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태양은 오직 하나 (5)
이공자 명각의 저택.
퉁. 퉁. 퉁.
누군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자 경첩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끼익.
문지기는 검을 차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여인은 대답 대신 그에게 명첩을 내밀었다.
“이것은!”
문지기는 명첩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는 급히 허리를 굽혔다.
“안으로 드시죠.”
여인은 문지기를 따라 객관으로 향했다. 그 사이 그녀가 건넨 명첩은 명각에게 전해졌다.
명각은 명첩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눈썹을 위로 올렸다.
‘시녀장 홍비? 그녀가 대체 왜?’
그를 찾아온 여인은 명증의 시녀장 홍비였다.
“시녀장을 어디로 모셨나?”
그의 물음에 하인이 대답했다.
“객관으로 모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관으로 되겠나? 서재에서 만나겠다. 서재로 모시거라.”
“알겠습니다.”
명각이 장소를 바꾼 것은 그녀의 신분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흠, 시녀장이 이 밤에 날 찾아왔다. 사랑 고백은 아닐 테고, 무슨 이유지?’
그는 자신을 찾아왔던 수왕이 자취를 감추자 다소 기세가 꺾인 상태였다.
“옷을 가져와라.”
그는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는 서재로 향했다.
일다향 뒤.
드르륵.
시종들이 문을 열자 책이 빼곡히 꽂힌 서재가 나타났다.
명각은 안으로 들어서며 손을 내저었다.
“너희는 물러가도 좋다.”
문을 열었던 시종들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공자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탁.
명각은 직접 문을 닫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서재 안에는 홍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훌륭한 서재군요.”
홍비는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차분한 느낌이 돋보이는 여인이었다.
“시녀장께서 절 보자고 하셨다고요?”
홍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곧, 허 장로께서도 오실 것입니다.”
명각은 허삼선이 온다는 말에 멈칫했다.
“허 장로께서 말입니까?”
허삼선은 앞서 장로 회의에서 명각을 지지한 바 있었다.
“허 장로께서는 공자님을 지지하고 계십니다.”
명각은 외숙부 유순형이 세상을 떠난 이후, 배경을 잃은 상태였다.
‘허 장로가 배경이 되어 준다면, 장로 회의에서도 해 볼 만하다.’
그가 자세를 고치며 물었다.
“허 장로께서 오시는 것은 장로 회의 때문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하면 시녀장께서도…….”
홍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도 이공자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교주 후보는 바로 이공자 명각이었다.
‘본교는 지금 절대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과 무, 양쪽 모두 뛰어난 이공자가 제격이다.’
물론, 그녀가 명각을 선택한 것은 이것 외에도 이유가 더 있었다.
“시녀장께서 절 지지해 주실 줄이야.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이공자께서는 급하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삼공자 명원은 장로회의 이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 명각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외숙께서 그렇게 되신 이후 모든 것에 의미를 잃고 말았다고 할까요?”
홍비는 그의 말을 듣고는 낮게 웃었다.
“호호호, 그럼 제가 그 의미를 찾게 해 드려야겠네요.”
명각은 그녀의 웃음에 눈썹을 세웠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홍비가 소매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며 말했다.
“교주님께서 집필하시던 책입니다.”
명각은 표지에 쓰여 있는 네 글자를 읽고는 크게 놀랐다.
“이! 이것은!”
그가 이토록 놀란 이유는 책의 제목 때문이었다.
– 천마신공(天魔神功).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일까?
명증은 죽기 전에 교주에서 교주로만 전해진다는 천마신공을 책으로 남긴 것이었다.
그러나 명각은 천마신공을 바로 받지 않았다.
“이것은 독입니까?”
홍비가 미소를 지었다.
“독일까요?”
천마신공은 원래 새로 교주가 되는 이에게 전해져야 하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홍비는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것을 명각에게 내놓았다.
“이런 물건을 그냥 주실 리는 없고,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천마신공은 교주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것을 내어주는데 대가가 없을 리 없었다.
