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충신과 간신 (2)
“이번에는 진짜 승부가 나지 않겠습니까?”
질문을 던진 것은 자명단주 이건석, 대답하는 것은 장로 여진훈이었다.
“그랬으면 좋겠군.”
그는 오랜 대치 상황이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앞서 대결도 그랬고, 이번에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너무 많구나.’
그나마 나은 것은 인명 손실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장공자가 패배한다면, 비로궁은 항복할 겁니다.”
“그렇겠지.”
명천이 꺾이면 비로궁은 그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
“잔당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정할 사항이 아닐세.”
여진훈은 명운에게 그 모든 것을 위임하고자 했다.
“교주님께서 정하시는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두 사람이 있는 곳에서 백여 보 떨어진 곳.
이곳에는 네 사람이 서 있었다.
가장 북쪽에 위치한 이는 귀혼단주 양위청이었다. 그는 장공자 명천의 심복이자 귀혼단의 단주로 문무를 모두 정통하다는 평가받았다.
“양 단주, 형님께서는 언제 나오시는가?”
명원은 그와 이십 보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는 동생 명운이 아닌 큰형 명천을 택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곧 나오실 것입니다.”
곧 나온다.
이 말은 자신도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명운은 미간을 좁혔다.
‘시간을 너무 끄는군.’
시간은 일다향이 훌쩍 지나 일식경에 이르고 있었다.
“형님의 무공은 어떠한가?”
명원은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는 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교주님께서는 밤낮으로 무공에 정진하여 큰 성과를 이루셨습니다.”
“그런가?”
“삼공자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양위청의 대답은 모두 알맹이가 없는 것이었다.
명운은 그의 대답을 들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너무나 차분하다.’
양군의 운명을 가를 비무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자신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양위청의 태도는 지나치게 담담했다.
‘설마?’
명운은 미간을 좁히면서 경공을 전개했다.
쉬익!
양위청은 명운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눈썹을 세웠다.
“이런!”
그는 검을 뽑고자 했지만, 명운의 손은 그의 동작보다 훨씬 빨랐다.
팍!
짧은 타격음과 함께 그의 동작이 멈췄다. 명운에게 혈도를 찍힌 것이었다.
양위청은 등골이 서늘했지만, 애써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명운은 그의 혈도를 찍은 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대는 충신이군.”
양위청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명운은 그의 당황하는 모습조차 연기라고 생각했다.
‘귀혼단주가 문무에 모두 통달했다고 하더니, 걸물이구나.’
그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양위청, 큰형을 위해 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나? 아니면 충신이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나?”
죽음.
목숨을 바친다.
명원은 명운의 말을 듣고는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명운은 명원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양위청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대답하라! 그대는 어찌하여 이런 선택을 했는가?”
양위청은 명운이 다그치자 두 눈을 감았다.
“칠공자님, 제 목을 베어 주십시오.”
명원은 양위청의 한마디에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곧 큰형이 나와서…….”
“교주님은 나오시지 않습니다.”
양위청이 딱 잘라 말하자 명원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뭐라고?”
“교주님께서는 이미 북문으로 달아나셨습니다.”
북문은 천마신교 군세가 배치되지 않은 유일한 방향이었다. 물론 약간의 군세를 배치했다고 해도 명천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큰형이 북문으로 달아났다고? 운과 싸우지 않고 말이냐?”
명원의 얼굴은 창백했다.
명운은 명원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청룡대주 원훈을 불렀다.
“원 대주.”
원훈은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교주님!”
“흑살대주를 구속하게.”
“존명!”
원훈은 말 위에서 경공을 펼쳐 명원을 덮쳤다.
“항복하시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명원은 검기를 뿌린 후, 몸을 돌렸다.
‘달아나야 한다.’
원훈 혼자라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상대해야 하는 적은 한둘이 아니었다. 남문 주변에 진을 친 천마신교 군세가 모두 그의 적이었다.
예상대로 원훈이 명원을 추격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교주님이 명이 떨어졌다! 흑살대주를 구속하라!”
그가 외치자 대기하고 있던 청룡대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대주님의 명이다!”
“흑살대주를 구속하라!”
그들은 대주의 명에 화답하듯 명원의 퇴로를 막았다.
명원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 그는 자신의 부대인 흑살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흑살대! 무엇 하는가! 대주를 지켜라!”
