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5)
25화 겨울을 보내다 (3)
“가르침을 내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에서는 곤란할 것 같군.”
깊은 이야기를 오래 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강하원도 곧 그것을 깨달았다.
“경매 참여자는 많지 않지만, 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많군요.”
명운과 강하원도 엄밀히 말하면 구경꾼이었다.
무복을 입은 사내의 경매가 끝나자 작고 어린 소녀가 경매대에 섰다.
명운은 그 소녀를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무림맹에서 저렇게 어린 아이를 보냈단 말인가?”
강하원이 소녀의 위아래를 훑어본 뒤 대답했다.
“무림맹 소속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명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저 아이는 왜 저곳에 서 있단 말인가?”
누군가 도망친 시녀나 시비를 노예 시장에 넘긴 것일까?
“무림맹에 협조한 마을의 아이인 것 같습니다.”
“협조한 마을의 아이?”
“그들을 위한 길잡이나 숙식을 제공한 자들은 배신자와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명운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어리군.”
그는 소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딘가 눈에 익어.’
이름 없는 마을의 나약한 소녀가 얼굴이 익을 리 없었다.
‘흠, 누군가 내가 알고 있는 이와 연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일단 잡아 두고 내력을 캐내 볼까?’
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강 총관, 저 아이를 낙찰받게.”
강하원이 멈칫했다.
“저 아이 말입니까?”
“나이도 어리고, 힘도 약하니. 그리 비싸진 않을 것 아닌가?”
강하원이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그게…….”
어린 여자아이를 노예로 사들이려는 자는 노동력만을 보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천마신교의 노예 경매장이었다.
이곳에서 팔린 소녀들은 홍등가의 기녀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강하원은 이러한 내용을 명운에게 설명하기 힘들었다.
‘그대로 말씀드릴 수도 없고, 이걸 어쩌나 싶군.’
그는 미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명운은 강하원의 표정과 높아지는 경매 가격을 본 뒤에야 상황을 깨달았다.
‘후우…… 추악한 자들을 생각하지 못했군.’
그가 손가락을 들며 말했다.
“백 냥까지는 허락하겠네.”
강하원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공자님, 백 냥은 큰돈입니다.”
강호인들이 돈을 너무 쉽게 쓴 나머지 백 냥이 작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나 강호인이 아닌 일반 백성들에게 백 냥은 자신의 신분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큰돈이었다.
예를 들어 백 냥이면 내전과 외전이 구분되어 있는 집을 구입할 수 있었으며, 작은 기루나 제법 규모가 있는 식당을 열 수도 있었다.
“백 냥이 큰돈이기는 하나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강하원은 명운이 소녀를 데려오려는 목적을 몰랐기에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공자님, 또래 여자아이를 원하신다면 다른 곳에서 시녀를 구해 드리겠습니다.”
곱상한 시녀를 고용하는 것은 연에 석 냥이면 충분했다.
명운이 미간을 좁혔다.
“여자아이라서가 아닐세. 저 아이에게 사연이 느껴져서 그러네.”
강하원이 눈썹을 움직였다.
“사연 말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에게 뭔가가 있어. 내 감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네.”
지금까지 명운의 지시나 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강하원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곧 마음을 돌렸다.
‘공자님 말대로 백 냥이라면 쓰지 못할 돈은 아니다.’
그가 손을 들며 경매에 참여했다.
“오십 냥!”
“오십 냥! 오십 냥 나왔습니다!”
노예 상인은 매물의 가격이 올라가자 환한 표정을 지었다.
“육십 냥!”
육십 냥을 부른 것은 매염루라는 기루를 운영하고 있는 노인이었다.
강하원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육십하고 다섯 냥!”
노예 상인은 빠르게 그의 호가를 불렀다.
“육십에 다섯 냥 더! 육십에 다섯 냥 더! 더 부르실 분 없으십니까?”
기루를 운영하는 노인이 재차 손을 들었다.
“칠십 냥!”
“칠십 냥 나왔습니다! 더 가실 분 없으십니까? 칠십 냥입니다.”
