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좌사와 우사 (3)
침상에 기대앉은 사마진의 얼굴에는 핏기가 옅었다. 그 덕분에 그녀의 피부가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두 사람은 어찌 그리 같은가요?”
명운은 담담하게 그녀의 질문을 받았다.
“만류귀종이라 할 수 있겠지.”
“만류귀종인가요?”
명운은 그녀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걱정이었다.
“무인은 대부분 같으니까.”
사마진이 자세를 고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비무를 거절하지 않으시네요.”
“예전에도 딱히…….”
“제가 부탁하지 않으면 비무를 해 주시지 않으셨잖아요.”
명운은 연공실에서 그녀와 벌였던 비무를 떠올렸다.
‘그때가 기점이었던 것일까?’
그날의 비무는 두 사람의 관계를 완전 바꿔 버렸다.
“빙왕과 싸우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
“무공에 대한 깨달음인가요?”
명운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그러면요?”
“본교의 정이랄까? 짧게 줄이면 강자존이 되겠군.”
“강자존이라고요?”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어. 그것은 무림맹과 싸움도, 파천궁과의 싸움도 아니야. 강함에 대한 추구. 그리고…….”
“누가 강한지 확실히 하는 것인가요?”
“그것과 비슷해. 이쪽은 무림맹이 아니잖아. 실력을 숨기고, 기회를 엿보는 것은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고 할까?”
사마진이 오른손 식지를 세웠다.
“하면 이번 계책은 잘못된 것이겠군요.”
명운은 파천궁을 속이기 위해 사마진과 천준기를 경은과 조광으로 변장시켰다.
“나를 탓하는군.”
“탓하는 게 아니라. 많이 바뀌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명운이 목소리를 낮췄다.
“처음부터 정공법으로 나아갔으면 어땠을까?”
“정공법이라면…….”
“천하에 파천궁과 대결을 선언하는 것이지.”
사마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힘들었을 거예요. 그들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으니까요.”
“신교의 교주 자리를 걸었다고 해도?”
“그것은 교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겠죠.”
명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건 그래.”
그는 아직 천마신교의 교주가 아니었다.
‘음모와 계략이라. 어쩌면 이것이 파천궁이 본교를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겠지.’
숨어서 힘을 키우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천하에 세력을 떨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그건 그렇고, 공 우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글쎄.”
“신교의 좌사와 우사가 모두 이곳에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명운이 말끝을 올렸다.
“지금 파천궁을 치자는 말이야?”
“기습의 묘를 살리려면, 지금밖에는 기회가 없어요.”
파천궁이 대비하기 전에 기습을 펼치자.
그녀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명운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파천궁이 과연 우리의 움직임을 모를까?’
파천궁은 적시에 두 명의 고수를 보내 그들을 제거하고자 했다.
이는 그들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어.”
“시간이 많지 않아요.”
명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른손을 세웠다.
“알고 있어.”
그가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사마진이 말했다.
“회의를 하실 거죠?”
“이번 안건에 대해서?”
“부교주님께서는 중지를 모으시는 것을 좋아하시잖아요.”
명운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그녀의 말을 받았다.
“때로는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때도 있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잖아요.”
“그래, 그럴 때가 아니긴 하지. 한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사마진은 그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들렸다.
‘부교주님……. 아니, 운은 목소리마저 듣기 좋구나.’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회의를 하신다면, 이곳에서 해 주세요.”
명운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의견을 내고 싶은 모양이군.”
“안 되나요?”
명운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아니야. 이번에는 진의 뜻을 따르지.”
그녀가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이곳에서 회의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장소가 조금 좁을지도 몰라요.”
“괜찮아.”
탁.
명운은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는 그녀의 방을 떠났다.
사마진은 닫힌 문을 보며 생각했다.
‘어느새 내가 부탁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십 년 전에는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으니까.’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 이불을 끌어안았다.
* * *
양대충과 공복진.
