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형제들 (5)
“형님.”
명천은 사공자 명준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쯧,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니, 실패한 모양이군.’
명준은 삼공자 명원을 설득하겠다며 길을 나섰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바람을 맞은 난봉꾼처럼 어두웠다.
명천은 그가 명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음을 알 수 있었다.
“왔느냐?”
명준은 어두운 표정을 애써 밝히며 말끝을 올렸다.
“형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명천은 그의 물음에 이마를 찌푸렸다.
“무슨 소식 말이냐?”
“운이 서장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명준은 삼공자 이야기가 아닌 명운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실패를 다른 화제로 덮으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운이?”
“그러합니다.”
명준이 명천의 옆에 자리를 잡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알아보니,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소문이 아니다?”
“현무대 비선들이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운이 두 명의 수행원과 함께 대명궁을 나섰다고 합니다.”
명천은 찌푸렸던 이마를 폈다.
“겨우 둘이란 말이냐?”
명준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호위무사 하나에 시종 하나라 합니다.”
“흠, 최측근만 데리고 떠났다는 말이냐?”
“바로 그렇습니다.”
명천은 쓴웃음을 지은 뒤, 혀를 찼다.
“쯧쯧쯧, 준아.”
명준은 큰형이 혀를 차자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님, 뭔가 잘못된 것이라도 있는 겁니까?”
명천이 목소리를 낮췄다.
“준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넌 아직도 그것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명준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말이었다.
“형님,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세 사람이나 수백 명의 무인이 주변에서 운을 호위하고 있을 것이다.”
명준은 명천의 말에 눈을 깜빡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그것이 정말입니까?”
“머리가 있다면 생각해 봐라. 운의 지금 직함이 무엇이냐? 신교의 부교주가 아니냐? 신교의 부교주가 수행원 둘만 데리고 적진으로 간다면, 적이 가만히 있겠느냐?”
“당연히 기습하겠지요.”
“이는 그 기습을 노린 함정이다. 물론 적들도 운의 주변에 호위가 있으리라 의심은 하겠지.”
명천은 생각했다.
‘뻔히 보이는 미끼를 파천궁이 물 리가 없다.’
그는 이것이 어설픈 계책이라 생각했다.
‘운이 머릿속에서 나온 계책일까? 아니면 계책에 서툰 양 좌사의 머릿속에 나온 것일까?’
명천은 어느 쪽이든 썩 훌륭한 계책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형님 말씀을 듣지 않고 움직였으면 큰일 날 뻔했군요.”
명천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큰일이라니?”
“운에게 살수를 보내려 했습니다.”
명천은 동생의 말에 기가 막혔다.
“살수를 말이냐?”
“일단은 운이 제 위에 있지 않습니까?”
동생이 자신의 위에 있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겠다.
명천은 명준의 어리석음에 속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 질투가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손을 쓰는 것이 이토록 가벼울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준아, 그런 생각은 이후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명준은 순순히 형의 말을 듣지 않았다.
“기회가 날 때 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으음…….”
성격이 사나운 명천조차 말문이 막혔다.
“살수가 불가하다면 수십 명의 결사대를 보내 제거했을 것입니다.”
명천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과 대업을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구나.’
대산에서 천 리가 넘게 떨어진 곳.
파천궁, 이곳에도 명천과 같은 상황에 놓인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파천궁주 천혁이었다.
“불가하다.”
“왜 불가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죽고자 하는 녀석에게는 죽음을 선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살기를 띄운 이는 화왕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명운을 죽이겠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쯧쯧, 아직도 모르겠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이것은 명백한 함정이다.”
천혁은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소수로 움직인다는 소문을 흘렸다는 것은 우리를 유인하기 위함이다.’
그와 화왕의 대화를 듣던 빙왕이 오른손을 세웠다.
“교주님, 이번에는 해 봐도 되지 않을까요?”
