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형제들 (2)
조광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깊이 숙였다.
“공자님의 설명에 탄복했습니다.”
명운은 오른손을 흔들었다.
“대단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닐세.”
“아닙니다. 공자님의 말씀에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강하원도 옆에서 한마디를 더했다.
“공자님의 말씀 덕분에 저도 깨닫는 것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명운은 그들의 칭찬에 미간을 좁혔다.
“듣기 좋은 말만 계속 듣다 보면, 현군도 암군이 되는 법일세. 자네들이 날 좋게 생각했다면, 그 생각을 마음속에만 담아 두게.”
그의 말을 들은 경은이 어깨를 으쓱했다.
“공자님, 겸손도 지나치면 병이라 했습니다.”
“겸손이 아니야. 내 스스로 균형을 잡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균형이라고요?”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난 성군이나 명군 같은 사람이 아니야. 듣기 좋은 말에 익숙해지면,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들었을 때, 그것이 충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될 거야.”
강하원은 명운의 이야기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 나이에 어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공자님은 대단하시다.’
그는 명운의 자제력과 판단력이 교주 명증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공자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명운이 도면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새로운 부교주부가 건설될 때까지는 이곳을 주부로 써야 할 것 같아. 각자 저택의 방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생각해 두게.”
그의 말에 세 사람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공자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강하원이 떠나려는 그에게 물었다.
“내일 다시 모이는 것입니까?”
명운은 걸음을 멈추고는 잠시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내일은 너무 늦을 것 같고, 두 시진 뒤에 의견을 묻겠네.”
강하원은 두 손을 모으며 말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두 시진 뒤에 다시 이곳에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명운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밖으로 나왔다.
‘대산으로 돌아온 뒤 게으름을 너무 피웠어.’
그는 지하 연공실을 향했다.
연공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뒤에서 그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공자님!”
명운은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종영세인가?”
종영세가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원가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음?”
“원 장로께서…….”
명운은 원 장로라는 말에 몸을 돌렸다.
“지금 어디에 계신가?”
“정문에 있으십니다.”
명운은 짧게 혀를 찼다.
“쯧, 일단 안으로 모셨어야지.”
종영세가 머쓱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안으로 모신다면…… 어느 곳으로 모실까요?”
서숙은 그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객청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전에는 도면이 있으니 곤란하겠지.’
명운이 말끝을 올렸다.
“수행원이 많던가?”
“아닙니다. 세 명만을 데려오셨습니다.”
“그럼 서재로 모시게.”
“존명!”
명운은 서재로 발길을 돌렸다.
‘후, 원 장로가 찾아왔다면, 아마도 저택 양도에 관한 것이겠지.’
그러나 원승후가 그를 찾아온 목적은 그의 예상과 크게 달랐다.
* * *
원승후는 자신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칠공자의 여유나 무게감은 학풍에서 나오는 것이었군.’
명운의 서재는 고풍스러운 그림과 서화로 둘러싸여 있었다.
‘책이 그에게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일까?’
오공자 명정의 경우, 침실은 물론 서재에까지 무기와 무복을 전시해 자신이 무인이라는 것을 알렸다.
드륵.
문이 좌우로 열리자 명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승후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노복이 부교주님을 뵙니다.”
명운이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미리 언질을 줬다면, 사람을 보내 맞이했을 텐데 미안하게 되었네.”
“노복이 어찌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명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원 가주, 너무 자신을 낮추지 말게.”
그는 인사를 하면서 원승후와 함께 온 세 사람을 살폈다.
‘문무를 겸비한 것처럼 보이는 무인 한 명과 젊은 여인 둘이라.’
무인의 역할은 아마도 강하원과 같을 것이다.
문제는 두 여인이었다.
‘한 명은 세도가의 여식 같고, 다른 한 명은 그녀의 시녀인 듯 보이는데…….’
세도가의 여식이 무슨 일로 자신을 찾아왔을까?
원승후가 오른손을 옆으로 내밀며 일행을 소개했다.
“이쪽은 제 아들인 우현, 그리고 손녀인 영재입니다.”
