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용두방주 (2)
“그간 불편함은 없으셨습니까?”
명운 일행과 마주한 사람은 화산파 이대제자 화인도장이었다.
그는 앞서 명운에게 암자를 내어 주고 닷새라는 시간을 약속했었다.
“화산제자들 덕분에 쉬이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화인도장은 주가령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온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을 되찾으셨다니, 축하드립니다.”
그는 그들이 어떠한 치료를 했는지 대략 짐작을 하고 있었다.
‘화산의 신성한 기운을 이용해 내상을 치료했을 것이다.’
물론 명운이 행한 치료는 그가 예상한 것보다 그 규모가 훨씬 컸다.
주가령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화산파의 호의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왕부로 돌아가게 되면, 화산에 공물을 보내겠습니다.”
화인도장은 그녀의 말에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군주님, 화산은 대가를 바라고 군주님을 도운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돕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도가의 가르침은 선을 따르고 있으니, 괘념치 말아 주십시오.”
“알고 있습니다. 하나 도장께서는 이쪽의 성의라 생각해 주십시오.”
주가령은 몇 번이고 화산에 감사 인사를 한 뒤에 도관에서 물러 나왔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네요.”
그녀는 약간의 무공을 배웠기 때문에 스스로 내려갈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소저의 몸이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제가 소저를 아래까지 모셔 드리겠습니다.”
평소라면 젊은 사내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명운은 예외였다.
주가령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공자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이번 한 번만 신세를 지겠습니다.”
명운은 그녀를 안아 들었고, 서진은 그 모습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주 소저의 마음이 공자님께 크게 기울었음에도 공자님께서는 선을 지키고 계시다. 그간 마음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정혼자에 대한 죄책감이 든 것일까?’
어느 쪽이든 불같이 타오르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모든 일이 대산으로 돌아가면 한여름 밤의 꿈이 되어 버리겠지.’
이번 협행을 마지막으로 서화종가의 차남 종조훈은 강호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먼저 가겠네.”
“공자님?”
명운은 서진의 말을 받는 대신 경공을 전개했다.
휘이이이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람이 그의 몸을 타고 뒤로 흘러나갔다.
주가령은 그의 목을 잡고 있었는데, 바위가 마치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종 소협!”
명운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섭습니까?”
“너무 빨라요.”
“그럼 조금 늦추도록 하죠.”
명운은 속도를 늦췄지만, 주가령은 여전히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다.
‘앞을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명운을 향했다.
다소 창백해 보이는 그의 얼굴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왕부에 이르면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그녀는 명운이 왕부까지는 자신을 호위해 주리라 생각했다.
휘이이이익!
바람은 여전히 명운과 그녀의 몸을 타고 뒤로 흘러 나갔다.
“소저의 병이 아직 다 나은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주가령이 눈썹을 위로 올렸다.
“병이 다 나은 것이 아니라고요?”
그녀의 가슴속에 머물러 있던 작은 불안감이 꿈틀했다.
명운은 심각한 생각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녀가 무리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명의에게 한 번 더 진찰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주가령이 살짝 말끝을 올렸다.
“명의인가요?”
명운은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잘 아는 명의가 있습니다. 그라면 소저의 병을 깨끗이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생각한 사람은 바로 초예였다.
‘내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초예의 의술은 명의라는 말을 듣기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초예는 타고난 의원이었다.
‘귀신수 장영의 의술은 정과 사를 합해 최고였으니까.’
귀신수라는 별호와 장영이라는 이름은 초예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주가령은 의원을 소개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는 배시시 웃었다.
“공자님께서 소개해 주시는 분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명운이 자신이 아는 의원에게 한몫 챙길 기회를 주려 한다고 생각했다.
‘가슴은 물론이고 아랫배에서도 차가운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치료는 아마도 다 끝났을 것이다.’
명운이 큰 바위를 성큼 건너뛰며 말했다.
“제가 편지를 보내면 왕부로 왕진을 갈 것입니다.”
주가령이 물었다.
“그는 공자님과 각별한 사이인가요?”
“각별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고, 친분이 조금 있다고 할까요?”
명운의 생각과는 별개로 초예는 그를 주군이 아닌 생명의 은인이자 주인으로 모시고 있었다.
“친분이 있는 사이라. 알겠습니다.”
