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화산(華山) (3)
경은이 천원대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목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었다.
“후우…….”
따뜻한 물에 지난 피로가 모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공자님은 잘 빠져나오셨을까?”
그녀는 눈만 빼고는 목욕물에 몸을 푹 담갔다.
‘으음…… 따뜻하다.’
잠시 눈을 감고, 따뜻함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저벅, 저벅.
누군가 그녀의 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지?’
경은은 미간을 좁혔다.
‘설마 날 노리고?’
천원대의 무인 중에는 죄를 저지른 이가 제법 있었다. 그녀는 천원대에서 유일한 젊은 여성이었기에 그녀를 노리고 접근하는 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돌아오자마자 이런 일이라니!’
경은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툭. 툭.
상대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경 소저, 손님이 오셨습니다.”
경은은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며 긴 숨을 내쉬었다.
“후…….”
지나친 걱정이었다.
“누가 오셨나요?”
서숙이나 낙산원 사람이라면 조금 기다리게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자명단주께서 오셨습니다.”
“네?”
“자명단주께서 경 소저를 찾고 계십니다.”
경은은 황급히 물 밖으로 나왔다.
‘자명단주께서 왜 이곳에 오셨단 말인가?’
그녀는 급히 물기를 닦고는 대전으로 향했다.
천원대 대전.
자명단주 사마진은 아소와 몇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이곳에서 경은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은은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경은이 단주님을 뵙니다.”
사마진은 그녀의 머리와 옷깃에 묻어 있는 물기를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물기를 마저 닦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경은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단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사마진은 아소와 수행원을 대전에 남긴 뒤, 경은과 함께 그녀의 방으로 들어섰다.
경은은 급히 수건으로 머리를 닦았다.
“너무 급하게 할 필요 없네.”
“죄송합니다.”
경은과 사마진, 두 사람의 신분 차이는 컸다.
명운이 그녀에게 총관이라는 직함을 주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감히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운의 제자라고 했지?”
경은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합니다.”
명운이 직접 머리에 손을 올리며, 제자로 삼은 것은 그녀가 유일했다.
“그러면 그대는 운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겠군.”
“네?”
“운이 가장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대라고 생각하는데?”
경은이 대답했다.
“강 총관도 있습니다.”
“강 총관도 물론 믿을 수 있지. 하지만 그는 수하이고, 그대는 제자가 아닌가?”
경은은 사마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몰라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단주님께서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사마진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어.”
경은이 눈썹을 위로 올렸다.
“뭔가 잘못되었습니까?”
사마진이 탁자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허도장 격살, 운의 짓이지?”
경은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사마진은 명운의 후견인인 데다가 자명단을 통해 중원의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예, 공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사마진은 그녀의 대답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역시…….”
경은이 명운을 대신해 변명하듯 말했다.
“공자님께서 단주님께 연락하지 않은 것은 이번 일을 은밀하게 처리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마진은 품속에서 부채를 꺼내 흔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큰일을 저지르면서 내게 조금의 언급조차 없다니 말이야.”
그녀는 명운에게 크게 실망한 듯 보였다.
툭.
경은의 머리에 흘러내린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공자님께서는 혼자 생각하시고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알고 있어.”
사마진이 탁 하고 부채를 접으며 말했다.
“지금 운은 어디 있지?”
경은이 대답했다.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모른다?”
“자세한 도주 경로는 이야기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명운은 그녀와 일행이 무림맹의 포로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경로를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사마진은 경은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군. 하면 지금 중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명운의 짓이란 말이군.”
“중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사마진은 자명단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경은에게 이야기했다.
“중경과 석천을 오가는 배 위에서 수뢰방과 서화종가의 공자가 싸움을 벌였다고 하더군.”
정확히는 서화종가의 공자가 아닌 그 공자를 모시는 장필삼, 즉 서진이 벌인 싸움이었다.
“서화종가라면 공자님이 맞으실 것입니다.”
명운은 서화종가 차남으로 신분을 위장하기 전에 사람을 보내 그에게 일을 맡겼다.
– 산서성 태원에 이 편지를 전해 주십시오.
일은 간단했고, 보수는 두둑했다.
서화종가 차남 종조훈은 기쁜 마음으로 길을 떠났고, 명운은 그의 신분을 빌릴 수 있었다.
“수뢰방과 싸움은 점점 커져 장로에 이어 방주까지 나서게 되고, 급기야는 장강수로십팔채 채주까지 움직이게 되었다.”
경은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조용히 빠져나오셔야 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신 것일까?’
그녀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장강수로십팔채까지 움직였다면 일이 정말로 커졌군요.”
“커진 정도가 아니야. 개방의 거지들과 무림맹의 간자들까지 움직이기 시작했지. 그리고 결국 중경에서 장강수로채 채주들과 맞붙었다고 하더군.”
장강수로채 채주들의 무공은 가볍게 볼 수 없었다.
“공자님께서 부상을 입으신 것은 아니겠죠?”
“운이 어떤 아이인데 부상을 입겠어? 채주 두 명을 쓰러뜨려서 서화종가의 무명(武名)을 드높였다고 하더군.”
“곤란한 일이네요.”
사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곤란하지. 일이 이쯤 되면 무림맹 총단도 그냥 있지 않을 거야.”
“적어도 서화종가 차남이 어떤 사람인지는 확인해 보겠죠?”
사마진이 답했다.
“물론이지. 게다가 이번 일에 정성왕부까지 관계가 되어 있다고 하더군.”
“정성왕부요?”
“운이 정성왕부의 군주를 돕고 있다는 소문이야.”
경은이 살짝 주먹을 쥐며 대답했다.
“군주라면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아가씨일까요?”
“열여섯이라고 하더군.”
“네?”
사마진이 부채로 탁자를 때렸다.