명운은 소개를 받고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아들과 손녀라. 설마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니겠지?’
그는 좁혔던 미간을 펴고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나는 부교주 명운이라 하네.”
원우현과 원영재, 그리고 그녀의 시녀가 동시에 예를 취했다.
“부교주님을 뵙니다.”
명운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후 원 가주 일행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죠.”
서재의 탁자에는 의자가 넷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 명은 그의 맞은편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명운은 원 가주가 자신의 맞은편에 앉으리라 생각했다. 하나 그의 맞은편에 앉은 것은 그의 손녀인 원영재였다.
그는 원영재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것은 곤란하군.’
원영재는 갸름한 얼굴에 키가 살짝 작은 편이었다. 서숙에서 그녀와 비슷한 여인을 꼽자면, 초예를 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미모는 초예에 미치지 못했다.
모두가 앉자 원승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예고 없이 부교주님을 찾아온 이유는 부교주님께 이 아이를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역시나.
명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설마 했던 바로 그 이유이겠군.’
그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 장로, 그대의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혼례를 앞두고 있는 몸일세.”
명운이 도민국 군주 일함과 혼인을 약속했다는 것은 천마신교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이것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원승후가 오른손을 세우며 그의 말을 받았다.
“부교주님, 제 손녀가 어찌 부교주부의 안주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제 손녀는 그저 부교주님 옆에서 차나 따르고, 시중이나 들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운은 그의 말을 듣고는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순순히 물러가리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군.’
원승후가 노리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안주인 자리가 아니었다.
‘도민국 군주와 혼약이 없더라도 그것은 무리다.’
대산팔가 출신 중에서 정실부인을 세운다면, 처음부터 명운과 접촉한 귀주석가나 세력이 큰 양주천가가 더 유력했다.
그가 생각한 것은 정실부인이 아니라 측실이었다.
‘측실에도 서열이 있다.’
처음 측실이 된 여인과 몇 년 뒤, 측실이 된 여인은 그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들이라도 낳게 되면, 첫 측실은 정실부인이 될 수도 있다.’
원승후가 노린 것은 정실부인이 아니라 명운의 첫 번째 여인이 되는 것이었다.
“어찌 원 소저에게 차를 따르게 시킬 수 있겠나?”
“부교주님, 원가는 명가의 가신(家臣)입니다.”
원가의 여인이 명가의 시녀나 측실이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허허, 원 장로.”
“영재는 괜찮은 아이입니다.”
“…….”
“교주님께서 받아 주시지 않는다면, 이 아이가 어떠한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명운은 원영재에게 거절당한 여인이라는 멍에를 씌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측실은 불가하다.’
그가 시선을 원영재에게 돌렸다.
“그대는 숫자를 아는가?”
원영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 조금 배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상큼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음색이 맑았다.
‘목소리 미인은 처음이군.’
명운이 재차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면 서숙의 일을 조금 도와줄 수 있겠는가?”
원영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살짝 굽혔다.
“소저, 충심으로 공자님을 섬기겠나이다.”
명운은 그녀를 측실이 아닌 가신으로 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명운은 그녀의 직위를 확실히 했다.
“그대는 새로운 주부의 총관을 맡게 될 걸세.”
측실이 아닌 총관.
‘총관이라. 만만한 분이 아니시군.’
원승후는 손녀의 재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신으로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자님께 힘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괜찮을 것입니다.”
명운은 왼쪽에 앉은 원우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원 소저를 조금 빌리겠네.”
원우현이 두 손을 모으며 말을 받았다.
“여식이 공자님을 도울 수 있다면, 원가의 영광일 것입니다.”
명운은 지금 막 생각났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어찌하여 차조차 내오지 않는단 말이냐?”
그가 목소리를 높이자 경은이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그녀는 종영세의 연락을 받고, 급히 서재로 온 터였다.
“으음, 은인가?”
경은의 등장은 명운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종영세가 연락한 모양이군.’
원승후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경은의 위아래를 살폈다.
‘보통 시녀가 아니다. 재색은 물론 총기까지 갖추고 있다.’