“자, 공자님, 질문입니다. 제가 무엇을 원할까요?”
명각은 천마신공에 손을 뻗으며 물었다.
“교주의 부인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는 아직 혼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내가 있다고 해도 그가 교주가 된다면 또 다른 정실부인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공자는 저보다는 아름다운 여인을 원하실 테니, 그것은 사양하겠습니다.”
홍비는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에게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명각이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홍가의 부흥, 그리고 절 시녀장으로 계속 써 주셨으면 합니다.”
태화전의 실세로 남고 싶다.
홍비의 바람은 의외로 소박했다.
명각은 천마신공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대산팔가에서 진가가 빠지게 되었으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홍비가 낮게 웃었다.
“호호호, 대산팔가에 홍가가 이름을 올리게 된다면,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겠네요.”
명각은 그 정도로 천마신공을 얻을 수 있다면 거저라고 생각했다.
“이쪽이 너무 유리한 거래군요.”
홍비가 바람에 휘날리는 버드나무처럼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님께서 뭔가 하나 더 주시려는 모양이네요.”
명각이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홍가에서 원하는 사람을 부교주에 임명하죠. 이 정도는 되어야 거래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호오, 부교주 자리라면 덤이 아닌 덤이군요.”
덤이기에는 너무나 큰 자리.
“이 책이 진본이라면, 충분한 대가라 생각합니다.”
홍비가 얼굴의 미소를 지우며 말을 받았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진본입니다.”
“하나만 더 묻도록 하죠. 왜 날 선택한 것입니까?”
그녀에게는 명원이라는 선택도 있었다.
“글쎄요?”
“이유가 없진 않을 텐데요?”
“삼공자의 힘으로는 장공자를 토벌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는 재능이 있으니, 천마신공을 완성한다면 큰형을 능가할 수 있을 겁니다.”
홍비는 그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공자를 선택한다면 지금이라도 장공자를 쓰러뜨릴 수 있죠.”
멀리 돌아가지 않고 곧은 길로 가겠다.
이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리고 지금의 이공자는 배경이 없지 않습니까?”
명각은 쓴웃음을 지었다.
“귀주석가가 막내를 선택했던 때와 같군요.”
“허 장로와 저희 홍가가 공자님, 아니 교주님의 배경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배경이 없는 그에게 새로운 배경이 생긴다. 이것은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새로운 날개가 돋아난다는 말이었다.
명각이 낮게 웃었다.
“후후후, 약해지는 것도 때로는 이득이 될 때가 있군요.”
홍비가 그의 말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전화위복이 아닐까요?”
그녀와 허삼선은 명각을 앞세워 천마신교의 권력을 잡고자 했다.
* * *
삼공자 명원.
그가 고삐를 당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군이 오고 있다!”
멀리에서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수십 명의 걸음으로는 저러한 먼지구름이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수백, 많게는 천 단위의 병력이 움직여야 저 정도의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생각보다 가까이 왔군요.”
신풍의 말에 명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께서 승하하셨다는 전서를 받고는 급히 북진한 모양이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만나야겠지.”
명원은 북상하고 있는 군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여 장로를 설득한 다음 운을 설득한다. 이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광명좌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진군하고 있는 군대는 예상대로 명운이 이끄는 군세였다. 선두에 선 명운의 눈에 명원과 그 일행이 들어왔다.
“누가 다가오고 있군.”
주작대주 이건석이 정면을 주시하며 말을 받았다.
“척후를 보낼까요?”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이건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을 내렸다.
“전원 정지!”
그의 외침에 말과 병사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척! 척! 척!
거리가 좁혀지자 명운은 선두에 선 이가 명원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셋째 형이?’
명원의 방문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광명정에서 뭔가 일이 일어난 모양이군.’
그는 명원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두 손을 모았다.
“막내가 형님께 인사 올립니다.”
명원은 오른손을 들어 동생의 인사를 받았다.
“오랜만이구나.”
