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부교주 (4)
“용두방주를 이겼다면, 그를 베었느냐?”
명증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베지 못했습니다.”
“베지 못했다고?”
“법개와 호법들이 방주를 보호하였습니다.”
명증은 얼굴을 살짝 굳혔다.
“그들이 네 검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단 말이냐?”
명운이 대답했다.
“그들의 실력은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용두방주를 꺾기 위해 많은 내력을 소모한 터라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용두방주를 끝장내기보다는 이쪽이 안전을 도모했다.
이는 자칫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명증은 그것을 파고들었다.
“왜 그러한 판단을 했느냐?”
조금만 더 무리했더라면, 구파일방에 치명타를 날릴 수도 있었다.
주변의 모두는 이렇게 생각했다.
명운은 아버지의 몰아침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어깨를 편 채 물음에 답했다.
“적진 한복판에서 벌어진 싸움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적의 증원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내력을 쥐어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적진에서는 항상 여분의 힘을 남겨 두어야 한다.
명운은 이렇게 주장했다.
“좋다. 용두방주를 베지 못한 것은 넘어가겠다. 다음을 말하라.”
합리적인 이유였음에도 명증의 목소리는 바뀌지 않았다.
명운은 아버지 명증이 자신의 전공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작스럽게 너무 큰 전공을 세웠다는 말인가?’
그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에 말을 이었다.
“이후 삼협에서 검선과 겨루었습니다.”
그의 한마디에 광명정 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설마! 검선을?”
“용두방주를 이겼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검선의 죽음이 공자와 관계되어 있었군요.”
명증이 내공을 실어 주변을 향해 말했다.
“조용히 하라.”
그의 한마디에 주변이 일제히 침묵했다.
광명정에 고요가 찾아오자 명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검선과 싸움은 어찌 되었느냐?”
명운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검선은 과연 검선이었습니다. 그의 검세에는 빈틈이 없었으며, 일검에 실린 내력 또한 거대했습니다.”
명증이 재차 물었다.
“검선이 죽었다고 들었다. 네가 벤 것이냐?”
명운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승부는 호각이었습니다.”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명증은 얼굴을 굳혔다.
“우위를 점하지 못했는데도 상대가 죽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이냐?”
“소자는 검선을 상대로 물러서지도 나아가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검선은 소자를 상대하기 위해 많은 내력을 소모해야만 했습니다.”
명증이 그의 말을 받았다.
“고령의 검선이 대량의 내력을 소모하여 마치 촛불의 심지가 다하듯 그렇게 숨이 끊어졌단 말이냐?”
명운이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명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광명정에는 정말 무능력한 자들만 모여 있다는 말이구나.”
사마진은 명증의 한마디에 크게 놀랐다.
‘교주님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걸까?’
다른 이들도 명증이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교주님이 노하셨다.’
‘오공자가 전사하였을 때도, 이렇게 화를 내진 않았던 것 같다.’
명운 또한 아버지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소자, 성존의 도움으로 여러 고수를 상대하고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명증은 오른손을 들었다.
“일어나라. 그리고 검을 뽑아라. 내가 네 말이 진실인지 시험해 보겠다.”
명운은 명증의 몸에 흐르는 거대한 기운이 오른손에 모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위험하다.’
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발아래를 흐르고 있는 지맥을 찾았다. 용맥이 흐르고 있다면 좋았겠지만, 광명정은 용맥 위에 세워진 건물이 아니었다.
‘한음진기(寒陰眞氣)인가?’
명운은 발아래 흐르고 있는 한음진기를 끌어 올렸다.
“왜 검을 뽑지 않느냐?”
명운이 두 손을 모은 채 대답했다.
“소자, 어찌 아버님께 검을 겨눌 수 있겠습니까?”
명증은 얼굴을 굳혔다.
“검을 뽑아라!”
그의 외침은 쩌렁쩌렁 광명정을 울렸다.
명운은 할 수 없이 자세를 풀고는 묵검을 뽑았다.
