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남벌(南伐) (2)
살다 보면 가끔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석비연은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는 이가 그러한 일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신, 교주님의 부름을 받고 도착했습니다.”
서재에 앉아 있는 청년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서서히 시선을 돌렸다.
“왔는가?”
그는 해맑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던 소년이었다. 십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목이 맑은 청년이 되어 있었다.
“앉게.”
석비연은 그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긴히 하실 말씀이 있는지요?”
“석 시녀장이 복귀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말이야.”
복귀.
그녀는 얼마 전 새로운 시녀장으로 복주원가 출신의 원영재가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원 소저가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시녀장이 교체된다면,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 분명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요?”
“사연이라.”
명운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 자리에 오를 때까지 석가는 많은 도움을 주었네. 그러나 난 그 도움을 갚지 못했지.”
석가에 대한 빚.
그는 그 빚을 갚고자 했다.
“그래서 절 다시 시녀장으로?”
명운은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그러고 싶었지만, 원가에 약속한 것이 있어서 말이야.”
시녀장은 아닌 듯 보였다.
‘시녀장이 아니라면 무슨 자리일까?’
그녀가 맡을 만한 자리는 자심전주가 있었다. 그러나 자심전주 또한 명운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하원이 맡고 있었다.
‘흠, 어떤 자리일까?’
잠시 뒤, 명운이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듯 말했다.
“흑살대를 맡아 주면 어떨까 하네만.”
흑살대는 교주 휘하의 무력 집단으로 삼단이나 사신대와 달리 신교좌사의 지휘를 받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혹자는 흑살대를 황실의 금군에 비교하기도 했다.
“흑살대 말입니까?”
“곤란한가?”
“아닙니다. 다만 여인인 제가 그러한 중책을 맡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흑살대는 종종 교주의 뜻에 따라 뒤가 구린 일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러한 일들을 알아도 되는지 물은 것이었다.
‘최근 흑살대주는 삼공자 명원이었다.’
삼공자 명원은 명가의 인물로 아버지 명증의 총애를 받아 그 자리에 임명된 바 있었다.
명운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난 성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문제는 그 일을 해낼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야.”
능력제일 주의.
그것은 많은 군주가 지향하는 지향점이지만, 도달하기가 쉽지 않은 목표였다.
‘흑살대주는 사신대주와 동급, 아니 그 이상이다.’
최근 귀주석가는 삼단주는 물론 사신대주조차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흑살대주에 오른다면, 오랜만에 요직을 차지하는 것이 되었다.
‘이쪽이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석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았다.
“교주님께서 흑살대를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명운은 그녀가 흑살대주를 수락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석 단주라 부르면 될까?”
“교주님, 하명해 주십시오!”
명운은 기합이 들어간 그녀의 목소리에 손을 내저었다.
“편히 하게. 흑살대주가 되었다고 해서 무리하게 힘을 줄 필요는 없네.”
그는 그녀에게 사마진이 자명단을 운영했던 것처럼 편하게 흑살대를 운영해 달라고 말했다. 이윽고 그가 한마디를 더 했다.
“부대주 말일세.”
현재 흑살대 부대주는 가택 연금 상태였다.
“교주님, 따로 생각하시는 인물이 있으십니까?”
명운은 이미 생각해 둔 이가 있었다.
“석주가 어떤가?”
비조검 석주.
그는 귀주석가의 중진으로 명운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인물이었다.
“비조검 말씀이십니까?”
명운은 그녀가 되묻자 말끝을 올렸다.
“왜?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아닙니다. 다만, 부대주까지 저희 석가가 차지한다면 뒷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명운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교주가 이런 일까지 다른 가문의 눈치를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뒷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그런 뒷말까지 생각해야 하는가?”
그의 물음에 석비연은 눈을 크게 떴다.
‘아뿔싸, 교주님께 다른 가문의 눈치가 보인다고 말하고 말았구나.’
천마신교에서 교주는 지존의 신분이었다. 시녀장이었던 그녀는 그 누구보다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신, 생각이 지나쳤습니다.”
명운이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괜찮아. 그대는 그럴 수도 있지. 다만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명운은 살짝 말을 끌었다.
