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대접전 (3)
주작이 그려진 깃발이 잇달아 쓰러지자 주작대주 이건석이 목소리를 높였다.
“물러서지 마라! 주작대의 긍지를 잊었는가?”
그의 웅혼한 외침에 주작대원들이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대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러나 파천궁 무인들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비명과 피 그리고 죽음이 주작대와 청룡대를 덮쳤다.
“대주님! 중군과 분단되었습니다!”
중군에는 천마신교의 세 장로가 있었다.
‘장로들의 무공은 우리를 능가한다.
이건석이 얼굴을 굳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은 중군을 돌볼 겨를이 없다! 각자 상대에 집중하라!”
청룡대주 진백강의 판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옳은 판단이다. 지금은 정면의 적을 상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물러선다면 선봉은 물론 지원군 전체가 독 안에 든 쥐 꼴이 될 터였다.
“진 대주!”
진백강이 이건석의 말을 받았다.
“바라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절벽 위에 적을 쳐야 한다!”
절벽 위에서는 지금도 쇠뇌와 비표를 아래로 쏟아 내고 있었다. 그들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정면의 적을 격퇴한다고 해도 군대의 안전을 확보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진백강은 청룡대 정예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절벽을 탈환한다!”
그들은 경공을 전개해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절벽 위에 선 파천궁 무인들 또한 공격의 방향을 바꾸었다.
“절벽을 오르게 하지 마라!”
그들의 쇠뇌와 비표가 집중되었지만, 진백강은 검기를 정면으로 펼쳐 그것을 막아 냈다.
그 모습을 본 한 무인이 미간을 좁혔다.
“천마신교에도 무인이 없는 것은 아니군.”
그는 푸른 옥대를 한 채 허리에는 두 자루의 장검을 차고 있었다.
“준검님, 어떻게 할까요?”
준검.
그는 풍왕의 수하가 아닌 수왕의 수하였다. 그럼에도 그가 이번 공격에 참여한 것은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었다.
‘풍왕과 낙하삼귀,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가교의 전력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는 경쟁자들과 적을 더 정확히 알고자 이번 공격에 참가한 것이었다.
“내가 막겠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꽤 기뻐하는군.”
“저희 힘으로는 저자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쇠뇌대를 지휘하는 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백강이 절벽 위에 올라섰다.
터억!
그는 절벽 위에 올라서자마자 검기를 뿌려 다섯 명의 쇠뇌병을 저세상으로 보내 버렸다.
“안전한 곳에서 화살만 쏘아 대는 녀석들을 어찌 무인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윽고 그를 따라온 청룡대 대원들이 절벽 위에 도착했다.
“모두 참살하라!”
그들이 앞으로 나서기 직전, 좌검이 앞으로 나섰다.
“너희들의 상대는 나다.”
배진이라는 청룡대원이 그를 보자마자 용감하게 검을 뻗었다.
“쓰러져라!”
그는 청룡대 이조 부조장으로 유력한 차기 조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허공에서 반토막이 나고 말았다.
파악!
그리고 그 직후,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컥!”
좌검의 검이 어느새 그의 가슴을 꿰뚫어 버린 것이었다.
청룡대주 진백강은 좌검이 첫 번째 일격으로 검을 토막 난 뒤, 바로 검을 돌려 배진의 가슴을 꿰뚫는 것을 보았다.
‘대단한 쾌검이다.’
그는 얼굴을 굳힌 채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물러서라! 저자는 내가 상대한다!”
오대검 좌검과 청룡대주 진백강의 대결.
서열을 따진다면 진백강 쪽이 더 높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인의 승부는 서열과는 관계가 없었다.
“호오. 대장이 직접 나오시겠다?”
진백강이 검을 아래로 내리며 목소리에 내공을 실었다.
“나는 청룡대주 진백강이라 한다.”
통성명.
좌검은 미소를 지었다.
“이쪽은 오대검 중 한 명인 좌검.”
진백강은 얼굴을 굳혔다.
‘오대검이라면 녀석과 같은 자가 다섯 명이 더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들 모두가 이번 공격에 투입되었다면, 아군의 고전도 무리는 아니었다.
“좌검, 지금부터 그대의 실력을 확인하겠다.”
“얼마든지.”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주변 무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스슥!