그녀는 이 산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이렇게 종 소협과 함께 영원히 있고 싶다.’
그러나 화산의 산길은 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끝나 가고 있었다.
두 개의 큰 바위를 잇달아 넘자 조금 평탄한 길이 나타났다.
“공자님?”
“소저, 궁금하신 것이 또 있으십니까?”
“왕부까지 함께 가 주시는 거죠?”
명운의 다음 대답은 그녀의 불안감을 한 번에 날려 버렸다.
“물론입니다.”
주가령은 그의 대답에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명운은 생각했다.
‘북경에서 몽고 초원은 금방이다. 섬서로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쉬울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의 호위와 자신의 퇴로에 대해 나름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주가령은 명운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북경까지 함께 가는 것은 좋지만, 가능하다면 멀리 돌아가고 싶다.’
그녀는 최대한 오래 명운과 함께 있고 싶었다.
쉬익!
명운이 크게 한 번 도약하자 바위 서너 개가 발아래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가령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 하늘을 날아요!”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서진은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주변에 화산제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신을 내고 계시는군.’
조금 전 명운의 도약은 화산의 용맥을 이용한 것이었다.
‘용맥을 쓸 수 있는 것은 화산에 있을 때뿐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날아 본다는 말인가?’
서진의 뒤를 따르던 청문은 명운의 경공술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대단한 경공입니다. 머지않아 강호에 종 소협의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될 것입니다.”
서진은 낮은 음성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저는 오히려 걱정입니다.”
“어떤 것이 걱정이란 말씀이십니까?”
“강호에 영웅이 나타나면 시기하는 자들이 생기기 마련이죠.”
서진의 말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남궁세가의 천재검객이 그렇게 사라졌지.’
그가 기억하고 있는 일화는 초원에서 명운과 검을 겨루었던 남궁준의 이야기였다.
“영웅을 시기하는 자들이 있단 말씀입니까?”
“없을 것 같습니까?”
“없진 않겠지만,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조정을 보십시오. 대신들 간의 질투와 시기가 얼마나 큰지. 강호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청문은 그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인들이 조정의 권신들과 같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진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있는데…… 오늘은 제 말씀을 전혀 듣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서진이 발에 힘을 주며 속도를 높였다.
‘공자님과 너무 떨어져서는 안 된다.’
그가 속도를 높이자 청문 또한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청문은 속도가 높이자 더는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종 소협이 너무 빨라 그렇지. 장 호위도 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서진을 뒤쫓았다.
* * *
휘이이이익!
명운은 두 시진 거리를 단 이각(二刻) 만에 주파하는 놀라운 속도를 보여 주었다.
탁.
그가 산문에 내려서자 두 화산제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지금 산에서 내려온 것인가?’
‘어느 틈에!’
그들이 기척을 느낄 사이도 없이 그가 산문에 도착했던 것이었다.
명운이 주가령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주가령은 그의 목에 둘렀던 손을 풀며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두 화산제자는 명운이 주가령을 안은 채 산길을 달려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놀랐다.
‘사람을 안고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달려왔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명운은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두 화산제자에게 포권을 취했다.
“화산에서 신세를 졌습니다.”
두 화산제자는 순간 주춤했으나, 바로 포권으로 답했다.
“편히 지내셨다니, 다행입니다.”
명운과 화산제자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객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청풍이 나타났다.
“군주님!”
주가령은 밝은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청풍!”
청풍은 주가령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는 크게 기뻐했다.
“치료가 끝나신 것이군요.”
주가령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말끔하게 치료를 받았어요. 모두 종 소협 덕분이죠.”
청풍이 명운에게 포권을 취했다.
“종 소협, 정말 감사드립니다.”
명운은 담담하게 그의 인사를 받았다.
“협(俠)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어려움에 처한 이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한마디는 천마신교 공자의 언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강호의 협객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
명운은 화산 아래에서 구일방의 협객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청풍이 그에게 물었다.
“청문과 장 호위는 오시지 않는 겁니까?”
명운이 손으로 위를 가리키며 답했다.
“곧 올 것입니다.”
서진과 청문은 빠르게 경공을 전개하고 있었으나 명운과는 차이가 컸다.
‘우리가 느린 게 아니라. 공자님이 너무 빠른 것이다.’
그들은 아직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 *
“후우…….”
