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59)
259화 장례식 (3)
명운은 여인의 소매에 손을 넣었다. 그러고는 소매 안에 감춰진 암기 발사 장치를 확인했다.
‘크기는 보통인가?’
팍!
그가 손에 힘을 주자 장치가 파괴되어 소매 밖으로 쏟아졌다.
후두두둑.
“어설픈 장치야. 널 내게 보낸 이도 이처럼 어설프겠지. 자, 이제 거래를 제안하지.”
그는 여인의 소매에서 손을 빼며 말했다.
“내 제안은 아주 간단해. 네게 암살을 의뢰한 자에게 암살이 성공했다고 말한 뒤, 한 시진 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난 해독약을 줄 거고, 넌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의뢰인을 속여라.
그의 의도는 명백했다.
암살이 성공했다고 생각한 이가 반란을 일으키면, 그자를 토벌하여 반란 세력을 뿌리부터 뽑아내겠다는 말이었다.
“내 말을 이해했나?”
여인은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으나 그는 혼잣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해한 것 같군.”
명운은 손을 뻗어 그녀의 아혈을 반쯤 열었다. 대화를 관장하는 아혈을 완전히 열지 않고 반쯤 연 것은 그녀가 혀를 깨물어 자결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죽어 버리면 죽도 밥도 되지 않지.’
툭.
혈도가 반쯤 열리자 여인이 입을 열었다.
“운, 날 죽여라.”
여인의 대답은 그가 예상한 것과 완전히 달랐다.
특히 호칭이 그랬다.
‘운?’
흉수나 원수라고 부르면 모를까?
그를 이름만으로 불렀다는 사실은 그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명운은 즉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화섭자를 들었다. 그러고는 초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촛불이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자 곧 여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녀린 얼굴은 황궁이나 저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인상이었다.
‘모르는 얼굴이다. 그녀는 누구지?’
그는 흔적만 남은 기억을 찾고자 애를 썼다.
그 순간 여인이 아주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형제는 죽일 수 있지만, 나는 죽일 수 없다는 말이냐?”
형제.
순간 머릿속을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설마 다섯째 누나?”
그의 다섯째 누이였던 명람.
그녀는 차분한 분위기로 아버지 명증에게 사랑받았던 여인이었다.
“이제 생각이 났느냐?”
명운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째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했더니, 다섯째 누이였구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명람은 명증의 다섯 번째 딸로, 그보다는 다섯 살이 더 많았다. 현재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태화전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와 얼굴을 마주한 것이 삼십 년 전이었던가?’
과거로 돌아온 뒤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두 사람이었다.
“죄송합니다. 오래 보지 못했으니,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거래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으로 하시죠.”
명운은 이렇게 대답한 뒤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러자 명람이 비명을 내질렀다.
“무! 무슨 짓이냐! 설마 누이를 욕보이려는 것이냐? 이 금수만도 못한 녀석아!”
그녀는 그가 자신을 겁탈하고자 한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혀를 깨물 것이다.’
명운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들고 의자로 향했다.
“저 그렇게 나쁜 녀석 아닙니다.”
명람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형제를 죽이는 자를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이냐!”
명운은 그녀를 의자에 내려놓고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누님, 호칭에 신경을 써 주시죠. 전 본교의 교주입니다.”
그는 신분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하나 명람은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에 호칭을 고치지 않았다.
“운, 너는 정말 나쁜 녀석이다.”
명운이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하…….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그렇게 나쁜 녀석이 아닙니다. 그리고 형제를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셋째 오라버니의 일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지?”
명증의 일곱 아들은 모두 어머니가 달랐다. 하지만 딸들은 달랐다. 명람은 삼공자 명원과 같은 어머니를 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 명원과 명람은 같은 어머니를 둔 남매였다.
‘다섯째 누나는 날 셋째 형의 원수라고 생각해서 죽이려 한 것일 테지.’
범인의 정체를 알아낸 것만으로도 누가 왜 자신을 죽였는지 모두 설명이 가능했다.
명운이 팔걸이에 손을 올리며 답했다.
“셋째 형에 대한 처분은 남만 유배로 결정되었습니다.”
명람은 명원이 죽지 않았다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거짓말.”
교주에 대한 반란.
사형은 당연하고, 남은 것은 어떤 식으로 죽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데 명운은 명원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두었다.
“물론 무공은 폐할 것입니다.”