강하원은 미간을 잔뜩 좁힌 뒤 호가를 높였다.
“팔십 냥!”
노예 상인이 말을 빨리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팔십 냥입니다! 팔십 냥! 최상급 매물에 걸맞은 금액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얼굴이 넓은 사내가 손을 들었다.
“구십 냥!”
강하원은 사내를 알고 있었다.
‘저자는 현무대 조장 아닌가?’
그는 현무대 조장 정도 되는 자가 탐할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구십 냥 나왔습니다! 구십 냥입니다!”
강하원이 재차 금액을 높이려는 순간 명운이 말했다.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그의 말에 강하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포기하시는 겁니까?”
명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심전주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네.”
“예?”
“우리를 지목한 모양이야.”
명운은 생각했다.
‘자심전주 송전흠이 지목한 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은 바로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돈을 많이 쓰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조사할 작정인가?’
송전흠은 명운이 교주로부터 거액을 하사받았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좋지 않은 일입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말했다.
“아마도.”
경매는 계속 진행되었고, 소녀는 백이십 냥에 낙찰되었다.
“백이십 냥! 백이십 냥에 낙찰입니다!”
명운이 강하원에게 물었다.
“낙찰받은 이는 누구인가?”
강하원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저자는 모르는 자입니다.”
그는 인맥이 넓은 편이었지만, 대명궁에 살고 있는 이들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복장을 보니…….”
“적비단 같습니다.”
명운은 생각했다.
‘적비단이라면 사신대 위에 있는 삼단 중 하나, 그들은 아직 지지하는 후계자가 없다.’
그가 물었다.
“적비단 단주는 누구인가?”
명운은 적비단 단주를 몇 명 알고 있었으나 정확히 지금 시기에 단주를 맡고 있는 이를 알지 못했다.
“적비단의 단주는 육도검(六道劍) 등명군입니다.
육도검 등명군.
그는 백호대 대주 조자건이나 현무대 대주 노혁주를 능가하는 고수였다.
‘육도검 등명군이라면 강직하기 이를 데 없는 자가 아닌가? 그를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명운은 이리를 탐하는 쪽이 오히려 움직이기 쉽다고 생각했다.
“적비단은 포기하는 것이 좋겠군.”
강하원이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적비단과의 접촉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소녀 이후 진행된 경매는 대부분 무림맹에 협조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명운은 그들에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강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명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인파를 뚫고 나와 서숙으로 방향을 잡았다.
“공자님.”
“음?”
“아까 말씀드렸던 것 말입니다.”
명운이 물었다.
“적비단 말인가?”
“아닙니다. 송 전주 말입니다.”
“아, 송전흠 말인가?”
“그가 공자님께서 언급하신 사람들을 지목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명운은 자신이 분석한 것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강하원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볍게 탄성을 터트렸다.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역시 공자님이십니다.”
명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쪽을 높일 필요는 없네. 그리고 그보다는 그에게 찍힌 것이 마음에 걸리는군.”
“서숙의 예산은 교주님께서 내리신 돈이니, 송 전주가 트집을 잡는다고 해도 큰 해가 없을 것입니다.”
“송전흠은 깐깐하지 않은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명운은 예전부터 송전흠처럼 깐깐한 사람들과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오늘 노예 시장은 손해군.’
그가 머리를 긁적였을 때였다.
언제 나타났는지 중년인과 소녀가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강하원은 재빨리 명운의 앞으로 나섰다.
“누구냐?”
그는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에 긴장하고 있었다.
‘나보다 고수다.’
명운은 강하원과 달리 긴장하지 않았다.
“강 총관.”
강하원이 중년인을 주시하며 말했다.
“공자님, 제 뒤에 계십시오.”
명운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강 총관, 저 소녀는 우리가 데려오려 했던 그 소녀가 아닌가? 그리고 그 옆에 선 이는…….”
강하원이 멈칫한 순간 중년인이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적비단의 석주가 칠공자를 뵙습니다.”
강하원은 상대가 적의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곤 다소 긴장을 풀었다.
