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대접전 (4)
콰아앙!
폭음과 함께 밀려난 것은 이번에도 풍왕이었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단 말인가?’
힘으로 그와 맞설 수 있는 것은 파천궁 사왕 중에서도 화왕밖에 없었다. 그런데 명운에게는 그가 자랑하는 힘이 통하지 않았다.
“크윽.”
이번에는 신음만 흘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피?’
풍왕의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 것은 선혈이었다. 이는 내상을 입었다는 뜻이었다.
“제대로 하지 그래.”
명운의 여유 있는 한마디.
풍왕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었다.
‘힘의 차이가……. 아니, 격이 다르다는 말인가?’
평소라면 오기를 부렸을 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기를 부리지 않았다. 그는 힘의 차이를 순순히 인정했다.
‘놈은 가교의 교주이니까.’
그는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사내가 칠공자 명운이 아닌 교주 명증이라 믿고 있었다.
‘놈이 강한 것은 아마도 천마신공 덕분이겠지.’
천마신공은 천마가 남긴 최고의 무공.
그것을 익힌 명증이 강한 것은 당연했다.
‘내가 그 천마신공을 익힌 자를 이긴다면?’
천하제일이라 선언할 수 없어도 그 자리에 도전할 자격쯤은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파천궁의 절대지존인 파천궁주를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해 보자!’
풍왕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이긴다!’
천하제일이 되겠다는 야망이 온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휘이이이이익!
쌍도에서 난 소리는 마치 휘파람 같았다.
여진훈은 그 소리를 듣고는 손등에 소름이 돋았다.
“귀명아(鬼鳴牙)?”
칼이 귀신의 울음을 터트릴 때를 조심해라.
육십 년 전.
그의 사부가 무공을 가르쳐 주며 해 주었던 옛날이야기의 한 구절이었다.
“귀신의 울음소리가 실제로 존재했다니!”
명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날카로운 기의 흐름이었다. 그것은 찢어질 듯 신경질적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단순히 칼을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칼 주변에서 뻗어 나가고 있는 기는 마치 검기와 같았다.
우우우우우웅!
쌍도가 허공을 날아 명운을 좌우에서 덮쳤다. 앞서 그는 이 공격을 현검으로 쳐 낸 적이 있었다.
‘좌우 협격?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이다.’
그는 대지의 기운을 이미 잔뜩 끌어 올린 상태였다.
훅!
오른손을 뻗자 검에서 검은 기운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왔다. 그것은 여진훈은 물론, 풍왕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저것이 무엇이지?’
그러나 깊이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는 이 일격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망설일 틈이 없다!’
그가 신형을 날린 사이 검은 기운이 대도에 닿았다.
스윽!
대도는 부드러운 두부를 베듯 기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여진훈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귀명아의 기운이 너무 강해 검은 기운이 무력화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승리하는 것은 풍왕이었다.
‘게다가 칠공자는 왼쪽의 대도와 배후에서 달려드는 적도 막아야 한다.’
풍왕의 공격은 삼면이 기본이었다.
‘어!’
그가 속으로 짧은 비명을 내지른 것은 명운이 왼손에서 검은 검기와 비슷한 기운이 뻗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손으로 기를 뻗을 수 있단 말인가?’
검에 모은 기를 뿜어내는 것을 검기라 했다. 그러나 손에서 뻗어 낸 기운을 수기라 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는 손에 검기와 같은 기운을 모으는 것이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손에 검기와 같은 기운을 모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르면, 그자는 수기가 아니라 수강을 쓸 수가 있다.’
하나 명운의 손에서 나온 것은 수강이 아닌 검기였다.
‘애매한 경지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육십 년 동안 무공을 익힌 그보다 약관의 칠공자가 더 높은 경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스으윽!
두 자루의 대도는 미끄러지듯 명운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두 자루의 검은 거짓말처럼 그를 빗겨 나갔다.
이는 정면에서 뛰어오른 풍왕의 예측을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었다.
‘튕겨 낸 것이 아니라 흘렸다고?’
그가 명운의 정면으로 날아든 것은 튀어 오른 대도를 잡아 도격을 날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대도가 흘러나감으로써 그의 의도는 원천 봉쇄되고 말았다.
‘큰일이다!’
이대로라면 무기 없이 명운의 앞에 서게 되었다.
