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2)
22화 낙산원 (7)
강억은 검을 뻗을 때마다 마치 두부를 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너무 쉽다.’
내가 베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검날에 다가와서 스스로 베이는 느낌.
물론 실제로 베어지는 것은 없었다.
그가 얻어 가는 것은 한 척, 또는 반 척의 영역이었다.
‘얻는 것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앞으로 몇 걸음이면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백호대 칠조에게 중요한 것은 피나 상대의 목숨이 아닌 승리였다.
그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상대의 어쭙잖은 장단에도 맞춰 줄 생각이 있었다.
솨! 솨솨솨!
검격이 좌우에서 쏟아졌다.
조광은 받아 낼 수 있는 것은 받아 내고, 그렇지 못하는 것은 뒤로 물러나 피했다.
‘앞으로 두 걸음인가?’
그는 마치 배수진을 친 한신처럼 서 있었다.
명원은 생각했다.
‘위태롭지만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무엇 때문이지?’
그가 물음을 던진 순간 명운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깨달았다.
‘조광,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생각해 냈군.’
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승부도 이겼군.”
옆에 서 있던 강하원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또 이겼다는 말씀이십니까?”
명운은 앞서 종영세 때도 한발 앞서 승패를 예언한 적이 있었다.
“보면 알게 될 걸세.”
그는 구체적인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슉!
강억의 검이 다시 조광을 물러서게 했다.
이제 조광에게 남은 영역은 한 척 남짓이었다.
팽헌충은 그 모습을 보고는 눈썹을 세웠다.
“위험해!”
종영세와 하후문 또한 얼굴이 편치 않았다.
“너무 몰렸어.”
“조광, 다음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두 사람은 나란히 승리했기 때문에 조광이 패한다면 관흠과 팽헌충 둘 중 한 명이 나설 차례였다.
‘다음은 관흠 쪽이 나을지도 모르겠어.’
하후문이 네 번째에 대해 생각할 무렵 강억이 잇달아 조광을 몰아세웠다.
탕! 타탕!
조광은 배수진을 친 듯 빠른 손놀림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 냈다.
“마지막에 힘을 내는 건가?”
팽헌충이 하후문의 말을 받았다.
“우리를 이긴 조광 아닌가? 이대로 쓰러질 리가 없지.”
강억은 승리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더욱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뒤로 물러나라!’
조광은 그의 검격을 일일이 막아 내며 마지막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탕! 타탕!
칠조 조장 이종걸은 생각했다.
‘여기서는 급하게 가려 하면 안 된다. 상대의 힘을 빼면서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는 성급하게 승부수를 던지면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슉! 슈슈슉!
강억의 검초가 연속으로 변하면서 조광을 몰아세웠다.
‘아직이다!’
조광은 용케 변초를 막아 내곤 검을 앞으로 뻗었다.
솨!
이는 오랜만의 반격이었다.
강억은 상대의 반격에 기다렸다는 듯 칼등을 세웠다.
‘검을 부러뜨려 주마!’
칼등에 설치된 빗날은 가는 검을 부러뜨리기 위한 장치였다.
조광은 상대의 검이 회전하는 것을 보고는 급히 검을 거둬들였다.
강억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 끝을 올렸다.
“감이 좋구나.”
그는 미소와 함께 여유를 찾았다.
이종걸은 강억의 미소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이제 이길 수 있다.”
그는 본래 실력이라면 자신들이 위라고 생각했다.
‘잇따른 패배는 방심과 중압감으로 우리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력을 십 할 발휘하면 이길 수밖에 없다.
이종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조광은 검을 비스듬히 세웠다.
“파쇄검입니까?”
강억이 몸을 낮추며 답했다.
“그렇다.”
그는 조광의 자세를 확인한 뒤, 오른발을 앞으로 뻗으면서 검을 길게 뻗었다.
슈슉!
양쪽 발에서 시작한 발경이 두 다리를 타고 올라 허리를 거친 뒤 오른손으로 이어졌다.
뒤틀리면서 날아오는 검.
백호대에서는 이 한 수를 파천검(破天劍)이라 불렀다.
조광은 이것을 받으면 검이 부러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받아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비스듬히 세웠던 검을 강억을 향해 던졌다.
