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광명좌의 주인 (11)
수왕은 무극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따라서 그가 조금 전 보여 준 것은 검강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 정의를 내리지 않았기에 그와 가까운 화왕은 검강과 가까운 그 무엇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녀석은 진짜 검강을 쓸 수 있을까?’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천마신교의 막내 공자이자 새로운 교주인 명운이었다.
휘이익.
불어오는 바람이 명운이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기를 모으진 않는 것인가?’
주변의 기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상단전을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놈이 상단전을 열었다면 무극의 경지에 올라선 것이 분명하다.’
무극의 경지에 올랐다면 진짜 검강을 사용할 것이다.
‘후후후, 진짜 검강이라.’
그는 이미 검강과 같은 강기를 받아 본 적이 있었다.
‘내게는 무리였지.’
명증의 수강.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받아 냈다기보다는 버텼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힘들겠지.’
승패는 이미 갈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항복할 수는 없었다. 그는 명천을 대신해 이 자리에 나온 것이었다.
‘녀석은 지금쯤 날 비난하고 있겠지.’
대신 이겨 주겠다고 나선 이가 패한다면 어찌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명천이 자신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닌 녀석이었다면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명운의 검에는 절정 고수가 감당하기 힘든 힘이 실려 있었다.
“슬슬 끝내지?”
그의 말에 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겠습니다.”
이대로 끝을 내겠다는 선언.
실력이 비슷하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강자의 권리인가?’
수왕은 이미 검에 잔뜩 기운을 불어넣은 뒤였다.
‘이 검으로도 버틸 수 없다면 애초에 글러 먹은 것이겠지.’
천하를 발아래 두겠다던 야심이 덧없이 느껴졌다.
‘무극에 이른 자도 천하를 발아래 두지 못했는데 너무나 오만했구나.’
야심이 꺾인 것은 언제였을까?
명증의 수강에 맞았을 때?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야망이 꺾였을지도 몰랐다.
“와라!”
수왕이 기합을 넣어 외치자 명운이 검을 세웠다.
‘정면인가?’
명운은 현검으로 허공에 큰 호를 그렸다. 수왕은 그의 행동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저 거대한 원은 태극검인가? 하지만 가교에서 태극검을 쓴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태극검은 무당파의 무공으로 그와 비슷한 검은 공동파의 음양오행검 정도밖에 없었다.
“음?”
수왕이 짧게 신음을 내뱉은 것은 사방에서 덮쳐오는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큰 호로 시선을 빼앗은 뒤 무형기로 상대를 쓰러뜨린다.
‘검강도 아니고, 이런 수법으로 날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는 명운의 수법에 분노했다.
‘놈!’
수왕은 검기를 뿌려 자신을 노리는 무형기를 베고자 했다. 그러나 검을 움직이려는 순간, 전혀 다른 곳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뒤?’
진짜 공격은 바로 등 뒤였다.
‘어느새 돌아갔단 말인가?’
그가 검을 급히 뒤로 움직였지만, 이미 명운의 검이 그의 등에 닿았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튕겨 나갔다.
명운이 펼친 수법은 그의 비기 중 하나인 가형검이었다. 그는 이 검으로 사마진을 쓰러뜨린 바 있었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
사마진을 상대할 때는 내력을 조절하여 검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어설픈 공격이면 호신강기에 막히게 될 테니까.’
그는 상당한 내력을 담아 검을 휘둘렀고, 그 결과 수왕은 돌멩이처럼 나뒹굴게 되었다.
“크윽…….”
수왕은 신음과 함께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승부가 났군.”
우호법의 한마디에 좌호법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어떻게 할까?”
“구해야지.”
“지금?”
“놈이 죽으면 곤란해.”
수왕이 여기서 죽는다면 파천궁은 사왕 모두를 잃게 될 터였다.
“할 수 없군.”
두 사람은 성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 * *
수왕이 패배하자 양쪽 군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명운이 이끄는 신교군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만세! 만세! 만세!”
“교주님! 만세!”
여진훈은 이렇게 되리란 걸 알고 있었기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변은 없었군.”
이건석도 명운의 승리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교주님다운 승리입니다.”
혜선단주 장연비도 명운의 마지막 한 수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마지막 일격, 그 빠르기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명운의 가형검은 사마진을 처음 상대할 때보다 더욱 빨라졌다. 그 때문에 수왕과 같은 강자도 그것을 막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불세출의 대영웅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군.”
약관의 이 정도 무공이라면 불혹에 이르렀을 때는 그 무위를 예상하기 힘들었다.
‘현경이라는 경지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명운이 현경을 뛰어넘는다면 중원 침공이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중원을 정복하고, 황제마저 쓰러뜨린다면 교주님은 세상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마교 교주 방랍이 이루지 못했던 명운이 이루는 날이 올 수도 있었다.