풍왕은 할 수 없이 두 손을 모아 쌍장을 펼쳤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그의 거력이 서린 쌍장에 적중된다면, 온몸의 뼈가 가루가 되어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후우우욱!
쌍장에 실린 내력이 닿기 전 바람이 먼저 명운을 덮쳤다. 하지만 그 바람이 명운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바람이 닿으려 하는 순간 명운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 움직임은 너무나 빨라 여진훈조차 어느 곳으로 움직였는지 잡아 낼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구나! 이토록 빠른 움직임이라니!’
파아아악!
뭔가가 터지는 것 같은 타격음.
그와 동시에 뿜어져 나온 것은 풍왕의 피였다.
명운의 현검이 풍왕의 호신강기를 뚫고 그의 옆구리에 박힌 것이었다.
“컥!”
비명과 함께 핏줄기가 재차 뿜어져 나왔다.
보통 사람 같으면 즉사였다.
그러나 풍왕은 그 절대절명의 위기에서도 승리를 노렸다.
‘아직 할 수 있다!’
근맥일합(筋脈一合).
이 한 수의 비기는 원래 천마신교가 아닌 서장 밀종의 무공이었다. 근맥일합이 파천궁에 어떠한 경로로 흘러들어 갔는지에 대해서는 파천궁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누군가는 밀종의 파계승이 전수했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고문에 지친 밀종의 승려가 그 비밀을 실토했다고도 했다.
경로야 어쨌든 파천궁에는 근맥일합이 전수 되었으며, 그것은 지금과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비장의 한 수였다.
“하하하하하합!”
근맥일합을 완성한 자는 몸의 근육을 마치 손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허리나 다리의 근육을 한 점에 모아 점혈을 하려는 자의 손가락을 막아 낼 수 있으며, 지금처럼 몸을 뚫고 들어온 검을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봉쇄할 수도 있었다.
우득.
짧은 소리와 함께 풍왕의 근육이 명운의 현검을 잡았다.
‘네 녀석은 나를 너무 쉽게 보았다!’
그는 허리의 근육으로 상대의 검을 묶은 뒤, 왼손을 내리쳤다.
‘죽어라!’
그의 일격에 실린 힘은 대략 천근.
맞기만 한다면 투구를 쓰고 있다고 해도 머리가 깨져 뇌수가 밖으로 흘러나오게 될 터였다.
파악!
터져 나온 소리는 뭔가가 깨지는 것이 아닌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
“크악!”
고통에 찬 비명.
그것은 명운이 아닌 풍왕의 것이었다.
솨아아아아!
검이 베어 낸 틈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런 사술 따위로는 나를 잡을 수 없다.”
근육으로 상대의 검을 봉쇄하는 근맥일합. 하지만 그 비장의 수법은 명운에게 통하지 않았다.
투욱.
잘려 나간 것은 허리만이 아니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바로 풍왕의 왼손이었다.
“으으윽.”
풍왕은 고통을 참지 못한 채 신음을 무릎을 꿇었다.
‘근맥일합이 통하지 않을 줄이야.’
그가 근육으로 검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검에서 막대한 내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내력은 근육을 태우며 살과 장기를 베었다.
‘다 틀렸군.’
팔이 잘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복부의 상처는 치명상에 가까웠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여진훈은 잘려 나간 풍왕의 왼팔과, 현검을 들고 서 있는 명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이긴 것인가?”
그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괴물을 이토록 간단히 벨 줄이야.’
어쩌면 명증보다 강할지도 몰랐다.
‘교주님은 칠공자의 무공을 알고 그를 부교주에 임명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명운의 무공은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이토록 강해졌단 말인가?
전설의 영약을 퍼부었다고 해도 이렇게 강할 수는 없었다.
‘깨달음인가?’
하나 그가 알고 있는 천마신교 무인 중에 깨달음만으로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른 인물은 없었다.
‘무신이나 무존이라 불리었던 자들조차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명운처럼 약관에 그러한 명성을 얻은 이는 없었다.
“낙하삼귀!”
풍왕의 외침에 절벽 아래에서 청룡대를 막던 낙하삼귀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풍왕께서 부르신다!”
“절벽 위다!”
“돌아가자!”
낙하삼귀는 동시에 경공을 전개했다.
슈슈슈슉!
명운은 그들의 접근을 느끼고는 다시 기를 일으켰다.
‘풍왕의 부하들인가?’