‘같은 노예를 두고 경매를 했던 자라는 말이군.’
명운이 석주의 인사를 받으며 물었다.
“적비단의 석주라면 비조검 아니십니까?”
석주가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하찮은 자의 별호를 알아주시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명운이 석주의 별호를 알고 있는 이유는 십이 년 뒤에 벌어질 어떠한 사건 때문이었다.
“비조검께서 여기까지 오셨다면 용건이 있으시겠죠?”
석주가 오른손을 들며 답했다.
“대로변에서 오래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명운이 그의 말을 받았다.
“서숙으로 장소를 옮기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석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골목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강하원은 골목이라는 말에 살짝 주먹을 쥐었다.
‘대명궁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리는 없겠지만, 장소가 골목이라면 마냥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윽고 명운이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좋습니다. 저쪽에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명운과 석주 그리고 강하원과 소녀는 골목길로 장소를 옮겼다.
“공자께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명운은 생각했다.
‘비조검의 제안이라. 호기심보다 경계심이 이는 것은 왜일까?’
그는 지난 백호대와 비무가 이번 제안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짐작했다.
“어떤 제안입니까?”
석주가 명운의 두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공자께서 한 사람과 만나 주시면, 이 소녀를 넘겨드리겠습니다.”
명운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 은자 백이십 냥의 가치가 있는 소녀를 얻을 수 있단 말입니까?”
석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해 보는 만남은 아니실 겁니다.”
“손해 보는 만남이 아니다? 그리 쉽게 장담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 두 사람 앞을 막아섰을 때, 석주는 강하원이 주가 되어 거래를 진행하리라 생각했다.
하나 강하원은 뒤에 서 있을 뿐, 거래를 이끌어 가는 것은 얼마 전 열셋이 된 명운이었다.
‘천마(天魔)의 피를 이었기 때문인가? 저 나이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구나.’
석주가 목소리를 낮췄다.
“공자님을 만나고자 하는 분은 쉽게 만나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명운은 얼굴의 미소를 지우며 차갑게 말했다.
“그럼, 전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입니까?”
그가 냉랭하게 받아치자 석주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방 먹었군. 도저히 열셋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는 마치 대주나 단주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칠공자가 주라면, 강하원은 주가 아니었단 말인가?’
석주는 시선을 강하원에게 옮겼다.
강하원은 어떠한 말도 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백호대를 비무로 누른 것…… 아니, 모든 것이 칠공자의 뜻이란 말인가?’
이러한 상황을 만나기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서숙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강하원이 꾸미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석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자님과의 만남을 간곡히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명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날 만나고자 한다면 서숙으로 찾아오면 되는 것입니다.”
“공자님, 서숙으로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분입니다.”
명운은 한 걸음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게 누구입니까?”
그는 상대의 정체도 모른 채 만남에 응할 생각은 없었다.
‘대로변이 아닌 골목으로 부른 것부터가 쉬이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지.’
석주가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제 얼굴을 봐서 응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명운은 그의 말에 오른손을 들었다.
“강 총관, 자리를 비켜 주게.”
자신에게만 이야기해 달라는 뜻.
강하원은 펄쩍 뛰었다.
“공자님!”
명운이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가 손을 쓴다면 자네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을 걸세.”
그는 비조검의 실력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강 총관이 약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는 비조검이다. 그가 전력을 다한다면 십 초식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비조검 석주는 적비단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였다.
무위로 따지면 백호대 대주 조자건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강하원은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속하, 공자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가 사라지자 석주가 소녀의 혈도를 찍었다.
팍.
소리와 함께, 소녀가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명운은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심이 선 모양이군요.”
석주가 심호흡한 뒤에 말했다.
“공자님은 참으로 어려운 분입니다.”
명운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자, 말씀하시죠.”
석주가 잠시 뜸을 들은 뒤 말했다.
“석 장로께서 공자님을 뵙고자 합니다.”
천마신교에서 장로라 불리는 이는 단 열 명이었다.
강호에서는 그들을 십장로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