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6)
16화 낙산원 (1)
암한지경에 이른 것도 벌써 두 달.
명운의 내단은 이제 손가락 한 마디를 넘었다.
‘겨우 두 달만인가?’
지난 생.
명운은 손가락 한 마디까지 내단을 키우기 위해서 삼 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이 정도 속도라면, 내년 봄이면 십 성에 이르겠군.’
십 성이면 현무대 조장이었던 정문과 같은 수준이었다.
“후우…….”
호흡을 갈무리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이 밝군.”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은 유독 맑아 보였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히 가자.’
그는 가볍게 몸을 씻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강하원이 평소보다 일찍 그를 찾아왔다.
“오늘은 무슨 일인가?”
강하원이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곤륜에서 큰 싸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곤륜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쪽에서 토벌대라도 편성한 건가?”
강하원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공자님이 토벌대를 이끈다고 합니다.”
명운은 이공자 명각이 언급되자 미간을 좁혔다.
‘명각이 벌써 전면에 나서는 건가?’
현재 명각은 검혼대라는 자신만의 무력 집단을 이끌고 있었다.
“하면 검혼대가 나가는 것인가?”
강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혼대가 선봉에 서고 백호대가 그 뒤를 받친다고 합니다.”
백호대는 팽헌충이 소속되었던 무력 집단이자 십만대산 외곽을 수비하는 부대였다.
“백호대가 나간다면 외곽은 누가 지키게 되는가?”
“적풍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음, 적풍대라.”
적풍대는 관흠이 몸을 담았던 곳으로 다섯째 형과 인연이 있었다.
“뭔가 마음에 걸리시는 일이 있으십니까?”
명운이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그런 것은 아닐세.”
“공자님, 한 가지 건의드릴 것이 있습니다.”
명운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 총관, 자네의 의견은 언제든 환영일세.”
강하원이 자세를 바로잡은 뒤 오른손을 들었다.
“이공자님께서 출전하는 날, 성문으로 나아가 응원하심이 어떠십니까?”
명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날 죽인 원수를 응원하란 말인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강하원의 의견에는 일리가 있었다.
‘명각은 십중팔구 승리할 것이다. 이기는 쪽에 줄을 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닐 터.’
게다가 명각은 아직 막내인 명운을 견제하지 않고 있었다.
미리 머리를 숙인다면, 그의 시선을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명운에게는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강 총관.”
“예, 공자님.”
“이번 의견은 그냥 넘기도록 하겠네.”
강하원이 들었던 오른손을 내리며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명운이 대답했다.
“기분에 따라 판단한 것은 아닐세. 다만 걸리는 것이 하나 있어서 말이야.”
강하원이 물었다.
“어떤 것입니까?”
“자네가 둘째 형을 응원하라 한 것은 그에게 점수를 따라는 말 아닌가?”
강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평범한 이라면 자네의 제안이 통할 걸세. 하나 둘째 형은 평범하지 않아.”
“평범하지 않다면…….”
명운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의심이 많은 사람일세. 자신에게 막냇동생이 줄을 대려 한다면 기뻐하기보다는 의심부터 할 걸세.”
강하원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의심만 하면 다행이지만 둘째 형이 날 의식하기 시작하면 곤란하네.”
명운은 명각이 어떠한 사람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열두 살짜리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그 주변까지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그는 때가 될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명운이 말했다.
“지금은 수하들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네.”
강하원은 명운의 설명에 납득을 했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가 물러서려는 순간 명운이 그를 불렀다.
“강 총관.”
강하원이 몸을 돌려 그의 말을 받았다.
“따로 지시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서숙의 예산, 얼마나 남아 있지?”
강하원이 두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지난번에 받은 돈을 포함해 천이백사십 냥 정도를 쓸 수 있습니다.”
“천 냥이 넘는 돈이 있다는 말이군.”
천 냥은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돈이었다.
명마를 산다고 하면, 서역의 한혈마는 무리였으나 중원에서 자란 천리마에 준하는 말을 살 수 있었다.
검을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현철검이나 이름난 명장이 만든 검은 살 수 없었으나 묵철로 만든 묵검이나 솜씨 좋은 장인의 검은 충분히 살 수 있었다.
“쓸 곳이 생각나신 것입니까?”
명운이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말했다.
“무공 수련에 전념할 수 있는 장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네.”
이것은 즉흥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 명증으로부터 돈을 받았을 때부터 장원을 구입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강하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장원이라면, 서숙을 떠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서숙은 대명궁 안에 위치했기 때문에 경호나 경비에 큰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궁밖에 장원을 만든다면,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했다.
“이곳에서는 검법 수련은 할 수 있지만, 경공이나 잠행 같은 것은 무리지 않은가?”
“경공 수련까지 하시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명운이 다시 시선을 강하원에게 돌렸다.
“미리 사 두려고 하는데,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강하원이 대답했다.
“좋은 물건이 있다면,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서둘러 매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장원을 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물론 명운의 생각은 달랐다.
“낙산원은 어떠한가?”
강하원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낙산원 말씀이십니까?”
낙산원은 철광석을 생산하는 광산이 딸린 장원이었다.
하지만 근처 토지가 척박해서 농사는 지을 수가 없었다.
“대명궁에서 멀지 않고, 백호대 사관이 근처에 있으니 도움이 되지 않겠나?”
강하원은 명운의 물음에 턱을 쓰다듬었다.
