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귀환(歸還) (5)
“안으로 드시죠.”
명운과 정문은 우현의 안내를 받아 장원 안으로 깊이 들어섰다.
‘문마다 제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경비 자체는 삼엄한 편이군.’
그는 적게 잡아도 서른 명 정도는 장원 안에 있을 것이라 계산했다.
정문의 예상은 그보다는 적었다.
‘교대를 생각하면 대충 두 배인 스무 명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도 적은 숫자는 아니다.’
그는 일이 벌어지면 일당 십의 접전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끼익.
몇 차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넓은 내전이 나왔다.
내전에는 스무 명 정도 되는 제자들이 서 있었는데, 모두 같은 무복을 입고 있었다.
정문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곳 한 곳에 스무 명이면, 서른 명보다 훨씬 많겠군.’
최소한 오십, 많으면 백에 가까울 수도 있었다.
“무슨 일인가?”
무복을 입은 중년인의 물음에 우현이 고개를 숙였다.
“원 대협께 편지가 왔다고 합니다.”
“편지?”
명운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맹에서 보낸 전서입니다.”
중년인은 그의 말을 들은 뒤 검은 모자를 쓴 장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숙, 명에서 전갈이 왔다고 합니다.”
원창서는 태산파 일대제자로 무림맹 부맹주 좌건의 사제였다. 그는 이곳에서 오십 명이 넘는 태산파 제자들을 이끌고 섬서성의 추격전을 지휘하고 있었다.
“맹? 하면 사형인가?”
명운은 조심스럽게 편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원창서는 편지를 받은 뒤 그것을 펼쳤다.
“흠, 사형은 아니군.”
정문은 그 모습을 보고는 숨을 들이켰다.
‘가짜 편지라는 것이 탄로가 난다면 끝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검을 잡았다.
다음 순간 명운의 전음이 들려왔다.
– 정문, 긴장하지 말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명운이 쓴 가짜 편지에는 어떠한 직인도 찍혀 있지 않았다.
‘저런 편지로 무림맹의 고수를 속일 수는 없다.’
그는 지금 당장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탁.
원창서가 편지를 접으며 물었다.
“포로를 심문하고 싶다고?”
명운이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포로를 확인하고 오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원창서는 명운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셋 중 하나는 이미 죽었는데…….”
명운이 두 손을 모은 채 말을 받았다.
“괜찮습니다. 한 명만 살아 있어도 심문은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지.”
정문으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것인가? 직인도 찍히지 않은 편지가 통했다고?’
그는 순간 명운이 도술을 부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운은 도술을 부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창서에게 건넨 편지는 앞서 무림맹 제자로부터 받은 편지를 위조한 것이었다.
‘후후후, 그 편지가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명운이 편지를 위조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그가 시와 서문에 능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의 필체를 흉내 내는 것은 그의 특기 중 하나였다.
“준!”
“예, 사숙.”
“이 친구들을 지하실로 안내하게.”
“알겠습니다.”
새로운 안내가 정해지자 우현은 고개를 돌려 명운에게 인사했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명운은 두 손을 모으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현이 돌아가자 새로 안내를 맡은 무인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절 따라오시죠.”
명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예를 취했다.
“부탁드립니다.”
정문은 그 모습을 보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섬서지부 제자를 구출할 때까지 그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끼익.
벽에 설치된 문을 열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명운은 그 계단을 보며 생각했다.
‘장원 지하에 연공실이 아닌 뇌옥을 설치한 모양이군.’
물론 둘 다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연공실 옆에 뇌옥이 있으면, 연공에 집중할 수가 없어 보통은 하나만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려가시죠.”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태산파 제자의 뒤를 따랐다.
탁. 탁. 탁.
계단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들은 곧 철문 앞에 도착했다.
“열겠습니다.”
태산파 제자가 열쇠를 넣어 옆으로 틀자 문이 열렸다.
끼익…….
철문이 모두 열리지 않았는데도 지독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이것은 피 냄새만이 아니다.’
사람의 육신이 썩어 가는 냄새.
아니, 생명이 꺼져 가는 냄새였다.
정문은 미간을 좁혔다.
