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축하연 (4)
“괜찮았나?”
“보시다시피 아주 괜찮았습니다.”
서진은 이번 강호행으로 사매의 원한을 풀 수 있었다.
“군주의 전언은 없었나?”
“그것이…….”
서진은 의외로 말을 끌었다.
명운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군.”
황실과 악연을 맺는 것은 그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서진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말을 끄는 이유가 무엇인가?”
“조금 힘든 이유입니다.”
명운은 그의 대답에 손을 내저었다.
“쯧, 말하는 것이 힘들다면 하지 말게.”
서진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부교주님께서 너무 자상하셨습니다.”
이것은 명운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자상하다니.”
“부교주님, 아니 공자님, 모르고 그러시는 겁니까?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시는 겁니까?”
명운은 서진의 격한 언사에 미간을 좁혔다.
“내가 자네를 속여서 무슨 이득을 취한다는 말인가?”
당연히 몰라서 묻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부교주님, 군주께서 상사병에 걸리셨습니다.”
상사병.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명운 또한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리워하고 있는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약간 시간이 걸렸다.
“소민 군주가 나를 그리워한다는 말인가?”
서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서진, 그대는 내게 정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인가?”
“말을 했지만, 믿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있어도 상관이 없다고까지 말을 하셨습니다.”
주가령의 상사병은 중증이었다.
명운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으음…….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네.”
“부교주님, 아무래도 시간을 내셔서 황도에 다녀오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시간을 낸다.
부교주가 아닐 때는 가능했지만, 부교주가 된 이후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움직이면 무림맹 또한 움직일 터였다.
‘다른 문파는 몰라도 화산과 청성은 죽기 살기로 달려들겠지.’
명운은 초예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황도에 사람을 보내긴 했네.”
서진은 명운의 말에 눈썹을 위로 올렸다.
“황도에 말입니까?”
“가장 믿을 수 있는 의원을 보냈다네.”
“의원으로 될까요?”
상사병은 약이나 침수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하나 지금 명운이 할 수 있는 것은 초예를 믿는 것뿐이었다.
“훌륭한 의원이니, 일단 믿을 수밖에.”
서진은 명운이 이렇게 말을 하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의원을 믿겠습니다.”
명운이 짧게 혀를 찼다.
“쯧쯧, 자네 말이야. 내 사람이 아니라 군주의 사람처럼 이야기하는군.”
서진은 어느 정도 그의 말을 인정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속하, 소민 군주와 함께 여행하면서 정이 든 모양입니다.”
“자네가 사모하기에는 군주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네.”
그의 말에 서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군주를 사모하는 것은 아닙니다. 군주를 보고 있으면, 막내 사매가 생각이 나서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혹시 그녀에게 나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것인가?”
“약속한 것은 아닙니다만, 노력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빼어난 미인이 자신을 사모한다.
일반적이라면 웃음이 절로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명운은 웃을 수 없었다.
“곤란하군.”
그는 소민 군주를 통해 황실에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이상이었다.
‘내가 군주의 마음을 거절한다면, 황실은 아군이 아니라 적이 될 수도 있다.’
명운은 그러한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돌아가겠다고 편지를 쓰면 되는 것인가?”
“군주께서는 공자님이 편지만 써 주셔도 좋아할 것입니다.”
“자네, 그녀를 정말로 아끼는군.”
“주 소저는 아낄 수밖에 없는 아가씨입니다.”
서진은 진심으로 주가령을 사매처럼 아끼고 있었다.
“소민 군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
서진은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
“부교주님께서 편지를 써 주신다면, 그만하도록 하겠습니다.”
명운은 낮게 한숨을 내쉰 뒤, 말끝을 올렸다.
“자네 그거 알고 있나?”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자네 말이야. 많이 끈질겨.”
서진은 명운의 대답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사매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 정말 곤란한 사내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천원대주 자리가 비었네.”
서진은 명운의 말에 바로 자세를 고쳤다.
“제게는 과한 자리입니다.”
그는 자신의 무공이 천원대주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대주가 되기에는 무공이 부족하다.’