승리한 당사자.
그러니까 명운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아니,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너는 누구냐?”
쓰러진 수왕의 얼굴은 명천과 완전히 달랐다. 거대한 기의 폭발이 호신강기를 파괴하며 역용술마저 무너뜨렸던 것이었다.
수왕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기에 그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란 말인가?’
큰형인 줄 알았던 이가 큰형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현무대주의 보고에 따르면 명각으로 역용한 자가 명증을 찔렀다고 했다. 그렇다면 명천으로 역용한 이 자는 명증을 암살하고자 했던 자와 한패일 가능성이 컸다.
‘녀석을 잡아 심문하면 누가 아버지를 습격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팍! 파팍!
짧은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뚱뚱한 사내와 홀쭉한 사내였다. 명운은 그들의 무위가 뛰어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너희는?”
두 사람은 바로 파천궁의 좌우호법이었다. 그들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수왕을 안아 들었다.
“패배자는 물러가야 할 것 같군.”
명운은 그들이 수왕과 함께 도망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놈!”
그가 급히 검을 뻗었지만, 두 사람은 장격을 발출하여 그의 검기를 막아 냈다.
쾅!
폭음과 함께 두 사람과 거리가 벌어졌다.
“도망치지 마라!”
명운이 경공을 전개하려는 순간, 좌호법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대가 상대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닌 비로궁의 진짜 아니던가?”
비로궁의 진짜.
이 말은 명천이 아직 비로궁에 건재하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내가 그들을 추격한다면…….’
남아 있는 신교군은 대장군을 잃은 군대가 될 터였다.
‘여 장로가 잘 막아 낼 수도 있지만, 교주를 잃은 군대가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큭!”
그가 주먹을 쥔 순간 명천이 성벽 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운, 네 무공은 잘 보았다.”
신교 병사들은 명천이 성벽 위에 그 모습을 드러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공자다.”
“장공자가 성벽 위에 있다.”
“그러면 도망친 것은 누구란 말인가?”
“가짜였단 말인가? 하지만 가짜라고 하기에는 엄청난 무공이었잖아!”
삼단주와 사신대주 역시 명천의 등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전 그 자는 장공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가 장공자가 아니라면 누가 저토록 강하단 말입니까? 그리고 가짜를 구한 두 고수는 또 누구입니까?”
현무대주 노혁준은 그 두 사람을 알고 있었다.
‘저들이다.’
그는 급히 여진훈에게 달려갔다.
“장로님!”
여진훈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노 대주, 무슨 일인가?”
“바로 저들입니다!”
“저들?”
“저들이 교주님을 해한 자들입니다.”
명운은 여진훈과 노혁준의 대화를 듣고는 미간을 좁혔다.
‘저들이 아버지의 원수?’
그는 아버지 명증에 대한 복수를 최선으로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하지만 두 고수는 수왕과 함께 멀리 달아난 뒤였다.
그는 시선을 성벽 위로 돌렸다.
“명천! 그대가 저들을 사주해 아버지를 해쳤단 말인가?”
명천은 명운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기가 막혔다.
“명천? 감히 본좌의 존성대명을 언급하다니, 버릇이 없구나!”
그는 스스로 교주를 자처했기에 자신이 명운보다 높다고 생각했다.
“명천! 아버지를 해하고도 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명천은 팔짱을 꼈다.
“운, 무슨 증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
“내가 보낸 전서는 그대에게 전달되었다. 그대가 아니라면 누가 저들을 대신 내보냈단 말인가?”
수왕은 당당히 도개교를 건너 명운 앞에 섰다. 이것은 명천의 허락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명운은 수왕을 놓쳤지만, 명천이 그의 배후라고 생각했다.
‘명천을 다그치면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명천은 혀를 찼다.
“하! 겨우 그런 이유로 내게 누명을 씌우는 것인가?”
“누명? 이곳에 있는 모두가 보았다. 그들이 그대를 대신해서 싸우는 것을 말이다!”
수왕이 본색을 드러냈기 때문에 말로 싸우는 것은 명천에게 불리했다.
‘이쪽의 상황이 좋지 않군.’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성벽 아래로 내려가 명운을 때려눕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그가 보여 준 무위는 명천의 무위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녀석은 운이 아니다. 녀석과 싸운다는 것은 스스로 함정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격이다.’
그는 명운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짜를 내보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명운은 이미 죽고, 가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가짜가 잘도 입을 놀리는구나!”
명운은 잔뜩 이마를 찌푸렸다.
“가짜라 했는가?”