빙글.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돈 검이 그대로 강억의 미간을 목표로 날아왔다.
강억은 순간 당황했지만, 검을 돌려 침착하게 그것을 쳐 냈다.
타탕!
‘이긴 건가?’
무기가 없는 상대는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강억은 상황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없다!’
눈앞에 있어야 하는 조광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디?’
고개를 돌리기 전, 온몸에 충격이 전해졌다.
퍼억!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강억의 몸이 앞으로 밀려났다.
‘검을 던진 것은 내 시선을 빼앗기 위한 허초에 불과했다는 건가?’
그는 조광이 어떠한 수법을 사용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깨달음은 너무 늦은 것이었다.
“크윽!”
강억은 바닥을 굴러 몸을 보호했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은 이미 선을 넘어 있었다.
“이럴 수가.”
이종걸의 탄식과 함께 장극이 목소리를 높였다.
“서숙의 승리!”
조광은 두 손을 모은 뒤 강억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강억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패배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졌다.”
이종걸은 강억마저 패하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 끝났구나.’
그는 오늘 패배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명운은 조광의 승리 직후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 대주님, 저희가 이겼습니다.”
조자건이 소매를 크게 털고는 말을 받았다.
“오늘 비무에서 백호대가 졌으니, 약속대로 낙산원을 내놓겠습니다.”
명운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조 대주님의 아량에 탄복했습니다.”
이 한마디는 조자건을 높이는 듯했지만, 실은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명원은 명운의 승리에 혀를 찼다.
“이번에는 조 대주가 제대로 당했군.”
채주가 물었다.
“함정이었을까요?”
명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낙산원은 처음부터 미끼에 불과했던 것 같군.”
“낙산원이 미끼라면, 실제로 칠공자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명원은 채주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운이 원한 것이 아니라 강하원이 원한 것이겠지.”
그는 이 모든 것을 강하원이 설계했다고 생각했다.
‘강하원, 그자가 이렇게 야심이 큰 인물이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윽고 채주가 말을 끌었다.
“그러면…….”
명원이 목에 힘을 주며 그의 말을 잘랐다.
“강하원은 서숙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백호대를 이용한 것뿐이다.”
아직 어린 명운은 허수아비, 서숙의 실권을 쥐고 있는 자는 강하원.
명원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조자건은 명운에게 낙산원을 내어주겠다고 약속한 뒤에 칠조를 찾아갔다.
칠조 대원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은 뒤, 머리를 바닥까지 숙였다.
“죽음으로 사죄하겠나이다.”
조자건은 조원들의 사죄에 미간을 좁혔다.
“너희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
이종걸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대주님 이번 패배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조원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조자건은 오른손을 흔들었다.
“바보 같은 소리. 오늘 패배의 책임은 네가 아닌 내가 져야 하는 것이다.”
첫 패배 때와 사뭇 다른 모습.
이종걸은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주님.”
조자건은 재차 손을 흔들었다.
“이번 일은…… 칠공자, 아니 강 총관이 꾸민 일 같구나.”
그의 말에 이종걸이 눈을 깜빡였다.
“강 총관이 꾸민 일이라니요?”
조자건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려고 우리를 이용한 것이겠지. 난 그자의 책략인 줄도 모르고 너희를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러니 내 탓일 수밖에.”
그가 내린 결론은 명원의 결론과 흡사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꾸민 것은 강하원이 아닌 명운이었고, 그가 실제로 원한 것도 그들이 생각한 명성이 아닌 낙산원 그 자체였다.
“완승입니다.”
기뻐하는 이는 강하원이었다.
“표정을 챙기게. 이곳은 백호대 연무장이지 않은가?”
강하원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 흠. 알겠습니다.”
명운은 조광에게 다가가 그의 승리를 축하했다.
“멋진 한 수였네.”
조광이 두 손을 모은 뒤 허리를 굽혔다.
“어설픈 재주였습니다.”
명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겸손할 필요 없네. 그대의 실력은 확실히 증명되었으니까.”
하후문은 상대에게 중상을 입혔고, 종영세 역시 장기전 끝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다.
하나 조광은 상대에게 큰 부상을 입히지 않고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은 조광의 실력이 앞의 두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뜻했다.
