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화산(華山) (4)
‘육맥을 막고 난 다음에는 심장이다.’
양기가 천음진기를 녹이는 동안 뜨거운 기운이 심장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심장으로 가는 길 또한 차단해야 했다.
팍! 팍! 팍!
그의 손가락이 춤추듯 움직였다.
“아앗.”
짧은 신음.
명운은 주가령의 신음을 듣고는 고민했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치료해야 할까? 아니면 혈도를 찍어 의식을 잃게 만들어야 할까?’
양쪽 모두 장단이 있었다.
‘의식이 있는 상태면 환자의 상황을 알 수 있어 좋다. 하나 의식이 남아 있다면 치료의 고통을 그녀가 고스란히 받게 된다.’
반대로 혈도를 찍어 의식을 지우면, 고통은 줄일 수 있으나 환자의 상태를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 쪽이 정답일까?’
잠시 망설이던 명운은 결론을 내렸다.
‘고통은 조금 있더라도 의식이 있는 쪽이 낫다.’
그는 살을 베이는 고통이 아닌 이상 의식이 있는 쪽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소저, 너무 심하게 아프면 이야기해 주십시오.”
주가령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명운은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서 호흡을 조절했다.
“후우…….”
암자 주변에 맴돌고 있는 용맥의 기운은 충분했다.
‘낙산원의 한음진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양(陽)의 기운이다.’
화산의 지맥은 양강진기(陽强眞氣)를 넘어 대용맥(大龍脈)이라 부르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문제는 이 기운을 내가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심호흡을 마치고는 두 손을 모았다.
‘우선 용맥의 기운을 끌어 올린다.’
폐관수련에서 그가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대지의 기운을 마치 자신의 내력처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성취를 바탕으로 공후검(恐吼劍), 지인보(地絪步), 천음진(天陰震)과 같은 무공을 만들어 낸 바 있었다.
‘용맥이 올라온다.’
전정혈을 열자 대지의 기운이 상단전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으윽, 무시무시한 힘이다.’
양맥이 뒤틀리면서 몸의 기혈이 끓어올랐다.
‘화산제자들은 이 기운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단 말인가?’
그는 이 기운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끊어야 한다.’
명운은 간신히 전정혈을 닫고는 거대한 양기를 단전으로 내려보냈다.
‘이 양기가 흩어지기 전에 치료해야 한다.’
그는 두 손을 주가령에게 뻗었다.
이윽고 그의 뜨거운 두 손이 주가령에게 닿자, 그녀가 신음을 내뱉었다.
“아…….”
그러나 그녀는 그만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직은 버틸 수 있어.’
명운은 거대한 양기를 천음진기가 머무는 곳으로 밀어 넣었다.
밖에서 들어온 뜨거운 기운이 안에 머물고 있는 차가운 기운과 싸움을 시작했다.
‘저항이 만만치 않다.’
명운은 용맥의 양기에 자신의 내력을 더했다.
그러나 천음진기는 천음진기였다.
‘이럴 수가 있나?’
딱 일 다경.
그 정도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한데 그의 두 손에 머물렀던 강대한 양기가 아침이슬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건가?’
명운은 그녀의 몸에서 손을 뗀 뒤, 심호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렇게 쉽게 치료되면 천음진기가 아니지.’
그는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전정혈을 열었다.
‘될 때까지 반복한다.’
명운은 용맥의 힘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시 주가령의 몸에 밀어 넣었다.
화영암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바위.
서진과 청문은 그 앞에 자리를 잡았다.
“밤낮으로 호법을 서야 하니, 먼저 잠을 자 두게.”
청문이 고개를 돌리며 서진에게 물었다.
“장 호위께 하나 묻고자 합니다.”
“무엇인가?”
“종 소협께서는 어찌 그리 강하신 것입니까?”
명운은 그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난 고수였다.
‘대장군부의 무사들도 그처럼 강하진 않았다.’
서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종종 천재를 만나기 마련일세.”
“종 소협은 천재인 것입니까?”
“천재가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나?”
청문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그렇습니다.”
명운은 어린 나이에 터무니없이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천하제일인이란 그 천재 중에 천운(天運)과 노력이 겹친 이를 뜻한다네.”
이것은 과거 서진의 스승이 그에게 한 말이었다.
