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빙왕 (7)
현검의 검신은 검었지만, 검은 검신에서 뿜어지는 검기는 시릴 정도로 푸른색이었다.
빙왕은 검기의 성질에 따라 그 색이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릴 정도로 푸른색이라면……. 한음진기인가?’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후후후…… 어리석구나. 본왕의 별호가 빙왕이라는 것을 잊은 모양이구나.’
빙공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한음진기를 극성까지 연공해야 했다. 다시 말해 그녀는 한음진기를 극성으로 연공한 적이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본왕에게 한음진기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은 그녀가 예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갔다.
현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는 한 줄기가 아니었다.
슈슈슈슈슈슉!
그녀를 노리는 검기는 무려 수십 가닥.
빙왕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기를 이렇게까지 쓸 수 있다고? 아니, 그보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회복했다고?’
몇 가닥이면 모를까?
수십 가닥의 검기가 동시에 쏟아진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 정도라면 힘을 회복한 것이 아니다. 놈은 애초에 힘을 다 쓴 것이 아니야!’
빙왕은 검에 진기를 불어넣은 뒤, 그것을 맹렬히 돌려 쏟아지는 검기를 막고자 했다. 그러나 푸른색 검기는 그녀를 향해 쏟아지는 대신 허공에서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본능이 그녀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 도망쳐라. 이것은 막을 수가 없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이 좁은 벼랑길에서 대체 어디로 피한단 말인가?
그녀는 푸른색 섬광이 허공에서 밝게 빛나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검강? 마, 말도 안 되는 일이!”
이윽고 명운의 외침이 그녀의 귓전을 때렸다.
“한령포(寒零砲)!”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힘.
그 거대한 힘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빙왕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격이 다르다고.
‘이것이 가교의 부교주?’
콰콰쾅!
한령포가 내리꽂히자 그녀의 백검이 설탕으로 만든 막대처럼 녹아내렸다.
파파팍!
한령포의 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콰앙!
다시 한번 폭음이 울리며 빙왕과 그 주변의 모든 것이 날아갔다.
솨아아아아아아아!
하늘로 떠오른 먼지와 사방으로 뻗어 나간 기파.
그 모든 것이 가라앉자 빙왕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녀는 넝마가 된 옷을 걸친 채 오른손으로 바위를 잡고 서 있었다.
“쿨럭.”
자허도장처럼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하나 입에서는 붉은 핏물이 연신 흘러나왔다.
‘내상이 심각하다.’
아니, 한령포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왼팔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뼈가 부러진 것은 물론, 신경까지 손상된 것 같았다.
‘다리는…….’
두 다리도 왼팔 못지않았다.
그저 서 있을 뿐.
경공을 전개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런 상태라면, 도망도 칠 수 없겠군.’
쉽게 말해 지금 그녀의 무위는 삼류 무인보다 못했다.
명운이 그녀를 바라보며 짧게 말했다.
“그걸 버텼군.”
빙왕은 웃고 싶었다. 하지만 웃을 수 있는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남은 힘을 쥐어짜 질문을 던졌다.
“너는 누구냐?”
그녀는 천마신교의 막내 공자가 이런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자가 교주 명증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명운이 그녀의 물음에 반문했다.
“이미 내 신분을 밝혔을 텐데?”
빙왕은 그의 반문에 얼굴을 찡그렸다.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믿고 믿지 않고는 그대의 자유이지.”
“큭…….”
명운은 승부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뛰어난 무공을 지닌 자다. 하지만 한령포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다.’
화산파의 검선이었다면 그의 한령포를 어떻게든 흘려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즉, 빙왕의 무위는 검선 아래라 할 수 있었다.
‘용두방주와 비슷할까?’
그를 밀어붙였던 초반의 무위를 생각한다면, 빙왕을 더 높이 평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용두방주와 싸울 때 명운은 용맥의 힘을 빌리고 있었다. 그것을 감안한다면, 그녀의 무공이 용두방주와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라.”
빙왕은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목숨을 구걸하라 말하는 것이냐?”
그녀는 가교의 고수에게 목숨을 구걸하면서까지 살아남을 생각이 없었다.
‘내게 남은 길이 있다면, 그것은 제자들의 뒤를 따르는 것뿐이다.’
패한 무인에게 남아 있는 길은 오직 죽음뿐.
빙왕은 앞서 전사한 제자들의 뒤를 따르고자 했다.
명운은 그녀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본교와 파천궁은 그 뿌리가 같다고 했다.”
빙왕은 그의 한마디에 목소리를 높였다.
“성존의 가르침을 벗어난 것은 우리가 아닌 너희 가교다!”
명운은 그녀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대신 내력이 실린 목소리로 물었다.
“성존의 가르침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빙왕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대답했다.
“성존께서는 너희 가교처럼 타협하지 않고, 비열하고 타락한 무림맹을 토벌하고자 하셨다.”
천마신교와 파천궁의 갈라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무림맹 정벌이라는 말이었다.
명운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성존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한 모양이구나.”
빙왕은 그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무엇을 안단 말이냐? 성존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바로 본교다!”
명운은 얼굴을 굳혔다.
“성존의 가르침은 곧 강자존(强者尊)이다. 그것을 설마 모른다고 하지 않겠지?”
강자존.
강함이 정의이고, 강함이 곧 올바름이고, 강함에 대한 추구가 세상의 전부이다.
무공 또한 강함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빙왕의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
“그, 그것은…….”
강자존은 마도지존 천마가 펼치고자 했던 이상향.
그녀는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명운이 가르치듯 말했다.
