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90)
190화 정중지와(井中之蛙) (4)
천혁은 조카가 무사히 귀환했다는 말에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 아이가 죽었다면 누이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얼굴을 굳히며 명을 내렸다.
“수왕.”
“속하, 교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지금부터 소진을 모든 임무에서 제외한다.”
수왕은 파천궁주의 명에 두 손을 모았다.
“존명!”
천혁의 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진 장로에게 사람을 보내 이번 일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라.”
그는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소식을 알고자 했다.
“알겠습니다. 진 장로에게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천혁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수왕, 두 번의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알고 있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좋다. 가라.”
수왕은 뒷걸음으로 물러나 왔다.
쿵.
그는 문이 닫히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후우…….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사왕 중 둘을 잃은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크나큰 손실이었다.
“가교에 화왕을 이길 수 있는 자가 있을 줄이야.”
빙왕은 몰라도 화왕의 전사는 그의 예상 밖이었다.
“그나마 기책을 남겨 둔 것이 있어 다행이군.”
그가 떠올린 기책은 바로 빙왕의 제자들에게 심어 둔 거짓 정보였다.
그러나 그의 기책은 빙왕 덕분에 깨어진 지 오래였다.
“수왕님!”
그를 부른 것은 무복을 차려입은 사내였다.
수왕은 무복을 입은 사내를 보고는 속으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군.’
사내가 다가와 물었다.
“교주님께서 무엇이라 하십니까?”
수왕은 그의 물음에 담담하게 답했다.
“교주님께서는 이번 일에 대한 조사를 명하셨다.”
“그것뿐입니까?”
“그것뿐이다.”
사내는 대번 눈썹을 곤두세웠다.
“어찌 그러실 수 있단 말입니까!”
그는 바로 전사한 화왕의 동생 무자현이었다.
수왕은 그의 분노에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상대의 함정을 꿰뚫어 보지 못한 것은 나의 실책이다.”
무자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수왕님, 그것이 다입니까?”
수왕이 그를 다독이듯 말했다.
“자현, 지금은 형의 죽음을 납득하기 힘들 테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무자현은 쉬이 물러나지 않았다.
“교주님께서 움직이지 않으신다면, 저 혼자라도 대산으로 떠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막말인가?”
“말리셔도 소용없습니다.”
슈욱!
수왕의 손이 무자현을 향했다.
무자현은 급히 어깨를 틀며 내력을 일으켰다.
‘이쪽도 쉽게 당하지 않는다!’
그는 자현돌격대라는 자신만의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었다.
상대가 수왕이라고 해도 호락호락 당할 생각이 없었다.
탁!
어느새 수왕의 손이 그의 목에 닿아 있었다.
‘이럴 수가?’
수왕이 손을 쓰기 직전까지 실력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수왕의 실력 차이는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컸다.
“자현, 이런 실력으로 복수를 하겠다고?”
무자현은 할 말이 없었다.
“…….”
“네 형을 쓰러뜨린 자는 빙왕 또한 쓰러뜨렸다. 날 이기지도 못하면서 그 두 사람을 쓰러뜨린 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은가?”
수왕은 손을 거둔 뒤 몸을 돌렸다.
“자현, 복수를 원한다면, 실력을 키워라. 나보다 더 강해지면, 그때는 네가 원하는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자현은 주먹을 꾹 쥐었다.
“언젠가는 수왕님을 넘어설 것입니다.”
수왕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언젠가는 인가? 흠, 복수심이란 감정으로 강해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는 강해지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 * *
“이럴 수가…….”
명운이 말을 잇지 못한 것은 천준기의 시신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파천궁의 짓이 아닐까요?”
사마진은 화왕이 풀어 준 소진과 빙왕의 제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의 짓이 분명하다.’
명운은 그녀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미간을 좁혔다.
“발자국이 있어.”
미약하지만 누군가 경공을 펼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사마진은 몸을 숙여 발자국을 확인했다.
“한 명이 아니군요.”
명운이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수야.”
사마진은 그의 한마디에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부교주님 말씀대로 고수군요. 저희가 사로잡은 자들 같지는 않네요.”
명운이 다시 발자국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 진과 천 단주가 죽인 파천궁 제자들의 시신도 사라져 있었어.”
사마진은 이마를 찌푸린 채로 대답했다.
“저희가 옮기진 않았어요. 천 단주의 시신을 가져간 이들의 짓일까요?”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사마진은 그에게 존대를 그는 그녀에게 하대하고 있었다. 이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분명하게 정리되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그렇다면 지금도 누군가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수도 있네요.”
명운은 기를 사방으로 뻗었지만,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가까운 곳에는 없다.’
기가 닿지 않는 먼 곳에서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화왕이라는 자의 무공도 그렇고. 만만치 않은 자들이군.”
사마진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부교주님과 같은 생각이에요.”
그녀는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고 생각했다.
‘대산이라는 작은 우물 안에서 안주하고 말았어.’
명운이 구해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치욕적인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 분명했다.
“천 단주의 시신을 찾는 것은 무리겠지?”
사마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무리일 것 같네요.”
“대산으로 돌아가야겠어.”
명운은 근처에서 말을 한 필 찾았다. 그 말은 사마진이 타던 것이었다.
“진의 말을 찾다니, 운이 좋았어.”