‘조광은 감정을 상하지 않게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명운은 시선을 종영세와 하후문에게 돌렸다.
“서숙으로 돌아가면 승리를 거둔 이들에게 포상을 내릴 것이다.”
종영세와 하후문 그리고 조광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관흠과 팽헌충은 그들이 받을 상보다, 그들이 오늘 선보인 무공이 더 부러웠다.
‘저 셋이 우리보다 위다.’
‘처음에는 비슷했을 텐데, 언제 이렇게 차이가 벌어졌단 말인가?’
두 사람은 서숙으로 돌아가면 수련에 매진하겠다고 결심했다.
* * *
탁.
벼락을 맞은 비자나무를 깎아 만들었다는 바둑판 위에 하얀 돌이 놓였다.
“재미있는 소식이 있더군.”
돌을 놓은 사람은 천마신교의 주인 명증이었다.
“곤륜파의 일입니까?”
교주와 마주 앉은 이는 신교좌사(新敎左師) 양대충이었다.
“곤륜파? 그런 자들이 어찌 내게 재미를 주겠나?”
“그럼 원의 일입니까?”
삼공자 명원은 최근 검법이 크게 늘어 명증에게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모르는 척하지 말게.”
양대충이 검은 돌을 놓으며 말했다.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송 전주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데도 모른단 말인가?”
자심전주 송전흠은 양대충의 수족 중 한 명이었다.
“송 전주가 저도 모르게 일을 꾸미고 있는 모양이군요.”
명증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네 말이야. 옛날만 못 한 모양이군.”
잔혹마도(殘酷魔刀)라는 별호를 쓰던 시절, 구파일방은 물론 천마신교와 사마외도 무리조차 그를 두려워했다.
“칼을 휘두를 일이 없지 않습니까?”
양대충은 모두 지난 일이라 생각했다.
‘다시는 그때와 같이 칼을 휘두를 수 없을 것이다.’
명증이 돌을 놓으며 물었다.
“칼을 다시 휘두르고 싶은가?”
양대충이 돌을 집으며 반문했다.
“정사대전이라도 일으키실 생각이십니까?”
명증에게는 정사대전을 일으킬 충분한 힘이 있었다.
하나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농담일세.”
“여전하시군요.”
“무엇이 말인가?”
“말을 빙빙 돌리는 것 말입니다.”
명증이 웃었다.
“하하하, 옛날만 못 하다는 말은 취소하지.”
교주에게 이렇게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전흠을 다잡으면 되겠습니까?”
명증이 손을 흔들었다.
“그럴 필요는 없네.”
“하면…….”
“그냥 내 막내아들 이야기가 하고 싶었네.”
양대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운 말이군요.”
명운은 명증의 막내아들로 후계자 경쟁에 뛰어들기에는 너무 어렸다.
“최근 바쁘게 움직인다고 하더군.”
“전흠에게 서숙에서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명증이 말했다.
“들어 보게. 그 녀석이 모은 자들을 말일세.”
그는 각기 다른 문제가 있는 다섯 사내의 이야기를 양대충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양대충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렇지?”
“어째서 그런 쓸모없는 자들을 모았을까요?”
명증이 웃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네. 한데 말일세. 그 쓸모없는 자들이 백호대의 칠조를 쓰러뜨렸다네.”
양대충이 멈칫했다.
“백호대의 칠조라면…….”
“백호대 최정예라 할 수 있지.”
양대충이 이마를 찌푸렸다.
“조자건이 져 준 것은 아닐까요?”
교주의 아들인 명운의 얼굴을 봐서 백호대주 조자건이 고의로 패배했다.
나름 설득력이 있는 가설이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네라면 져 줄 것인가?”
양대충이 굳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불가합니다.”
“그렇다면 조자건도 아닐 걸세. 그 친구, 겉은 가벼워 보이지만 속은 단단하니까.”
명증은 바둑돌을 잡으며 말했다.
“운은 돌을 금으로 바꾸려는 모양이야.”
양대충이 물었다.
“가능할까요?”
“글쎄,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 뒤를 그 아이에게 물려줘도 나쁘지 않겠지.”
명증은 말을 던진 뒤 빙긋이 웃었다.
“너무 나가셨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말일세.”
양대충은 교주의 한마디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쉬이 구별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