죽이는 대신 무공을 빼앗고 유배를 보내겠다.
관대한 처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람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것이 정말이더냐?”
명운은 손톱을 가볍게 튕겼다.
팍!
짧은 소리와 함께 명람의 모든 혈도가 풀렸다.
“제가 누이에게 거짓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셋째 형과 주가를 말살하려고 했다면, 이 자리에서 누님이 생각하는 그런 짓을 저질렀겠죠.”
명람은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자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주가를 용서해 준다면 어떠한 벌이든 받겠어.”
명운은 형제간의 싸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승리한다고 해도 상처만 남는 싸움이지.’
그는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오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요. 주가 또한 멸문이 아닌 석하자행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명람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관대한 처분, 감사합니다.”
명운은 동생이기에 앞서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그녀가 경어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해가 풀렸다면 돌아가 보세요.”
명람이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이렇게 그냥 돌아가도 되는 것입니까?”
오해가 있다고 해도 그녀는 명운을 죽이고자 했던 여인이었다.
“꼭 벌을 받고 싶으십니까?”
“…….”
명운은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자 달래듯 말했다.
“누이가 비밀을 지킨다면, 저도 비밀을 지킬 것입니다.”
오늘 일을 두 사람만의 비밀로 하자는 이야기.
명람은 어렵게 고개를 들었다.
“교주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라니요. 가벼운 인사라 생각하죠.”
명운은 명람을 일으킨 뒤, 그녀를 문밖까지 전송했다.
탁.
그는 문을 닫은 뒤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누이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구나.”
그에게는 혼인하지 않은 누이가 셋이나 있었다. 그는 그녀들의 혼처를 하루빨리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 *
강하원은 교주의 부름이 있자 자심전에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속하, 교주님을 뵙니다.”
명운은 서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그의 오른쪽에는 장로 여진훈이 앉아 있었다.
“왔는가? 앉게.”
강하원은 자연스럽게 그의 왼쪽에 앉게 되었다.
“대명궁에 관한 일이신지요?”
그가 묻자 명운이 붓을 놓으며 답했다.
“명가의 일일세.”
명가의 일.
강하원은 주먹을 무릎 위에 올렸다.
“명가의 일이라면 저보다는 시녀장이 낫지 않겠습니까?”
명가의 거처인 태화전은 시녀장이 관리하는 공간이었다.
“이쪽 시녀장은 원 소저라네.”
시녀장 원영재가 아직 명가의 일을 볼 정도로 직책에 익숙하지 않다는 말.
“저도 원 소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강 총관, 겸손은 좋지만, 지금은 아닐세.”
시녀장 원영재보다는 그가 이번 일에 더 어울린다는 뜻이었다.
“삼가 교주님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명운은 시선을 여진훈에게 돌렸다.
“강 총관이 왔으니, 이야기를 시작하죠.”
여진훈은 강하원이 올 때까지 일다향 정도를 기다린 바 있었다.
“교주님께서 가르침을 주시지요.”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뒤, 제가 가족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천마신교 교주는 신교의 교주이자 명가의 가주였다. 교주인 그에게는 명가의 가솔들을 살필 책임이 있었다.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여진훈이 묻자 명운이 답했다.
“있습니다.”
“어느 부분이십니까?”
“아버님의 부인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진훈은 어떠한 이야기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전대 교주의 부인들을 내보내겠다는 말씀이시구나.’
아버지의 여인들과 같은 집에 산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천화사(天華寺)를 열겠습니다.”
천화사는 전대 교주의 여인들이 전대 교주의 공덕을 기리는 사원이었다. 명증의 아버지, 그러니까 명운의 할아버지 명진이 세상을 떠난 지 오십 년이 넘었기에 천화사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여진훈은 천화사의 문을 열고, 교주 부인들을 그곳으로 보내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천화사를 다시 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여진훈은 그의 말에 눈썹을 세웠다.
“그러면 이곳에서 함께 있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교주의 승하 이후, 태화전에 머무는 것이 허락되는 이는 새로운 교주의 어머니와 교주에게 특별히 허락받은 여인들뿐이었다.
“그것은 곤란하겠지요.”
내보내는 것도 함께하는 것도 아니다.
‘설마 모두 죽이겠다는 말인가?’
천마신교의 교주 중에는 잔인한 이가 적지 않았다.
여진훈은 순간 수많은 여인의 죽음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막아야 한다.’
