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좌우호법 (6)
노혁준은 고개를 숙인 뒤, 뒷걸음으로 교주의 침전에서 물러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삼공자 명원이 다가와 물었다.
“노 대주, 아버님께서는 어떠십니까?”
노혁준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공자께서는 병문안을 오신 것이 아닙니까? 어찌하여 제게 교주님의 병세를 묻는 것입니까?”
명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소자가 병문안을 청해도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혁준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교주님께서는 치명상을 피하셨습니다. 다만, 피를 많이 흘리셨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안정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안정이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명원은 아버지 명증이 급사할 것을 가장 우려했다.
‘이대로 아버님께서 세상을 뜨시면, 신교는 혼돈에 빠지고 말 것이다.’
최악의 경우, 장공자 명천이 후계자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본교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명원의 물음에 노혁준이 대답했다.
“부교주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겠지요.”
“부교주라면?”
명원이 이렇게 되물은 것은 부교주 유청이 이미 대명궁에 입궁했기 때문이었다.
“또 한 명의 부교주님 말입니다.”
명운은 청룡대와 주작대, 그리고 천원대와 자명단을 이끌고 북상 중이었다.
“흠, 운이 도착하면 큰형을 막아 낼 수 있을까요?”
노혁준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부교주님만 오시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고 보니, 양 좌사께서도 돌아오시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양 좌사와 여 장로께서도 돌아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양대충과 여진훈의 합류는 큰 힘이 될 터였다.
“제가 큰형이라면 운이 도착하기 전에 승부를 내고자 할 것입니다.”
노혁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명궁의 성벽 때문입니까?”
대명궁의 성벽은 웬만한 거성의 성벽과 맞먹었다.
“우리가 비로궁의 성벽을 넘기 힘들었듯 그들도 대명궁의 성벽을 넘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
부교주 유청은 대명궁으로 귀환해 성벽을 지키고 있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두 사람은 유청이 성벽을 지키는 한 대명궁을 넘보는 것은 힘든 일이라 생각했다.
* * *
“그가 진짜 명증이라는 말이군.”
수왕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막았지만, 막을 수 없었습니다.”
좌우호법은 무공은 물론 서열도 사왕보다 높았다.
“그의 힘이 진짜라는 것은 우리도 느꼈지.”
“맞아, 대단한 힘이더군.”
좌우호법은 명증의 목숨을 빼앗겠다고 선언했지만, 수왕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두 분께서는 처음부터 제 뒤를 쫓아오셨던 것입니까?”
키가 큰 우호법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네. 우리는 어제 이곳에 도착했을 뿐이야.”
수왕은 생각했다.
‘교주는 내가 실패할 것을 알고 저들을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손오공에 불과하다.’
명증의 무위에 힘없이 꺾였기 때문일까?
천하를 손에 넣겠다던 수왕의 기세는 전과 같지 않았다.
뚱뚱한 좌호법이 그에게 물었다.
“수왕, 단곡에서 풍왕을 벤 자는 누구인가?”
수왕은 그의 물음에 미간을 좁혔다.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그는 명증이 단곡에서 북상 중이라고 판단해 이번 일을 계획했다.
그러나 단곡에서 북상 중인 것은 명증이 아니었다.
‘대체 누가 사왕을 쓰러뜨리고 본교의 매복을 저지하였단 말인가?’
이번에는 우호법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풍왕을 벤 자가 가교의 젊은 부교주 운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 소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교주 명운.
그는 애초에 수왕의 계산에 들어 있지 않았다.
“명운은 가교의 막내 공자라 들었습니다. 나이도 가장 어리고, 무공 또한 낮을 것입니다.”
우호법은 팔짱을 낀 채로 미간을 좁혔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아니라는 말인가?”
그는 시선을 좌호법에게 돌렸다.
“자네 생각은 어때?”
좌호법은 오른손을 내저었다.
“약관도 안 된 녀석이 사왕 중 셋을 쓰러뜨렸다고? 웃기지 마.”
그는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누가 사왕 중 셋을 쓰러뜨린 것이지?”
좌호법이 시선을 수왕에게 돌렸다.
“수왕도 모르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없지.”
두 호법은 수왕의 지혜가 자신들보다 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수왕에게 답을 얻고자 했다.
수왕은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누구 하나를 특정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알 수 없다는 건가?”