“천부적인 재능에 노력과 천운이 더해져야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서진은 자신들은 이룰 수 없는 경지라 생각했다.
‘천운이 따른다고 해도 이쪽은 천재가 아니니까.’
그는 시선을 산길로 돌렸다.
* * *
명증 앞에 무릎을 꿇은 이는 신교우사 공복진이었다. 그는 지난 보위산 공략 실패 이후, 지나칠 정도로 예법을 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교주님, 장 호법이 보내온 전서입니다.”
명증은 손을 뻗어 전서를 받았다.
“흠.”
전서에는 장헌과 아랍마와 나눈 대화가 요약되어 있었다.
“으음…….”
좋다. 나쁘다.
이런 말 대신 그는 연신 신음을 흘렸다.
이는 평소 명증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입니까?”
곁에서 묻는 이는 신교좌사 양대충이었다.
명증이 전서를 접으며 답했다.
“파천궁이 움직이고 있다 하네.”
양대충과 공복진,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파천궁이 움직인다는 말입니까?”
그들 세 사람은 파천궁이 어떠한 세력인지 알고 있었다.
“후후후, 이쪽의 검이 무뎌진 것을 알아챈 모양이야.”
이백 년 전, 파천궁은 천마의 후예를 자처하며 십만대산을 침공했다.
당시 천마신교는 지금보다 융성해 중원 침공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천마신교는 파천궁의 공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부교주를 비롯해 좌사와 우사가 모두 전사했으며, 삼단과 사신대를 합쳐 살아남은 이가 절반도 안 되었다.
‘혈사라 불리는 몇 안 되는 사건이었다.’
양대충이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파천궁이 다시 나타났다면 대혈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공복진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주님, 그들이 세력을 키우기 전에 토벌해야 합니다.”
명증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는 순간, 전령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교주님! 급보입니다.”
전령이 교주의 허락 없이 광명정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전달할 만한 급보라는 뜻이었다.
명증이 미간을 좁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일이냐? 파천궁이 움직였단 말이냐?”
전령이 두 손을 모은 채 대답했다.
“곤륜파를 정벌하기 위한 토벌대가 전멸했습니다.”
명증은 순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멸? 그게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 전멸하였다고 합니다.”
양대충이 전령에게 물었다.
“그것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곤륜파에 그런 힘이 어디 있다고?”
전령이 대답했다.
“자세한 사항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만, 후위대가 곤륜산에 올라가 토벌대의 전멸을 확인했다는 급보가 도착했습니다.”
명증은 즉시 양대충에 물었다.
“토벌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지?”
양대충은 신교의 군무를 총괄했기 때문에 토벌대의 내력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신 양대충이 교주께 아룁니다. 곤륜파 토벌대는 적풍대를 중심으로 복주원가와 대산노가의 무인들이 대거 참여하였습니다.”
“적풍대에 팔가 중 둘이 참여했다고?”
“그러합니다.”
공복진은 빠진 것이 있다는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번 토벌전에서 총지휘한 것은 오공자 명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명증이 전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은 어떻게 되었느냐?”
명정은 지금까지 큰 사고를 일으킨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그, 그것이…….”
전령은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가 전한 소식은 전멸이었다.
이는 지휘관은 물론 정벌에 참가한 모두가 사망했다는 뜻이었다.
명증은 길게 탄식했다.
“이……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양대충과 공복진은 고개를 숙였다.
“지금 즉시 정확한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직접 곤륜으로 가 보겠습니다.”
명증이 오른손을 크게 뻗으며 명을 내렸다.
“대충!”
“예, 교주님.”
“그대는 지금 즉시 삼단과 사신대를 소집하라.”
삼단은 자명단, 혜선단, 적비단이었고, 사대는 백호대, 청룡대, 주작대, 현무대를 말했다.
이들은 천마신교의 주력으로서 이들이 모두 나선다는 것은 교주가 친정에 나서겠다는 뜻이었다.
양대충은 즉시 두 손을 모았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명증은 공복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복진.”
공복진은 그 자리에서 두 손을 모았다.
“교주님, 하명하시지요.”
“그대는 호법들과 함께 곤륜으로 가서 상황을 철저하게 조사하라!”
“존명!”
신교의 좌우사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명증은 생각했다.
‘신교에 파천궁이라는 먹구름이 크게 드리웠다.’