빙왕의 지모는 책사인 수왕 못지않았다. 그런 그녀가 화왕과 같은 의견을 표했다.
천혁은 말끝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함정인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냐?”
빙왕이 그의 물음에 답했다.
“교주님, 서장의 지형은 청해와 달리 험난합니다. 이는 매복을 하며 이동하는 것이 힘들다는 뜻입니다. 매복이 힘들면 함정을 파기도 힘들고, 억지로 함정을 파고자 한다면 그들 스스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서장의 험지를 이용해 상대의 계책을 역으로 이용한다.
잘만 한다면 천마신교의 주력을 격파할 수 있었다.
천혁은 그녀의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흠, 빙왕의 말대로 서장의 험준함은 청해와 비교할 수 없다. 매복이 힘든 지점을 골라 역으로 매복을 한다면, 가교 녀석들에게 치명타를 날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 본궁의 위치가 드러날 수도 있다.’
그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흠…….”
그의 고민을 본 수왕이 덧붙이듯 말했다.
“교주님, 우리의 존재를 대산에 알린 것이 밀종이라 합니다. 이 이상 대산과 밀종이 가까워지게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도 가교의 부교주를 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천마신교 부교주 명운이 밀종의 대법사 아랍마와 회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가교의 주력과 정면으로 맞붙게 된다면, 이는 전면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왕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과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어찌 결단을 미루시는 것입니까?”
그녀는 정체를 숨기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천혁은 쉬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아직 전력이 부족하다.’
개개인의 무력은 파천궁이 앞섰다. 하나 숫자에 있어서는 천마신교 쪽이 압도적이었다.
“어렵구나.”
빙왕이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 신에게 맡겨 주신다면, 실수 없이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나 천혁은 명을 내리는 데 주저했다. 그는 말없이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렸다.
툭. 툭. 툭.
‘수왕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빙왕의 지모는 인정했다.
하지만 가장 신뢰하는 것은 수왕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나설 수는 없었다.
‘그가 돌아올 때가 되었다 들었는데 말이야.’
일다향?
아니, 그보다 긴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시녀가 급히 안으로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교주님, 수왕이 도착하였습니다.”
천혁이 반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왕이 도착했단 말인가? 어서 들라 하라!”
잠시 뒤, 이목이 말끔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바로 파천궁의 책사 수왕이었다.
“신, 교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천혁이 반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왔는가?”
수왕은 화왕과 빙왕이 좌우에 나눠 앉은 것을 보고는 생각했다.
‘내가 제때 도착했군.’
그가 두 손을 풀며 말끝을 올렸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천혁이 오른손을 세우며 그의 말을 받았다.
“자네가 없으니, 평안하다고 할 수 없더군.”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닐세. 지금도 자네가 없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네.”
수왕이 말끝을 올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입니까?”
“가교의 부교주가 밀종의 아랍마를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고 하더군.”
“가교와 밀종이 동맹을 맺으려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천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다네. 빙왕은 이번 기회에 가교의 부교주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네.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수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함정일 가능성도 있네.”
“그들이 매복한다고 해도 서장에서 싸운다면 승산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천혁이 재빨리 물었다.
“어째서 그렇지?”
그는 이 대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확실한 이유를 듣고 싶구나.’
수왕이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답했다.
“서장에서 싸운다면 가교는 자신들의 장점을 발휘할 수 없고, 우리는 우리의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가교가 장점을 발휘할 수 없다?”
“교주님 가교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입니까?”
천혁이 그의 물음에 답했다.
“세력이 크다는 것이겠지.”
“세력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머릿수가 많다는 것이겠죠. 서장의 좁은 산길과 험한 지형에서는 수의 우위를 크게 살릴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서장은 가교에게 불리한 전장입니다.”
천혁은 그의 대답을 듣자 얼굴이 밝아졌다.
“반대로 우리의 장점은 무엇인가?”