스르릉.
검은 검신이 광명정의 밝음과 대비되었다.
“소자, 검을 뽑았습니다.”
광명정에 모인 무인들은 명운의 묵검에 주목했다.
‘저것은 현철인가?’
‘운이 언제 저런 보검을 얻었는지 모르겠군.’
명증은 미간을 좁힌 뒤 그대로 오른손을 뻗었다.
“운! 진실을 스스로 증명하라!”
슉!
파공성과 함께 날아간 검은 빛은 마기(魔氣) 그 자체였다.
명운은 그것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피할 수 있다고 해도 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버지는 이 한 수로 그를 시험하고자 했다.
‘천마신공과 이런 식으로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이야.’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마기가 수강(手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대로 받아 낸다!’
쉬익.
바람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묵검에 푸른 기운이 서렸다.
짙은 한음진기.
명운은 그대로 묵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공기가 사방으로 진동하며, 거대한 폭음이 일어났다.
일어난 것은 폭음만이 아니었다.
묵검과 수강의 충돌은 무시무시한 기파를 일으켰으며, 교주 좌우에 늘어서 있던 고수들은 내력을 일으켜 몸을 보호해야 했다.
“크윽…….”
“대단한 힘이다.”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쓰러진 것은 광명정의 입구를 막고 있던 철문이었다.
“이럴 수가!”
기파를 흘려 낸 고수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명운과 쓰러진 철문을 바라보았다.
“교주님의 천마신공을 받았다.”
“공자의 무공이 교주님과 대등하다는 말인가?”
파파팍.
파열음과 함께 터져 나간 것은 명운이 들고 서 있던 묵검의 검신이었다.
검은 검신은 마치 다 타 버린 숯처럼 가루가 되어 아래로 쏟아졌다.
‘묵검의 검신이 수강을 버텨 내지 못했다.’
천마신공은 가히 절대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마진은 과거 명운이 천마신공에 대해 언급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운이 말했던 절대적인 강함인가?’
양대충 또한 이 장면을 주의 깊게 보았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다. 한데 그 한 번을 검이 견디지 못했다. 천마신공이라는 무공은 대적할 수가 없는 것이란 말인가?’
천마신공을 발휘한 명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명좌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하하하, 네가 본좌의 수강을 받았구나.”
지금까지 그의 수강을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천마신공을 받아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명운의 무공이 자신들 위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마진은 그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어쩌면 운은 힘을 아껴 두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향해 전력을 다하는 아들은 없을 테니까.
‘그 말은 운의 힘이 교주님과 거의 대등하다는 뜻이다.’
명운은 검신이 사라진 검을 받쳐 들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께서 손에 사정을 두셔서 일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명증은 차갑게 말했다.
“본좌의 수강에는 정(情)이 없었다.”
전력으로 수강을 발출했다는 말이었다.
“…….”
명증이 명운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운, 네 말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인정하겠다. 오늘부터 넌 본교의 부교주이다!”
부교주.
현 부교주 유청을 명운이 대신한다는 것일까?
좌우에 늘어선 고수들은 명증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명증에게 질문할 수는 없었다.
명운이 두 손을 모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님, 소자가 맡기에는 너무 중한 직책입니다. 명을 거두어 주소서.”
명증이 입술 끝을 올렸다.
“네 무공은 충분히 유청을 앞서고 있다. 유청과 함께 본좌를 보좌하라. 뒤로 물러서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
유청은 해임되는 것이 아니었다.
‘부교주가 둘이 된다는 뜻이군.’
명운은 아버지의 표정이나 목소리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아직 아버지께서는 힘을 거두지 않으셨다.’
명증의 양쪽 손에는 막대한 기운이 모여 있었다.
이는 언제라도 수강을 다시 발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내 힘과 의지를 의심하고 계신 것이다.’
그는 할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소자, 아버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사마진을 비롯한 천마신교 고수들은 후계자 경쟁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소교주도 아니고, 부교주라니, 경쟁은 끝났군.’
