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정중지와(井中之蛙) (7)
서장의 이름 없는 산 아래.
두 고수는 십여 걸음의 거리를 두고 섰다.
한 명은 검은 검을 들고 있었고, 한 명은 날이 두꺼운 대도를 들고 서 있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오게.”
검을 든 자는 명운이었고, 대도를 든 자는 양대충이었다.
“제가 선공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왕도 선공을 했네.”
대도를 쓰는 화왕과 같은 조건으로 하자는 말.
“알겠습니다.”
양대충은 두 손으로 대도를 잡았다. 그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이쪽의 전력을 막지 못한다면, 대산의 주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십만대산의 주인이 될 사람이라면 자신의 공격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휘익.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그의 대도에 검은 기운이 일어났다.
명운은 그것을 보고는 눈썹을 세웠다.
‘마기(魔氣)인가?’
검은색 기운은 현기(玄氣)라고도 했다.
중원에서는 이 현기를 사용하는 문파를 찾을 수가 없었다.
‘현기는 토납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검은 기운이 대도 전체에 퍼지자 양대충이 경고하듯 말했다.
“이제 가겠습니다.”
척!
명운이 현검을 세우며 그의 말을 받았다.
“실전에서 그런 경고를 하는 상대는 없네. 자네의 전력을 알기 위한 싸움이니, 진심으로 싸우게.”
양대충은 명운에게 한 방 먹었다고 생각했다.
‘흐흐흐, 이쪽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들키고 말았군.’
그는 대도를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꾹.
‘좋아. 원한다면 진심으로 가겠다.’
휙.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검은 기운이 명운을 향해 내리꽂혔다.
쉬이이이익!
명운은 그 기운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쳤다.
콰앙!
기와 기가 충돌하자 기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솨아아아아아아!
이윽고 기파가 일으킨 한풍이 주변에 쌓인 눈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명운은 휘몰아치는 눈꽃 한가운데 서 있었다.
“괜찮은 공격이군.”
양대충은 연격을 가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선 상태였다.
‘마, 막혔군.’
조금 전 공격은 팔 할의 공력이 실린 도격(刀擊)이었다. 하나 명운은 가느다란 현검으로 그의 도격을 간단히 막아 냈다.
‘팔이 뻐근해.’
팔이 뻐근하다는 것은 그의 대도에 상당한 충격이 전해졌다는 뜻이었다.
‘기를 다루는 실력이 나 이상이라는 말인가?’
양대충은 일장을 물러선 뒤 대도를 다시 세웠다.
“이번 일격은 팔 할이었습니다.”
명운은 팔 할이라는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무인 중 처음부터 십 할의 내공을 쏟아 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무공을 펼치면서 십 할에 이르렀다.
“좋아. 다시 오게.”
양대충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부교주님의 무공이 나보다 위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는 명운이 자신보다 위라고 해도 대도를 거둘 생각이 없었다.
‘강자와 싸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싸우는 맛이 났다.
‘이번에는 십 할이다.’
중단전을 열자 검은 현기가 그의 온몸을 덮었다.
명운은 더 짙어진 현기를 보고는 오른발을 살짝 뒤로 뺐다.
‘잔혹마도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있겠군.’
검은 현기는 상대의 피를 머금으면서 자라났다.
이것이 바로 무림맹에 현기를 쓰는 무인이 없는 이유였다.
양대충은 공력을 최대로 끌어 올린 뒤 명운을 향해 외쳤다.
“막지 못한다면 피하셔도 좋습니다!”
명운은 검을 빙글 돌렸다.
“양 좌사, 내가 말했지 않나. 그렇게 경고를 하면서 싸우는 적은 없다고.”
양대충은 어금니를 물었다.
‘이 공격은 되돌릴 수 없다.’
잠시 뒤.
그의 신형이 명운을 향해 화살처럼 날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높이 솟아오른 대도가 산을 무너뜨릴 듯 아래로 떨어졌다.
파산도(破山刀)!
산조차 깨뜨려 버리는 거력.
그러나 파산도에 실린 거대한 힘은 명운에게 닿지 못했다.