“그렇다! 네 말대로 여기 있는 모두가 네 무공을 보았다. 네 무공이 내 동생 운의 무공이라 볼 수 있는가? 약관에 불과한 청년이 어찌 강기를 쓰며, 천지를 뒤흔들 수 있단 말인가? 너는 앞서 도망친 자와 같다! 얼굴을 바꾸고! 목소리를 흉내 내며 운이라 주장하고 있다!”
약관이 불과한 자는 강기를 쓸 수 없다.
신교 무인들은 이 말에 동요했다.
“약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대단한 무공이긴 하지.”
“깨달음을 얻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무극에 이르는 깨달음을 약관에 얻었다고? 그것이 가능할까?”
“맞아,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
명천은 무인들이 동요하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무릇 무공을 배운 이들은 다 알 것이다! 무공이란 계단을 오르듯 하나하나 경지를 올라가는 것이다! 운을 사칭하는 자를 보아라! 그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무위를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이것이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그는 역용을 한 가짜다!”
성벽 위에 선 비로궁 무인들은 그의 말이 떨어지자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가짜다! 가짜다!”
명운의 무공을 접한 적이 있는 여진훈과 이건석도 명천의 강렬한 주장과 앞서 수왕이 보여 줬던 역용술에 흔들렸다.
‘칠공자가 정말로 가짜란 말인가?’
앞서 여진훈은 명운의 무공을 의심해 서장으로 향한 바 있었다.
이건석은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다.
‘흉수는 장공자와 이공자의 얼굴을 완벽하게 훔쳤다. 그 말은 누군가 칠공자의 얼굴도 훔칠 수 있다는 말이다.’
노혁준이 미간을 좁히며 여진훈에게 물었다.
“장로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여진훈은 명운이 가짜가 아니라고 확답하지 못했다.
‘이것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구나.’
노혁준은 여진훈이 대답하지 않자 이건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단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으음, 그것은…….”
이건석 또한 아니라고 딱 잘라 답하지 못했다.
명운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감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쉬이 명천의 말을 받아치지 못했다. 그가 아니라고 주장한들 그것을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위험하구나.’
모두의 웅성거림을 뚫고 육도검 등명군이 말을 달려 앞으로 나섰다.
“그대의 말은 틀렸다!”
명천은 등명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등명군! 그대는 무엇에 매수되었는가? 어찌하여 가짜를 두둔하는가?”
등명군은 목소리를 높여 명천의 말을 받았다.
“교주님은 가짜가 아니다! 전대 교주님과 나 또한 그대와 같은 의심을 하였다! 하나 그 의심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명증이 명운의 무공에 의심을 품었다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으나 뒤에 이어진 기우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많지 않았다.
이것은 기우라는 말을 뒷받침할 논리나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등명군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전대 교주님께는 세 번에 걸쳐 교주님을 시험하셨다! 교주님께서는 그 시험을 모두 통과해 무공을 인정받았고, 이후 부교주의 위를 받았다!”
모두는 명운이 어떻게 해서 부교주에 오르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의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세 번의 시험?”
“어떤 시험을 했다는 걸까?”
“전대 교주님께서 시험했다니, 가벼운 것은 아니었을 테지.”
“하지만 시험했다는 말만으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것은 그렇지.”
등명군은 자명단주 이건석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단주! 있는가?”
이건석은 그의 호명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석이 여기 있습니다!”
그는 등명군과 같은 삼단주였으나 육도검 등명군 쪽이 선배였기에 경칭을 사용하였다.
“그대는 무영단을 알고 있는가?”
이건석이 물음에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역용술을 파괴하는 환단이 아닙니까?”
명증은 무영단으로 명운을 시험한 바 있었다.
“지금 그것이 있다면 교주님의 결백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여진훈은 이건석이 명운의 정체에 대해 확답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바 있었다.
‘이 단주는 아직 완전한 교주님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약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생각을 굳히고는 이건석에게 재촉하듯 말했다.
“이 단주! 속히 무영단을 가져오라!”
명천은 무영단이 언급되자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석은 가만히 있으라! 무영단은 이쪽에서 준비할 것이다!”
그의 외침에 이건석이 멈칫했다.
“어떻게 할까요?”
명천이 무영단을 보낸다면 그것은 더없이 확실할 터였다.
“으음.”
이건석과 여진훈이 멈칫하자 명운은 가슴을 폈다. 그러고는 성벽 위를 향해 외쳤다.
“좋다! 무영단을 가져와라! 본좌가 그것으로 옳고 그름을 밝힐 것이다!”
명천은 그가 스스로 무덤을 판다고 생각했다.
‘무영단은 독환이 아니다. 내공이 아무리 강해도 약 기운을 억누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