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빙왕 (1)
조광과 경은, 그리고 강하원은 냉랭한 얼굴로 마주 앉았다.
“진짜로 사라지셨습니다.”
“지금이라도 뒤를 쫓아야 하지 않을까요?”
경은은 조광의 물음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공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닐 거예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강하원은 바위처럼 침묵을 지켰다. 그는 명운의 정확한 의도를 알고자 했다.
‘공자님께서 우리에게까지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가능한 비밀로 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서장으로 떠난다는 소문이 대명궁 전체에 퍼졌다는 것은…….’
이가 맞물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총관님!”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일까?
그는 조광의 부름에도 답하지 않았다.
“총관님! 지금이라면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조광이 재차 목소리를 높이자 강하원이 멈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무엇이라 했나?”
“지금이라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공자님을 말인가?”
“그렇습니다!”
조광은 명운을 홀로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반면 경은은 명운이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 호위, 그것은 공자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럼, 이대로 공자님을 보내자는 말입니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조광은 강하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총관님의 의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강하원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공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사정이 있을 테지.”
그의 결론은 경은과 같았다.
‘우리가 필요했다면 공자님께서는 말씀하셨을 것이다.’
말을 하지 않고 떠났다는 것은 이번 일에 자신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총관님, 어찌 그런 말씀을…….”
“공자님의 무공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우리가 따라간다고 한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걸세.”
경은이 조광을 설득하듯 말했다.
“공자님께서는 한 번도 어긋나는 일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명운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강하원이 조광을 향해 말했다.
“조 호위, 돌아가서 아랫사람들을 다독이게.”
새로운 저택으로 이사를 한 뒤, 부교주부에는 아랫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그들을 관리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조광은 강하원이 뜻을 굳히자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경은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관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녀가 물러나려 할 때였다.
강하원이 그녀를 불렀다.
“경은.”
경은이 몸을 돌리며 허리를 숙였다.
“예, 총관님.”
“원 소저는 잘 계신가?”
강하원은 부교주부의 시녀장이 된 원영재의 안부를 물었다. 그녀를 보좌하는 것은 바로 경은의 몫이었다.
“원 소저께서는 업무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자네가 많이 도움을 주게나.”
경은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총관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그녀가 허리를 세우자 강하원이 말했다.
“그대는 강한 사람이야.”
“제가 말입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경은은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제 무공은 삼류에 불과합니다.”
무공이 아닌 마음이 강하다.
강하원은 이렇게 생각했다.
* * *
보름 전.
전옥은 사부인 빙왕으로부터 전서를 받았다.
– 가교의 부교주가 미끼가 되어 서장으로 올 것이다. 그의 주변에 호위가 얼마나 되는지 살핀 뒤, 내게 보고하라.
빙왕은 명운의 주변에 상당한 숫자의 호위가 있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전옥은 호위라 불릴 수 있는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호위로 보이는 이는 검을 찬 사내 한 명이다.’
부교주를 따르는 여인의 안장에도 검이 메여 있으나 그녀의 복장은 무복이 아닌 경장에 가까웠다.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해도 그녀는 호위가 아닌 시녀일 것이다.’
전옥은 미간을 좁혔다.
‘설마 내가 상대의 매복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빙왕의 제자 중 무공이 가장 뛰어났다.
‘내가 잡아내지 못할 정도의 매복이라니, 가교 녀석들이 그 정도였나?’
파천궁 무인들은 천마신교 무인들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왜 호위들이 보이지 않는 걸까?”
그녀의 사매가 답했다.
“없으니, 보이지 않는 것 아닐까요?”
“없다고?”
“언니는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호위가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옥은 미간을 좁혔다.
“없겠지.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주변에 호위가 있으리라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는 호위의 숫자를 살피라 하셨지, 많은 호위가 있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한 명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지난번 공격으로 가교의 전력은 크게 상했을 것이다.’
전옥이 미간을 좁힌 채로 말했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아.”
사내가 검을 쥐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저! 그대로 들이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전옥은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사부님께서는 호위의 숫자만을 보고하라 하셨다.”
“이렇게 기다리다가 수왕의 제자들이 선수를 치면 어떻게 합니까?”
