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빙왕 (3)
명운은 자신을 습격한 자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흠, 복장만 보면 진이 사로잡은 자 같은데 무공이 낮으니, 누가 지휘자인지 모르겠군.”
그가 소진을 사로잡으라고 지시한 것은 그녀의 복장이 다른 자들에 비해 화려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가 지휘자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휘자로 보기에는 무공이 다소 부족했다.
사마진이 천준기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아마도 저쪽인 것 같습니다.”
전옥은 천준기와 십여 초식을 겨루고 있었는데, 이미 왼팔에 일검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천 단주를 상대로 이 정도까지 버티고 있을 정도라면…….”
“무공이 제법 뛰어나다는 말이 되겠죠.”
혜선단주 천준기를 상대로 십여 초식을 겨룰 수 있다는 것.
이는 전옥이 일류고수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사형제들이 모두 제압된 것을 확인했다.
‘저 한 쌍의 남녀는 어설픈 호위가 아니었다. 이번 임무는 실패구나.’
빙왕이 염려했던 매복은 없었다. 하나 명운을 호위하는 두 남녀의 무공은 그녀가 예상한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
천준기가 검을 뒤로 미루며 말했다.
“투항해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
그가 전옥을 사로잡으려 한 것은 그녀가 지휘자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전옥은 그의 권유에 말끝을 올렸다.
“이대로 끝날 것 같으냐?”
천준기가 거리를 좁히며 되물었다.
“이대로 끝나지 않으면?”
말끝이 나기도 전에 전옥이 소매에 감춰 둔 암기를 뿌렸다.
‘만천화우?’
천준기는 눈살을 찌푸리며 암기를 쳐 냈다.
타타타타탕!
불꽃과 함께 암기가 모두 튕겨 나갔지만, 그가 암기를 쳐 내는 사이 전옥이 경공을 펼쳐 거리를 벌렸다.
“이런, 이런 내가 실수를 하고 말았군.”
전옥은 빙왕에게 공격이 실패했으며 뛰어난 고수가 명운을 호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
‘사형제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만이라도 어떻게든 돌아가야 한다!’
하나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윽…….”
짧은 신음.
이윽고 두 다리에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암기인가?”
암기가 아니었다.
그녀의 두 다리에는 심한 상처가 나 있었다.
암기로는 이런 상처를 만들 수 없었다.
천준기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검기를 멀리 뻗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군.”
거리가 벌어지자 허공을 격한 채 검기를 뿌렸던 것이었다.
전옥은 모든 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기를 이토록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다니, 격이 다르구나.’
그녀는 손에 든 검을 천준기를 향해 던졌다.
쉬익!
천준기는 여유 있게 그녀의 검을 튕겨 냈다.
타앙!
“소용없다!”
그가 한 걸음을 더 내디뎠을 때였다.
전옥은 품에서 꺼낸 비수로 재빨리 자신의 목을 찔렀다.
푸욱.
붉은 핏물이 대지를 적셨다.
천준기는 그 광경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이번에는 정말로 실수했군.”
지휘자를 사로잡았다면, 이번 습격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나 평범한 무인들이 알지 못하는 파천궁의 상황을 알 수도 있었다.
하나 그녀가 자결함으로써 그들은 이런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명운은 자결한 전옥을 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목숨을 끊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니, 독기가 대단한 여인이군.”
그는 파천궁을 쉬이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저런 독기는 아라산과 같구나.’
천산의 아라산은 그 무공이 높지 않았으나 독기나 치열함만은 중원의 그 어느 문파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았다.
천준기가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지휘자를 잡는 데 실패했습니다.”
명운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전옥의 죽음은 그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심문은 자네가 맡겠나?”
천준기는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목숨을 끊는 데 주저함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의 입을 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 부교주님이나 사마 단주에게 맡길 수는 없겠지.’
세 사람 중 고문에 가까운 심문을 맡을 사람은 그밖에는 없었다.
“손가락을 하나씩 부러뜨릴까요?”
사마진이 검을 거두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정도로 될까요?”
천준기가 찌푸렸던 이마를 펴며 대답했다.
“시작은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네.”
그가 손을 쓰려는 찰나 사마진이 입을 열었다.
“이번 심문은 제가 맡죠.”
그녀가 앞으로 나서자 명운이 오른손을 뻗었다.
“진, 이번 일은 천 단주에게 맡기세.”