서진과 청문이 도착한 것은 일다경이 지난 다음이었다.
“괜찮은가?”
서진은 긴 숨을 내쉬고는 명운의 물음에 답했다.
“후우…… 괜찮습니다.”
“자네 말고 청문 말일세.”
정문은 서진과 달리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괴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주가령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청문, 괜찮나요?”
그는 정말로 좋지 않아 보였다.
청문은 애써 호흡을 가다듬었다.
“괘, 괜찮습니다.”
주가령이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며 말했다.
“숨을 크게 내쉬도록 하세요. 호흡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청풍은 청문이 왜 이처럼 지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화산을 내려오는 일이 그렇게 힘든 것이었나?’
그로서는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명운은 서진과 청풍에게 시선을 돌렸다.
“청문이 호흡을 가다듬을 동안 마차를 준비하도록 하죠.”
서진과 청풍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화산파에서 말과 마차를 깨끗하게 관리해 주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준비는 수월했다.
서진은 윤기가 흐르는 말의 털을 보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말의 먹이는 물론 털까지 관리해 주었군요.”
“대장군부 못지않게 말을 잘 관리하더군요.”
“청 호위는 대장군부에 있으셨습니까?”
“잠시 있었습니다.”
청풍과 청문은 대장군부 출신 무인이었다.
하나 그들은 전장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명운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출발해도 될 것 같네.”
두 사람이 시선을 돌리자 청문이 걸음을 옮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회복한 모양이군.’
명운과 서진은 주가령이 마차에 오르는 것을 확인한 뒤 말에 올랐다.
“마부는 청풍이 맡는 게 낫겠습니다.”
청문은 아직도 호흡이 고르지 않았기 때문에 마차를 모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고삐를 맡겠습니다.”
이윽고 서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출발!”
그의 외침과 함께 일행은 화산을 떠났다.
서진은 화산의 산문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무사히 화산을 빠져나왔구나. 정말 다행이다.’
만에 하나 이곳에서 명운의 신분이 밝혀졌다면, 그들은 이렇게 걸어서 화산을 내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
‘화산파의 매화검수가 십만대산에 오른 것과 같은 일이니까.’
그는 그러면서도 명운의 담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구파일방 제자로 태어났다고 해도 크게 되었을 것이다.’
일파의 장문인 또는 검협이나 검왕이라는 별호를 얻었을 것이 분명했다.
서진이 앞서 걸으며 물었다.
“공자님 어떤 길로 가시겠습니까?”
명운은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군주를 모시고 있으니, 넓고 편한 길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네.”
그는 일정을 줄이는 것보다는 주가령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큰길로 방향을 잡겠습니다.”
이번에도 길잡이로 나선 것은 서진이었다.
한 시진을 걷자, 거대했던 화산이 절반 크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곳 임주에서 안양을 거치면 하북입니다.”
하북성은 북경을 품고 있는 성(省)으로 무림맹보다는 황궁의 영향력이 더 컸다.
“하북까지는 얼마나 걸릴 것 같나?”
“하남으로 간 뒤 다시 하북으로 올라가야 하니, 적어도 보름은 걸릴 것입니다.”
“보름이라, 그 정도면 충분하네.”
마차 안에 있던 주가령은 보름이라는 말에 짧은 탄식을 터트렸다.
“겨우 보름인가?”
그녀는 적어도 한 달은 더 걸렸으면 했다.
‘한 달도 짧다. 회수(淮水)의 끝까지 가서 배를 타고 북경으로 돌아간다면, 시간을 더 끌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두 사람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끼익. 끼익.
마차가 산길을 나와 평지로 들어섰을 때였다.
좌우에서 거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잠깐!”
명운은 거지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고 부드럽게 고삐를 틀어쥐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서진은 개방거지들의 매듭수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다섯 개와 여섯 개?’
개방에서 다섯 개의 매듭을 가진 이들은 방의 법을 집행하는 호법이었다.
‘개방에서 오결제자인 호법은 사결인 향주보다도 위다. 그리고 여섯 개는 호법을 통솔하는 법개(法丐)가 아닌가?’
법개는 호법을 이끄는 인물로 과거에는 칠결제자인 집법장로가 맡았던 직책이었다.
‘호법과 법개가 나타났다면…….’
개방은 한바탕할 각오를 하고 그들의 앞을 막아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