그는 사마진을 가볍게 들어 말 위에 올렸다. 그러자 그녀가 물었다.
“부교주님은요?”
“진이 입은 부상은 가볍지 않아.”
자신이 아닌 사마진이 말을 타야 한다는 말이었다.
사마진은 생각했다.
‘말을 함께 타도 괜찮지 않을까?’
소년 시절의 명운이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이야기였다.
하나 지금 그의 키는 사마진보다 훨씬 컸다.
“그러고 보니, 부교주님의 말은 천리마 아니었나요?”
“마군 말인가? 도민국 군주가 선물로 준 녀석이었지.”
“영특한 말이니, 돌아오지 않을까요?”
명운은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는 마군이 계곡 아래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했다.
“돌아와 준다면 좋겠지.”
명운은 고삐를 쥐고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마진은 정이 가득이 담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죠?”
“일단 진의 상처를 치료해야지. 약혼은 그다음 일이야.”
사마진이 얼굴을 붉히며 그의 말을 받았다.
“제 이야기 말고요.”
“진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부교주님께서 파천궁을 어떻게 상대하실지 듣고 싶어요.”
명운이 앞을 주시하며 말했다.
“일단은 지켜볼 수밖에.”
“묘책은 없는 것일까요?”
사마진은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명운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묘책이라. 그런 것이 있다고 착각하기도 했지.”
그의 한마디는 탄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부교주님, 착각이라니요. 자책하지 마세요.”
“자책하지 않을 수 없어. 천 단주가 전사했고, 하마터면 진까지 잃을 뻔했으니까.”
명운은 생각했다.
‘화왕이라는 자가 부하들을 앞세웠다면, 진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과한 생각이 아니었다.
화왕이 부하들에게 경계를 서게 했다면, 명운은 사마진을 향해 떨어지는 칼을 쳐 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진이 슬며시 화제를 돌렸다.
“이번 싸움, 어렵겠죠?”
“그렇겠지.”
순간 그녀가 통증 때문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
명운이 상처에 금창약을 발랐지만, 그것은 상처가 덧나지 않게 하는 것이지 통증을 막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진, 혈도를 찍어 줄까?”
정신을 잃으면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마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요. 부교님께서 옆에 계시니까요.”
“괜찮겠어?”
“정말이에요.”
사마진의 목소리는 과거와 달리 매우 부드러웠다.
‘진은 원래 이렇게 나긋나긋한 여인이었나?’
그녀의 부드러움은 경은 이상이었다.
“진, 빙왕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했어.”
“어떤 말인가요?”
“셋째 형의 배신은 거짓이다.”
사마진은 섭혼대법의 효용성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녀는 파천궁 제자들이 거짓을 말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혼란을 주고자 한 말이 아닐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았어.”
“그렇다면 부교주님께서는 적의 말을 믿으시는 건가요?”
“적이라.”
사마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가요?”
“미묘한 자라 할 수 있지.”
사마진은 명운과 빙왕 사이의 일을 몰랐기에 눈을 가늘게 뜰 수밖에 없었다.
“혹시 빙왕이라는 자 여인인가요?”
명운은 속으로 뜨끔했다.
‘여인의 육감은 무섭군.’
그는 말을 빙 돌렸다.
“나와 파천궁주, 둘 중 더 강한 자에게 고개를 숙이겠다고 하더군.”
“설마 그 말을 믿으신 건가요?”
“반쯤은.”
사마진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부교주님께서는 사람이 너무 좋으세요.”
명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별로 그렇지도 않아.”
“아뇨. 그래요.”
그녀가 딱 잘라 말하자 명운은 머쓱한 얼굴이 되었다.
“천 단주, 좋은 사람이었지?”
사마진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예, 신교에서 드물게 괜찮은 사람이었죠.”
천준기.
그는 야심도 크지 않았고, 살기 또한 짙지 않았다.
“그가 죽은 것은 내 탓이야.”
사마진은 앞서 그가 자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제를 돌린 바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이 화제로 돌아오고 말았다.
“부교주님 탓이 아니에요.”
“이번 계책을 짜고 실행한 것은 전부 나야.”
“부교주님.”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사실은 변치 않아.”
그는 화왕의 목을 벤 뒤, 그 머리를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화왕의 목으로 천가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으면 좋겠구나.’
사마진은 재차 화제를 바꾸고자 했다.
“적풍대주를 벤 자가 풍왕이라는 자였죠?”
“그랬지.”
“빙왕이라는 자도 있었다고 하니, 파천궁에는 몇 명이나 되는 왕이 있는 것일까요?”
“빙왕의 말에 따르면 넷이라고 하더군.”
“넷인가요?”
명운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수풍빙화라고 하더군.”
사마진은 자신과 싸운 자가 화염도를 쓴 것을 기억했다.
“수풍빙화라. 그렇다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수왕이라는 자뿐이군요.”
명운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곧 그도 나타나겠지.”
사마진이 다시 말을 건네려는 순간,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
소리는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누군가 이쪽으로 오는군.”
“적일까요?”
“적이라면 곤란하겠지.”
사마진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설마 수왕이라는 자는 아니겠지?’
이윽고 말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데 말 위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주인이 없는 말이라고?’
다음 순간 명운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군이군.”
마군은 그와 함께 수많은 전장을 누빈 천리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