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장로회의 (3)
명운은 의외의 손님이라 생각했다.
“시녀장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그를 찾아온 것은 시녀장 홍비였다.
“장로회의 전 부교주님을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명운은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목적이 홍가(洪家)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흠, 홍가를 대산팔가에 넣고자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녀가 내게 줄 것은 많지 않다.’
대설진가가 빠진 자리를 노리는 가문은 홍가 말고도 많았다. 때문에 그는 홍가를 대산팔가의 후보로 생각하지 않았다.
“장로회의 전에 만나고 싶었다. 무슨 이유일까요?”
“부교주님께서 다음 교주님이 되시리라 들었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장로회의 결과는 쉬이 예측할 수 없습니다.”
홍비는 무릎 위에 올린 손을 살짝 쥐었다.
“부교주님이 아니라면 그 누가 대명좌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명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런 이야기나 하려고 절 찾아오신 것입니까?”
“그 밖의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녀는 석비연과 다르게 정치적이었다.
‘내 빈정거림을 듣고도 표정에 변화가 없구나.’
명운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석 누님을 내치고, 그녀를 시녀장에 임명했을까? 이유가 있기는 할 텐데 말이야.’
이것만큼은 명증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이야기라. 해 보시죠.”
홍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주님께 한 사람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제게 사람을 추천하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홍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누구를 추천하시겠습니까?”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재를 적절히 등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녀가 제대로 된 인재를 추천한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녀에게는 호감이 없었지만, 추천하는 인물이 뛰어나다면 그를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복주원가의 여식인 원영재를 시녀장에 추천합니다.”
명운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원 소저를 후임으로 추천하고 싶다는 말씀이시군요.”
새로운 인재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후임을 추천하기 위해서 이곳까지 왔다? 그 말을 믿어도 될까?’
그는 홍비에게 다른 생각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시녀장에 오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교주님을 모셔야 하고, 또 어떠한 일에 신경 더 써야 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명운은 담담하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원 소저를 추천하는 이유가 그것뿐입니까?”
그는 홍비가 원영재를 추천한 이유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복주원가에 점수를 따고자 한 것이겠지.’
복주원가는 적풍대주 원우형을 잃었으나 명운의 배경이 되면서 다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원 소저는 대산팔가 사람이면서 부교주님과 친분이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부교주부의 시녀장을 맡고 있지 않습니까? 이보다 더 적절한 인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교주부의 시녀장이 그대로 태화전의 시녀장이 된다.
너무나 간단한 이야기였다.
명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하지 못하시군요. 계속 이런 식이면 이야기를 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
그가 일어서려 하자 홍비가 다급하게 외쳤다.
“다른 이유도 분명 있습니다!”
명운은 시선을 다시 그녀에게 돌렸다.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더는 들어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홍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원 소저를 추천한 것입니다.”
“어떤 정치적인 이유입니까?”
“복주원가는 대산팔가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적풍대주가 전사하면서 고위직에 오른 인물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명운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원 소저가 시녀장에 오른다면, 복주원가는 자신들의 세력을 회복할 수 있으며, 다른 대산팔가들과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이 말이 하고 싶으신 것입니까?”
홍비가 오른손 식지를 세웠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래야죠. 이 정도라면 제 시간을 빼앗은 것밖에는 안 될 테니까요.”
홍비는 그의 말을 듣고는 미간을 좁혔다.
‘신교의 중진들보다 대화가 능숙하다.’
그녀는 그와 마주하기 전까지 명운을 얕보고 있었다.
자신보다 아래.
아니, 양대충의 후원을 받고 있는 풋내기.
무공은 뛰어날지 몰라도 사람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는 아직 미숙한 청년.
그러나 그녀가 마주한 명운은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명운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시녀장이라는 자리는 교주님과 사적으로 얽히지 않은 이가 맡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원 소저는 적임입니다.”
“시녀장께서 제 사생활을 다 걱정해 주시는군요.”
“시녀장은 교주님의 모든 것을 챙기는 자리입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는 일리가 있군요. 아버님도 그러했으니까요.”
정치적인 부분은 그도 생각한 바 있었다.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그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 이야기하기 위해서 절 찾아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홍비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사람 더 소개할 사람이 있습니다.”