들리는 것은 검이 일으킨 격렬한 타격음뿐.
“대단한 싸움이다!”
“파천궁에도 저런 무인이 있었단 말인가?”
두 무인이 싸우는 동안 쇠뇌 공격과 절벽 장악.
두 가지 임무가 동시에 멈추고 말았다.
이것은 절벽 아래에서 싸우고 있는 이건석에게 틈을 만들어 주었다.
‘절벽 위에서 공격이 멈췄다.’
그는 검을 들고 선두에 섰다.
“청룡대가 절벽을 장악했다! 주작대여! 청룡대에 뒤질 것인가! 나를 따라 정면을 돌파한다!”
아직 절벽 위가 장악되었다고 속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쇠뇌 공격이 멈췄기 때문에 병사들은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청룡대가 절벽을 장악했다!”
“쇠뇌 공격이 멈췄어!”
“좋아! 이대로 대주님을 따라 정면을 돌파한다!”
주작대의 사기가 올라가자 파천궁 무인들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크윽…….”
전열이 무너지면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파천궁 무인들이 속출했다.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 퇴각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여기서 퇴각한다면 풍왕님의 얼굴을 어찌 볼 수 있단 말인가?”
“하나!”
“내가 막는다!”
파천궁 광호대 대주 구천준이 주작대주 이건석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두 사람의 맞붙자 다른 이들은 감히 주변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쾅! 쾅!
폭음과 함께 기파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이는 두 사람의 무공이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이기는 쪽이 승리를 가져갈 것이다.”
두 사람의 싸움을 보이는 이들은 그 말에 모두 동의했다.
주작대주 이건성이 승리하면 천마신교가, 광호대주 구천준이 승리하면 파천궁이 승리를 가져갈 듯 보였다.
하지만 승리를 결정짓는 진짜 싸움은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 * *
“가교의 부교주?”
풍왕은 천천히 명운의 위아래를 살폈다.
‘젊다. 아니, 어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야.’
아들뻘은 아니라고 해도 조카뻘은 충분히 될 그런 나이였다.
“믿지 못하겠나?”
풍왕이 두 자루의 대도를 들며 말을 받았다.
“아니, 믿는다. 가교의 부교주는 가교 교주의 막내아들이라고 했으니까. 이쪽은 풍왕이다.”
두 사람 사이에 천마신교 장로 여진훈이 끼어들었다.
“칠공자! 위험하네!”
그가 명운을 직함이 아닌 칠공자로 호칭한 것은 그의 무공이나 직위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직도 그 두 가지가 명증의 기만책이라 생각했다.
‘양 좌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단 일 합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명운은 검을 거두는 대신 걸음을 멈췄다.
“저자의 목이 필요한 가문이 있습니다.”
여진훈은 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목이 필요한 가문이라고?”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제 기억이 옳다면, 풍왕이라는 자는 적풍대주와 적풍대를 전멸시킨 자입니다.”
여진훈은 숨을 들이켰다.
‘적풍대주와 적풍대를 전멸시킨 자! 당시 대군을 동원한 흔적이 없었던 것은 저자 혼자 적풍대를 전멸시켰기 때문이었나? 그의 무공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다면 더욱 몸을 뒤로 빼야 한다고 생각했다.
“칠공자!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하는 것이 아닐세. 어서 달아나게! 달아나서 양 좌사에게 도움을…….”
명운이 그의 말을 잘랐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양 좌사는 여기서 동남쪽으로 천 리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여진훈은 양대충이 이곳에 없다는 말에 눈썹을 세웠다.
“그게 무슨 말인가? 양 좌사가 없다면 누가 저자를 막는단 말인가?”
명운이 다시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여진훈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그대가 있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명운은 그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풍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풍왕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말끝을 높였다.
“회포는 다 풀었나?”
“그렇다고 해 두지.”
“내 목이 필요하다고 한 것 같은데, 제대로 들은 게 맞겠지?”
“그래.”
풍왕이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크크크, 아직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것 같군.”
명운이 얼굴을 굳히며 말을 받았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늘 이곳에서 너는 죽는다.”
풍왕은 그의 말에 격노했다.
“하룻강아지가!”
그는 명운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쉬이익!
귀가 찢어질 듯한 파공성과 함께 두 자루의 대도가 날았다.