두 사람이 술자리를 연 것은 성채의 남쪽 성벽이었다.
양대충이 잔에 술을 가득 부으며 물었다.
“어땠나?”
공복진은 미간을 좁혔다.
“어땠을 것 같습니까?”
“내가 당했을 때보다 심한 듯 보이더군.”
공복진은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지금 다시 싸운다면, 상처 때문에 전력의 팔 할 정도만을 낼 수 있었다.
“완전히 승복했습니다.”
“승복인가?”
“다른 말로는 표현이 잘 안 되더군요.”
양대충은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천재일까?”
공복진이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천재를 위해서.”
이는 명운이 천재임을 인정한다는 말이었다.
툭.
양대충은 공복진과 잔을 마주하고는 그것을 단숨에 비웠다.
“좋군.”
비싼 술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좋은 향을 가지고 있었다.
“좌사님과 잔을 마주하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오래되었나?”
“최근에는 없었지요.”
최근 몇 년간 두 사람은 대명궁의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사이였다.
“속 시원한가?”
“후계자 문제 말입니까?”
“이것으로 깨끗이 결정되었으니까.”
공복진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장공자 명천과 이공자 명각.
두 사람은 아직 많은 세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교주님이 뜻을 세우고, 자네와 내가 지지한다면 끝난 것이 아니던가?”
공복진은 이마를 찌푸렸다.
“대산팔가의 뜻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대산팔가 중 셋을 손에 넣었다면?”
공복진이 찌푸렸던 이마를 폈다.
“벌써 그 정도까지 진척되었습니까?”
양대충이 그의 잔에 술을 채우며 답했다.
“자네가 서장으로 떠난 사이 많은 일이 있었네.”
“허를 찔린 느낌입니다.”
“나도 그랬네.”
“좌사께서 말입니까?”
“칠공자, 아니 부교주님께서 영특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공복진이 잔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좌사께서는 광명정에서 부교주님의 무공을 한번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명운은 광명정에서 명증의 강기를 막아 낸 바 있었다.
“그것은 연기일 수도 있었으니까.”
명운의 실력은 연기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으로 부교주의 좌를 손에 넣은 것이었다.
“어찌 그리 강할 수 있을까?”
던지듯 물은 질문이었다.
공복진은 잠시 생각을 한 뒤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천재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양대충은 천재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약관에 그들을 뛰어넘은 명운이 얼마나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
“교주님은 확실히 뛰어넘겠죠.”
지금은 명증의 무위가 조금 더 높았다. 하지만 몇 년 뒤에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었다.
“명존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명존.
그는 천마의 첫 번째 제자이자 천마신교를 창시한 명가의 초대 가주였다.
그의 무공은 명가의 역대 가주 중 최고였다.
“그것까지는 장담할 수 없겠군요.”
“천재라 해도 명존은 넘을 수 없는 것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양대충이 재차 물었다.
“명존이 천재였기 때문에?”
공복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명존의 재능이 부교주님께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분께서는 성존의 사사를…….”
천마신교에서 성존이란 마도의 절대지존 천마를 뜻했다.
“절대지존의 가르침을 받았기에 더 강할 것이라는 말이군.”
“성존께서 재림하지 않는다면 명존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공복진은 현실적인 결론을 내렸다.
양대충은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자네와 이야기하면 이런 게 좋단 말이야.”
“어떤 것 말입니까?”
“과하게 말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래, 부교주님의 열렬한 지지자인 사마 단주를 예로 들지. 그녀는 부교주님의 재능이 수백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며, 부교주님을 추켜세울 걸세.”
공복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명존을 넘어 성존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겠지요.”
양대충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네. 하지만 자네는 그렇게 말을 하지 않지. 언제나 차갑고, 냉정하지.”
“언제나는 아닙니다.”
어제.
그는 명운과 대결하면서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다.
‘지리란 것을 알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투쟁심이, 가슴의 불꽃이 싸우라 외쳤기 때문이었다.