사마진은 명운이 자신을 막자 말끝을 올렸다.
“고문처럼 잔혹한 일은 여인의 몫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명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솔직하게 말하지. 가능하면 그대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네.”
이 한마디는 진심이었다.
그는 사마진이 누군가를 고문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시킬 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낫다.’
사마진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교주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야만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을 테니까요.”
야만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겠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만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진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지? 설마…….’
그가 고개를 갸웃한 순간, 사마진이 가장 먼저 혈도가 찍힌 파천궁 제자 앞에 섰다.
“이름이 뭐죠?”
파천궁 제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혈도가 찍혀 있기도 했지만, 그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어 대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사마진은 파천궁 제자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고문에 대한 공포로 마음이 크게 요동치고 있군. 이런 상태라면 어렵지 않지.’
그녀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저기요? 내 말이 들리나요?”
앞서 언급했지만, 그는 혈도가 찍혀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물음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잇달아 말을 걸었다.
잠시 뒤, 사마진은 파천궁 제자가 말을 할 수 있도록 혈도를 풀었다. 그것을 본 천준기가 미간을 좁혔다.
“사마 단주가, 놈의 혈도를 풀었습니다.”
명운은 동요하지 않았다.
“괜찮네.”
천준기는 괜찮다는 말에 말끝을 올렸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자결이라도 하게 된다면 애써 잡은 포로 하나가 줄어들게 됩니다.”
명운이 시선으로 사마진을 가리켰다.
“보게.”
사마진과 마주한 파천궁 제자는 달아나거나 자결하는 대신 그녀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하고 있었다.
“파천궁은 어디에 있죠?”
“파천궁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열흘쯤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곳에 사람은 얼마나 있나요?”
“남녀노소를 모두 합한다면 오백은 족히 될 것입니다.”
명운은 그녀가 어떠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섭혼대법(攝魂大法).’
섭혼대법은 미혼대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무공이었다.
미혼대법이 사람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든다고 하면, 섭혼대법은 혼탁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잠깐이지만 상대를 자신의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오백이군요. 그러면 파천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구죠?”
“교주님.”
파천궁주의 정식 호칭이 교주라는 말에 사마진은 잠시 미간을 좁혔다.
“교주님이시군요.”
명운과 천준기는 그녀 옆에 서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쯧, 저쪽도 교주님이군요.”
“파천궁은 본교와 뿌리가 같다고 들었네.”
“이곳에서 남쪽으로 열흘이라. 과정이야 어쨌든 파천궁의 위치를 파악했으니, 대성공입니다.”
천준기는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노숙을 며칠이나 한 것인지 모르겠군.’
명운 또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릴 줄은 몰랐네.”
그는 사마진이 섭혼대법을 연마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정보를 얻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고문을 이용해서 얻은 정보 중 절반 이상은 거짓이다. 하나 섭혼대법을 이용한다면 진실에 가까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마진은 계속해서 섭혼대법으로 포로를 심문했다.
“누가 지휘자였죠?”
“대사저.”
천준서는 대사저라는 말을 듣고는 자신과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제자를 떠올렸다.
“역시 그녀가 지휘자였군요.”
명운은 당연한 대답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무공이 가장 뛰어났으니까.”
사마진은 계속해서 질문하려 했지만, 포로는 더는 대답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털썩.
사마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자는 여기가 한계인 것 같네요.”
명운은 쓰러진 자의 처리는 묻지 않았다.
‘섭혼대법을 저 정도까지 사용했다면 당분간은 제대로 된 정신으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천준기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경 총관, 정말 대단하네. 그대가 없었다면 이렇게 매끄러운 일 처리는 바랄 수 없었을 거야.”
사마진이 입술을 오른쪽으로 올리며 그의 말을 받았다.
“천 단주께서 해야 하는 일을 제가 대신했으니, 이번에는 천 단주께서 제게 빚을 진 것이에요.”
천준기는 그녀의 한마디에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빚이라니, 함께 공을 세운 것이지.”
포로는 아직 두 명 더 남아 있었다.
“더 물어볼까요?”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이곳에서 최대한 정보를 뽑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그는 곧 파천궁의 다른 무인들이 접근하리라 생각했다.
‘파천궁 세력이 전부 합해 오백이라 했으니, 쓸 만한 무인만 추려도 이백은 넘을 것이다.’