“강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부끄럽다면, 진정으로 성존을 따르는 것이 아닐 것이다.”
빙왕은 말문이 막혔다.
명운은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 주었다.
그런 그를 강자가 아니라 할 수 없었다.
‘하나 그것만으로 머리를 숙이기에는…….’
원한이 깊었다.
그러나 그 원한조차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강자존이었다.
명운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파천궁의 궁주가 나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로 돌아가도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머리를 조아려라.”
그는 빙왕을 베는 대신 무릎 꿇리고자 했다.
‘그녀를 베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파천궁 전부를 베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파천궁과 천마신교의 싸움은 무림맹을 이롭게 할 뿐이었다. 그는 파천궁을 완전히 멸하기보다는 흡수하고자 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
빙왕이 입을 열었다.
“지금은 확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명운의 미간에 작은 골이 파였다.
“파천궁주와 내 무공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인가?”
빙왕이 대답했다.
“본교 교주의 진짜 실력을 확인하지 못해서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 그 아래 위치한 자들의 무공을 바탕으로 예상해 본다면, 당신과 본교 교주의 실력은 박빙일 것입니다.”
박빙.
이것은 명운이 원한 대답이 아니었다.
‘나와 박빙이라. 그렇다면 파천궁주의 무공이 무극에 이르렀다는 뜻인가?’
만일 파천궁주의 무공이 무극에 이르렀다면, 파천궁 정벌은 매우 힘들어질 터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지?”
그의 물음과 동시에 빙왕의 자세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적대적인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두 분의 실력이 확실해지면 제 길을 정하겠습니다.”
더 강한 쪽에게 복종하겠다.
그녀는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명운으로서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냥 돌아가겠다는 말인가?”
빙왕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당신께서 놀라운 무공과 강함을 보여 주셨으니, 그냥 돌아가지는 않겠습니다.”
“하면?”
“두 가지 사실을 알려 드리는 것으로 예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명운은 검을 아래로 내렸다.
“두 가지 사실이라.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면 좋겠군.”
“충분히 도움이 되는 것일 것입니다.”
빙왕은 가교에 대한 복수와 투쟁심을 어렸을 때부터 주입 받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이 감화된 것은 마도지존이었던 천마의 가르침이었다.
강자존을 따르는 것.
그녀는 마도를 따르는 이상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삼공자에 대한 사실입니다.”
“셋째 형의 배신 말인가?”
명운 일행은 섭혼대법을 이용해 삼공자 명원의 배신을 알아냈다.
“그것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음, 더 자세히 말하라.”
“삼공자의 배신은 수왕이라는 자의 계책에 따라 심어진 거짓 정보입니다.”
“수왕?”
“문과 무, 모두 뛰어난 자입니다.”
명운이 물었다.
“그대와 비교하면 어떠한가?”
“예전에는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저보다 반걸음 정도 더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문과 무에서 빙왕보다 반걸음 앞선 자.
‘그녀보다 반걸음 앞서 있다면, 내가 제압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수왕을 이긴다고 할 수 없었다.
‘좌사와 우사, 두 사람 모두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무극에 이른 교주 명증을 제외한다면 수왕과 겨룰 수 있는 것은 부교주 유청뿐이었다.
“날 속이기 위해서 제자들을 희생시켰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수왕의 계책은 혹시 패주했을 때를 대비한 것이고, 이쪽은 이기리라 생각하고 제자들을 보낸 것입니다.”
명운은 가볍게 혀를 찼다.
“쯧, 내가 많이 얕보인 모양이군.”
천준기와 맞섰던 전옥을 제외하면 파천궁 제자들의 무공은 사신대 무인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했다.
“상대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은 제 실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빙왕은 두 가지 사실을 알려 주겠다고 했지만, 이런저런 명운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하고 있었다. 이는 그녀의 마음이 강자존에 의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두 번째는 무엇인가?”
빙왕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대답했다.
“당신과 함께 왔던 이들을 습격하고자 하는 이가 있습니다.”
명운은 습격하고자 하는 자에 대해서 그녀에게 이미 들은 바 있었다.
“그대와 같은 실력을 지닌 자라고 했던가?”
“무력만 따지면 저보다 나을 것입니다.”
명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흠……. 다들 그대보다 낫군.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화왕이라는 자입니다.”
“화왕?”
명운은 앞서 풍왕이라는 자가 적풍대를 전멸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풍왕과 빙왕에 수왕과 화왕이라. 지왕이나 천왕도 있을까?’
빙왕이 그의 마음을 알아챈 듯 상세히 답했다.
“본교에는 수풍빙화, 이렇게 네 명의 왕이 있습니다.”
그녀와 같은 수준의 고수가 궁주를 포함해서 적어도 넷은 더 있다는 뜻이었다.
“흠, 좋은 소식이 아니군.”
“화왕은 피에 굶주린 자입니다. 당신께서 동료를 구하고자 하신다면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빙왕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화왕은 확실히 위험한 자였다.
“잔꾀를 쓰는 것은 아니겠지?”
빙왕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제가 잔꾀를 쓴다고 해도 꿰뚫어 보실 분이라 생각합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훗, 우문현답이었군. 좋아,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비교할 시간을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처신을 잘하도록!”
명운은 그녀에게 명을 내린 뒤, 경공을 전개했다.
쉬익!
바람 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가 떠나자 홀로 남은 빙왕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교의 칠공자이든 아니든 그가 강한 것만은 사실이다.”
명운이 파천궁주를 꺾는다면…….
그녀는 그를 섬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강자존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