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종가의 소협 (3)
“일다경이라니, 공자님의 경공은 정말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소녀는 명운의 말을 그대로 믿는 서진을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단 일다경이면 갈 수 있다는 청년. 그리고 그 말에 감탄하고 있는 사내. 이 두 사람의 대화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명운과 서진.
두 사람은 그녀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했다.
“중경성에 입성하면, 수뢰방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걸세.”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명운의 말을 받았다.
“수백 명이 칼을 든 채 성문을 통과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관과 무림은 서로를 간섭하지 않았지만, 장소가 중요한 관성이나 현성이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
“내일 만나지.”
명운은 소녀를 안고 있었지만, 깃털만큼도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내일 중경에서 뵙겠습니다. 한데 어느 객잔에 묵으실 것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명운이 앞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중경에서 가장 큰 객잔을 찾게.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남은 두 사람.
청풍과 청문.
그들은 소녀의 호위무사로 덤 취급을 받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청풍과 청문은 실력이 좋기로 손꼽히는 무사들이었다. 한데…….’
명운과 서진 앞에서는 어린아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두 사람을 무사히 중경까지 데려가겠습니다.”
“부탁하네.”
명운은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 뒤, 경공을 전개했다.
쉬이이익!
바람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풍경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소녀는 명운의 경공이 평범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도는 그녀의 예상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었다.
‘거대한 화살을 타고 날아가면, 이런 느낌일까?’
너무나 빨라 두려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두 사람은 신선이 아닐까?’
신선이라면 하계의 사람들을 그들처럼 대할지도 몰랐다.
소녀가 명운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달리고 있는데 죄송해요. 하지만 한 가지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명운은 속도를 조금 늦추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어떤 것입니까?”
“전 짐짝이 아니에요. 왜 제 이야기는 들어 주시지 않고, 두 분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죠.”
그녀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진 않았지만,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 신선이라고 해도 이렇게 날 다루는 것은 옳지 않다.’
명운은 가볍게 말끝을 올렸다.
“짐짝은 아니지만, 환자가 아닙니까?”
환자.
그는 소녀의 건강을 가장 우선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알기에 반박을 하지 않고, 참기로 했다.
‘종 공자에게 환자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여 봐야. 그의 호의를 반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명운은 그녀의 대답이 없자 재차 물었다.
“궁금한 것은 끝입니까?”
소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뇨. 또 있어요.”
“어떤 것입니까?”
그가 묻자 소녀는 한 번에 여러 질문을 쏟아 냈다.
“왜 제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떠한 일로 이곳에 왔는지? 묻지도 않고 도와주시는 거죠?”
명운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소저는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전에 그 아이가 누구인지 묻습니까?”
그의 물음에 그녀가 묻고자 하는 답이 있었다.
‘날 도와주는 것이 그에게는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구나.’
소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명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입니까?”
“당신을 오해했어요.”
명운은 오해했다는 말에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었다.
“지금은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멀리 점으로 보이던 불빛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곧 도착하겠군.’
일다경 안에 도착하겠다는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가끔은 이렇게 전력으로 달려 보는 것도 괜찮군.’
초원에서는 보통 마군을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경공을 전개할 일이 없었다.
그가 경공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소녀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을 그저 옷만 잘 입은 귀공자라고 생각했어요.”
명운은 담담하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옷이라도 잘 입어서 다행이군요.”
“한데 아니었어요. 종 소협이라고 하셨죠?”
“서화종가의 차남 종조훈이라고 합니다.”
소녀가 말했다.
“종 소협은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종조훈, 후에 날 만나면 크게 한턱을 내야 할 걸세.’
그는 자신 덕분에 종조훈의 협행이 강호에 널리 퍼지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서 겸손을 떠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소저의 칭찬을 그대로 받겠습니다.”
“왜죠?”
“이번 일로 돈이나 보석을 받을 수는 없을 것 같고, 칭찬마저 받지 못한다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소녀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종 소협은 재미있는 분이시기도 하네요.”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명운에게 크게 이끌리고 있었다.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소녀는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눈을 크게 떴다.
“주, 중경성이에요!”
조금 전까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중경성이었다.
‘어느 틈에 여기까지.’
명운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밤이슬을 맞지 않아도 되겠군요.”
그는 단숨에 성벽을 뛰어넘을 참이었다.
* * *
“후우…….”
명운이 소녀를 내려놓은 곳은 삼 층으로 된 객잔 앞이었다.
“여기가 제일 큰 곳인 것 같습니다.”
객잔의 이름은 아주 평범해서 중경객잔(重慶客棧)이라 쓰여 있었다.
소녀는 두 발로 땅을 밟은 뒤, 깊이 허리를 숙였다.
“공자님, 이곳까지 데려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는 진심이었다.
명은은 그녀의 감사 인사에 오른손을 흔들었다.