탁!
그녀가 살짝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아주 난봉꾼이 다 되었어! 혼인 사절이 서역으로 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을 벌이는지 참.”
경은은 그녀의 기분이 좋지 못한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다 알아보고 오신 것이구나.’
사마진은 소민군주 주가령이 절세가인이라는 보고를 들었을 때 크게 화를 내며 들고 있던 찻잔을 던져 버리기까지 했다.
‘호색한 같으니라고.’
경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공자님께서는 그저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 게 아닐까 합니다.”
“그게 왜 꼭 나이 어린 소녀지?”
사마진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것은…….”
그것은 경은도 쉬이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뭐, 좋아. 그럴 수 있다고 쳐.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니까.”
사마진이 경은을 바라보며 말끝을 올렸다.
“경은이라고 했나?”
“예, 단주님.”
“그대가 운을 데려와야 해.”
“제가 말입니까?”
사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은 이번 일이 얼마나 커졌는지 아직 모르는 것 같아. 그러니 우리가 그를 도와야 해.”
그녀는 경은에게 자명단 단원들과 함께 중원으로 갈 것을 명했다.
경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단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사마진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아니면 부탁할 사람이 없더군.”
그녀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명운을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반드시 사부님을 데려오겠습니다.”
경은은 젖은 머리카락을 말릴 틈도 없이 다시 중원을 향했다.
* * *
명운과 주가령이 안내된 곳은 객청이 아닌 태을전(太乙殿)이었다.
“그래 군주께서는 무슨 일로 화산을 찾아오셨습니까?”
그들을 맞이한 것은 화산파 이대제자 화인도장이었다.
주가령의 병세가 빠르게 악화되었기에 명운이 대신 대답했다.
“군주님의 병이 깊어 화산에서 치료하고자 합니다.”
“화산에서 말입니까?”
“조용한 암자를 하나 빌리고 싶습니다.”
화산에는 수백 년 동안 여러 전각과 암자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중에는 지금 사용하고 있지 않은 것도 많았다.
‘암자를 빌려주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왜 하필 화산이란 말인가?’
그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했다.
“군주께서 화산을 선택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명운은 그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군주께서는 사소한 일로 장강수적들에게 원한을 사고 말았습니다. 화산파라면 수적들이 감히 발을 내딛지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화인도장은 이것이 확실한 답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화산 이전에 종남이 있다.’
그들이 올라온 길을 생각해 보면, 거리상으로는 화산보다 종남산이 훨씬 가까웠다.
‘종남은 화산만 못해도 수적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그가 재차 물었다.
“정녕 그것 때문입니까?”
명운은 역시 화산파라고 생각했다.
‘질문이 날카롭군.’
그가 주가령을 안은 채로 대답했다.
“화산의 지맥이 군주님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지맥이군요.”
“그렇습니다.”
화인도장은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된 것은 아니나 암자를 내어 줄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황실과 척을 지게 되는 것이겠지.’
화산이나 무당 같은 대문파는 황실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 가고 있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십니까?”
명운이 또렷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병세가 좋지 않습니다. 군주님의 병을 치료하는 동안 접근하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호법을 세워 드릴까요?”
“호법까지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화인도장은 조목조목 질문을 던졌다.
“치료는 며칠 정도 걸리는 것입니까?”
명운은 잠시 생각을 했다가 대답했다.
“적어도 사흘은 걸릴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닷새 동안 접근하는 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암자 주변에 호법을 세우는 대신 멀리서 지켜 주겠다는 말이었다.
명운은 주가령을 안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화산파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화인도장은 이야기가 끝난 뒤 삼대제자 한 명을 불렀다.
“화운, 네가 이들을 화영암(華瑛庵)으로 모셔라.”
“예, 스승님.”
화영암은 화산파 본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화운이 명운에게 내부를 소개했다.
“물은 항아리에 담겨 있고, 쌀은 그 옆에 있습니다.”
이곳은 종종 화산제자들이 사용하는 곳이었기에 물과 식량을 따로 가져올 필요가 없었다.
“소채는 차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명운은 화운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이쪽은 벽곡단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화운은 그의 말에 포권을 취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께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시지요.”
그는 화산제자답게 예를 갖춰 인사한 뒤 화영암에서 물러났다.
명운은 화산제자가 물러나자마자 급히 주가령을 살폈다.
“소저 괜찮습니까?”
주가령은 명운의 품에서 나오자 심하게 어깨를 떨었다.
“산 위라서 그런지 더 춥네요.”
명운은 이 정도면 석 달이 아니라 다음 달도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행의 피로가 그녀의 수명을 줄인 것이 분명하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서진에게 명했다.
“장 호위.”
“예, 공자님.”
“바로 치료를 시작할 것이니, 지금부터 호법을 서게.”
서진은 두 손을 모았다.
“존명.”
그의 대답은 호위의 그것이 아니었으나 명운은 상관하지 않았다.
“청 호위도 장 호위와 함께 호법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청문 또한 두 손을 모았다.
“목숨을 다해 군주님을 지키겠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서둘러 암자 밖으로 나갔다.
“소저. 지금부터 그대를 치료할 것입니다.”
주가령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 소협, 부탁해요.”
명운은 그녀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그녀의 상의를 벗겼다.
주가령은 크게 놀랐으나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소협은 내 병을 치료하고자 할 뿐이다.’
그녀는 눈을 감았고, 명운은 심호흡한 뒤에 가부좌를 틀었다.
‘우선 점혈로 육맥을 막아야 한다.’
사천당문에서는 점혈이 아닌 침으로 육맥을 막고자 했다.
‘이쪽은 침을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육맥을 막을 수 있다.’
팍! 팍! 파파팍!
명운은 빠른 손놀림으로 그녀의 혈도를 찍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