‘이렇게 끝날 후계자 경쟁이었단 말인가?’
‘칠공자가 칠 년이라는 시간을 반도 쓰지 않고 끝냈군.’
‘천과 각은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웠단 말인가?’
명증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양대충이 모두를 대신해 명증에게 물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명증이 다시 한번 내력을 실어 답했다.
“내 뒤를 잇는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시선을 명운에게 돌렸다.
“운.”
“하명하시옵소서.”
“부교주와 소교주는 다른 것이다.”
명운은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양대충을 비롯한 고수들은 명증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운은 이미 무공과 공에서 형들을 압도하고 있다. 교주님께서는 어째서 경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걸까?’
그들은 명천이나 명각이 명운의 공과 무공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후계자 경쟁은 끝났다.’
명증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다들 물러가라!”
좌우에 서 있던 고수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존명.”
명운은 마지막까지 남아 명증과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명증이 그에게 물었다.
“왜 남아 있느냐?”
“소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명증은 그의 청을 받아 주지 않았다.
“네 이야기는 다음에 듣겠다.”
명운은 할 수 없이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존명.”
그는 마지막으로 광명정을 물러나 왔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고수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축하드립니다.”
무릎을 꿇은 이들 중에는 신교좌사 양대충도 있었다.
“양 좌사님…….”
“좌사라 불러 주십시오.”
부교주가 경칭을 써야 하는 것은 오직 교주뿐이었다.
* * *
명운이 부교주에 임명을 받은 그 날.
시녀장 석비연이 경질되었다.
십삼 년 동안 시녀장으로 있었던 그녀였기에 이런저런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후계자 경쟁이 끝나자마자 경질이군요.”
“교주님께서 귀주석가를 견제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서지 말라. 이 말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사람들은 명운의 배경인 귀주석가가 이번 일로 큰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귀주석가 가주인 석준명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이 힘들어졌군.”
그의 앞에는 경질된 석비연과 비조검 석주가 앉아 있었다.
“교주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석비연은 명운이 부교주에 임명된 직후, 경질되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교주 명증의 기분이나 마음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뻔한 것 아니겠나?”
“뻔하다니요?”
“자중하라는 뜻이겠지.”
석준명은 눈을 감았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누가 예상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석주가 말했다.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석준명이 눈을 뜨며 물었다.
“잘되었다고?”
“이번 경쟁의 승자는 칠공자님입니다. 칠공자님께서 교주가 되시면 모든 것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시간은 저희 편이 아니겠습니까?”
석준명이 혀를 찼다.
“쯧, 자네는 우리가 칠공자에게 한 짓을 기억하지 못하나 보군.”
그는 명운을 도구로 이용하고자 했다.
‘운이 우리에게 원한이나 악심(惡心)을 품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석주는 석준명과 달리 명운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인물이었다.
“저는 충심으로 공자를 돕고자 했습니다.”
석준명이 그의 말을 받았다.
“자네는 그렇다고 쳐도 가주인 내가 아니었으니, 석가는 원한을 벗을 수 없네.”
그는 자신의 행동과 말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제가 운에게 다녀올까 합니다.”
석준명의 시선이 석비연에게 향했다.
“그것은 곤란해.”
“왜 그렇습니까?”
“그대는 지금 막 시녀장에서 해임되었어. 당분간은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 좋아.”
석준명은 교주의 수족들이 귀주석가를 감시하리라 생각했다.
‘공 우사가 없다고 해서 방심하면 곤란하다.’
대명궁에는 적룡대나 흑살대 말고도 교주의 명을 받아 움직이는 이들이 여럿 존재했다.
“당분간은 다들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야.”
석준명의 말에 석비연과 석주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가주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대명궁에서 동쪽으로 십여 리 떨어진 곳.
비로궁.
이곳에는 귀주석가보다 더 우울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보여 있었다.
그들은 바로 장공자 명천과 그 수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