습을 본 번준은 크게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자허도장은 일어나지 못했다.
명운은 그의 모든 대혈이 뒤틀리고 파혈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대 검, 아니 청성의 검이 어떠한 것인지 알겠는가?”
자허도장은 듣지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늘게 숨을 내쉬는 것뿐이었다.
‘공력(功力)이 지나쳤나?’
그러나 명운은 곧 고개를 흔들었다.
‘대적을 상대할 때는 전력을 다하는 것이 옳다.’
자허도장의 오공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냥 두어도 숨이 끊어지겠군. 하지만 마무리는 지어야겠지.’
그는 검을 든 채로 자허도장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아버지!”
앞으로 달려 나가는 번준을 서진이 막아섰다.
“네 상대는 나다.”
번준이 검을 휘둘렀다.
“비켜라!”
그러나 그의 검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팔이 하나 없으니 균형이 맞지 않는 모양이군.’
명운은 서진이 부러진 검으로 번준의 옆구리를 베는 것을 보았다.
촤악!
비명과 함께 피가 쏟아졌다.
“아악!”
서진의 공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뒤로 돌아간 뒤 번준의 등에 부러진 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부러진 검날이 가슴을 뚫고 앞으로 나왔다.
“사매의 복수다!”
서진은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밀어 넣은 뒤, 그것을 놓았다.
“…….”
번준은 앞으로 한 걸음 정도를 비틀거리면서 나아간 뒤, 그대로 쓰러졌다.
복수가 끝난 것이었다.
서진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사매가 기뻐할까요?”
명운은 서진의 복수를 확인하고는 검을 들었다. 그러고는 자허도장의 가슴을 향해 뻗었다.
푹!
붉은 핏방울과 함께 청성제일검의 심장이 멈췄다.
그가 묵검을 회수하며 말했다.
“죽은 자가 어떠한 마음인지는 알 수가 없네. 다만, 살아남은 자의 응어리가 풀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네.”
서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날 이후, 항상 꿈꾸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왜 기쁘지 않을까요? 왜 웃을 수 없는 것일까요?”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서진이 오늘 벤 것은 원수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몸을 담았던 청성을 벤 것이었다.
명운은 조용히 몸을 돌렸다.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네.”
자허도장을 벤 이상, 청성파의 추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진이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일다향이면 됩니다.”
명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의 시간은 기다려 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