명운이 말했다.
“각자의 가문으로 돌려보낼 생각입니다.”
여진훈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속된 가문으로 돌려보내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이곳에 계속 있으면, 이쪽에서 그녀들의 비용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진훈이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하원이 물었다.
“교주님, 돌아갈 가문이 없는 여인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명운이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일로 자네를 부른 것일세. 아버님을 모셨던 여인들이 아닌가? 그대가 적당한 거처를 준비하도록 하게.”
그는 여진훈에게 큰 줄기를 강하원에게는 작은 가지를 맡기고자 했다.
“교주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명운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버님을 모셨던 여인들 외에도 챙겨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
여진훈은 그다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시집가지 않은 누이들이겠지.’
예상대로 명운의 다음 화제는 시집을 가지 않은 세 명의 누이에 관한 것이었다.
“다섯째 누이와 여섯째 누이, 그리고 일곱째가 아직 혼인하지 않았습니다.”
명증의 일곱 번째 딸, 즉 칠공녀는 명운보다 유일하게 어렸다. 그러나 그녀 역시 십 대 후반이라 혼기가 찼다고 할 수 있었다.
“세 분 모두 혼처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까?”
“일곱째는 여유가 있으나 앞에 두 사람은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명증은 뛰어난 고수에게 딸을 시집보냈으므로, 젊은 고수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명람처럼 혼기가 찬 뒤에도 혼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여진훈이 재차 물었다.
“교주님께서는 혼처로 생각하신 곳이 있으십니까?”
혼처로 생각해 둔 곳이 있다면 일이 수월했다.
“아직은 없습니다. 다만 기준은 어느 정도 있습니다.”
혼처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그래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교주님께서 기준을 말씀해 주신다면, 그에 맞춰 혼처를 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명운이 자신의 기준을 이야기했다.
“우선 나이가 너무 많으면 안 됩니다.”
그는 누이들을 정략결혼에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너무 많다는 것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불혹을 넘기면 안 됩니다.”
여진훈은 그 정도는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녀들의 아버지뻘만 아니면 된다는 말씀이시군.’
그는 나이 쪽은 비교적 여유가 있다고 보았다.
“다른 것은 없으십니까?”
“무공을 모르는 이도 안 됩니다.”
천마신교에서 무공은 절대적이었다.
여진훈은 이것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능한 무공이 뛰어난 고수로 골라 보겠습니다.”
“외모가 너무 부족해도 안 됩니다.”
명가의 딸과 혼인하면, 명가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외모가 크게 부족한 이가 명가의 일원이 된다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누이들의 원망을 살 수도 있었다.
“그것도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강하원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무공이 뛰어나면서 나이가 그리 많지 않고, 추하지 않은 자라.’
그는 그 정도면 충분히 혼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는 없으십니까?”
명운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대답했다.
“공적이 있는 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천마신교에 공적을 남긴 자.
이 또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었다.
여진훈은 자신의 생각한 조건을 슬며시 물어보았다.
“가문은 고려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입니까?”
“가문까지 좋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것까지 바란다면 일이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명가의 일원을 구하는 일입니다. 다소 까다롭게 골라 보겠습니다.”
“너무 까다롭게 고르면 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습니다.”
여진훈이 두 손을 모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교주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강하원에게 돌렸다.
“강 총관.”
“예, 교주님.”
“혼인 준비와 그 절차, 그리고 그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그대에게 맡기지.”
여진훈과 강하원.
두 사람이 상의해서 일을 처리하는 말이었다.
“교주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가 일어서려는 찰나 명운이 물었다.
“강 총관, 아직도 혼자인가?”
그는 강하원이 아직 혼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물은 것은 그가 측실이나 애인을 들였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여인을 곁에 둘 여유가 없습니다.”
“내가 그대를 몰아세운 덕분이군.”
강하원은 두 손을 모은 채 허리를 굽혔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자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나일세. 원하는 여인이 있다면 말을 해 보게.”
강하원이 허리를 굽힌 채로 말했다.
“원하는 여인은 없습니다. 저는 교주님을 곁에서 모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명운은 생각했다.
‘기녀를 만나기 위해 서숙의 돈을 횡령하던 강 총관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물론, 강하원이 돈을 횡령한 일은 지난 생에서 일어났던 일이었다.
‘역시 내가 문제였단 말이군.’
그는 무기력했던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