그러나 흑살대는 현무대주 노혁준에게 막혀 움직일 수 없었다.
“흑살대는 교주님의 명을 듣지 못했는가! 어찌 움직이려 하는가!”
교주의 명은 교법과 같았다. 그것을 어기고 움직인다는 것은 반란이나 다름이 없었다. 흑살대는 감히 움직이지 못한 채 검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흑살대, 교주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명원은 사면초가였다.
‘이럴 수가 있다니!’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광명좌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빌어먹을!”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청룡대의 포위망을 뚫고자 했다. 그러나 대원 몇 명을 쓰러뜨렸을 뿐, 포위망을 뚫는 데 실패했다.
“무기를 버려라!”
원훈의 외침에 명원이 얼굴을 굳혔다.
“비켜라!”
원훈과 명원은 거칠게 맞붙었다.
펑!
기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원훈이 뒤로 밀려났다. 그의 무공은 명원에 비하면 다소 손색이 있었다.
‘역시 강하군.’
명원은 원훈을 밀어내고는 약간의 희망을 되찾았다.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혜선단주 장연비의 등장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원 대주,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명원은 그녀를 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천화신녀!”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지만, 장연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콰앙!
폭음과 함께 몸이 튕겨 나갔다.
“크윽.”
그녀는 명운과 달리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콰앙! 콰콰콰쾅!
검기의 폭풍이 몰아치자 명원은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허억…….”
너덜거리는 무복과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의 꼴은 패잔병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장연비가 차갑게 외쳤다.
“무엇하나! 포박하라!”
그녀의 외침이 있자 청룡대원들이 급히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십여 자루의 검이 명원의 몸에 닿았다.
“항복하라!”
명원은 모든 것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다 끝이구나.’
이제는 정말로 돌이킬 수가 없었다.
툭.
그가 검을 놓자 청룡대원들이 그의 혈도를 찍었다.
양위청은 명원이 구속되는 것을 보고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다음은 저입니까?”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였다.
“그대는 내 물음에 아직 답하지 않았다.”
양위청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왜 이 자리에 섰느냐고 물으셨습니까?”
“아니, 왜 큰형을 대신해 죽고자 했는지 물었다.”
명운은 명천에게 사람을 이끄는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힘이 있었다면 진즉 대명좌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명천의 수하 중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자는 없었다.
“교주님, 아니 주군을 위해 죽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것이 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명운은 두 손으로 검을 잡았다.
“큰형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그대의 사명을 다한 것이란 말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잘못되었다면?”
양위청이 답했다.
“그랬다면 제 도박이 실패했다는 뜻이겠죠.”
명운이 눈썹을 세웠다.
“도박인가?”
“저는 주군만을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명운은 세웠던 눈썹을 내렸다.
“자신을 위해 나왔단 말인가?”
양위청은 고개를 흔들고 싶었다. 하지만 혈도가 찍혀서 그럴 수는 없었다. 다만 그는 목소리를 바꿔 감정을 드러내고자 했다.
“아닙니다. 제가 위하고자 한 것은 신교의 모두입니다.”
신교의 모두.
제법 광오한 말이었다.
명운은 차갑게 말했다.
“네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물론입니다.”
“신교의 모두라. 그 말을 증명할 수 없다면 네 목을 칠 것이다.”
양위청은 이 자리에 나온 순간 반쯤은 목숨을 포기한 바 있었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눈을 감았다가 뜬 뒤 명운을 향해 말했다.
“지금 비로궁에는 천이 넘는 무인들이 있습니다. 교주님께서 그들을 공격하신다면 모두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 그 과정에서 신교의 무인도 수백이 죽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죽음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신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양위청의 말은 사실이었다.
비로궁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생이 필요했다.
명운은 양위청이 홀로 이곳에 선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그대를 용서하면 그대가 나서서 비로궁의 모두를 설득하겠다는 말이군.”
양위청은 명운의 마을 부인하지 않았다.
“교주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명운이 물었다.
“무엇을 믿고 그대에게 이 일을 맡긴단 말인가?”
“제가 아니면 그것을 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능력을 과신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적임자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명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후후후, 좋아. 그대가 이겼네.”
그는 양위청이 목숨을 건 도박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 자는 큰형을 따라 북쪽으로 도망치는 대신 날 상대로 자신의 운을 시험했다. 문과 무를 다 갖췄다고 하더니, 배포마저 크구나.’