명운이 두 손을 모으며 물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새로운 인재.
그는 드디어 본론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원 소저를 추천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은 아닐 터. 누구를 소개할지 들어 보도록 하자.’
그가 모았던 손을 풀며 말했다.
“말씀하시죠.”
“연이라는 아이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순간 명운의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겨우 미인계인가?’
그에게 미인계는 통하지 않았다.
“연이라면 홍가의 여인입니까?”
명운은 홍비가 홍가의 여인을 측실로 보내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은 홍가의 여인이 아니었다.
“연은 제 맡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입니다.”
명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시녀장님의 심복이란 말입니까?”
“심복이라면 심복일 수도 있겠군요.”
자신의 심복을 추천한다.
흔치 않은 이야기였다.
‘흠, 미인계보다는 낫군.’
조금이나마 흥비가 돌아왔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홍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원 소저는 시녀장이 될 수 있는 재능과 배경을 가진 여인입니다. 하지만 태화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적지요. 연은 그런 원 소저를 보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원 소저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도 있습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제게 필요한 여인이 아니라 원 소저에게 필요한 여인이라는 말이군요.”
“그렇게 들리셨습니까?”
“아닙니까?”
“태화전이 바로 서야 교주님의 치세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교주님, 태화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홍비는 명운을 부교주가 아닌 교주로 칭했다.
명운은 그녀가 호칭을 바꾸자 얼굴을 굳혔다.
“내게 아첨은 통하지 않습니다.”
“아첨이 아닙니다.”
“교주가 아닌 자를 교주라 부르는데, 아첨이 아니란 말입니까?”
홍비가 답했다.
“광명정의 장로회의는 이미 정해진 광명좌의 주인을 확인하는 자리일 뿐입니다.”
새로운 교주는 이미 정해져 있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입술 끝을 올렸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교주님 외에 누가 광명좌에 앉을 수 있단 말입니까?”
홍비는 삼공자 명원은 애초에 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보았다.
“아직 셋째 형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명운은 그녀의 물음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신경전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그는 자신이 광명좌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저는 교주님과 신경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명운이 물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심복을 이쪽에 넘기기 위해 찾아온 것은 아닐 텐데요?”
그는 홍비가 아직 진짜 패를 꺼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관대한 처분을 부탁드리고자 찾아왔습니다.”
“관대한 처분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교주가 바뀐다는 것은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과 같은 말. 앞으로 있을 새로운 파도 속에서 홍가를 온전하게 남기고 싶습니다.”
홍비가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자신과 홍가의 안녕이었다.
‘대산팔가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도 쇠락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목소리를 굳혔다.
“홍가가 다른 뜻을 품지 않는다면 어떠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나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홍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홍가는 결코 교주님께 두 가지 마음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말을 마친 뒤 절을 올렸다.
이 절에는 충성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명운은 그녀의 충성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신교에는 대산팔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가문 또한 신경을 써야 한다.’
아군이 늘어나면 그만큼 이쪽의 힘도 강해졌다.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시죠.”
홍비가 머리를 바닥에 댄 채 그의 말을 받았다.
“교주님, 말씀을 놓아 주십시오.”
“전 아직 교주가 아닙니다.”
“제게는 교주님이십니다. 교주님은 그 누구에게도 존대하지 않습니다.”
명운은 한숨을 내쉬고는 오른손을 들었다.
“고집이 세군요. 알겠습니다. 말을 바꾸죠. 홍비, 일어나게.”
그가 하대하자 그제야 홍비가 고개를 들며 일어났다.
“교주님, 노복은 앞으로 죽을 때까지 교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래서 연이라는 아이는 언제 보낼 것인가?”
“이미 데려왔습니다.”
이곳에 놓고 돌아가겠다는 말.
“음, 성급하군.”
“싫다고 하시면 데리고 돌아가겠습니다.”
명운은 턱을 쓰다듬었다.
“일단 두고 가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자네가 원하는 대로 쓰이지 않을 수도 있네.”
원영재가 연이라는 여인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홍비가 말한 것과 달리 똑똑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었다.
“똑똑한 아이이니, 따로 쓸 곳이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인가?”
“제게 교주님을 찾아가라 말한 이가 바로 그 아이입니다.”