‘힘이!’
사라졌다?
양대충이 눈을 부릅뜬 순간, 그의 대도가 명운이 아닌 옆의 바위를 내리쳤다.
쾅!
폭음과 함께 바위 한쪽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후두두두둑.
무너진 바위의 파편이 튀어 오르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것이 전력인가?”
명운은 태연한 얼굴로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스윽.
그가 내민 현검이 어느새 양대충의 목에 닿았다.
‘이, 이럴 수가…….’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졌습니다.”
명운이 현검을 거두며 말했다.
“화왕보다는 아래, 빙왕과는 우열을 가릴 수 없겠군.”
양대충은 그의 한마디에 눈을 크게 떴다.
‘우열인가?’
그는 전력으로 명운을 쓰러뜨리고자 했지만, 명운은 그의 무공을 평가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 명운의 검은 진심이나 전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 차이라니!’
무공의 고하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는 말이군.’
그가 동네 뒷산에 서 있다면, 명운은 천산의 고봉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천재가 정말로 있었군.’
그가 보기에 명운은 각 문파에서 흔히 말하는 천재가 아닌 백 년, 아니 수백 년 만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진짜 천재였다.
‘부교주님이 약관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명운과 검을 마주한다면 그 누구도 그가 약관이라 생각하지 못할 터였다.
양대충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부교주님, 화왕이라는 자가 저보다 위란 말입니까?”
명운이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화왕은 힘에서 그대를 앞섰네.”
양대충의 대도는 정교함이 아닌 거력이 강점이었다. 그럼에도 힘에서 밀렸다는 말은 조금 과장하면 잔혹마도의 굴욕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힘이 절 능가했단 말입니까?”
“내공은 비슷한 것 같은데, 외공에서 그가 자네를 앞섰네.”
자신보다 월등히 높이 서 있는 고수가 한 말이니, 거짓은 아닐 터였다.
“한마디로 제 무공이 많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자네의 무공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네. 나는 그저 강적과 자네의 무공을 비교한 것일세.”
양대충은 대도를 아래로 내린 뒤, 그것을 땅에 박았다.
파악!
“속하, 부교주님과 비무로 부족함을 알았습니다.”
그의 눈은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투쟁심인가?’
명운은 현검을 검갑에 넣었다.
착.
“무극이라는 말이 있지만, 난 그것이 무공의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양대충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경하 드립니다.”
명운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린가?”
“부교주님께서는 무극에 이르시지 않았습니까?”
명운은 무극이라는 말을 부정했다.
“나는 아직 무극에 이르지 못했네.”
양대충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양 좌사.”
“파산도의 거력을 아무렇지 않게 흘리시는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명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 수는 내 무공이 아닐세.”
양대충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예?”
“그 한 수는 검선의 수법이었네.”
양대충은 명운이 화산에서 검선과 검을 겨루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욱 눈을 크게 떴다.
“검선의 수법을 흡수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명운은 오른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흉내를 낸 것뿐일세.”
그저 흉내를 냈을 뿐인데 파산도에 실린 거력을 흘렸다.
양대충으로서는 놀라움을 넘어 부러울 뿐이었다.
“부교주님께서 무극이 아니라면 누가 무극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의 한마디는 사마진이 했던 말과 같았다.
명운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양 좌사답지 않은 아부군.”
“아부가 아닙니다.”
양대충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무극이란 강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경지를 말하네. 나는 강기를 막을 수 있지만, 그것을 자유롭게 쓸 수는 없네. 자네 말대로 무극에 이르렀다고 해도 반쪽짜리일 뿐이지.”
양대충은 강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교주님께서 강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없는 것은 몸에 쌓인 내공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타고난 천재라고 해도 내공을 쌓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곧 강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명운이 몸을 돌리며 그의 말을 받았다.
“오늘은 양 좌사답지 않군.”
양대충이 땅에 박힌 대도를 회수하며 말했다.
“저는 그저 보고 느낀 것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런가?”
“만약 제가 아부하고자 했다면, 티가 났을 것입니다.”
명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긴 양 좌사와 같은 무인은 아부에 서툴지.’