그 먹구름이 얼마나 큰 비를 내릴지는 그도 쉬이 예측할 수 없었다.
* * *
명운이 주가령을 치료한 지도 벌써 사흘째.
‘믿기지 않을 정도의 양기를 퍼부었다. 한데도 천음진기는 요지부동이구나.’
그는 벽곡단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신 채 그녀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심장을 향한 천음진기의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계산대로라면 치료는 이미 끝났어야 했다.
‘이러다가는 병을 치료하기 전에 주 소저가 어떻게 되고 말 거야.’
주가령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사흘 동안 물만 마신 채 누워 있었다.
그녀의 몸에 서린 천음진기는 명운과 사천당문이 생각한 이상이었다.
‘뭐가 절정고수의 내력이냐!’
절정고수가 그녀를 치료했다면, 하루가 되기 전에 내력이 바닥났을 터였다.
“으음…….”
어제부터 주가령은 낮게 신음을 흘릴 뿐이었다.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내 힘으로도 그녀를 구할 수 없는 것인가?’
폐관수련을 마친 뒤, 처음으로 경험하는 좌절감.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명운은 소녀의 몸에 들어선 병마(病魔)에게 굴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해 보는 수밖에.’
그는 주가령의 몸에 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정혈을 열었다.
‘단전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용맥의 힘을 쏟아 낸다.’
명운은 자신의 몸을 용맥의 힘을 통과시키는 통로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실패한다면…… 주화입마 정도로는 끝나지 않겠지.’
모든 혈관이 터지면서 그대로 숨이 끊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치료를 강행했다.
‘시작한다!’
모든 혈을 동시에 열자 거대한 용맥의 힘이 거침없이 그의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크윽…… 무지막지한 힘이다.’
그의 몸 안으로 들어온 용맥의 힘은 두 팔을 통해 그녀에게 쏟아져 들어갔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단전을 거치지 않고 거대한 힘을 두 팔로 보내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신의 혈관이 부풀어 올랐고, 두 팔과 연결된 대맥들은 가마솥처럼 끓어올랐다.
“으윽…….”
그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팔에서 어떠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아.’
이러한 고통은 지금까지 딱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명운은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명각의 천마선에 가슴이 뚫렸을 때인가?’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다면, 두 번도 문제없지 않은가?
‘날 가볍게 보지 마라!’
그의 손에서 쏟아진 엄청난 양기가 주가령의 몸에 자리 잡은 천음진기를 서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대로 끝내 주마.’
명운은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그의 고통이 심해질수록 주가령의 얼굴은 편안해졌다.
‘그녀의 얼굴에 혈기가 돌아오고 있다.’
이는 천음진기가 소멸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조금만 더!’
명운은 극심한 고통에도 그녀의 몸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일각을 더 버텼다.
‘해낸 것인가?’
그녀의 몸에서 더 이상 천음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후후후…….”
낮은 웃음소리.
명운은 그녀의 밝아진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보셨습니까? 제가 해냈습니다.”
이 한마디는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이에게 하는 것이었다.
극심한 피로로 의식이 흐려질 무렵, 그는 그녀의 몸에서 손을 거두었다.
다음 날.
명운은 해가 서쪽으로 떨어질 때쯤 정신을 차렸다.
“공자님, 정신이 드셨습니까?”
명운은 두 눈을 뜨고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처음으로 본 얼굴이 왜 자네인가?”
서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공자님의 운이 안 좋은 겁니다.”
명운이 말끝을 올렸다.
“내 운이 안 좋다고?”
“조금 전까지 계속 주 소저께서 옆에 계셨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일찍 눈을 뜨셨더라면 처음 보는 얼굴이 제 얼굴이 아니었겠죠.”
명운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주 소저가? 그녀는 괜찮은가?”
서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쪽에서 간호하면 안 된다고 말려도 계속 간호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되셨습니다.”
명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군.”
“정말 다행입니다. 인기척이 하나도 없어서 처음에는 두 분 모두 어떻게 되신 줄 알았습니다.”
서진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화산파에서는 무슨 말이 없었나?”
서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약속이 아직 하루 남았다는 뜻이군.”
서진이 물었다.
“공자님,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소채도 없는 이곳에서 말인가?”
“청문이 조금 얻어 온 것이 있습니다.”
명운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먹겠네.”
그는 생각했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벽곡단보다는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