“본교의 장점은 정예라는 것입니다. 특히 서장의 험한 지형에서는 소수 정예로 다수를 상대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천혁은 그의 계책을 들은 뒤,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훌륭하다!”
수왕은 어떠한 물음에도 청산유수였다. 듣고 있던 빙왕은 내심 화가 났지만, 그것을 밖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쳇, 또 저 녀석에게 공을 빼앗기겠군.’
그녀가 명운을 죽여 공을 세운다고 해도 높아지는 것은 수왕의 위상뿐이었다.
“빙왕.”
천혁의 호명에 빙왕이 두 손을 모았다.
“예, 교주님.”
“가교의 부교주를 척살하라!”
빙왕은 두 손을 모은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
“존명!”
대전에서 물러서는 그녀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언젠가는 수왕에게 한 방 먹여 줄 것이다.’
그녀에게 수왕은 동료보다는 경쟁자에 가까웠다.
* * *
대산을 떠난 지 나흘째.
천준기는 여전히 얼굴이 좋지 못했다.
“부교주님, 강 총관은 어떻게 설득하신 것입니까?”
그가 아는 강하원이라면 명운의 계책을 크게 반대했을 터였다.
“설득하지 않았네.”
천준기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설득하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편지를 한 통 남기고 나왔네.”
“예? 편지만 남기고 오셨단 말입니까?”
“강 총관이 며칠 전부터 내가 퍼트린 소문이 진짜냐고 묻더군. 사실대로 말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게 처리했네.”
사마진은 명운답다고 생각했다.
‘운은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결과로 보여 주는 사람이지.’
천준기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모른단 말인가?”
“부교주님, 말입니다.”
“내가 무슨 어려운 사람이라고 그러는지 모르겠군.”
명운은 시선을 서쪽 하늘로 돌렸다.
“곧 해가 지겠군.”
천준기가 지도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오십 리를 더 가면 홍촌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서두르면 늦은 밤에는 홍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홍촌까지 가기는 쉽지 않겠지.”
“그렇다고 길에서 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명운이 그에게 되물었다.
“길에서 자는 게 왜 문제가 되는가?”
천준기가 그의 물음에 멈칫했다.
“서장도 아닌 청해에서 노숙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안 될 이유라도 있나?”
“부교주님!”
천준기는 혜선단주였다.
젊었을 때였다면 모를까?
최근 십여 년은 노숙과 비슷한 일조차 없었다.
그는 늦더라도 침상 위에서 자고 싶었다.
“사마…… 아니, 경 총관도 있지 않습니까? 여인에게 노숙은 어려운 일입니다.”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서장의 산길에는 마을이 없네. 경은도 노숙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을 것이야.”
천준기는 고개를 사마진에게 돌렸다.
“경 총관, 그대도 부교주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건가?”
사마진은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이죠.”
“허!”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하…… 아닐세.”
천준기는 둘이 아주 죽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사마 단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는 광명정에서 명운의 무위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진즉 이 여행을 때려치웠을 터였다.
“부교주님.”
“자네가 뭐라고 해도 홍춘까지는 안 갈 걸세.”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명운이 앞을 주시하며 말끝을 높였다.
“그러면?”
“이렇게 단출하게 움직이면 역으로 적이 낚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너무 매력적인 미끼는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다.
천준기는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었다.
명운은 그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되면 무익한 여행이 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낚이게 될 걸세.”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라도 있으신 겁니까?”
명운이 답했다.
“서장의 지형이 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라네.”
“지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끼라는 것을 알면서도 낚이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 비슷한 것일세.”
“비슷하다니요?”
명운이 남쪽의 높은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쪽을 보게. 우리가 함정을 판다고 해도 저런 봉우리들 사이에서는 힘들겠지.”
서장의 산길에서는 숫자의 우위를 살릴 수가 없었다.
‘그뿐이 아니야.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소수로도 대군을 막을 수 있다.’
명운은 파천궁의 특성까지 고려해서 계책을 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