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1)
21화 낙산원 (6)
“강 총관.”
“예, 공자님.”
“다음을 준비하게.”
강하원이 눈썹을 위로 올렸다.
“벌써 다음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승부, 종영세가 이겼어.”
강하원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영세가 위협적인 일격을 가한 것은 맞지만, 아직 상황은 백중세다. 공자님께서는 무엇을 보고 종영세가 이길 것이라 하시는 것일까?’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을 명운은 보고 있었다.
“공자님, 속단하시기에는…….”
“아니, 속단이 아니야. 이십 초식 안에 이 승부는 끝난다.”
연무장에 승부의 흐름을 정확히 읽은 이가 한 명 더 있었으니, 그는 바로 백호대주 조자건이었다.
“졌군.”
그는 씁쓸한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눌려 있었다. 그래서 초식들에 날카로움이 없었지. 한데 종영세라는 녀석이 먼저 그 틀을 깨고 나왔다.”
조자건은 정광을 보며 혀를 찼다.
“무림맹과 싸울 때보다도 못하군.”
이는 정광이 목숨을 건 혈투보다 더 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가진 실력의 절반 정도밖에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어쩌면 정광을 저렇게 만든 것이 나일지도 모르겠군.”
조자건이 수염에서 손을 뗀 순간이었다.
종영세의 검이 정광의 오른쪽 팔을 길게 베고 지나갔다.
“큭!”
정광은 짧은 신음과 함께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탕.
실전이었다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웠겠지만, 이것은 승패를 가리기 위한 비무였다.
종영세는 공격을 이어 가는 대신,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었다.
“벌써 승부가 났군.”
정광이 더 싸울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장극이 앞으로 나섰다.
“서숙의 승리!”
칠조 조장 이종걸은 길게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 정광마저 패하다니.”
정광은 그가 믿음을 가지고 내민 패였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강하원은 승리하고 돌아온 종영세를 보며 활짝 웃었다.
“수고했다.”
종영세는 승리했음에도 얼굴이 밝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팽헌충은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겼는데도 왜 기뻐하지 않은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후문은 알고 있었다.
‘종영세는 이백 초식 이상 필사적으로 싸우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된 것이다.’
하후문도 종영세와 마찬가지로 오늘 싸움에서 많은 것을 깨달은 바 있었다.
길었던 승부가 끝이 나자, 삼공자 명원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마지막은 그럭저럭 볼 만했지만, 대체로 지루한 싸움이었다.”
채주가 그에게 물었다.
“승패는 역시 기세에 의해 결정된 것일까요?”
“기세?”
“아닙니까?”
명원이 가볍게 혀를 찼다.
“이기기 위해 먼저 검을 뻗은 것은 분명 서숙의 무인이었다. 하지만 승부를 결정지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야.”
“변수가 더 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명원이 오른손 식지를 들었다.
“채주, 그대 정도면 보았을 텐데? 아닌가?”
채주가 고개를 숙인 채로 대답했다.
“속하, 거리가 있어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내 식견을 높여서 아부라도 하려는 심산인가?”
채주가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드린 말씀입니다.”
명원은 시선을 채주가 아닌 명운에게 돌렸다.
“승부가 나기 전, 세 번의 공격. 세 번 모두 상당한 변초가 있었다.”
채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변초가 있긴 했지만, 화려했다고 말씀하실 정도는 아니지 않았습니까?”
명원이 대답했다.
“아주 작은 변초들이었기 때문에 그대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분명 보았다. 검을 쓰기 전 녀석이 어깨와 발끝, 그리고 시선으로 상대를 교란하는 것을.”
종영세는 검의 움직임이 아닌 시선과 작은 움직임만으로 무수한 허초를 만들어 냈다.
명운은 이것을 보았기 때문에 종영세가 승리할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명원이 몸을 살짝 세웠다.
“한 번 정도는 백호대가 이기지 않을까 싶군.”
그는 이대로 무너질 백호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두 번을 내리 졌으니, 독기가 바짝 올랐을 것이다.’
