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장로회의 (4)
교주는 가병이 필요 없다.
경은은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정말로 이번 장로회의에서 사부님이 교주가 되시는 건가요?”
조금 전까지 명운은 교주가 된다는 말을 부정했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교주로 가는 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이번에는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아니, 빼앗길 수가 없었다.
경쟁자들이 모두 무릎을 꿇은 상황.
한마디로 장로회의는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명운은 문득 두 손을 쥐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있는 힘을 다해 싸웠고, 드디어 광명좌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되었을까요?’
마음속 외침은 자신을 과거로 돌려보낸 목소리를 향하고 있었다. 물론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없었다.
‘대답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겠죠.’
명운은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경은이 말했다.
“사부님, 이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 이상하단 말이냐?”
“유 부교주님 말입니다.”
“유 부교주가?”
“도민국에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보고나 전달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모두가 광명좌의 주인에게 시선이 쏠려 있을 때도 그녀는 도민국의 군주 일함을 생각했다.
‘그녀는 사부님의 반려자가 될 사람이니까.’
명운은 경은이 도민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턱을 쓰다듬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군. 뭔가 도민국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경은이 한 통의 전서를 내밀었다.
“도민국에서 온 것입니다.”
“음?”
“팽 호위가 보내온 것입니다.”
팽헌충은 지금 도민국에 머물고 있었다.
“헌충의 편지인가? 이것을 누가 가져왔지?”
“그제 서북 상단 상인이 가져왔습니다.”
천마신교에는 내전이 벌어졌으나 각지의 상단들은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으음.”
편지의 내용은 그의 가슴을 따끔하게 했다.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 일함 군주는 주군을 크게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하나 주군께서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편지 한 통 보내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에 군주가 크게 낙담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편지를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명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것은 내 잘못이다.”
그는 아내가 될 사람을 전혀 챙기지 못했다.
‘그뿐이 아니다. 다른 여인을 가슴에 품느라 그녀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말았다.’
미안함이 가득 차올랐다.
‘두 사람을 품는 것도 이렇게 벅찬데. 아버님께서는 어찌 여러 여인을 부인으로 받아들이셨단 말인가?’
역대 교주들이 대산팔가의 권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쉬이 흉내를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을 주지 않고 여인을 품을 수 있을까?’
명운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아마 안 될 것이다.’
그는 고개를 경은에게 돌렸다.
“지필묵을 가져오너라.”
“예, 사부님.”
경은은 명운의 명에 재빨리 지필묵을 준비했다. 그녀의 손놀림은 민첩하면서도 절도가 있었다.
‘사실 시녀장으로는 경은만 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경은에게 시녀장을 맡길 수는 없었다.
‘원가에 약속한 것이 있으니까.’
홍비가 말한 것처럼 원가는 고위 교직에 오른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영재를 시녀장에 임명하는 것은 적절한 인사였다.
경은은 그가 편지를 다 쓸 때까지 다른 쪽을 응시하며, 편지의 내용을 살피지 않았다.
명운은 그녀의 그런 배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사부의 연서는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지.’
명운은 장로회의가 끝나면, 경은의 혼처 또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혼기를 놓치면 곤란하니까.’
그는 편지를 다 쓴 뒤에 짧게 말리는 시간을 가졌다.
“은아, 장로회의가 끝나면 네게 시간을 주고자 한다.”
경은은 그의 말에 멈칫했다.
“어떤 시간 말인가요?”
“그간 잡무에 매달리느라 무공을 연마하지 못했을 테니까.”
명운은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사부님, 전 괜찮습니다.”
“내가 괜찮지 않다.”
경은은 그의 제자였다.
명운은 그녀가 적어도 고수 소리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주의 제자가 경호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면 안 될 테니까.’
경은이 편지를 넣을 봉투를 준비하며 물었다.
“사부님께서 교주님이 되시면, 원 소저가 시녀장을 맡게 되겠죠?”