좌우호법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삼단주는 빙왕과 화왕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십장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좌사와 우사의 무공이 뛰어나도 하나 사왕을 넘어서는 수준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사왕을 쓰러뜨렸단 말인가?”
수왕과 두 호법의 대화는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이래서는 끝이 없다.’
그는 시각을 달리지 않지 않으면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런저런 이유와 추측을 다 빼면, 그 아이만이 남습니다.”
우호법은 그의 대답에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수왕, 그대의 지혜도 녹슬었군. 약관이 불과한 아이가 사왕을 쓰러뜨렸다니,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수왕은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좌호법이 우호법을 향해 말했다.
“수왕의 말대로 운이라는 아이가 정말로 초절정고수가 되었다고 가정하는 게 어때?”
우호법은 이마를 찌푸렸다.
“초절정고수? 자네는 그 정도로 사왕 중 셋을 벨 수 있다고 생각하나?”
좌호법은 손가락을 몇 번 튕기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군. 초절정고수 정도로는 사왕을 벨 수 없지.”
우호법이 갈라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왕을 압도했다는 말은 놈의 무공이 무극(武極)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약관에 무극인가?”
좌호법은 기가 찬다는 얼굴이었다. 그가 수왕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수왕,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수왕이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생각한다면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그가 하늘이 내린 천재라면…….”
“가능하다는 말인가? 하지만 자네도 한창 무공을 배울 때는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지.”
수왕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흔한 천재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래 아이들을 압살하는 재능은 어디에나 있었다.
‘구파일방까지 가지 않더라도 천재라 불리는 무재는 어느 곳에나 한둘쯤은 존재한다.’
그러나 무림 전체가 천재라 칭송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흔한 천재가 아니라. 자네가 생각하는 천재는 내가 생각하는 천재와 다른 모양이군.”
수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천재란 성존께서 걸었던 길을 걸을 수 있는 자입니다.”
성존이 언급되자 좌호법이 목소리를 낮췄다.
“으음, 성존께서 걸었던 길이라. 광오한 말이군.”
성존은 천하를 마도(魔道)로 덮고자 했던 천마(天魔)의 존호.
다시 말해 수왕이 말한 천재는 천마의 위명에 도전할 수 있는 자였다.
“그대는 운이라는 아이가 성존의 뒤를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수왕이 답했다.
“지금은 단지 작은 가능성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왕 중 셋을 그 아이가 베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호법이 그의 대답에 혀를 찼다.
“쯧쯧쯧, 부상을 당하더니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군. 그 누구도 성존의 뒤를 따를 수는 없네.”
좌호법도 성존의 뒤를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가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
그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만에 하나 그 아이가 성존의 뒤를 따를 정도의 그릇이라면, 난 그 아이를 따를 걸세.”
우호법은 좌호법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그 아이의 뒤를 따르다니!”
좌호법은 이상할 것 없다는 얼굴이었다.
“우(右), 우리가 따르는 것은 성존이지 천가(天家)나 명가(明家)가 아닐세. 난 성존의 후계자가 나타난다면 그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네.”
그는 천가와 명가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좌(左,) 나는 여태 자네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네.”
좌호법은 놀라는 우호법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성존의 후계자를 보고도 천가에 충성을 바친다고? 그것은 바보 같은 생각일세. 명왕께 물어보게. 아마 나와 같은 답을 하실 것일세.”
우호법은 그의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명왕께서도?”
“그분께서는 오래전부터 진정한 주군을 기다리고 계신다네.”
진정한 주군.
그 한마디는 교주인 천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수왕은 두 사람의 말을 듣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들에게 교주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란 말인가?’
그가 알고 있는 한 천혁은 파천궁에서 가장 뛰어난 무공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데 두 사람은 그런 천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두 분 호법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두 호법이 수왕의 한마디에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이야기인가?”
“운이라는 아이가 성존의 후계자라는 말인가?”
수왕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지금 명증을 공격하면 그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두 호법은 동시에 팔짱을 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두 사람 중 하나가 죽을 수도 있어.”
“맞아, 태화전의 경비는 그 어느 때보다 삼엄하단 말이지.”
수왕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두 분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한데 현실은 아닌 모양이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두 분의 능력을 너무 높이 계산하는 바람에…….”
