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용두방주 (1)
수백 구의 시신은 곤륜파 조사전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었다.
“이쪽은 곤륜파의 검에 죽은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쪽과 이쪽은 다릅니다.”
공복진은 사대호법 중 한 명인 허위천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검이 아니라 도에 맞은 것 같군.”
“곤륜파는 도를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
반대편에서는 남기남이 시신을 살피고 있었다.
“그쪽은 어떤가?”
남기남과 그의 수하들은 표정이 심각했다.
“이곳에서 도를 쓴 이는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공복진이 물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인가? 자네보다 낫나?”
“저보다 당연히 낫습니다.”
공복진은 눈을 크게 떴다.
“자네보다 낫다고?”
남기남은 사대호법의 필두였다. 그의 무공은 삼단의 단주들과 비슷하거나 더 높았다.
‘정확히 말하면 남기남의 무위는 자명단주 사마진과 같고, 육도검 등명군보다 높다.’
육도검 등명군은 적비단의 단주였다. 그보다 무공이 높다는 것은 남기남의 무공이 천마신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뜻이었다.
“이곳을 보십시오. 동시에 여섯을 베었습니다.”
“동시에?”
“이곳에서 저쪽으로 도기(刀氣)를 뿌린 것이 분명합니다.”
여섯 갈래로 도기를 뿌릴 수 있다면, 그의 무위는 남기남을 확실히 넘었다.
“두 번을 휘두른 것은 아닐까?”
세 갈래의 검기를 두 번 펼쳐 내는 것은 남기남도 가능했다.
공복진의 물음에 남기남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닥의 흔적이 동시에 도기가 뻗어 나갔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으음…… 그 정도의 고수가 곤륜파에 있었다니.”
남기남이 두 손을 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도기를 쓴 것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가 없습니다.”
“흠, 무림맹에서 지원을 온 것은 아닐까?”
명정의 곤륜파 공격은 명천의 보위산 정벌처럼 느리진 않았지만, 기밀 유지에 특별히 신경을 쓴 것 또한 아니었다.
‘그 정도 기간이라면 무림맹의 간자가 충분히 정보를 빼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남기남이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도 처음에는 도왕(刀王)을 생각했습니다.”
하북팽가의 가주이자 천하십대고수 중 한 명인 도왕 팽현각. 그가 이곳에 있었다면 적풍대의 대패배도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절강에서 명각에게 죽었다.
“도왕은 이곳에 있을 수가 없지.”
“절강에서 죽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누구인가? 하북팽가의 다른 고수인가?”
남기남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는 적어도 하북팽가의 고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북팽가의 고수들은 대부분 절강에서 도왕과 함께 전사했다. 남은 이들은 당분간 팽가를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 그들이 온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허위천이 두 사람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우사님, 남쪽에서 약간 다른 시신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남쪽?”
“보시겠습니까?”
“그러지.”
공복진은 허위천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경공을 전개해 조사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했다.
“이곳입니다.”
공복진은 시신들을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이들은 도망치다가 죽었군.”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죽은 자들은 정면의 적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 퇴로를 막고 있는 누군가와 싸우다가 검과 도를 맞았습니다.”
공복진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곤륜파가 조사전으로 토벌대를 유인한 뒤에 퇴로를 막고 옆구리를 쳤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곤륜파 역시 장문인까지 전사했습니다.”
곤륜파 장문인 학현제의 몸에는 여섯 개나 되는 검이 박혀 있었다.
만에 하나 무림맹의 도움으로 곤륜파가 승리를 거두었다면, 장문인의 시신을 이렇게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이번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의 물음에 남기남과 허위천이 침묵했다.
“그것은…….”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알 수 없다’였다. 하지만 교주인 명증에게 이렇게 보고를 할 수는 없었다.
공복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더 흔적을 찾아보도록 하세.”
남기남이 물었다.
“시신들은 어떻게 합니까?”
“결론을 낼 때까지는 시신을 움직일 수 없네.”
“오공자의 시신도 말입니까?”
공복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그는 적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설마 파천궁은 아니겠지?’
파천궁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지금의 천마신교 전력으로는 막아 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피바람이 제대로 불 수도 있겠군.’
그는 장공자 명천과 이공자 명각의 후계자 놀이도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 * *
천마신교 태화전 광명정.
교주 명증을 비롯해 좌우양사, 삼단주, 사대호법, 그리고 사신대주 등 천마신교의 고위 인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결과는?”