그는 양대충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 * *
시중을 드는 여인 덕분에 사마진은 오랜만에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제 괜찮아.”
그녀의 상처는 회복이 더뎠다.
치료를 맡은 의원은 그녀의 상처가 단순한 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 아가씨의 상처는 독에 노출된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독과는 다르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보는 상처입니다.
시골 의원에게 도기에 의한 상처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단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사마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왔죠?”
“양 좌사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세요.”
끼익.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양대충이 안으로 들어서자 시중을 들던 여인이 밖으로 나갔다.
이제 방안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괜찮은 건가?”
“괜찮습니다.”
“의원의 말에 따르면 괜찮지 않다고 하던데 말이야.”
“도기에 의한 상처니까요.”
사마진은 베개를 겹쳐 쌓은 뒤 그것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양대충이 그녀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나아 보이는군.”
“부교주님께 들었어요. 어제 두 분이 비무를 벌이셨다고요?”
“바로 이야기하신 모양이군.”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양대충이 혀를 찼다.
“쯧, 부교주님께서 결과는 이야기하시지 않은 모양이군.”
“부교주님께서는 좌사의 칼을 확인했다고만 했어요.”
“칼을 확인했다?”
“딱 그 말씀만 하셨어요.”
양대충은 그녀와 이야기하면서 위화감을 강하게 느꼈다.
‘부상 때문인가? 평소의 날카로움이 느껴지지 않는군. 이것은……. 그래, 규방의 규수 같은 느낌이야.’
사마진은 양대충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머물자 살짝 미간을 좁혔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양대충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게 말이지. 사마 단주가 이상할 정도로 나긋나긋해진 것 같아서 말이야.”
“제가 나긋나긋하게 변했다고요?”
양대충이 시선을 창 쪽으로 돌리며 답했다.
“어쩌면 부상을 입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군.”
“기력이 없는 것이 나긋나긋하게 보였다는 말씀이시군요.”
“대충 그런 것 같군.”
잠시 두 사람의 말이 끊어졌다. 어색함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적막이 두 사람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이윽고 양대충이 그 침묵을 깼다.
“언제부터였나?”
사마진이 그의 물음에 깜짝 놀라 아미를 위로 올렸다.
“네?”
그녀는 그가 자신과 명운의 관계를 묻는다고 생각했다.
‘부교주님께서 두 사람의 관계를 이야기하신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양대충이 재차 물었다.
“언제부터 부교주님께서 자네를 능가하신 것인가?”
사마진은 그의 물음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내 생각이 지나쳤구나.’
그녀가 또렷하지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교주님의 폐관수련 직후에 비무를 했습니다.”
폐관수련 직후라면 명운이 서역으로 떠나기 전이었다.
양대충이 굳은 음성으로 물었다.
“자네가 졌나?”
“보기 좋게 졌지요.”
양대충은 그녀의 대답에 팔짱을 꼈다.
“부교주께서 폐관수련을 끝냈을 때는 열일곱이 되기 직전이 아니었던가?”
“그렇습니다.”
열여섯 소년에게 자명단주 사마진이 패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군.”
“믿을 수 없어서 재차 비무를 신청했죠.”
“그리고 또 졌다?”
“또 진 정도가 아니었어요. 지하 연공실에서 험한 꼴을 봤죠.”
사마진은 앞으로 넘어지던 자신을 안아 세운 명운을 떠올렸다.
‘그때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명운은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안았을 때, 비로써 그녀는 깨달았다.
그가 자신보다 키도 크고, 어깨도 더 넓은 사내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해졌을까?”
사마진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폐관수련에서 무의 극을 깨달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흠, 무극인가? 하나 그것은 그렇게 쉽게 깨우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사마진은 물론이고, 그와 부교주 유청조차 깨닫지 못한 것이 바로 무극이었다.
“어쩌면 피가 다른 것일지도 모르죠.”
양대충은 그녀의 한마디에 미간을 좁혔다.
“피가 다르다.”
명가는 천마의 피를 이은 가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명가의 가계에는 유독 무극에 이른 무인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