그는 동생과 인사를 주고받은 뒤 여진훈과도 인사를 주고받았다.
“여 장로님 오랜만입니다.”
“삼공자님도 오랜만이군요.”
명원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양 좌사는 이 자리에 없는 것입니까?”
여진훈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 자리에 없소이다.”
“그렇다면 군대를 통솔하는 것은…….”
“부교주님이 있지 않습니까?”
명원은 여진훈의 대답에 눈을 크게 떴다.
“운이 군을 통솔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건석이 두 손을 모으며 답했다.
“부교주님께서는 군을 통솔하여 여러 차례 파천궁을 격파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게 무슨 말인가? 운이 파천궁을 격파하다니.”
“말 그대로입니다.”
당황하는 명원에게 명운이 물었다.
“형님, 정말로 아버님께서 승하하신 것입니까?”
명원은 고개를 돌려 동생의 물음에 답했다.
“아버님께서 승하하신 것은 사실이다.”
그의 대답에 여진훈을 비롯한 모두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
“흉보가 사실이었구나!”
명운은 깊은숨을 내쉬며 물었다.
“형님, 혹시 큰형이 자객을 보낸 것입니까?”
그는 명증이 암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누가 자객을 보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아버님께 중상을 입힌 자가 둘째 형으로 역용을 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있구나.”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역시 자객을 이용한 암살인가?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천마신공을 완성하셨다. 천마신공을 완성한 고수가 자객에게 빈틈을 내어 주었단 말인가?’
그는 모든 것을 명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하나 끼워서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 형으로 역용을 했다면……. 둘째 형에게 누명을 씌울 생각이었군요.”
명원이 물었다.
“그 말은 둘째 형은 암살자와 관련이 없다는 말이냐?”
명운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아버님께서 둘째 형을 구속하셨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아버님께서는 둘째 형을 의심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명원은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껄끄러웠다. 그의 목적은 암살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명운을 설득해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겠지.’
그가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아버님의 상처가 악화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어떠한 사건이 있었습니까?”
“그렇다. 누군가 아버님의 침소에 침입해 아버님의 목숨을 노렸다.”
순간 명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호위들은 대체 무엇을 했단 말입니까?”
이것은 여진훈과 이건석도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현무대는 대체 무엇을 했기에 교주의 거처에 두 번이나 침입을 허락했단 말인가?’
‘교주께서 자객의 침입을 받아 승하하셨다면, 현무대주는 자결로서 이 죄를 갚아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은 현무대주 노혁준이게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호위들에게 책임을 묻기 이전에 현무대는 진 가주의 반란과 큰형의 반란을 겪으며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교주의 침전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말씀입니까?”
“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명원의 음성이 떨리자 보다 못한 신풍이 나섰다.
“칠공자님, 공자님께서는 현무대주가 아니라 흑살대주이십니다. 어찌하여 공자님을 몰아붙이시는 것입니까?”
그는 명운이 명원을 몰아붙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여진훈이 그를 엄하게 꾸짖었다.
“갈(喝)! 형제의 대화에 어찌 종이 끼어드는 것이냐?”
그의 외침에는 내공이 실려 있었기에 신풍은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운이 오른손을 들며 여진훈을 말렸다.
“여 장로님, 제가 조금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명원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풍에게 악의는 없었을 것입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죠.”
여진훈은 두 사람의 말에 수염을 쓰다듬었다.
“노부가 잠시 화가 났었나 보오.”
명원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렇게 서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자리를 조금 비키는 것이 어떨까?”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두 사람이 자리를 옮기자 이건석이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었다.
“전원 휴식!”
명원은 명운을 따라가며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머릿속이 혼란스럽구나. 이래서야 운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
형제는 그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님, 아버님 일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명원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했다. 명운은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미간을 좁혔다.
“결국, 습격한 자들을 잡지 못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께서 추격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하는구나.”
명운은 주먹을 꾹 쥐었다.
‘그 정도 무공을 지닌 자들이라면 파천궁이 유력하다.’
그는 파천궁의 강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