명증의 짧은 물음.
공복진은 그 앞에 부복했다.
“오공자를 습격한 이들의 무위는 대단히 높았습니다. 그중 유난히 뛰어난 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의 무위는 제 이상이었습니다.”
명증은 미간을 좁혔다.
“정을 습격한 자들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은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누가 정을 습격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오공자 명정의 원수를 알고자 했다.
공복진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처음에는 무림맹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명단과 협조해 조사한 결과 무림맹에서는 곤륜산에 지원대나 고수를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증은 얼굴을 굳힌 채 그의 보고를 듣고만 있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곤륜파의 저항이었습니다. 그러나 곤륜파가 그 많은 인원을 상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곤륜파는 장문인을 비롯한 일대제자 전부와 대부분의 이대제자가 조사전을 중심으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곤륜파와 무림맹, 이 둘은 아니다.
공복진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누구인가?”
공복진이 대답했다.
“파천궁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파천궁이라는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명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역시 그들인가?”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러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은 파천궁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명증이 재차 물었다.
“청성파의 자허도장을 격살한 것도 그러면 그들의 짓인가?”
공복진이 두 손을 모으며 답했다.
“그것까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때였다면, 사마진은 자허도장 격살이 명운의 공임을 밝혔을 것이다. 하나 파천궁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 많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 사실을 공포한다면 무림맹의 귀에 그 사실이 들어갈 수도 있다.’
육도검 등명군은 공복진의 이야기를 듣다가 오른손을 들었다.
“한데 파천궁이 누구입니까?”
그는 천마신교의 고위 인사 중 한 명이었으나 파천궁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이는 천마신교에서 파천궁이라는 존재를 고의로 누락시켰기 때문이었다.
명증이 시선을 보내자 공복진이 일어나 그 물음에 답했다.
“파천궁이라는 자들은 스스로를 천마의 후예로 칭하며, 본교에 반기를 든 이들이네.”
등명군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런 자들이 있었습니까?”
공복진은 이백 년 전 있었던 파천궁과 싸움을 짧게 줄여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들은 등명군이 미간을 좁혔다.
“그렇게 큰 싸움이 있었는데, 어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공복진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여기에는 이유가 있네.”
육도검 등명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본교의 아픈 역사이기 때문입니까?”
“아닐세.”
“하면 어떤 이유입니까?”
공복진이 답했다.
“그들은 우리와 뿌리가 같다네. 그들과 우리의 싸움은 골육상잔이라 할 수 있어. 많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네.”
그의 한마디에 여러 사람이 입에서 탄성을 터트렸다.
“아니! 그들과 우리가 뿌리가 같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우사, 자세히 말해 주십시오!”
공복진이 가볍게 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흠, 흠. 다들 본교가 성존(聖尊)의 후예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여기서 성존은 천마(天魔)를 뜻했다.
“물론입니다.”
공복진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성존께서는 여러 제자를 두셨습니다.”
천마의 제자들.
천마신교에서는 이들을 존자(尊者)라 불렀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공복진은 이 시점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 하나를 이야기했다.
“성존의 제자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은 본교의 태존자이신 명존(明尊)이 아니었습니다.”
명존은 천마의 첫 번째 제자로서 지금의 명가를 세운 이였다.
엄밀히 말한다면 천마신교를 세운 것은 천마가 아니라 그의 첫 번째 제자인 태존자 명존이었다.
“우사 그게 무슨 말이오? 태존자께서 가장 뛰어난 제자가 아니었다니!”
“불경하오!”
“그 말을 취소하시오!”
공복진이 두 손을 뻗어 모두에게 진정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성존의 가장 뛰어난 제자는 막내인 천수(天秀)였습니다.”
이는 많은 이들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사마진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녀도 천수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흠, 하면 천수라는 막내의 후예들이 파천궁이라는 것인가?’
공복진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는 성존께서 천상에 오르시자 태존자이신 명존을 인정하지 않고, 사형제와 크게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후 대산을 내려가 파천궁을 세웠습니다.”
파천궁의 정체가 밝혀지자 모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그들의 무공과 우리의 무공이 크게 다르지 않겠군요.”
공복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우리와 같습니다.”
“한데 왜 그들을 본교의 역사에서 지웠단 말입니까?”
공복진이 대답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파천궁과 본교의 싸움은 집안싸움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이겼음에도 자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교주께서는 그들이 전멸하였다는 결론을 내려 후대에 일을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육도검 등명군은 얼굴을 굳혔다.