“이쪽의 선의는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소녀가 허리를 펴며 물었다.
“네?”
“소저, 객잔에 묵을 돈은 있습니까?”
소녀가 짧게 탄성을 터트렸다.
“아, 그것이 청풍과 청문이 돈을 다 가지고 있네요.”
명운은 역시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높은 신분이 분명하다.’
귀족 자제의 경우 수행원이 대신 돈을 썼기 때문에 본인이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었다.
‘형산파 이름을 사칭할 때,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챘지.’
무림문파나 세가 출신이라면, 구파일방의 이름을 빌리는 짓은 하지 않을 터였다.
‘구파일방을 사칭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명운은 청풍과 청문이 형산파를 사칭한 것은 그들이 구파일방으로부터 무관한 귀족의 호위무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제게 돈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명운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고, 공자님.”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점소이가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점소이는 객잔의 점소이들이 보통 그렇듯 활달한 성격이었다.
“방으로 안내를 할까요? 아니면 식사를 하실 것인가요?”
명운이 왼손을 들며 답했다.
“가장 크고 좋은 방을 주게.”
“하나면 되겠습니까?”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면 족하네.”
소녀는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나라면…….”
방이 하나면, 당연히 한방을 쓰게 된다는 말이었다.
명운은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바짝 당긴 뒤,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젊은 남녀가 함께 들어와 각자 방을 잡으면, 점소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가 방을 하나만 빌린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소녀는 명운이 말한 이유를 납득했다.
“공자께서는 제가 신분을 감추고자 하는 것을 알고 계신 것이군요.”
점소이는 명운이 크고 좋은 방을 찾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절 따라오시지요.”
그는 명운을 부잣집 도련님이라 생각했다.
‘허리에 칼을 찼지만, 옷이 깨끗한 것을 보면, 어느 세가의 도련님인 것 같다.’
게다가 옆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미녀가 함께 있었다.
‘인생이 부러운 친구군.’
점소이는 내심 그에게 두둑한 행하(行下/팁)를 기대했다. 그는 이 층으로 올라간 뒤 계단에서 가장 먼 방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이곳입니다.”
방의 문은 하나가 아닌 양 문으로 되어 있었는데, 활짝 열었음에도 안이 다 보이지 않았다.
“정말 큰 방이네요.”
소녀가 방의 크기에 감탄하자 점소이가 두 손을 모았다.
“저희 객잔에서 가장 큰 방입니다!”
명운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괜찮은 것 같군.”
점소이가 두 손을 비비며 물었다.
“목욕물은 어떻게 할까요?”
“이곳에서 가능한가?”
“물론 가능합니다. 이 층에 따로 물을 데우는 곳이 있습니다.”
규모가 큰 객잔답게 여러 시설이 생각 이상이었다.
‘흠, 목욕까지 객실 안에서 할 수 있단 말이군.’
명운은 점소이가 손을 내밀자 은자 한 냥을 올려놓았다.
“목욕 이후에는 식사를 할 것일세. 이것이면 물과 식사 모두 가능하겠지?”
귀족들에게 은자 한 냥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점소이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명운은 소녀를 안으로 인도했다. 그 사이 점소이가 활짝 열린 문을 닫았다.
탁.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그는 정중하게 문을 닫은 뒤, 활짝 웃었다.
‘하! 무려 은자 한 냥이라니, 절반은 남겨 먹을 수 있겠구나!’
점소이는 새로운 손님의 씀씀이가 크다며 콧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대박이다. 대박이야.”
명운은 방 가운데 놓여 있는 탁자와 의자로 향했다.
투욱.
그는 검을 풀어 탁자에 놓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소녀는 명운이 상상할 수 없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거리를 쉬지 않고 뛰었으니, 피곤하기도 하겠지.’
그녀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하고자 했다. 그 순간 명운이 말했다.
“소저, 이쪽은 눈을 좀 붙이겠습니다.”
“네?”
“따뜻한 목욕물은 소저를 위한 것입니다.”
명운은 의자 앉은 채로 눈을 붙일 생각이었다.
“몸을 움직이신 것은 공자님이시잖아요. 왜 제게 목욕물을?”
“이쪽은 괜찮습니다. 땀도 생각보다 나지 않았고 말입니다.”
그는 그녀가 편히 목욕할 수 있도록 창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공자님?”
명운은 눈을 감은 채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은 이상한 분이에요.”
“예?”
소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돕는 경우는 잘 없어요.”
명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얼굴이었다.
“소저가 미인이라서 그랬다고 합시다.”
“내 얼굴도 모른 채 돕고자 나서신 것이잖아요.”
“먼저 나선 것은 내가 아니라 장 호위였습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종 소협께서는 절 돕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명운은 고개를 흔드는 대신 긴 숨을 내쉬었다.
“후…….”