여진훈은 두 자루의 대도가 어떻게 상대를 쓰러뜨리는지 알고 있었다.
“대도는 미끼일세!”
명운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정면을 주시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의 말이 끝난 직후, 두 자루의 대도가 명운을 덮쳤다.
여진훈은 그 모습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받아치려는 건가?’
명운이 들고 있는 현검은 대도를 받아치기에는 검신이 얇았다.
‘무리야!’
그는 대도를 피하거나 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쾅!
짧은 폭음과 함께 두 자루의 대도가 튕겨 나갔다.
명운은 대도를 피하거나 흘리는 대신 받아친 것이었다.
그 얇은 현검으로.
“바, 받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약관으로 보이는 청년이 어떻게 자신들 십장로보다 뛰어난 무위를 보여 준단 말인가?
‘내가 알고 있는 칠공자가 아니다?’
명운은 의문을 제기할 틈도 없이 풍왕과 격돌했다.
쾅! 쾅! 쾅!
잇달아 들린 세 번의 폭음.
그때마다 뒤로 밀려난 것은 풍왕이었다.
“이, 이럴 수가!”
풍왕은 힘에서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상대는 아무리 보아도 약관에 불과한 애송이였다.
‘크크크, 그렇군. 수왕의 말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그는 잊고 있었던 수왕의 충고를 떠올렸다.
북쪽으로 떠나기 전.
수왕은 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 가교의 부교주를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 무엇 때문에?
– 그자가 바로 가교의 교주 명증이니까.
풍왕은 쌍도를 빙글빙글 돌리며 웃음을 흘렀다.
“흐흐흐, 수왕의 말이 사실이었군. 네가 명증이구나.”
명운은 풍왕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풍왕이 두 자루의 대도를 던지며 외쳤다.
“이곳에서 죽어라!”
명운은 다시 한번 현검을 휘둘렀다.
쾅! 쾅!
두 번의 폭음과 함께 쌍도가 튕겨 나갔다.
‘기의 흐름이 이상하다!’
위험이 느껴진 것은 등 뒤였다.
그는 상대를 확인하는 대신 뒤를 향해 현검을 크게 휘둘렀다.
파악!
짧은 파열음과 함께 핏방울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큭!”
짧은 신음은 풍왕의 것이었다. 그의 오른팔에는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긴 상처가 나 있었다.
여진훈은 명운이 풍왕의 공격을 막은 것도 모자라 그에게 검상까지 입히자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이, 이럴 수가 있나?”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그의 놀라움은 풍왕보다도 컸다.
‘뭔가 잘못되었다.’
무공이라는 것은 그것을 익힌 시간에 비례하기 마련이었다.
간혹 뛰어난 무재를 지닌 이들이 그 시간을 무시하긴 하지만, 그래 봐야 서른이 되기 전에 절정의 경지에 오르는 정도였다.
‘저것은 절정에 오른 정도가 아니다.’
풍왕의 무위는 절정의 끝자락 또는 무극의 초입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 자를 압도한다는 것은 무극의 경지에 올랐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칠공자가 무극의 경지에?’
죽은 두 장로가 들었다면 꿈을 꾸었냐고 그를 면박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선 명운은 분명 풍왕을 압도하고 있었다.
콰아앙!
폭음이 들리면서 풍왕이 절벽과 충돌했다.
“크으윽…….”
이번에 흘린 것은 긴 신음이었다.
여진훈은 그 광경을 보고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저, 저럴 수가!’
풍왕은 끓어오르는 기혈을 가라앉히며 미간을 좁혔다.
“과연 가교의 교주. 대단하군.”
명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무엇을 보고 착각하는지 모르겠군. 아버지와 난 비슷한 구석이 별로 없단 말이지.”
그는 아버지 명증보다는 어머니 양회를 더 많이 닮았다. 특히 얼굴이 그러했다.
“명증! 아들로 위장해도 소용없다. 이쪽은 다 알고 있다.”
명운은 그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랬었군.”
그는 풍왕이 어떤 식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버지가 나로 역용을 한 뒤에 함정을 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상대가 어떻게 생각한들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풍왕을 베고, 그의 목을 복주원가에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원 가주와 약속했으니까.’
복주원가 가주 원우형에게 풍왕은 아들과 외손자를 죽인 대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