“그렇게 약속을 했단다.”
경은은 답을 알고 있었으나 막상 그 말을 귀로 듣게 되자 힘이 살짝 풀리는 느낌이었다.
“저도 원 소저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명운이 편지 상태를 확인하며 말했다.
“사실 시녀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원 소저가 아니라 너겠지.”
경은은 그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제가 어찌 그렇게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명운이 편지를 접으며 답했다.
“넌 교주의 제자이니, 자격은 충분하다. 다만, 시녀장이 되면 시집을 갈 수가 없지 않겠느냐?”
경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시집이라고요?”
혼사.
경은은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네 곁에도 좋은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원하는 사람을 찾아 연을 맺어 주도록 하마.”
그의 한마디에 경은이 털썩 주저앉았다.
“사부님, 제자 사부님의 곁에서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명운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아?”
경은이 간곡하게 말했다.
“사부님, 부디 제자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명운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가 어찌 널 버리겠느냐. 난 그저 네 행복을…….”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 눈은…….’
그는 이러한 눈을 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일함의 눈이 그러했고, 사마진의 눈이 그러했다.
‘왜 몰랐던 것일까?’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제자였고, 언제나 그를 챙겨 주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녀는 제자보다는 누이 같았다.
경은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사부님, 제자는 사부님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사부님과 함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명운은 생각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고.
‘어떻게 이 일을 수습한단 말인가?’
지금 당장 그녀를 측실이나 부인으로 맞이할 수는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알겠다. 네가 원한다면 언제까지 내 곁에 있어도 좋다.”
경은의 얼굴이 이내 밝아졌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인 것도, 어떠한 지위를 내리겠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명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경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연서를 쓰자마자 또 다른 여인에게 손을 뻗었구나.’
그는 자신이 참으로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다면 도민국으로 직접 찾아가서 일함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 모든 일이 마무리될지 알 수가 없었다.
* * *
장로회의 하루 전.
명운의 부교주부에 사람들이 모였다.
“내일이군요.”
먼저 입을 연 것은 주작대주 이건석이었다. 그는 단곡전투 이후 명운에게 기울었다.
“광명정에서 결정이 나겠지.”
수염을 쓰다듬은 것은 복주원가 가주 원승후였다. 그는 이곳에 모인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원 장로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건석의 물음에 원승후가 답했다.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부교주님의 교주 위는 반석에 놓인 것처럼 완벽하다네.”
“그래도 아직 유 부교주가 있습니다.”
부교주 유청은 아직까지 명운을 만나지 않은 상태였다.
“제가 유 부교주를 만나 보았습니다.”
왼편에 앉은 이는 호법 허위천이었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한발 앞서 대명궁에 입궁한 바 있었다.
“어떻던가?”
원승후의 물음에 허위천이 답했다.
“유 부교주는 최대한 공정하게 이번 일을 처리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 교주가 되고자 하는 야망은 보이지 않았나?”
허위천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유 부교주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여진훈 역시 그의 말에 동의했다.
“유 부교주는 원래 그런 사람이지요.”
귀주석가 가주 석준명이 말했다.
“유 부교주가 중립을 지켜 준다면, 무난하게 광명좌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장로만 해도 셋.
그는 명운의 교주 즉위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명궁에서 광명좌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장공자를 토벌하는 것과 파천궁을 막아 내는 것이다.’
천마신교는 파천궁을 상대로 단곡에서 승리를 거뒀으나 비로궁에서 패퇴해 일승일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직 삼공자가 있습니다.”
원승후의 말에 여진훈이 오른손을 들었다.
“삼공자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력이 작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삼공자는 이미 부교주님에게 패한 바 있습니다.”
여진훈의 대답에 원승후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삼공자가 패하다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여진훈은 삼공자가 언제 찾아왔고, 어떻게 승부를 겨루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원승후는 그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여진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장로회의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그 이후의 일에 대해 논의하는 것입니다.”