빙왕은 물론, 그녀의 제자들 역시 수왕과 수왕의 제자들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앞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던 여인이 말을 더했다.
“곧 밀종의 영역에 들어갑니다. 가교 부교주의 목을 친다면 지금 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명운 일행은 앞으로 닷새 뒤면 밀종의 영역에 도착했다.
‘그들을 치고자 한다면 적어도 사흘 안에는 검을 뽑아야 한다.’
그녀가 사흘로 시간을 좁힌 것은 밀종에서 명운을 마중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지켜보자.”
그녀의 말에 사형제들이 멈칫했다.
“사저!”
“지금이 기회입니다.”
전옥이 말했다.
“한 시진만 더 지켜보도록 하자.”
한 시진.
기다릴 수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사저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빙왕의 제자들은 전옥의 명에 따라 몸을 숨겼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이미 명운 일행에게 읽히고 있었다.
“또 물러나는군요.”
사마진의 말에 명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쪽이 너무 허술해서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군.”
그의 말을 들은 천준기가 혀를 찼다.
“호위를 조금 더 둘 걸 그랬습니다. 부교주님 말씀대로 너무 허술하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 같습니다.”
명운은 시선을 정면으로 옮겼다.
“조금 더 과감하게 들어와 줘도 될 텐데, 아쉽군.”
그는 사방에 기를 뻗으면서 생각했다.
‘저쪽도 언제까지 참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곧 서장 밀종의 영역이었다.
‘앞으로 며칠이 중요하겠군.’
툭. 투두두둑.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준기가 앞서 나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의 산들은 대부분 나무가 없는 돌산이라서 비를 피할 곳이 적었다.
“서두르지 말게. 비를 맞는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명운의 말에 천준기가 말의 속도를 늦추며 말끝을 높였다.
“그럼 이대로?”
“그대로 가세.”
“알겠습니다.”
명운 일행은 비를 맞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걸음을 멈춘 것은 일식경이 더 지나서였다.
천준기가 가장 먼저 튀어나온 바위 아래로 들어섰다.
“후우…… 비를 피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비를 싫어하는 듯했다.
사마진은 말에서 내린 뒤 작은 나무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젖지 않은 수건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 수건으로 머리를 말렸다.
“부교주님께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신 것 같습니다.”
명운 또한 말에서 내렸다.
“만족을 토벌할 때 여러 번 겪은 상황이니까.”
그는 말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안장을 아래로 내렸다.
“만족이라. 그러고 보니 초원에서 그들을 풀어 주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노예로 파는 것보다는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지.”
천준기 역시 말의 안장을 내렸다.
“훗날이라면 차후 몸값을 받기로 한 것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닐세.”
“그러면 무슨 이득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인망을 쌓으면 그들의 힘을 이용할 수가 있지.”
천준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의 힘을 이용하다니요?”
“초원의 부족들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네.”
사마진이 건량을 꺼내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요기부터 하시죠.”
“고맙네.”
사마진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인망과 훗날인가? 역시 운다워.’
천준기가 그녀에게 건량을 받으며 말했다.
“경 총관도 이런 상황에 익숙한 모양이군.”
“자랑은 아니지만, 바닥에서부터 올라왔으니까요.”
천준기는 대산팔가 출신이었기에 바닥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도련님 취급인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니면 말고.”
천준기는 건량을 씹으면서 생각했다.
‘건량을 씹는 게 이십 년 만인가?’
그에게 건량은 낯선 음식이었다.
투두둑. 투두둑.
굵은 빗줄기는 한 시진 이상 계속되었다.
천준기가 계곡 아래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며 말했다.
“서장은 천산과는 다르게 비가 많이 오는군요.”
“이 비가 장강이 되는 것일세.”
“황하는 아닙니까?”
“황하는 우리 청해에서 시작하지.”
천준기는 명운의 대답을 들으며 생각했다.
‘부교주님은 무공만 뛰어난 것이 아니다.’
명운은 지리와 인물, 그리고 학문에 두루 능통했다.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 이상할 정도다.’
명운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배경뿐이었다.
“파천궁 녀석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밀종과 협상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가지고 계십니까?”
“물론이지.”
천준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가 먼저 움직였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우리라 했나?”
