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연전연승 (3)
관흠이 눈썹을 곤두세우며 말했다.
“우리를 속였다고?”
“그래, 조광 그 녀석은 처음부터 우리보다 한 수, 아니 두 수는 위에 있는 녀석이었을 거야.”
팽헌충의 말에 관흠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기랄! 완전히 당했구나!”
그는 불공평한 승부라 생각했다.
“그래도 진 것은 진 거야. 조광이 우리보다 강하다는 것도 사실이고.”
차갑게 말을 던진 이는 창을 비껴든 하후문이었다.
팽헌충은 그의 말에 목소리를 높였다.
“하후문! 네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을 하는군.”
그는 조광의 다음 대전 상대였다.
하후문이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순번만 다를 뿐 나도 녀석과 싸워야 해.”
팽헌충은 그의 말에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건 그렇지.”
관흠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우리끼리 이렇게 싸울 게 아니라. 머리를 모으는 것이 낫지 않아?”
그답지 않게 머리를 굴린 발언이었다.
팽헌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좋은 생각이야. 이쪽은 네 명이나 되니까 머리를 마주하면 좋은 수를 낼 수 있을 거야.”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어떠한 일이든 힘을 모으는 것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하면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관흠의 물음에 팽헌충이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녀석이 우리보다 고수라고 생각한다면,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해. 초반에 밀어붙여서 승부를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는 실력 차이가 발휘되기 전에 속전속결로 승부를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관흠이 고개를 갸웃한 순간 하후문이 다시 한번 차갑게 말했다.
“좋지 않은 생각이야. 승부를 서두른다면 녀석은 그 틈을 파고들 거야.”
팽헌충은 하후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근거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긴…… 관흠을 상대할 때도 받아치는 초식으로 승부를 냈지.”
관흠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맞아. 기다렸다는 듯 검을 흘렸어.”
하후문이 창을 세우며 미간을 좁혔다.
“기다렸다는 듯 검을 흘렸다고?”
관흠이 고개를 두 번 크게 끄덕였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딱 그런 느낌이었어.”
하후문이 혀를 찼다.
“쯧, 모든 것이 계획된 것이라는 건가?”
그의 물음에 지금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종영세가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놀라. 녀석은 이미 우리 초식을 다 알고 있다고. 받아치는 수를 계획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거야.”
관흠이 깜짝 놀라 물었다.
“우리 초식을 다 알고 있다고?”
종영세가 핀잔을 주듯 말했다.
“머리가 있으면 좀 쓰는 게 어때?”
“놈!”
관흠은 벌떡 일어나 그에게 주먹을 뻗으려 했다.
한데 하후문의 창이 그 앞을 막아섰다.
“잠깐!”
관흠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너도 저 기생오라비하고 한패냐?”
하후문이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니야.”
“아니면?”
“녀석의 말이 옳아. 조광은 우리의 초식을 다 알고 있어. 이것은 심각한 문제야.”
팽헌충이 막 생각이 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렇구나! 첫날 우리를 싸우게 한 것은 우리의 초식을 알아내기 위해서였구나!”
종영세가 입술 끝을 올렸다.
“깨닫는 것이 그렇게 굼떠서야 어떻게 녀석을 이기겠어.”
그는 조광의 마지막 대전 상대였다.
‘문제는 녀석이 알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역이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후문이 말했다.
“우리가 보여 주지 않은 초식을 사용하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
팽헌충이 미간을 찌푸렸다.
“난 첫날 모든 무공을 다 펼쳤다고.”
관흠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랬지. 뭐 난 이미 졌으니까 상관이 없긴 하지만.”
그는 말을 한 뒤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후문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생각을 해 봐.”
팽헌충이 낮게 신음을 흘렸을 때였다.
“방법이 하나 있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종영세였다.
관흠이 그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또 잘난 척이군.”
팽헌충과 하후문도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일행 중 조광의 수법을 가장 먼저 알아낸 사내였다.
“어떤 방법인데?”
종영세가 팔짱을 낀 채로 되물었다.
“너희에게 방법을 말해 주면 내게 무슨 이득이 돌아오지?”
팽헌충이 기가 찬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힘을 합치기로 했잖아!”
종영세가 그의 말을 받아쳤다.
“그건 너희들 세 사람 이야기고.”
하후문이 창을 내리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원하는 게 뭔지 말해. 다만, 터무니없다면 내가 널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종영세는 흉흉한 분위기에도 겁을 먹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딱 한 번밖에 통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면 한 달 뒤에 싸우게 될 나는 어떻게 하지?”
팽헌충이 앞으로 나서며 가슴을 쳤다.
“한 달이면 우리가 널 이기게 할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일단은 네 생각을 우리에게 말해 줘.”
종영세가 피식 웃었다.
“너희만 믿고 패를 다 까란 말이냐?”
팽헌충은 그의 물음에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는 카랑카랑한 음색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하늘에 맹세하겠다! 종영세가 가르쳐 준 계책으로 조광을 이길 수 있다면, 이번 생에 반드시 그 빚을 갚을 것이다!”
어떻게 어떠한 방법으로 빚을 갚을 것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종영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르쳐 주지.”
팽헌충은 물론 하후문과 관흠도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조광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초식을 펼치면 그에게 이길 수 있다.”
앞서 모두가 이야기한 적이 있는 내용이었다.
팽헌충은 종영세의 대답에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날 농락하다니!”
그는 종영세에게 철저히 놀림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더 듣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팽헌충이 종영세를 노려보며 외쳤다.
“더 들을 것도 없다!”
그가 검을 뻗으려는 순간 이번에도 하후문의 창이 앞을 막았다.