그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명운이 심복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따로 손님이 찾아오는 바람에…….”
“이 시간에 손님이 찾아왔단 말입니까?”
명운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누가 찾아왔는지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가 앉자 다시 논의가 이어졌다.
“부교주님, 내일 회의는 무난하게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이면 명운이 광명좌의 주인이 될 터였다.
“변수는 없다고 보십니까?”
여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공자가 쓰러졌으니, 더는 변수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큰형이 입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원승후가 명운의 물음에 답했다.
“비로궁 쪽 비선에 따르면 상당한 병력이 북쪽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병력을 북쪽으로 보냈다는 것은 대명궁으로 올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흠, 그럼 큰형은 오지 않는다는 말이군요.”
“그렇게 되겠지요.”
여진훈이 앞서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부교주님, 중요한 것은 광명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지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맞는 말씀입니다. 지금 신교는 사방으로 포위된 상황입니다.”
북쪽의 명천, 남쪽의 파천궁, 동쪽의 무림맹이 천마신교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 쪽부터 해결하실 생각이십니까?”
군무에 관해 물은 이는 이건석이었다.
“북쪽부터 해결하는 게 좋지 않겠나?”
명운은 장로들에게는 존대했으나 사신대주와 삼단주에게는 존대하지 않았다. 이는 자신의 신분을 명확히 한 것이었다.
“내전부터 끝내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명운이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쥐며 말했다.
“큰형의 반란을 완전히 토벌하지 못한다고 해도 비로궁만은 함락시킬 생각일세.”
비로궁은 대명궁에서 너무 가까웠다.
‘비로궁을 그대로 두면 어느 곳에도 병력을 보낼 수 없다.’
여진훈은 명운의 의견에 동의했다.
“저도 내전을 끝내는 것이 외적의 침입을 격퇴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허위천도 손을 들며 여진훈을 따랐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승후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좋습니다. 장로회의가 끝난 뒤, 비로궁 정벌을 발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비로궁 정벌을 이야기할 때 한 사람만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명운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송 호법은 다른 생각이 있는가?”
호법 송원표.
그는 명운과 명각의 비무 때도 넓은 시야로 다른 이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 바 있었다.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
명운은 오른손을 들었다.
“이 자리는 서로의 의견을 기탄없이 확인하는 자리일세. 그대가 어떠한 말을 해도 나는 그대를 탓하지 않을 것일세.”
송원표는 명운의 말을 듣고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교주님, 비로궁 정벌은 내전이면서 골육상잔입니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명운은 그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자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군.”
그는 송원표 덕분에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환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송 호법도 제법이군.’
송원표는 존재감이 크지 않았지만, 사신대주를 능가하는 실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비로궁을 그냥 둘 수는 없습니다.”
여진훈은 여전히 비로궁 정벌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운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비로궁 정벌은 여러 가지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어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진훈이 그에게 물었다.
“부교주님,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신교의 최대 적은 비로궁도 파천궁도 무림맹도 아닙니다.”
여진훈은 미간을 좁혔다.
‘사방을 포위한 자들이 우리 적이 아니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설마 우리의 나태함이 가장 큰 적이라고 말을 하고 싶으신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너무 상투적인 발언이었다.
명운이 오른손 식지를 세우며 말을 이었다.
“본교가 가장 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적은 바로 아버님의 목숨을 빼앗은 흉수입니다.”
전대 교주 명증은 공식적으로 흉수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흉수의 습격 때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교주님에 대한 복수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잊다니, 교주님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아직도 흉수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니, 면목이 없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자책하는 말이 쏟아졌다.
명운은 길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후……. 아버님을 해한 흉수는 그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른 시간 안에 반드시 광명정의 일에 개입하고자 할 것입니다.”
여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는 장로회의에 변수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공자가 아닌 명증을 암살한 흉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부교주님의 경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에서 명운마저 쓰러져 버린다면 천마신교는 그대로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