이러한 인재라면 거두는 것이 옳았다.
양위청이 슬며시 물었다.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까?”
명운은 대답 대신 오른손 엄지와 식지를 튕겼다.
팍!
짧은 타격음과 함께 양위청의 혈도가 풀렸다. 이윽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비로궁의 모두를 항복시켜라! 저항하면 모두 죽일 것이다!”
양위청이 두 손을 모으며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명운은 명천을 놓친 것이 아쉬웠지만, 피를 흘리지 않고 비로궁을 함락한 것에 만족했다.
‘파천궁과 싸움에 앞서 비로궁을 무너뜨린 것은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놓친 이가 너무 많구나.’
북쪽으로 달아난 명천, 그리고 그에게 사주받은 흉수.
이 둘을 놓친 것은 아쉽지 않을 수 없었다.
양위청이 비로궁을 향해 떠나자 기다렸던 원훈이 명운에게 다가가 두 손을 모았다.
“교주님! 흑살대주를 포박하였습니다.”
명운은 그에게 고개를 돌린 뒤 단호하게 명을 내렸다.
“흑살대주를 대명궁의 뇌옥으로 이송하라!”
“존명!”
원훈은 명운의 명이 떨어지자 재빨리 물러났다.
두두두.
여진훈과 이건석이 본진의 병력을 이끌고 명운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린 뒤 엎드려 절했다.
“어리석은 여진훈이 교주님을 뵙니다.”
“이건석이 교주님께 죄를 청합니다.”
명운은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 확실히 알았나?”
여진훈이 고개를 땅에 댄 채 답했다.
“맑은 하늘에 태양이 뜬 것처럼 명확하게 알겠습니다.”
명운이 차갑게 그의 말을 받았다.
“말은 잘하는군.”
이번에는 이건석이 머리를 ‘쿵’ 하고 찧으며 말했다.
“신, 절대로 교주님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명운의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전음이 날아왔다.
– 파천궁의 역용술은 무섭기 그지없다. 앞으로도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때는 암구어로 서로를 구분할 것이다.
이건석은 머리를 바닥에 댄 채로 그의 전음을 받았다.
– 하면 신은 무엇이라 말하면 되는 것입니까?
– 먼저 말하는 이는 천마, 뒤에 말하는 이는 신공이라 하면 될 것이다.
– 존명!
아주 단순한 암구어였다.
이렇게 암구어를 단순하게 할 경우 상대의 재치에 따라 암구어가 간파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명운은 그 위험성을 알고도 암구어를 단순하게 가져갔다.
‘긴급할 때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암구어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명운은 전음으로 대화를 한 뒤 차갑게 말했다.
“곧 비로궁이 항복할 것이다. 그대는 항복을 받을 준비를 하라.”
이건석이 몸을 일으킨 뒤 두 손을 모았다.
“교주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는 명을 받았기 때문에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남은 것은 아직 머리를 숙이고 있는 여진훈이었다.
“여 장로.”
“예, 교주님.”
“일어나라.”
여진훈은 명운의 명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리석음에 대한 벌을 받고자 합니다.”
명운이 목소리를 굳히며 말했다.
“좋다. 그대에게 벌을 내리겠다.”
여진훈은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교주를 의심했으니,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는 없겠지.’
그는 장로직을 내려놓고 은거하는 것까지 생각했다.
“돌아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하라. 필요한 돈은 모두 그대가 사용해야 할 것이다.”
천마신교 교주의 장례.
여진훈은 명증의 장례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퇴하는 것에 비해서는 가벼운 처벌이었다.
“존명!”
그가 몸을 일으키자 명운이 앞서 이건석에게 했던 것처럼 전음으로 암구어를 이야기했다.
여진훈은 물러나며 전음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 속하, 교주님의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겠나이다.
그가 물러나자 명운이 전음으로 한마디를 더했다.
– 자심전주를 통해 은자 오천 냥을 지원할 것일세. 그러니 장례 비용은 걱정하지 말게.
– 교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 보는 눈이 많아 길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군. 돌아가게.
여진훈은 더는 명운의 호의를 사양할 수 없었다.
– 존명.
명운은 시선을 비로궁으로 돌렸다.
‘흠, 앞으로 이곳을 누구에게 맡긴단 말인가?’
비로궁은 도망친 명천과 대족장 이누한의 군대에 맞서 대명궁의 북쪽을 방어하는 요충지가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