명운도 명원과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음은 조광일세.”
강하원이 그에게 물었다.
“한 말씀 하시겠습니까?”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필요 없을 것 같군.”
“조광을 믿으시는 겁니까?”
“그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는다는 말인가?”
강하원은 조광을 신뢰했다. 하나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정도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수들에게 배웠다지만, 고작 한 달입니다. 조광만 믿고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명운은 시선을 조광에게 옮겼다.
‘그렇군. 강 총관은 조광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 그러니, 걱정할 수밖에.’
물론 조광이 이번 대결에서 승리한다는 확신은 없었다.
백호대에서 그보다 더 뛰어난 무인이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조광은 명운이 내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패였다.
“걱정하지 말게. 여기까지 왔으니, 이길 걸세.”
“공자님.”
“자네는 걱정이 너무 많은 게 탈이야.”
강하원은 명운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정 걱정이 되면, 가서 격려라도 해 주게.”
강하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공자님께서 그렇게 믿으시니, 저도 믿겠습니다.”
연승한 서숙과 달리 백호대 칠조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장 이종걸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
그의 한마디에 칠조 조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연무장에 들어올 때만 해도 손쉽게 승리를 챙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나 그들의 예상은 비무가 시작하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고개를 들며 손을 든 자는 칠조의 최고참 강억이었다.
“억, 할 수 있겠나?”
강억이 굳은 음성으로 답했다.
“해 보겠습니다.”
그는 칠조에서 가장 많은 실전을 경험한 사내였다.
“칠조가 아닌 백호대의 명예가 달린 일전이라는 것을 명심하게.”
강억이 두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백호대의 명예를 위해 죽겠습니다.”
싸우겠다가 아니라 죽겠다.
강억은 이번 대결을 비무가 아닌 실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종걸은 그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마음이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다음 주자로 강억을 확정했다.
‘두 번을 연달아 실패했다. 세 번째도 실패한다면…… 내가 책임을 지는 수밖에 없다.’
이종걸은 이미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양쪽 모두 준비되었습니까?”
장극의 물음에 이종걸과 강하원이 잇달아 대답했다.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시작해도 좋습니다.”
장극은 양쪽을 번갈아 바라본 뒤에 목소리를 높였다.
“세 번째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대결에서 서숙이 이기면 오늘 대결은 서숙의 승리로 끝이 날 것입니다!”
그의 외침에 양쪽 대표가 연무장 가운데로 향했다.
“서숙의 조광입니다.”
“백호대의 강억이오.”
강억의 눈빛은 살벌했고, 조광은 눈빛은 평온했다.
비무의 진행을 맡은 장극은 기세에서 강억이 조광을 압살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우리 백호대가 이길 것이다.’
그는 백호대가 한 판도 이기지 못하고 완패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명원은 의자에서 일어나 난간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좀 재미를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는 종영세와 정광의 대결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자님, 이번에도 지면 백호대의 패배입니다.”
“그렇지.”
채주가 물었다.
“칠공자의 뜻대로 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명원이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안 될 것이 뭐가 있나?”
“예?”
“낙산원은 별것 아니야.”
채주가 재차 물었다.
“그럼, 어째서 조 대주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은 겁니까?”
명원이 대답했다.
“내 눈치를 봤거나 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겠지.”
“…….”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채주가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속하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명원은 조광을 보곤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별로 강해 보이지 않는 사내군.”
조광의 겉모습은 평범했다.
약간 갸름한 미남형 얼굴을 빼면,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다.
“서숙의 대표 말입니까?”
“그래.”
“백호대 쪽은 인상이 강하군요.”
명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피 냄새가 풀풀 나는군. 족히 십여 명은 찔러 본 친구야.”
“겉모습만 보면 이번에는 백호대의 승리군요.”
명원이 입술 끝을 올렸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듯 승부는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법이지.”
“공자님께서는 서숙의 승리를 예상하시는 겁니까?”