그가 말을 줄이자 우호법이 오른손 식지를 세웠다.
“잠깐! 그 말은 좀 그렇군.”
“예?”
“우리 능력을 너무 높이 계산했다는 말 말일세.”
“두 분께서는 태화전에 잠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우호법이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나?”
“맞아, 내가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은 명증의 수강 때문이야. 태화전의 잠입은 어렵지 않지.”
수왕이 얼굴을 펴며 말했다.
“그러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요. 명증은 강기를 쓸 수 없을 것입니다.”
“뭐라고?”
“지금쯤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독이 퍼졌을 것입니다.”
우호법이 팔짱을 풀고 턱을 쓰다듬었다.
“강기를 쓸 수 없다면…….”
좌호법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를 쓰러뜨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
수왕이 그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 호법이 동시에 대답했다.
“하겠네.”
“하겠어!”
수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두 분만 믿겠습니다.”
좌우호법, 두 사람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홀로 남은 수왕은 미간을 좁히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다 괴물들뿐이군.”
사왕의 필두가 된 이후, 이런 무력감은 처음이었다.
* * *
명천은 유청의 토벌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으나 대명궁 공략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주군, 이누한의 지원군이 도착한다고 해도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초원의 대족장 이누한의 병사들은 기병이었다.
기병으로 공성전을 벌인다는 것은 장점을 포기하고 단점을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명천은 시선을 양위청에게 돌렸다.
“양 단주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까지 명천의 군세는 양위청의 계책에 따라 움직였다.
“대명궁의 성벽은 본궁보다 높고, 병력 또한 적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명궁을 공성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명천은 미간을 좁혔다.
“공격이 어렵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이쪽도 좋을 것은 없지 않나?”
이대로 전투가 벌어지지 않고 시간이 흐른다면, 이누한이 이끌고 오는 오천 기병 자체가 부담이었다.
‘그들을 먹이고, 재워야 하니까.’
용병으로 고용한 칼잡이들도 문제였다.
그들에게는 열흘에 한 번씩 급여가 지급되고 있었다.
‘전투를 두 달 이상 끌게 된다면, 그들에게 줄 돈도 바닥나고 만다.’
양위청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명궁의 북쪽을 봉쇄하고, 그 외의 지역을 장악해야 합니다.”
“그 외의 지역이라고?”
“우선 신강이 있습니다.”
양위청은 신강을 명천의 영토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 신강의 상권과 무역로를 통제하자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신강 다음에는 청해 북쪽과 감숙을 손에 넣는 것이 좋습니다. 이 두 곳을 손에 넣게 된다면, 보급이나 급료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양위청의 말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명천은 천마신교가 지배하던 영역의 절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면 그대의 계책은 장기전인가?”
명천의 물음에 양위청이 답했다.
“이번 전쟁은 먼저 지치는 쪽이 지게 될 것입니다.”
묘원수는 그의 계책에 큰 허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주군, 가볍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양 단주의 계책은 무림맹이 계속 우리 편을 들어줄 때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만에 하나 무림맹이 동쪽에서 치고 들어오면, 그들은 동쪽과 남쪽에서 양면전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양위청이 오른손을 세우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묘원수의 말이 높아졌다.
“그것은 무림맹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양위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무림맹 입장에서는 우리가 멸망하기보다는 이대로 존재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천마신교의 내전이 계속되는 동안 무림맹은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무림맹의 본질은 자기 보신이다.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면, 그들은 무리해서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묘원수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그대의 말은 너무나 낙관적이군요.”
양위청은 고개를 흔들었다.
“낙관적이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무림맹에는 본교를 공격할 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있다고 해도 선뜻 선봉에 나설 문파가 없었다.
‘부맹주 좌건을 지지한 태산파는 장성부근에서 큰 타격을 입었고, 오대세가는 도왕이 전사한 뒤로 선봉에 서는 것을 꺼리고 있다.’
여기에 구파일방과 오악검파의 기세 싸움이 겹쳤다. 그의 말대로 무림맹은 당장 고수들을 움직일 수 없었다.
명천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무림맹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양 단주의 계책에 따라 신강과 그 주변을 손에 넣도록 하겠네.”
그는 대명궁 공략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후방을 든든히 하는 것이 옳다.’
성급하게 적을 치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쪽이 이긴다.
이것이 명천의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