파천궁 제자는 앞서 동료가 모든 것을 술술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섭혼술을 쓰다니, 가교 놈들의 수법은 무섭구나.’
그는 눈을 감으며 어떻게든 섭혼술에 걸리지 않으려 했다.
사마진은 그의 앞에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강제로 눈을 뜨게 해야 할까요?”
명운이 짧게 물었다.
“그것이 가능한가?”
“가능하긴 하죠. 하지만 큰 고통이 수반될 테니,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큰 고통.
그 한마디에 파천궁 제자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고, 고문을 하겠다는 말인가?’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눈을 감았다.
명운은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진의 섭혼술은 눈보다는 소리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눈을 감는 것은 그녀의 수법에 더 쉽게 말려들 뿐이다.’
그는 이런 사실을 알기에 사마진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며, 그녀가 쉬이 섭혼술을 쓸 수 있도록 도왔다.
사마진은 파천궁 제자의 뒤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그의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군요? 제가 보기 싫은 모양이네요.”
파천궁 제자는 생각했다.
어떠한 고문을 가하더라도 눈을 뜨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것은 역으로 섭혼술을 쉽게 만들어 주었다.
“들리세요? 제 말이 들리시죠?”
소진은 사마진이 달콤한 목소리로 묻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녀의 섭혼술은 눈이 아닌 귀를 향하고 있다. 이 사제는 곧 모든 것을 불겠구나.’
사로잡힌 파천궁 제자의 이름은 이원, 그는 소진의 사제 중 한 명이었다.
모든 것은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잠시 뒤.
이원은 앞선 파천궁 제자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술술 불기 시작했다.
“오공자 명정을 죽인 사람은 누굴까요?”
이 질문에 명운과 천준기의 시선이 파천궁 제자에게 쏠렸다.
‘이런 것도 대답할 수 있을까?’
파천궁 제자가 입술을 움직였다.
“풍왕이 죽였다.”
“풍왕이요?”
“풍왕은 강하다.”
사마진은 풍왕이라는 고수의 이름을 듣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흠, 풍왕이라? 도왕이나 검왕과 비슷한 것일까?’
그녀가 계속해서 물었다.
“적풍대주를 죽인 것도 그인가요?”
“그럴 것이다.”
“확실히는 모르는 일인가요?”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렇군요. 그 자리에 없었군요.”
사마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천마신교에는 파천궁의 첩자가 있을까요?”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었다.
명운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런 질문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진은 사건의 맥을 정확히 꿰뚫고 있구나.’
그는 파천궁의 위치와 세력만을 생각했지, 십만대산과 대명궁에 잠입한 첩자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천준기 역시 그녀의 질문에 감탄했다.
‘하, 자명단주는 그냥 된 것이 아니군. 이곳에서 파천궁 첩자의 정체를 밝혀낸다면 그녀의 공이 더욱 커질 것이다.’
사마진이 처음 자명단주가 되었을 때, 천준기는 그녀가 미모 덕을 크게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미모를 샘하는 자들은 그녀가 교주와 동침해서 단주직을 얻었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하나 그녀는 미모 이전에 자명단주에 오를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첩자가 무엇인지 모르시나요?”
파천궁 제자가 대답했다.
“있다.”
그의 대답에 명운과 천준기가 동시에 탄성을 터트렸다.
“하…….”
“이런, 결국 있었군요.”
천준기가 말을 덧붙였다.
“대명궁에 첩자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확인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마진은 여전히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있군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요?”
명운은 생각했다.
‘여기서는 모른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는 자신들을 습격한 자들이 높게 쳐주어도 파천궁에서 중간 정도밖에는 안 되는 자들이라고 보았다.
‘중간 정도 되는 자들이 모든 것을 알 턱이 없지.’
이윽고 파천궁 제자가 대답했다.
“삼공자.”
순간 명운과 천준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셋째 형이…….”
“이거 삼공자가 파천궁과 연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명운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들은 기분입니다.”
천준기 역시 그와 같은 기분이었다.
“뒷맛이 씁쓸하군요.”
이번에는 질문한 사마진 또한 적지 않게 놀랐다. 그러나 그녀는 셋 중 가장 침착하게 대응했다.
“삼공자군요. 그의 이름을 알고 있나요?”
파천궁 제자가 대답했다.
“명원.”
그녀는 다른 가문의 삼공자를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차 이름을 확인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대답으로 바뀐 사실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