“뭔가 제 의견이 필요한 일이 있으십니까?”
“자네에게 추천할 인물이 하나 있네.”
“귀를 열고 교주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명운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종영세라는 친구가 있네. 그대가 곁에 두고 썼으면 좋겠군.”
종영세는 조광과 달리 아직 직위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종가의 인물입니까?”
“아니, 특별한 가문의 비호를 받는 친구는 아닐세. 과거 내 곁에 있던 친구지.”
석비연이 두 손을 풀며 그의 말을 받았다.
“교주님께서 추천해 주신 인물이니, 중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추천했다고, 너무 무르게 대하진 말게.”
죄를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벌을 주라는 뜻.
석비연이 알았다고 말하려 할 때였다.
인기척과 함께 한 여인이 나타났다.
“교주님, 전갈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지 묻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는 것은 그녀가 교주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디서 온 전갈인가?”
역시나 명운은 그녀가 예를 취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석비연은 차분한 느낌의 여인을 보며 생각했다.
‘이 여인이 바로 교주님의 측근인 경은이라는 여인인 것 같구나.’
그녀는 경은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혜선단주의 전갈입니다.”
혜선단주 장연비.
그녀는 지금 수왕과 그 일행을 추적하고 있었다.
“혜선단주가?”
“흉수의 흔적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정말인가?”
“전서에는 딱 그것만 적혀 있었습니다.”
흉수의 추적.
명운은 그녀에게 명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흔적을 찾아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추혼대의 실력이 기대 이상이라는 말이군.’
그는 고개를 석비연에게 돌렸다.
“석 단주.”
석비연은 급히 두 손을 모았다.
“교주님, 명을 내려 주십시오.”
“흑살대를 이끌고 장 단주를 도우라.”
교주의 첫 명령.
석비연은 단호한 음성으로 첫 명령을 받았다.
“존명!”
그녀는 시녀장과 흑살대주의 역할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주님의 여인들을 다루는 것과 교주님의 친위대를 다루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역할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경은은 석비연이 서재를 빠져나가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교주님, 정말 석 시녀장이 맞나요?”
“음?”
“너무 젊어 보여서요.”
“너무 젊다?”
“홍 시녀장보다 나이가 많다고 들었거든요.”
석비연은 홍비보다 경력과 나이 모두 위였지만, 그녀의 막내 동생처럼 보였다. 이는 그녀가 사마진처럼 뛰어난 내공으로 노화를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십 년 전에도 저 모습이었지.”
“석 시녀장, 아니 석 단주는 늙지 않는 술법을 익힌 걸까요?”
경은은 사마진이나 석비연과 달리 조금씩 나이가 들고 있었다.
“부러운 모양이구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명운은 그녀의 말에 책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젊음을 오래 유지하는 법이라.”
교주의 책장에 꽂힌 책들은 명문 대파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비급들이었다.
‘저 안에 그 답이 있을까?’
경은은 앞에 언급한 두 사람과 달리 내공이 심후하지 않았기에 내공으로 노화를 늦추는 것은 무리였다.
“내가 한번 찾아보마.”
경은은 사부의 말에 눈썹을 위로 올렸다.
“네에?”
“제자를 위해 사부가 힘을 좀 쓰겠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냐?”
“그것이 아니라. 교주님께서는 매일 같이 바쁘시잖아요.”
자신을 위해 일할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었다.
“괜찮다. 그 정도 시간은 뺄 수 있다.”
경은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방법이라면 다른 이에게 명하시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자명단은 각종 약물과 비술을 관리하는 곳이니, 그곳에 그러한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명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진이 그러한 방법으로 미모를 유지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경은이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아닌가요?”
“다르지.”
“교주님은 사마 단주의 편이시군요.”
명운이 피식하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진의 편이라니, 그렇지 않다. 나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진은 심후한 내공으로 노화를 억누르고 있으나 너는 그러한 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경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한 방법이 있으면 정말로 좋겠습니다.”
그녀는 물러나며 생각했다.
‘만약 그러한 방법이 있다면 천하의 여인들이 앞을 다투어 배우려 할 것이다.’