“그만둬.”
팽헌충이 고개를 돌리며 쏘아붙였다.
“또 저 녀석을 돕는 거냐?”
“저 녀석이 저런 말을 하려고 지금까지 뜸을 들인 것은 아닐 거야. 다 듣고 손을 써도 늦지 않는다.”
종영세가 냉소하며 말했다.
“맞는 말씀.”
하후문은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강할 뿐 종영세의 편은 아니었다.
“종영세, 빈껍데기뿐인 이야기라면 팽헌충의 검에 내 창이 더해질 것이다.”
종영세가 팔짱을 풀었다.
“조광이 알고 있는 것은 너희 각자의 무공이다. 하지만 서로의 무공과 절초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녀석이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초식이 되지 않겠나?”
팽헌충은 종영세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고는 검을 내렸다.
“음…… 각자의 무공을 바꿔 펼치면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하후문은 종영세의 계책에 약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팽헌충에게 남은 날짜는 겨우 닷새야. 그 닷새 안에 우리의 절초를 익힐 수 있다고?”
그는 계획은 좋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했다.
종영세는 자신의 계책을 굽히지 않았다.
“하루에 하나씩, 다섯 초식이면 괜찮지 않을까?”
하후문이 되물었다.
“다섯 초식으로 조광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
종영세가 대답했다.
“조광은 관흠을 제압하는 데 세 초식도 쓰지 않았어. 승부는 초반에 갈릴 게 분명해.”
초반에 승패가 갈릴 것이니, 검법이나 권법의 초식 전부를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군.”
팽헌충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루에 한 초식씩 닷새라. 가능하긴 한 것 같은데 말이야.”
그는 나머지 세 사람을 쓸어보았다.
‘문제는 누구의 무공을 배우느냐 하는 것이다.’
하후문은 창을 쓰기 때문에 무공을 교환할 수 없었고, 종영세도 권법을 사용하니 마찬가지였다.
‘관흠밖에 없는 건가?’
그러나 관흠의 무공은 조광에게 파훼된 바 있었다.
팽헌충이 종영세를 바라보며 물었다.
“관흠에게 검법을 배워야 하는 건가?”
종영세가 어깨를 으쓱했다.
“관흠의 검법은 최근 조광이 파훼법을 익혔을 테니, 다른 검법이 좋겠지.”
“하지만 조광 말고는 내게 검법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
종영세는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나 하후문이 가르쳐 줄 수도 있지.”
“너하고 하후문이 가르쳐 준다고?”
종영세가 하후문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룡검법(蛇龍劍法), 알고 있지?”
하후문이 창을 세우며 대답했다.
“알고는 있지.”
팽헌충이 고개를 갸웃했다.
“검법을 알고 있다고?”
“청룡대 출신이니까.”
천마신교의 각 대에서는 검법을 기본으로 가르쳤다.
그 이유는 원활한 협격과 검진 구성을 위해 검법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종영세 너도?”
종영세가 오른쪽 입술 끝을 올렸다.
“적풍검법(赤風劍法)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있지.”
팽헌충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
‘이길 수 있겠어.’
그는 승리가 손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 * *
지하 연공실로 향하는 길.
명운은 뒤따르는 경은에게 물었다.
“생각을 해 보았느냐?”
경은이 걸음을 걸으며 답했다.
“상대가 어떠한 초식을 쓸 것인지 알고 있다면, 능히 대처하고 이길 수 있다는 가르침이라 생각했습니다.”
명운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부족하구나.”
경은은 명운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이상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내가 만난 무인 중에 공자님처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명운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조광의 대답은 어떻게 다른지 들어 보도록 하자꾸나.”
명운은 오늘도 애늙은이처럼 말하고 있었다.
지하 연공실.
조광은 잠도 자지 않은 채 이곳에서 꼬박 하루를 면벽했다.
먹은 것이라고는 경은이 가져다준 주먹밥 두 개가 전부.
그러나 눈빛만은 어느 때보다 맑았다.
‘이렇게 깊이 생각에 빠진 것이 얼마 만이던가?’
끼익.
연공실 문이 열리자 빛이 안으로 쏟아졌다.
“잘 있었나?”
조광은 몸을 일으켜 인사하려 했으나 사지가 굳어 쉽지 않았다.
명운은 가면을 쓰고 있었으나 작은 체구만큼은 가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을 흔들며 말했다.
“면벽이 끝나지 않았으니, 그 상태에서 대답하게.”
조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명운이 병풍 뒤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내 물음에 대한 답을 듣고 싶군.”
조광이 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위태로울 것이 없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것은 비단 무공이나 초식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성격, 취향, 체격 그 밖의 모든 것을 알아야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은은 조광이 자신보다 깊이 생각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흐흠, 난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나 이것이 정답일까?’
명운이 입을 열었다.
“다음은 없나?”
조광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상대를 아는 것은 승리의 기본이며, 앎을 행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싸움의 시작입니다. 즉, 싸우기 전에 이미 싸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진짜 가르침이 아닐까 합니다.”
명운은 조광의 말을 속으로 읊어 보았다.
‘싸우기 전에 이미 싸우고 있어야 한다. 허…… 범재라 생각했건만 내 예상을 뛰어넘는 답이 나오는군.’
인재는 인재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훌륭하구나. 다음 비무는 네 스스로 이겨 보도록 하라.”
경은은 그래도 다음 비무에 대한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광의 생각은 달랐다.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해 보겠습니다.”
명운은 흡족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주작대주는 그냥 된 것이 아니었구나.’
조광, 그는 원래대로라면 주작대의 대주가 되었을 인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