승기는 이미 잡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놈의 부하들이 오기 전에 끝장을 볼까? 하지만 놈에게는 묻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가 연격으로 풍왕의 베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풍왕이라고 했나?”
풍왕이 상처를 지혈하며 미간을 좁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명운이 재차 물었다.
“그대는 성존의 가르침을 따르는가?”
풍왕은 쓴 약을 먹은 것 같은 얼굴로 받아쳤다.
“성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가 어찌 성존을 입에 담는가?”
“성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고?”
“그렇다!”
명운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성존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그렇기에 널 베지 않은 것이다.”
풍왕의 두 눈이 보름달처럼 커졌다.
“뭐라고!”
“풍왕! 강자존의 법에 따르라!”
강자에게 복종하고, 강자에게 속하며, 강자를 따른다.
풍왕은 고개를 숙였다.
“큭.”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의 앞에 선 사내는 의심할 여지 없는 강자였다.
‘하지만…….’
풍왕은 오른손을 꾹 쥐었다. 그가 고개를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몸은 교주님께 충성을 맹세했다!”
그가 말한 교주는 명증이 아닌 파천궁주였다.
“파천궁주가 나보다 더 강하단 말이냐?”
빙왕은 그와 파천궁주의 무공이 비슷하여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그러나 풍왕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다!”
명운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대는 내게 복종하지 않겠군.”
“물론이다!”
풍왕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낙하삼귀가 도착했다.
탁! 타탁!
“풍왕님!”
그들은 잘려 나간 풍왕의 팔과 검을 들고 서 있는 명운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검을 들고 서 있는 저자는 풋내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풍왕은 낙하삼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놈의 겉모습에 방심하지 마라!”
겉모습에 속지 말라.
이는 강호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 하나였다.
“존명!”
낙하삼귀는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풍왕을 지키고자 했다.
명운은 그 모습을 보고는 냉소했다.
“부하들을 내세우는가?”
풍왕이 두 발에 기운을 불어넣으며 답했다.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해야 할 일인가?”
그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풍왕이 외쳤다.
“놈을 쳐라!”
낙하삼귀는 풍왕의 명에 따라 검을 뻗었다.
“존명!”
슈슈슉!
세 자루의 검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명운을 노렸다.
‘느려!’
현검에서 뻗어 나온 빛이 파도처럼 흩어지며 낙하삼귀를 덮쳤다.
여진훈은 그 광경을 보며 다시 한번 놀랐다.
‘검기가 이렇게 쓰일 수도 있단 말인가?’
명운이 사용한 빛은 이미 검기라는 틀을 넘어선 것이었다.
솨아아아아아아!
파공성과 함께 낙하삼귀의 몸이 빛에 꿰뚫렸다. 그들은 검으로 최대한 쏟아지는 빛을 막고자 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다 틀렸다!’
피와 함께 비명이 흘렀다.
“으윽!”
“악!”
압도적인 무공.
낙하삼귀는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
‘너무나 강해.’
너무 강하기에 여진훈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칠공자의 무공은 정상이 아니다.’
흡사 환각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검은 연기가 명운의 뒤에서 나타났다.
여진훈은 그 연기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경악했다.
‘풍왕!’
풍왕은 부하 셋을 미끼 삼아 명운의 뒤를 잡았던 것이었다.
‘내가 이대로 끝날 줄 알았느냐!’
아무리 뛰어난 자도 방심을 하기 마련이었다.
‘찰나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 적어도 양패구상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동귀어진은 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판단하고 부하들을 미끼로 던진 것이었다.
‘이것이 내 마지막 일이다!’
풍왕은 남은 모든 힘을 오른손에 실었다.
“합!”
그의 오른손이 명운의 머리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명운은 그의 움직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돌리며 왼손 일장으로 풍왕의 오른손을 받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계곡 전체가 울릴 정도의 폭음과 함께 풍왕이 백여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쾅!
풍왕은 그대로 계곡을 건너 반대편 절벽에 몸이 박혔다. 그는 그 상태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여진훈은 그 광경을 똑똑히 보고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였다.
“겨, 경이적인 힘이다.”
인간의 힘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함.
명운은 태연한 얼굴로 그의 말을 받았다.
“과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무공을 경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내 무공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명운은 절정의 경지에 선 여진훈조차 짐작할 수 없는 곳에 이르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