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남벌(南伐) (9)
떡 벌어진 어깨와 구릿빛 피부.
큰 키와 사나운 눈매.
사내는 전설에 등장하는 전신이나 대장군 같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사내의 물음에 표범처럼 날카로운 눈을 가진 자가 대답했다.
“모두 목을 베었습니다.”
“좋다.”
투항한 자들의 목을 모두 벤다. 이것은 천마신교조차 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초원의 사내들은 이러한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돌아가서 전리품을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대족장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족장 이누한, 그의 오른쪽에는 장공자 명천과 사공자 명준, 그리고 그의 수행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이누한이 내뿜는 기운에 압도되었다.
‘무공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초원의 야만족이 이러한 기운을 내뿜다니!’
‘이 자라면 초원을 통일하고도 남을 것이다.’
초원 부족들에게는 대대로 전해져 오는 무공이 있었다. 그러나 천마신교와 중원의 무인들은 그들의 무공을 무시하며 인정하지 않았다.
백암귀와 묘원수도 그들을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하나 그들의 강인한 기운과 사나운 모습을 직접 접하자 그들의 무공과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공자.”
이누한의 부름에 명천이 말끝을 올렸다.
“대족장께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십니까?”
“빼앗은 요새를 그대에게 맡기고자 하는데, 가능하시겠소?”
명천은 그의 물음에 미간을 좁혔다.
‘요새에 남으라는 말은 최전선에서 빠지라는 말이 아닌가?’
이누한은 모든 전공을 독점하고자 했다.
“가능합니다만……. 제가 전장에 없다면 명운을 상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순간 이누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힘들다? 나 이누한을 모독하는 것이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압박하는 힘이 실려 있었다.
명천 또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공을 실어 말한 것도 아닌 데도 이 정도라니, 이 자의 힘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초원의 사내들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느꼈다.
“제가 어찌 대족장을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명운은 꾀가 많아 그를 잘 알고 있는 자가 아니라면 상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명천의 설명에 이누한의 눈빛이 옅어졌다.
“꾀가 많다?”
“여우 같은 자입니다.”
“그대는 그대의 아우를 두려워하는군.”
가벼운 도발.
명천은 미간을 좁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절대 아닙니다!”
이누한은 그가 도발에 말려들자 거칠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아니라면 아닌 것이지. 어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오.”
사공자 명준이나 명천의 수하들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 수조차 없었다. 오직 명천만이 이누한을 상대할 수 있었다.
“명운을 얕보면 안 될 것입니다.”
이누한이 웃음을 거두며 말을 받았다.
“알겠소. 하면 누가 이곳을 맡으면 좋겠소.”
명사산은 십만대산을 정벌하기 위한 전초기지였다. 원활한 보급과 후방지원을 생각한다면 능력 있는 자가 이곳을 맡아야 했다.
“제 아우에게 맡기면 될 것입니다.”
명천의 아우, 그가 지목한 이는 바로 사공자 명준이었다.
“사공자 말이오?”
“그렇습니다.”
이누한이 사공자 명준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사공자 명준은 무공을 익혔으나 초원의 대족장에게 가슴이 오그라들 만한 위압감을 느꼈다.
“마,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누한은 명준이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수하를 이곳에 배치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무능하다고 해도 식량과 건초를 대는 일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그의 한마디에 사공자 명준이 두 손을 모았다.
“중임을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천과 이누한은 동맹을 맺었지만, 지금의 형세는 이누한의 수하나 다름이 없었다.
“하하하하! 기대하겠소!”
명천과 명준은 대족장 이누한의 장막을 나온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거친 자들이구나.”
명준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다르더냐?”
“형님.”
명천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어설픈 연민은 버려라.”
“…….”
“친구가 아니면 모두 적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하나, 저들의 도움을 받아 대명좌에 오르시게 된다면 훗날 저들의 무례를 어찌 감당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명천이 짧게 외쳤다.
“바보 같은!”
지금 중요한 것은 이누한의 무례나 하대가 아니었다.
“운에게 빼앗긴 대명좌를 되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명준은 움찔하며 답했다.
“어, 없습니다.”
“저들의 남벌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다.”
명준은 명천과 달리 목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남벌이 반드시 성공해야겠군요.”
명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명좌를 손에 넣을 것이다.”
그는 비로궁을 잃었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운, 천하를 다 가진 것 같으냐? 방심하는 순간 네 놈의 목숨은 끝이다.’
* * *
교주의 서재.
명운은 집무실보다는 이곳에서 업무를 보는 날이 더 많았다.
“명사산 일은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의 오른쪽에는 부교주 유청이 앉아 있었다.
“비로궁에 원군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비로궁은 육도검 등명군이 지키고 있었다.
“원군이라면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적비단과 백호대가 주둔하고 있으니, 흑살대를 보낼까 합니다.”
유청은 고개를 저었다.