그러나 명운의 생각은 달랐다.
“자네가 아니면 맡아 줄 사람이 없네.”
이 또한 사실이었다.
‘천원대는 위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내부 승진밖에는 없었다.
하나 천원대에서는 서진보다 무공이 낫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이틀 뒤, 축하 연회가 있을 것일세.”
“부교주님의 승진에 대한 축하 연회입니까?”
“그 자리에서 자네를 천원대주로 추천할 걸세.”
서진은 한 번 더 사양했다.
“공자님,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그대에게 과한 자리다?”
“그렇습니다.”
“내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공자님.”
명운은 손바닥이 보이도록 오른손을 세웠다.
“더는 다른 말을 하지 말게. 자네 외에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을 걸세.”
그의 생각이 너무나 확고했기 때문에 서진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틀 뒤.
명운은 서진과 함께 자심전으로 향했다.
* * *
홍회원.
그는 적비단 일비(一飛)를 이끄는 비주였다.
‘입술이 바짝 마르는군.’
그와 그의 부하들은 연회장 뒤쪽에 무기를 든 채 몸을 숨기고 있었다.
– 신호가 떨어지면,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
이는 적비단주 등명군의 엄명이었다.
‘오늘 연회장에서 크게 일이 벌어지리란 말인가?’
그는 미간을 좁혔다.
‘반란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연회에 동원된 것은 일비만이 아니었다.
적비단주 등명군은 적비단의 최정예라 할 수 있는 열 개 조.
즉, 십비(十飛)를 전부 자심전으로 불러들였다.
이들의 이동은 밤사이 비밀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자심전에서도 그 사실을 아는 이가 극히 적었다.
‘단주께서는 누구를 상대하기 위해서 삼백이 넘는 정예를 부른 것인가?’
육도검 등명군은 끝까지 목표가 누구인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부교주께서 드십니다!”
입구에 서 있던 무인이 목소리를 높이자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이 모두 몸을 일으켰다.
“부교주님을 뵙니다.”
명운은 수행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다들 편히 앉으십시오.”
그는 두 손을 모은 채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명운이 인사를 하는 동안 수행원이라 할 수 있는 강하원과 경은, 그리고 정문과 조광은 말석에 자리를 잡았다.
“예상보다 사람이 많군요.”
강하원이 조광의 말을 받았다.
“교주님께서 참석하는 연회가 아닌가? 원래는 이보다 더 많은 이가 참석했어야 했네.”
오늘 연회에는 명운의 형제는 참석하지 않았다.
‘공자들의 분한 마음을 어느 정도는 고려한 것이겠지.’
강하원은 명운과 마찬가지로 명증의 생각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었다.
“사신대 대주가 모두 모여 있습니다.”
조광이 지목한 상석에는 현무, 주작, 백호, 청룡 등 사신대 대주 전원이 명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삼단의 단주들도 보이는군.”
사신대주 맞은편에는 사마진과 등명군 그리고 천준기가 앉아 있었다.
혜선단주 천준기가 사마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명단주는 얼굴이 좋아 보이는군.”
사마진은 긴 머리를 틀어 올린 뒤, 옥과 금으로 만든 비녀를 여럿 꽂아서 화려하게 장식했다.
“제가 요즘 조금 그렇죠.”
그녀가 부교주 명운의 후견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천준기는 사마진에게 한마디 던진 뒤, 시선을 육도검 등명군에게 돌렸다.
“육도검께서는 왜 말이 없나?”
육도검 등명군은 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명증으로부터 중한 임무를 받은 상태였다.
“이쪽은 이래저래 복잡한 일이 많습니다.”
“적비단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교주님께서 어려운 과제를 내주셨습니다.”
혜선단주 천준기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혹시 공 우사의 일을 도우라 말씀하셨나?”
공복진은 현재 서장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비슷한 일입니다.”
“흠, 그렇다면 쉽지 않겠군.”
파천궁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등명군이 맡은 일 또한 쉽다 할 수 없었다.