그는 명운이 경은을 이름으로 부른 것 또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부교주님의 눈빛과 목소리 또한 달랐다.’
원승후는 명운과 경은의 관계가 심히 걱정되었다.
‘설마 그녀가 부교주님의 첫 번째 측실은 아니겠지?’
경은이 첫 번째 측실이라면 손녀의 입지가 어려워졌다.
“부교주님, 조금 전 소저는 누구입니까? 평범한 시녀 같지 않던데 말입니다.”
명운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은 말인가? 그녀는 내 첫 번째 제자일세.”
원승후가 눈썹을 위로 올렸다.
“벌써 제자가 있으십니까?”
“사정이 있어서 오래전에 제자로 삼았네.”
오래전에 제자로 삼았다.
원승후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약관에 불과한 부교주님에게 오래된 제자가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명운은 자신과 경은의 관계를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조만간 대산을 떠날지도 모르네.”
원숭후는 명운이 화제를 바꾸자 말끝을 올렸다.
“대산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
“서장이지.”
“출정입니까?”
명운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출정보다는 정탐에 가까울 걸세.”
그는 직접 서장으로 가 그곳의 상황을 알아보고자 했다.
“서장에는 이미 공 우사가 나가 있지 않습니까?”
명운은 그의 물음에 반문했다.
“장수가 전장을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어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나?”
원우현은 명운과 아버지의 대화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식견이 보통이 아니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명운의 식견은 그를 훌쩍 넘어 신교좌사 양대충이나 신교우사 공복진과 같았다.
“하면 고수들은 얼마나 데려가실 생각이십니까?”
“그것은 양 좌사와 상의할 생각이네.”
원승후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부교주님, 서장의 산은 청해보다 훨씬 험합니다. 정예로 골라 뽑으셔야 탈이 없으실 것입니다.”
명운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받았다.
“그대의 충고, 잊지 않겠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경은이 차를 가지고 나타났다.
“항산의 화차(花茶)입니다.”
명운은 귀주석가에서 맛을 본 이후, 항산의 화차를 즐겨 마셨다.
“귀한 차로군요.”
원승후는 항산의 화차를 두고 귀하다 했지만, 화차는 운남의 용정차와 비교하면 헐값에 가까웠다.
“그대는 차를 즐기는가?”
원승후가 명운의 물음에 답했다.
“대산의 무인들은 차보다는 술을 즐기지만, 저는 차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명운은 시선을 경은에게 돌렸다.
“은, 원 장로가 가져갈 수 있도록 화차를 준비하게.”
경은이 살짝 무릎을 굽히며 그의 명을 받았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원영재는 조부와 마찬가지로 경은의 행동과 언행을 유심히 살폈다.
‘제자라고 하지만, 행동으로 미뤄 볼 때 시녀장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구나.’
그녀는 경은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공자님,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명운은 원우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엇인가?”
“차후 부교주님께서 광명좌의 주인이 되시면, 영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광명좌의 주인이 된다.
이는 교주가 된다는 말이었다.
“광명좌라. 너무 앞서 나갔군. 교주님께서 들으면 그대는 물론이고, 나 또한 크게 질책할 것일세.”
원우현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명운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업을 이루는 것에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니, 서두르지 말게.”
원승후 또한 원우현이 너무 앞서 나갔다고 생각했다.
‘서두를 필요 없다. 부교주님께서 광명좌의 주인이 된다면, 원가는 적어도 지금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명운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시녀장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순간 원승후의 눈이 빛났다.
“시녀장 말씀입니까?”
“태화전에는 총관이 없으니, 지금부터 시녀장으로 일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군.”
부교주부의 시녀장을 역임한다면, 차후 명운이 교주가 되었을 때 태화전의 시녀장을 맡을 수 있었다.
‘홍비의 자리를 영재에게 내어 준다는 말씀이시다.’
원승후는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녀장도 좋은 자리라 생각합니다.”
경은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시녀장이라면 공자님 곁에 머물 수밖에 없겠구나.’
그녀는 명운의 곁에 아름다운 여인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