소녀는 그가 크게 피곤해하는 것 같아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종 소협은 조금 이상한 사람이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명운과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 * *
고수는 잠을 잘 때도 귀를 열어 둔다고 했다.
명운 또한 그랬다.
그는 귀를 열진 않았지만, 적의를 느낄 수 있도록 기를 흘려 두고 있었다.
‘음?’
명운이 움찔한 이유는 그의 주변을 흐르던 기의 흐름이 멈췄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는 빠르게 의식을 되찾았다.
‘누군가 있다.’
그의 바로 앞에.
명운은 눈을 살며시 떴다.
이윽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해서 접근했다고 생각했는데, 인기척을 느끼셨나 봐요.”
그의 앞에 서 있는 이는 소녀였다.
“소저?”
명운이 놀란 것은 그녀가 얇은 잠옷만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명운에게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제가 싫으신가요?”
미녀가 싫은 사내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명운은 도덕을 크게 따지지 않는 천마신교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명운은 소녀의 유혹을 뿌리쳤다.
“소저,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남자 쪽에서 여성을 거절할 때 흔히 하는 말.
그는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소녀가 차갑게 돌아서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명운의 거절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제 목숨이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면요? 그렇다면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할 시간도 없지 않을까요?”
명운은 멈칫했다.
이것은 그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마디였다.
“그, 그것이…….”
그는 생각했다.
‘그녀에게 처음 느꼈던 이질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나?’
소녀가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전 앞으로 석 달밖에 살 수 없어요. 그러니까. 죽기 전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겠어요.”
그녀는 명운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부드러운 감촉과 따뜻한 몸.
사내라면 참는 것이 쉽지 않은 유혹이었다.
손을 뻗는다면, 아니 그냥 이대로 있기만 해도 절세미녀를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일함이 있지 않은가?’
명운은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았다.
탁.
짧은 타격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늘어졌다.
“공자님?”
명운은 소녀를 받쳐 들고는 침상으로 향했다.
“조금 전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소녀가 아미를 위로 올렸다.
“이야기라고요?”
명운은 아혈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째서 석 달밖에 남지 않은 것인지 말입니다.”
소녀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공자님은 정말 바보 같은 분이세요.”
“왜 바보 같단 말입니까?”
“어차피 고칠 수 없는 병이에요. 그냥 즐거운 하룻밤을 보내시면 될 것을.”
명운이 그녀를 침상 위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병이 깊은 몸으로 사천에서 중경으로 가는 배를 탔으니, 소저는 사천당문을 다녀오는 길입니까?”
소녀는 그의 물음에 짧게 탄성을 터트렸다.
“아, 그것을 어떻게 아셨나요?”
“일의 전후를 맞춰 보았습니다.”
“대단하시네요. 맞아요. 사천당문에 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사람이 있어서 갔어요.”
명운이 재차 질문을 던졌다.
“하면 그 소문은 거짓이었습니까?”
소녀가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사천당문에서는 제 치료를 거절했죠.”
명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호위무사의 무공으로 볼 때, 소녀의 신분은 무척 높아 보인다.’
그런데도 거절을 했다면 적지 않은 이유가 있을 터였다.
“정말로 사천당문에서 치료를 거절했단 말입니까?”
사천당문은 오대세가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었으며, 무림맹과도 긴밀한 사이였다.
“공자님은 절 의심하고 계시군요.”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복부에 손을 가져가고자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저를 진찰했던 의원은 제 병을 이렇게 설명했어요. 병명은 한사(寒士)이며, 이쪽 아래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퍼져 나가는 병이다. 이 차가운 기운은 그 무엇으로도 멈출 수가 없고, 차가운 기운이 심장에 닿게 되면, 결국 심장이 멈춰 숨을 거두게 될 것이다.”
명운은 그녀의 병을 대략 이해할 수 있었다.
‘주화입마와 비슷한 병이구나.’
물론, 그녀의 경우 병의 원인이 내공 수련이 아닌 타고난 한기(寒氣) 때문이었다.
“사천당문에서는 조금 다른 말을 하더군요. 그대의 병을 고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그것을 위해서는 뛰어난 침술과…….”
그녀가 말을 삼키자 명운이 물었다.
“특별한 약재가 필요한 것입니까?”
“아뇨. 필요한 것은 심후한 내력을 가진 고수라 했어요.”
명운이 재차 말끝을 올렸다.
“고수는 사천당문에 많을 텐데요?”
“그게…… 절 치료하고 나면, 그 고수의 내력이 고갈되어 다시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천당가에서는 당문 사람이 아니면 치료해 줄 수 없다고 했어요.”
명운은 사천당문의 치료법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각 대맥을 침(針)으로 막고, 강대한 양강진기(陽强眞氣)를 한쪽으로 흘려보내 몸의 한기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그는 말없이 소녀의 배로 두 손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