“사마 단주와 교주님은 어떤 관계입니까?”
공복진은 예전부터 이것을 궁금해했다.
“두 사람의 관계 말인가?”
“그렇습니다.”
양대충은 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예전에는 후원자였지.”
“지금은 지지자입니까?”
“글쎄.”
“말을 조금 돌리시는군요.”
양대충은 공복진의 잔에도 술을 가득 채웠다.
“알고 싶나?”
“알려 주시지 않아도 곧 알게 될 겁니다.”
“후후후, 그렇지. 자네는 항상 소식이 빨랐어.”
공복진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절 놀리시는군요.”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놀릴 수 있겠나?”
“그 이야기는 넘어가지요.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이 있으니 말입니다.”
양대충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해야 할 이야기라.”
그는 시선을 성벽 아래로 돌리며 물었다.
“뭔가?”
공복진이 잔을 비운 뒤 대답했다.
“혜선단주 자리가 비었습니다.”
혜선단주 천준기가 전사함으로써 해선단주 자리가 공석이 되고 말았다.
“천 단주의 후임 말인가?”
“양 좌사께서는 누구를 생각하시고 계십니까?”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닐세.”
공복진은 그냥 비켜서지 않았다.
“삼단주는 좌사님의 아래에 있지 않습니까?”
혜선단주를 임명하는 것은 교주 명증이었으나 그는 신교좌사 양대충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양대충이 시선을 다시 공복진에게 돌리며 답했다.
“이쪽은 사신대 대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네.”
사신대 대주 중 한 명을 승진시키고 싶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부하들을 끔찍하게 아끼시는군요.”
“내가 아니면 누가 그들을 챙기겠나?”
이번에는 양대충이 물었다.
“자네는 사대호법을 생각하고 있나?”
사대호법은 서열상 삼단주보다 미세하게 위였다. 그러나 그 실권은 삼단주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사대호법의 말석은 삼단주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었다.
공복진 또한 양대충과 마찬가지로 부하들을 먼저 생각하는 상관이었다.
“이쪽은 장 호법을 생각했습니다.”
장헌은 사대호법 중 말석이 아닌 두 번째 서열이었다. 즉, 그가 혜선단주가 된다면 승진이라 할 수 없었다.
“그가 납득할까?”
“납득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요.”
양대충은 그가 송원표를 추천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나 그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모를 일이군.”
두 사람은 천천히 잔을 비웠다.
“교주님께서는 누구를 선택하실까?”
“교주님께서는 의외의 인물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양대충이 잔을 내려놓으며 낮게 신음했다.
“으음……. 의외의 인물인가?”
“유 부교주님의 제자도 있지 않습니까?”
순간 양대충의 눈이 커졌다.
“장연비!”
부교주 유청의 제자 장연비는 사마진과 연배가 같았다.
“그녀라면…….”
무공과 서열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공복진이 그의 말을 이었다.
“단지 경험이 적은 것이 마음에 걸릴 뿐입니다.”
공복진은 장연비가 삼단주에 오르기 위해서는 사신대주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단이나 대를 지휘하기 위해서는 무공과 서열만이 아니라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주 자신이 바로 서지 못한다면, 단 전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양대충이 턱을 쓰다듬었다.
“경험인가?”
그의 말끝에 묘한 울림이 있었다.
공복진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혹시 부교주님을 생각하고 계신 것입니까?”
양대충은 명운의 경험이 부족한 것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네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나쁜 취미가 있단 말이야.”
공복진이 담담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부교주님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부교주님께서는 좌사님보다 심계가 깊으실 겁니다.”
양대충은 그의 말에 낮게 신음했다.
“으음, 이 사람…….”
“믿지 못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심계가 전부가 아니니까.”
공복진이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부교주님께서는 잘 해내실 것입니다. 그러니, 불필요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양대충의 걱정을 기우라 생각했다.
‘그런 분을 우리가 어찌 걱정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