‘한 명은 이미 죽었다고 했던가?’
명운은 얼굴을 찡그리는 대신 정면을 주시했다. 그의 평정심은 정문이 따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들어오시죠.”
태산파 제자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벽에 세 사람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정문은 세 사람을 보자마자 미간을 좁혔다.
‘이럴 수가!’
세 신교제자의 모습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손톱과 발톱이 모두 뽑혀 있는가 하면, 이미 죽은 것으로 보이는 제자의 시신에는 열 손가락이 모두 존재하지 않았다.
명운은 태연한 얼굴로 태산파 제자에게 물었다.
“말은 할 수 있는 겁니까?”
태산파 제자는 마치 짐승을 보는 듯한 눈으로 신교제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능할 겁니다. 아침까지 비명을 질렀으니까.”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걸음 내디뎠다.
“혀는 뽑지 않은 모양이군요.”
태산파 제자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마교도의 비명 소리를 듣는 게 사숙의 취미입니다.”
“그렇습니까?”
사람의 비명 소리를 듣는 것이 취미다.
정문은 울컥했다.
‘놈!’
명운이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검을 뽑았을 터였다.
명운은 신교제자의 몸을 좌우로 훑어보았다.
“흠.”
그는 손을 뻗어 의식을 잃은 신교제자를 깨웠다.
그러자 신교제자가 눈을 뜨며 명운을 바라보았다.
“주, 죽여라.”
그의 몸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이런 상처라면 치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명운은 초예를 데려온다고 해도 그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나?”
“주, 죽여.”
신교제자가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영원한 안식.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오른손 식지로 그의 이마를 찍었다.
팍.
짧은소리와 함께 신교제자의 숨이 끊겼다.
“소원은 들어주었다.”
그 모습을 본 태산파 제자가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그가 목소리를 높인 순간 한 줄기 바람이 뇌옥을 갈랐다.
촤악!
정문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태산파 제자의 머리가 이미 허공을 날고 있었다.
‘어, 언제 검을 쓰셨단 말인가?’
투욱…….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태산파 제자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정문.”
정문이 급히 두 손을 모았다.
“속하, 공자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운은 마지막 한 명을 살폈다. 그의 상태는 앞서 두 명보다 조금 나았다.
‘손톱은 없지만, 아직 손가락은 남아 있다. 몸에 난 상처도 적은 편이다. 이쪽은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상처를 보면, 그가 세 사람 중 마지막으로 고문을 당한 것 같았다.
“흠.”
명운이 진기를 밀어 넣자 신교제자가 깨어났다.
“무, 물.”
명운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명을 내렸다.
“물을 찾아라.”
정문은 입구에 대나무 물통이 놓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 물통은 고문을 행하던 무림맹 제자의 것으로 보였다.
“여기 있습니다.”
명운은 정문에게 받은 물통을 열어 신교제자의 입에 물을 흘려보냈다.
이윽고 신교제자가 물었다.
“누, 누구냐?”
명운이 대답했다.
“널 구하러 온 사람.”
“신교 사람?”
명운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신교제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틀렸다.”
“무엇이 틀렸단 말인가?”
“난 죽을 거야.”
“살고자 한다면 살릴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죽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신교제자는 달랐다.
“죽여 줘.”
명운이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왜 죽음을 원하는가?”
“내가 동료들의 거처를 이야기했다.”
“동료를 팔아서 죽고자 하는 것인가?”
신교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두 사람, 나 때문에 죽었다.”
명운은 고문의 흔적이 적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고문을 당한 것이 아니라 고문에 견디지 못하고 동료를 판 것이군.’
그는 신교제자의 양쪽 팔에 걸려 있는 쇠사슬을 손으로 끊어 버렸다.
정문은 그 모습을 보고는 숨을 들이켰다.
‘쇠사슬을 맨손으로…….’
명운의 손에 뜯겨 나간 쇠사슬은 마치 진흙처럼 보였다.
그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신기(神技)였다.
“천원대주가 명을 내리겠다.”
신교제자는 천원대주라는 말에 눈썹을 위로 올렸다.
“천, 천원대라면…….”
명운이 그의 말을 끊으며 명을 내렸다.