“전멸한 줄 알았던 이들이 전멸하지 않고, 다시 세력을 키워 우리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말이군요.”
“그렇다고 생각하면 될 걸세.”
공복진의 설명이 끝나자 명증이 입을 열었다.
“본좌는 그들의 도전을 피할 생각이 없다. 그대들은 어떠한가?”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목소리로 외쳤다.
“파천궁을 멸할 것입니다!”
명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모두 파천궁과 싸울 준비를 하라!”
“존명!”
이날 교주 명증은 정식으로 파천궁 정벌을 선언했다.
이제 천마신교의 검은 동쪽의 무림맹에서 남쪽의 파천궁으로 그 방향이 바뀌었다.
* * *
산허리를 뚫고 떠오르는 해.
명운은 화산의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서진은 오십 보쯤 떨어진 곳에서 호법을 섰다.
‘공자님께서 정말로 괜찮으신 걸까?’
주가령에 대한 치료는 완벽했다.
그녀는 건강과 함께 웃음을 되찾았으며, 또래 아가씨들이 그렇듯 활기찬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명운은 달랐다.
‘겨우 며칠 치료한 것만으로도 얼굴이 더 할 수 없이 수척해졌다.’
그는 청문으로부터 사천당문이 왜 주가령의 치료를 거절했는지 그 이유를 들었다.
‘청문은 한 사람의 고수가 자신의 모든 내력을 소모해야 그녀를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명운이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내력을 쏟아 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었다.
‘공자님께서 내상을 입지 않으셨다고 해도 원천진기(源泉眞氣)의 소모가 크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손해다.’
서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명운을 주시했다.
‘후…… 그것은 그렇고, 수련하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구파일방 제자다.’
누군가 이곳에 서서 명운을 보았다면, 내공수련에 전념하고 있는 화산제자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님의 정체는 신교 교주의 막내아들. 누가 이를 상상할 수 있을까?’
화산의 용맥이 내뿜고 있는 기운은 상상 이상이었다.
명운은 용맥의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생각했다.
‘이곳에서 싸운다면, 천마신공을 완성한 명각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무공은 대지와 하늘의 기운을 이용하는 것이었기에 장소에 따라 그 위력이 달라졌다.
특히 용맥이 흐르는 곳에서는 배 이상의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욕심 같아서는 이곳에서 몇 년이고 수련하고 싶다.’
그러나 화산에서 천마신교 공자가 수련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꼬리가 밟힐 테니까.’
명운의 수련은 해가 뜨고 나서도 한 시진 이상 계속되었다.
“저기.”
서진에게 다가온 것은 주가령이었다.
“군주님?”
주가령이 그의 옆에 서서 물었다.
“종 소협께서는 아직도 수련 중이신가요?”
“공자님께서는 화산이 마음에 드신 것 같습니다.”
“식사가 다 되었는데…….”
서진이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먼저 드시죠. 전 수련이 끝난 뒤, 공자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주가령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암자로 돌아가기 전 명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
게다가 젊고, 친절하고, 심지어 미남이기까지 했다.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명운은 그것을 모르는지 이전과 같은 태도로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이쪽에서 먼저 티를 내야 하는 걸까?’
그러나 그녀는 이미 한 번 그에게 거절을 당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다가간다고 해도 그때와 같은 대답일지도 몰라.’
주가령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후우…… 공자님께서 먼저 다가와 주셨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아직 명운에게 정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함 군주와 약혼을 한 것은 서화종가의 차남 종조훈이 아닌 천마신교의 칠공자 명운이었다.
즉, 서화종가의 차남 종조훈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정혼자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주가령은 마지막으로 명운을 한 번 더 보고는 암자로 발길을 돌렸다.
한 시진 뒤.
수련을 끝낸 명운이 서진에게 다가왔다.
“오래 기다렸나?”
서진은 그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배가 고프다 못해 가죽이 뼈에 닿을 지경입니다.”
명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과장이 심해.”
“공자님은 화산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입니다.”
명운이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서숙을 이곳으로 옮기고 싶을 정도야.”
“그 정도입니까?”
“사실 그 이상일세.”
화산을 비롯한 오악에는 용맥이 흐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옛 도인과 무인들이 오악에 자리를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화산의 용맥이 화산파를 키웠다고 확신했다.
‘화산이 이 정도이니,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과 무당은 어떠할까?’
기회가 된다면, 그는 소림과 무당 또한 방문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