“양주천가 말입니다.”
명운이 시선을 빗줄기로 돌렸다.
“어머니가 없는 막내를 주목하기란 쉽지 않았겠지.”
천준기는 그의 음성이 침울해지자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런 실수했군.’
그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부교주님, 서장으로 떠나기 전에 소문을 하나 들었습니다.”
“어떤 소문 말인가?”
천준기가 답했다.
“원가에서 부교주님께 측실을 보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명운보다 사마진이 더 먼저 반응했다.
“원가에서 측실을요?”
명운은 사마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듣고는 오른손을 내저었다.
“그것은 오해일세.”
“오해입니까?”
명운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가의 영애는 지금 부교주부의 시녀장을 맡고 있네.”
“시녀장이라면 측실이 아니라 측근이군요.”
명운이 차갑게 말했다.
“측근이 아니라 감시가 붙은 것이지.”
천준기는 빈말이 아니라 생각했다.
“상대가 원가라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천가에서도 한 명 보내고 싶나?”
그의 물음에 천준기가 쓴웃음을 지었다.
“천가에는 미녀가 없습니다.”
사마진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째서 대산팔가는 여인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그게…… 그렇게 되나?”
천준기는 감이 나쁜 편이 아니었다.
‘사마 단주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군.’
그는 그녀가 명운을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시 연하 취향인가?’
천준기는 그녀의 미모가 뛰어나긴 하지만, 그 뜻을 이루기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나이 차이도 나고, 결정적으로 부교주님에게는 정혼자가 있으니까.’
물론 천마신교의 교주는 아내를 한 명만 취하지 않았다.
현 교주 명증만 해도 정실부인이 둘에 측실이 여섯이었다.
사마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했다.
“부교주부에 호위가 적으니, 양주천가에서 조금 보태는 것이 어떨까요?”
그녀의 물음에 천준기가 어깨를 으쓱했다.
“천가의 일은 내가 아닌 형의 몫이라서 말이야.”
“이제 와 발을 빼는 건가요?”
“허허, 혀에 날이 서 있군.”
명운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대산으로 돌아가면 더 많은 가문이 나와 손을 잡고자 할 것이다.’
아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고, 적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그는 가능한 많은 가문과 손을 잡고자 했다.
“비가 그치지 않는군. 오늘은 할 수 없이 여기서 자야 할 것 같네.”
천준기는 명운의 말에 눈썹을 세웠다.
“이 좁은 곳에서 세 사람이 함께 자는 겁니까?”
“나도 자네와 몸을 붙이고 자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네.”
천준기는 슬쩍 사마진을 바라보았다. 사마진은 그에게 살기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닥치라는 소리군.’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 사마 단주도 있으니, 저는 입을 닫아야겠군요.”
사마진은 생각했다.
‘천 단주가 없었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녀는 머릿속으로 명운과 단둘이 여행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은 천준기의 한마디에 의해 깨어졌다.
“경계 순번은 어떻게 할까요?”
명운이 검을 들며 답했다.
“내가 먼저 서지.”
“부교주님께서 먼저 서시는 것입니까?”
“내가 처음과 끝을 맡지.”
초번과 말번.
경계를 두 번을 서겠다는 말.
천준기가 고개를 흔들며 그의 말을 받았다.
“어찌 부교주님을 두 번이나 세울 수 있겠습니까? 제가 두 번을 서겠습니다.”
사마진 또한 검을 들고 일어났다.
“천 단주는 어제 두 번을 섰으니, 오늘은 제가 두 번을 서겠습니다.”
명운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괜찮네.”
사마진은 괜찮지 않다고 말을 하려고 했다. 하나 다음 순간 명운의 전음이 들려왔다.
– 바위 위에 누군가 있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던 이들이 비를 뚫고 가까이 접근해 왔던 것이었다.
사마진은 심장이 철렁했다.
‘적의 움직임을 놓치다니, 이런 불찰이!’
그녀는 검을 가볍게 쥐고는 전음을 보냈다.
– 미안해.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몰랐어.
명운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했다.
“자! 순번이 정했으니, 두 사람은 쉬도록 하게.”
그는 말을 한 뒤에 기를 사방으로 뻗었다. 이는 상대의 숫자와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