명운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대의 책사란 말이군.”
홍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똑똑한 아이는 어느 곳에서나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알겠네. 기억해 두지.”
어느 정도 거래가 끝났다고 생각한 것일까?
홍비가 품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교주님께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명운은 그 책자를 받은 뒤 미간을 좁혔다.
‘이것은?’
그의 목소리가 순간 높아졌다.
“이것이 어찌하여 그대의 손에 있단 말인가?”
그가 들고 있는 책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 천마신공(天魔神功).
홍비는 앞서 천마신공을 가지고 명각과 거래를 한 적이 있었다.
“교주님의 책상 위에 있던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녀가 명운에게 내민 것은 진본(眞本)이었다.
‘이공자에게 준 것은 필사본이었지.’
이공자 명각은 자신이 손에 넣은 책이 진본인지 아닌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그것을 덥석 받았다. 그러나 명운은 달랐다.
“아버님의 책상에 있던 것을 그대가 손댔단 말인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몸에서 거친 진기가 뿜어져 나왔다.
홍비는 무공을 배우지 않았으니, 그의 진기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요, 용서를…….”
명운은 그녀가 고통스러워하자 기운을 조금 거두어들였다.
“말하라!”
그의 호통에 홍비가 이마를 조아렸다.
“휴, 흉수가 습격한 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것입니다. 그대로 두었다면 다른 이가 가져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수습한 것입니다.”
명운은 힘을 완전히 거둬들였다.
“훔친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노복이 어찌 그러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로 두면 귀한 물건이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홍비는 명운과 대화하며 생각했다.
‘이공자와 완전히 다르구나.’
그녀가 천마신공의 필사본을 넘겼을 때, 명각은 크게 기뻐하며 그녀를 우대했다. 하지만 명운은 달랐다.
“이것은 아버님의 것이다.”
홍비가 거친 숨을 고르며 말했다.
“교주님의 것이자 신교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고, 얼굴은 몹시 창백했다.
명운이 그녀에게 천마신공을 돌려주며 말했다.
“이것을 아버님의 책상에 다시 올려놓고, 아무도 들어갈 수 없도록 서재를 봉인하라.”
그의 명에 홍비는 머리를 바닥에 쿵쿵하고 찧었다.
“삼가, 교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홍비는 생각했다.
‘천마신공을 탐하지 않을 줄이야. 그릇이 다르구나.’
보물을 보고 침을 흘리는 자와 그것을 돌 보듯 하는 자.
어느 쪽의 그릇이 더 큰지는 자명했다.
그녀가 돌아간 뒤, 경은이 안으로 들어섰다.
“사부님, 소리가 크던데 무슨 일이었을까요?”
경은은 옆방에 있었기에 모든 것을 쉬이 느낄 수 있었다.
“시녀장이 충성을 맹세하더구나.”
“충성 맹세가 혼을 낼 일인가요?”
“혼은 무슨, 가볍게 경고한 거야. 그리고 충성을 맹세했기 때문에 경고한 것이 아니야.”
경은은 의자 옆에 놓인 작은 협탁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차도 내오지 못했네요.”
명운이 찻잔을 들며 미소를 지었다.
“차를 함께 마실 사이는 아니니까.”
“사부님, 그래도 적을 많이 만드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충성을 맹세 받았다니까.”
경은이 그의 옆에 서며 말했다.
“요즘 사부님은 날카로우신 것 같아요.”
그가 예전보다 날카로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사건이 너무 많았어.’
명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앉아.”
그가 자리를 권하자 경은이 오른쪽에 앉았다.
“강 총관이 기다리다가 돌아갔습니다.”
명운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가 홍비를 만난 덕분에 강하원은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강 총관이 나와 어떤 일을 상의하려 했지?”
“주부의 호위무사를 늘리는 일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명운의 가병은 낙산원 시절부터 따른 십여 명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강하원은 주부의 호위와 명운의 경호를 위해 규모를 더 크게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병은 필요가 없을 거야.”
경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
“곧 장로회의가 열리니까.”
장로회의에서 교주로 추대된다면 더 이상 가병은 필요하지 않았다.
천마신교의 모든 무인이 교주의 가병이자 호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