명원이 조광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오늘 대결은 강하원이 설계한 것일 터. 서숙에 점수를 후하게 준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
그는 백호대주 조자건이 서숙의 총관 강하원의 계책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강하원이라.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이는지 모르겠군.’
백호대를 이겨 이름을 날린다고 해도, 명운의 세력은 너무나도 미약했다.
“시작합니다.”
조광과 강억, 두 사람의 무기는 검으로 같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강억의 검등에 설치된 빗날이었다.
조광은 그 빗날을 보며 생각했다.
‘빗날로 검날을 망가뜨리겠다는 건가? 아니면 상처 부위에 대량의 출혈을 일으키기 위해 설치한 것인가?’
어느 쪽이든 특이한 무기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슉!
먼저 검을 뻗은 것은 강억이었다.
탕!
조광은 검을 빗겨 치고는 왼쪽으로 몸을 이동했다.
그 모습을 본 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이 빠른 친구군요.”
명원도 조광의 보법이 경쾌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다음 공격을 어렵게 만드는 발놀림이군. 백호대 쪽이 고전하겠어.”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서숙의 무인들을 보니, 소문과는 완전히 다르다. 강하원은 무슨 이유로 자신이 뽑은 호위무사들이 엉망이라 소문냈을까?’
명원은 오늘 대결을 이기기 위해서 그런 소문을 낸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검을 흘리는군요.”
명원이 난간을 잡으며 말을 받았다.
“검을 흘리기 위해서는 검격이 날아올 방향과 속도를 정확히 예측해야 해.”
“그 말씀은, 서숙의 무인이 더 높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보이지 않나?”
조광은 강억의 검격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흘리면서 한 수 위에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의 이러한 모습에 강하원마저 가볍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대단하군요! 언제 저런 기술을 익혔을까요?”
명운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검을 흘리는 것은 관흠과의 대결에서 이미 보여 주지 않았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때와 지금은 확연히 다릅니다.”
관흠과 싸울 때는 이미 한번 상대의 초식을 훑어본 뒤였다.
하나 오늘 대결하는 강억은 달랐다.
그가 펼치는 초식은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으며, 빗날이 달린 검 또한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명운은 조광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을 발견했다.
‘눈이 좋아.’
조광은 허초를 만들거나 변초를 펼치는 능력은 떨어졌다.
그러나 좋은 눈 덕분에 상대의 초식을 해석하는 능력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결국, 언젠가는 피어날 재능이었단 말인가?’
명운이 턱을 쓰다듬은 순간 조광이 잇달아 두 걸음을 물러섰다.
강억은 조광을 몰아붙이면서 기합을 넣었다.
“하합!”
슉!
검격이 거칠게 조광을 덮쳤다.
조광은 검을 들어 막지 않았고, 뒤로 물러나 그것을 해소했다.
강하원은 그것을 보곤 살짝 미간을 좁혔다.
“기술은 좋지만, 기세에서 밀리는군요.”
그는 더 적극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광에게 생각이 있지 않을까?”
“다른 생각이 있어서 뒤로 물러난다는 말씀입니까? 하지만 뒤에는 선이 있습니다.”
오늘 대결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 외에도 선 밖으로 물러나게 하면 이길 수 있었다.
강하원은 여기서 더 물러나면 기술이나 실력과 상관없이 패배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채주도 강하원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가 명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친구, 너무 흥을 냈군요. 기술을 뽐내다가 실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명원은 채주나 강하원보다 한 수 위의 고수였다. 그는 조광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은 몰랐지만, 단순한 흥 때문에 뒤로 밀려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탁해.”
“예?”
“안개 안에서 싸우는 느낌이야.”
채주가 눈을 깜빡이며 말을 받았다.
“안개라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속하는 모르겠습니다.”
명원이 말한 안개는 조광의 생각이었다. 그는 조광의 생각을 완벽히 읽을 수가 없었다.
‘상대의 허점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밀리고 있다. 하지만 기세에서 밀리는 것은 아니다.’
그가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강하원, 재미있는 녀석들을 모았구나.”
명원은 조광과 같은 인재들을 모은 강하원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