사마진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서장이라면 밀종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천준기가 팔짱을 풀며 대답했다.
“그것은 곤란하지.”
“그렇습니까?”
“신교가 어찌 밀종에 도움을 청하겠나.”
천준기는 천마신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밀종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라면 볼 장을 다 본 것이다.’
그는 천마신교의 저력을 굳게 믿고 있었다.
“부교주께서 오십니다.”
등명군의 짧은 한마디에 사마진과 천준기가 자세를 고쳤다.
“부교주님을 뵙니다.”
명운이 밝은 목소리로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천준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교주께서는 한결 늠름해지셨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제 일함 군주와 혼인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명운과 일함의 혼사는 천마신교의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였다.
“제 혼인까지 축하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천준기는 옆에 서 있는 여인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을 모른 채 미소를 지었다.
“부교주님의 혼례에도 꼭 참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명운은 그와 인사를 주고받은 뒤, 육도검 등명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육도검께서는 안녕하십니까?”
“교주님께서 맡기신 일 때문에 조금 바쁘긴 합니다만, 그것을 제외하면 괜찮습니다.”
등명군은 표정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곧 베어야 할 인물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명증은 지금의 명운은 명운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교주님의 말씀이 사실일까?’
약관에 강기를 사용하는 절대고수.
천마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았다면, 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명가는 성존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 아님이 밝혀졌다.’
명가와 천마가 피로 이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은 파천궁이 등장하면서 확실해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하나로 합하면, 교주님의 말씀이 옳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서 명운을 베리라 생각했다.
명운은 마지막으로 시선을 사마진에게 돌렸다.
“단주님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사마진이 두 손을 모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앞으로도 부교주님을 믿고 따를 것입니다.”
그녀는 명운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진과 강 총관, 그리고 경은은 어떠한 경우에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명운은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남은 사람은 이제 둘 뿐이군요.”
잠시 뒤, 남은 두 사람 중 한 명이 등장했다.
“좌사께서 들어오십니다.”
신교좌서 양대충.
그는 명운이 부교주가 됨으로서 서열 사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양대충은 여러 사람과 인사를 주고받은 뒤, 명운에게 다가왔다.
“좌사가 부교주님을 뵙니다.”
명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의 인사를 받았다.
“양 좌사께서는 말씀을 편하게 하시죠.”
“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좌사께서 절 어렵게 만드시는군요.”
“하하하, 그렇습니까?”
양대충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섰다. 그의 자리는 명운의 맞은편이었다.
‘이제 한 명 남았다.’
사마진은 마지막 남은 손님을 생각했다.
‘교주님만 오시면 끝이다.’
그러나 명운은 아버지 명증이 아닌 다른 이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벽 뒤에 많은 사람이 있다.’
그는 기를 뿌려 벽 뒤에 있는 이들을 살폈다.
‘무기를 든 무인들이다.’
벽 뒤에 선 자는 수십을 가볍게 넘었다.
‘무기를 든 자들이 연회장 주변을 포위하고 있다면, 그 수가 백은 족히 될 것이다.’
누가 연회장 주변에 백 명이 넘는 무인을 배치했단 말인가?
‘반란인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가장 유력한 것은 장공자 명천이었다.
‘큰형이 광명좌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자 한다는 것인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자심전이었다.
‘자심전주는 큰형이 아닌 둘째 형의 사람이다. 그가 큰형에게 기울었단 말인가?’
명천이 무인들을 동원했다면 그들은 귀혼단일 가능성이 컸다.
‘귀혼단과 비로궁 무인들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아버지와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이곳에는 사신대 대주들과 삼단의 단주들도 있다.’
수백 명으로는 대업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반란이 성공하려면 최소한 사신대 대주들과 삼단의 단주들을 모두 포섭해야 한다.’
명운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큰형의 인화력으로는 어림도 없지.’
특히 명천은 사신대 대주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큰형은 아닐 것이다.’
이윽고 입구에 선 무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교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우렁찬 외침과 함께 명증이 새로운 시녀장 홍비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