“그것은 그렇습니다만…….”
그는 낙산원이 확 끌리지 않았다.
‘곡식을 생산할 땅이 없다는 것은 말을 먹일 콩이나 건초마저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뜻이다.’
강하원은 현실적으로 접근하자 했다.
하지만 명운은 처음부터 낙산원으로 낙점을 한 터였다.
“특별히 좋은 곳이 없다면 낙산원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싶네.”
강하원은 순순히 그의 뜻을 따라 주지 않았다.
“백호대 사관 주변을 원하신다면 농지가 있는 다른 장원을 알아보겠습니다.”
명운이 두 손을 모으며 물었다.
“낙산원이 어떤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나?”
“우선 농지가 없습니다.”
“그래도 광산이 있지 않은가?”
강하원이 대답했다.
“광산이 있어 돈은 벌 수 있지만, 농지가 없다면 말을 먹일 건초나 콩을 시장에서 사들여야 합니다. 흉작이 들 경우 곡식 가격이 크게 오르기 때문에 광산에서 얻은 수익으로 그것을 만회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명운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철광석 가격은 일정하지만, 곡식은 작황에 따라 가격이 크게 널뛰기를 한다는 말이군.’
대산 주변은 토질이 척박해 풍작보다는 흉작일 때가 많았다.
돈만 생각한다면 강하원의 의견이 옳았다.
하지만 명운은 돈이 아닌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은 그들이 낙산원을 매입하라 지시했네.”
그들.
명운의 뒤에 선 자들.
강하원은 멈칫했다.
“그들이 낙산원을 추천했단 말입니까?”
명운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낙산원을 얻으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하더군.”
강하원도 명운을 따라 목소리를 낮췄다.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된다는 겁니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네.”
명운의 한마디는 거짓이었다.
그는 낙산원 근처에 금광석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장량이 많진 않지만, 그 질이 높아 백호대에 큰 도움이 되었지.’
물론 정확히 어느 곳에 금광석이 매장되어 있는지는 그도 몰랐다.
“그들이 추천했다면 이유가 있겠죠.”
강하원은 명운의 뒤에 선 자들의 실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어설픈 조광을 가르쳐 세 명을 잇달아 쓰러뜨리게 만든 자들이다.’
조광을 가르친 것은 명운이었지만, 그것을 아는 이는 명운 본인과 그가 금제를 건 시녀 경은뿐이었다.
“낙산원으로 알아보게.”
강하원이 두 손을 모으며 명을 받았다.
“백호대와 접촉해 보겠습니다.”
낙산원은 현재 백호대 소유의 장원이었다.
* * *
세 명을 잇달아 쓰러뜨린 조광.
그는 명운의 가르침 없이 혼자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경은이 그런 조광을 보며 물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거죠?”
“깨달음 덕분이지.”
“깨달음 덕분이라고요?”
조광이 말한 깨달음의 내용은 경은도 들은 바 있었다.
하나 깨달음의 내용을 듣는 것과 그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조광은 앞으로 내가 가르칠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경은이 물었다.
“밖에 사람들은 다르겠죠?”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들에게는 많은 가르침이 있어야겠지.”
그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네 사람을 하나하나 지도할 생각이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
명운은 그것을 직접 체험하고 있었다.
‘사부님도 그러셨을까?’
그는 문득 자신의 스승이었던 환영검제 왕준을 떠올렸다.
‘바보 같은 물음이군.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을.’
경은의 물음이 명운의 시간을 과거에서 현재로 되돌렸다.
“공자님,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명운은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부탁이 있는 것이냐?”
“제게 무공을 가르쳐 주세요.”
명운은 그녀의 대답에 피식했다.
“내게 무공을 배우겠다고?”
경은이 대답했다.
“조광도 공자님의 가르침을 받아 강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명운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공자님은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강 총관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강하원은 현재 서숙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였다.
명운이 물었다.
“어떤 무공을 배우고 싶은 것이냐?”
경은이 주로 배운 것은 권법이었다.
“검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검법?”
“조광처럼 강해지고 싶습니다.”
명운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내 가르침은 쉽지 않다. 각오는 되어 있는 것이냐?”
경은이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무림맹, 아니 일반 강호인의 경우 무공을 배울 때는 스승에게 삼배의 예를 올렸다.
천마신교에서는 삼배의 예 대신 한쪽 무릎을 꿇은 뒤 고개를 숙였다.
이때 스승이 머리에 손을 올리면 제자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고 올리지 않으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명운은 자신이 왕준에게 예를 취하던 날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정해 준 스승이었으니, 스승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
그는 옅은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한쪽 무릎을 꿇어라.”
경은은 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들었다.
“공자님?”
한쪽 무릎을 꿇으라는 말은 단순히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제자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경은, 넌 내 첫 번째 제자다.”
경은이 자세를 고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물었다.
“조광이 첫 번째가 아닌 것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직 예를 취하지 않았으니까.”
경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것을 본 명운이 말했다.
“기뻐하긴 이르다. 본교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
천마신교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실력.
그 때문에 실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삼남이나 사남도 아버지의 뒤를 이을 수 있었다.
명운은 조용히 경은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오늘부터 넌 나의 제자다.”
경은이 그의 말을 받았다.
“죽을 때까지 스승으로 섬기겠나이다.”
명운은 이날 자신의 첫 번째 제자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