“반드시 살아남아라!”
신교제자는 그 자리에 무너졌다.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명운은 그가 겪은 고문의 강도가 결코 약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상태를 보면, 이 자도 버틸 만큼 버티었을 것이다.’
그가 고개를 돌리며 정문에게 명을 내렸다.
“정문, 이 자를 맡기겠다.”
정문은 재빨리 다가와 신교제자를 부축했다.
“대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명운이 짧게 대답했다.
“다 죽인다.”
그는 무림맹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고, 공자님.”
명운이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정문은 명운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디 무리하지 마시길.’
척. 척. 척.
명운의 걸음은 무거웠다.
‘서로 죽이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무림맹과 천마신교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쟁에는 전사자가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잔인한 고문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위군자들이라더니…….’
비명을 즐기며 고문을 하는 자들에게 어찌 대협이나 군자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
명운은 거칠게 문을 열었다.
덜컥.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 열리자 태산파 제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원창서는 명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말끝을 올렸다.
“심문은 했는가?”
명운은 손을 들었고, 다음 순간 그의 가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다.
퍼억!
“헉.”
원청서는 짧은 비명과 함께 비틀거렸다. 그는 내공이 그나마 두터운 편이었기에 바로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에 난 구멍을 살폈다.
‘시, 심장이 없다?’
심장이 없다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원청서는 고개를 든 뒤 무언가를 말을 하려고 했다.
“아…….”
그러나 말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투욱….
태산파 제자들이 이 상황을 이해한 것은 찰나의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사, 사숙!”
“이럴 수가!”
“저, 적이다!”
몇몇 제자가 검을 빼 들었지만, 그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스릉.
검을 빼 든 명운이 차갑게 말했다.
“죽어라.”
이윽고 묵검에서 뻗어 나간 검기가 그들의 몸을 꿰뚫었다.
팍! 파파파팍!
검기는 한 제자의 몸을 뚫고 뒤로 뻗어 나가 다음 제자의 몸을 꿰뚫었다.
“허헉!”
그들이 배운 초식이나 검결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수준, 아니 격이 달랐다.
태산파 제자들은 반격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공격이냐?”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무엇이 사람을 베고 있습니다.”
묵검에서 검기가 뿜어져 나올 때마다 비명이 난무했다.
“아아아악!”
“다, 다리가!”
내전은 태산파 제자들의 비명과 죽음으로 가득 찼다.
치명상을 피한 제자들은 바닥을 기며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사,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명운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촤악!
피와 비명이 함께 쏟아졌다.
“헉.”
앞으로 나아가던 태산파 제자 한 명이 오른손을 늘어뜨린 채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지, 지옥이다.’
마지막 제자는 자신을 향해 뻗어 오는 명운의 검기를 느끼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안 돼!’
팍!
검기는 그대로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이윽고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무림맹 제자들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냐?”
그들은 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묵검에서 뻗어 간 검기가 그대로 그들의 신체를 절단했다.
삭!
목과 머리가 분리된 자가 있는가 하면, 두 팔이 잘려 나간 제자도 있었다.
“아아악! 내 팔!”
“배가… 배가…….”
그들의 비명은 외부에서 경계를 서던 무림맹 제자들을 다시 안으로 끌어들였다.
“적의 습격이다! 내전에 적이 나타났다!”
“적을 막아라!”
명운은 밖에서 달려온 그들에게도 같은 죽음을 선사했다.
촤악!
비명과 함께 피의 분수가 쏟아졌다.
“아악…….”
내전의 바닥은 붉은 피가 넘쳐흘렀다.
정문이 지하실 밖으로 나왔을 때, 지상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그는 핏물 한가운데 서 있는 명운을 향해 물었다.
“대주님?”
그의 물음에 명운은 반응하지 않았다.
‘하…… 정말로 다 베어 버리셨다.’
신교제자는 정문에게 안겨 있었는데, 무림맹 제자들의 시신이 갈기갈기 찢겨 있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흐흐, 흐흐흑…….”
정문은 그것이 복수를 이룬 기쁨의 눈물인지 아니면, 죽어 간 동료들에 대한 회한인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