경은은 내공 없이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을 기대하지 않았다.
* * *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검은 자신을 추적하고 있는 자들을 보며 미간을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방심한 것일까?’
원래라면 복잡한 경로를 그리며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그는 십만대산에 온 뒤 그렇게 움직인 적이 없었다.
‘방심보다는 상대를 얕보았기 때문이겠지.’
가교의 허수아비들은 자신을 절대로 추적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항상 일직선으로 움직였던 것이었다.
‘문제는 녀석들을 어떻게 따돌리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복잡한 경로를 그린다고 해도 적은 그의 목적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 경로를 비트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의 첫 번째 선택지는 이대로 직진하는 것이었다.
‘그대로 직진해서 주군의 거처를 그냥 통과한다.’
자신은 잡히더라도 수왕과 두 호법은 잡혀서는 안 되었다.
‘나와는 다르니까.’
우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속도를 더 끌어 올렸다.
쉬익!
그의 몸이 바람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거리가 벌어진다.’
추적대의 경공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문제는 그들의 숫자였다.
분명 그의 경로를 예측하고 앞질러 가는 이들이 있을 터였다.
‘놈들은 아마도 말을 이용할 것이다.’
그의 최고 속도는 말을 능가했다.
그러나 그는 그 최고 속도를 말보다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하루 내내 뛴다면?
그는 말을 타고 추격해 오는 이를 결코 뿌리칠 수 없었다.
‘그나마 산속이라는 것이 다행이구나.’
말을 탄 이들은 산길을 마음대로 달릴 수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산과 산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우회하는 것뿐이었다.
그의 추격을 맡은 이들은 바로 추혼대였다.
“놈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추혼대는 우검의 흔적을 찾는 대신 추견(追犬)을 풀었다. 추견은 추적을 위해 특별하게 훈련된 개들로 그들의 후각은 고수들의 눈이나 귀보다도 예민했다.
추혼대 대원들은 추견의 울음소리만으로도 적과 거리를 알 수 있었다.
“이 앞에 있단 말이냐?”
“그러합니다.”
장연비는 고개를 돌려 명을 내렸다.
“녀석은 진왕산을 통과하려 할 것이다. 너희는 우회해서 길을 막아라!”
그녀의 명은 우검의 예상과 같았다.
“존명!”
두 개 조, 사십 명의 무인이 말을 탄 채 진왕산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그들이 일으킨 말발굽 소리와 흙먼지는 몇 리 밖까지 퍼져 나갔다.
“우검이 실수했군.”
긴 한숨을 내쉰 자는 바로 전검이었다. 그는 오대검의 필두로 이곳 진왕산에서 수왕을 지키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그에게 질문을 던진 이는 원검이었다.
“우검을 돕고 싶나?”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 하지 않겠나?”
원검은 우검을 도와 추격대를 격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교의 무인들은 우리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교주인 명운만 조심하면 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주군을 먼저 생각해.”
“주군?”
“여기서 우리가 나선다면 녀석들은 어떻게 할까?”
한 명이라도 살려 보낸다면?
아니, 추격대가 이곳으로 온 것을 안다면?
그렇다면 추격대를 전멸시킨다고 해도 추격을 멈추지 않을 터였다.
원검이 눈썹을 세웠다.
“우검을 버리자는 말인가?”
전검이 답했다.
“우검 스스로 해결할 문제야.”
그는 도움을 주는 순간 모두가 위험해진다고 판단했다.
‘중요한 것은 주군의 목숨이다.’
원검은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네는 너무나 차갑군.”
“원검.”
“오대검은 하나야.”
전검이 오른팔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오대검은 주군을 위해 존재한다.”
그는 수왕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날 막는다면 자네라도 벨 것일세.”
전검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자네마저 실수를 저지르는 건가?”
“실수든 뭐든 상관없어 난 우검을 도울 거야.”
전검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좋아, 가고 싶다면 가게. 하지만 진왕산으로 돌아오진 말게.”
추격대를 패퇴시킨 뒤, 그대로 북진하라는 이야기였다.
“주군께 폐가 되진 않을 걸세.”
원검은 말을 마친 뒤 우검을 돕기 위해 경공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