“흑살대는 교주님의 검입니다.”
흑살대는 대명궁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흑살대가 아니라면 어느 부대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혜선단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혜선단은 그의 제자 장연비가 이끌고 있었다.
명운은 혜선단을 보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혜선단은 흉수 토벌에서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습니다.”
원검과 우검, 그리고 우호법의 손에 죽은 혜선단 무인의 수는 수십 명에 달했다.
“손해는 겨우 일 할이라고 들었습니다.”
구 할의 전력이 남아 있으니,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부상자를 포함하면 그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지난 싸움으로 혜선단은 지쳐 있습니다.”
명운은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다. 그의 왼쪽에는 호법 송원표가 앉아 있었다.
“송 호법은 어떻게 생각하나?”
송원표가 조심스럽게 그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교주님의 말씀대로 혜선단은 피로가 쌓여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청룡대나 주작대를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청룡대와 주작대라.”
“원군이 너무 많으면 대명궁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원군을 보내는 동시에 대명궁의 수비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대의 말에 옳다.”
유청 또한 송원표의 의견에 동의했다.
“송 호법의 의견이 좋은 것 같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인 뒤 명을 내렸다.
“송 호법은 들어라.”
송원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았다.
“속하, 교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대는 주작대와 함께 비로궁을 지원하라.”
“존명!”
명운의 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경은!”
그의 부름에 경은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전서를 보내겠다.”
경은은 무릎을 가볍게 굽힌 뒤, 교주의 책상 옆에 있는 그녀의 책상에 앉았다. 그녀는 빠른 손놀림으로 전서를 작성할 준비를 마쳤다.
“교주님, 준비되었습니다.”
명운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명을 내렸다.
“안다함으로 보내는 전서다.”
“교주님, 내용을 말씀해 주십시오.”
“신교좌사 양대충은 지금 즉시 대산으로 복귀하라.”
신교좌사 양대충의 복귀.
이것은 당분간 파천궁을 정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었다.
부교주 유청이 그에게 물었다.
“교주님, 양 좌사가 복귀한다면 남쪽 전선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파천궁은 단곡에서 대패하긴 했지만, 천마신교의 가장 큰 적이었다.
“남쪽 전선은 공 우사에게 맡길 것입니다.”
명운은 공복진이면 최소한의 수비는 되리라 생각했다.
‘여러 싸움에서 파천궁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그들이 공세로 나오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파천궁이 명운과 싸움에서 입은 피해는 막대했다.
사왕 중 두 명이 전사했고, 한 명은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수왕 또한 내공을 잃어 전과 같지 않았다.
여기에 우호법과 수왕의 수하들까지 전사하면서 피해가 더욱 커졌다.
“공 우사의 어깨가 무겁겠군요.”
“공 우사만 있는 것이 아니니 괜찮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공복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인기척과 함께 시녀장 원영재가 입구에 섰다.
“교주님, 현무대에서 전갈입니다.”
명운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현무대에서? 어떤 것인가?”
원영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 우사가 남문을 통과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명운은 그 순간 눈썹을 세웠다.
“공 우사가 이곳에 왔다고?”
유청도 공복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가볍게 놀랐다.
“공 우사가 도착했다면 안다함에 변고가 일어난 것이 분명합니다.”
명운이 세웠던 눈썹을 낮추며 말했다.
“일단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아야겠습니다.”
“그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경은.”
경은이 붓을 멈춘 채 그의 부름에 답했다.
“예, 교주님.”
“남쪽으로 가는 전서를 취소한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명운은 공복진의 이야기를 들은 뒤 계책을 다시 짤 생각이었다.
‘공 우사라. 남쪽도 북쪽 못지않게 복잡한 모양이군.’
그는 공복진이 도착할 때까지 유청과 대산팔가 재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유청은 그에게 새로운 대산팔가로 조자건의 조가를 추천했다.
“조가는 조금 약하지 않습니까?”
명운이 백호대를 꺼리는 것은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백호대주 조자건이 삼공자 명원과 사돈 관계라는 것이었다.
“진가와 주가가 동시에 빠졌기 때문에 공백을 메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송원표에게 돌렸다.
“송 호법은 어찌 생각하나?”
송원표는 앞서 명을 받은 것이 있었으나 공복진의 등장에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조가가 아니라면 등가 정도가 있을 것입니다.”
서량등가는 육도검 등명군을 배출한 무가였다. 하지만 등명군 외에는 이렇다 할 무인이 없었다.
“흐흠, 등가라.”
송원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팔가를 육가로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무리해서 대산팔가를 유지하지 말고 육가로 줄이자는 이야기였다.
명운은 그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좋지 않아.”
그는 대산팔가를 육가로 줄인다면 결국에는 천마신교의 전력이 약화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장가는 어떻습니까?”
무원장가.
장가에 속한 무인 중 가장 뛰어난 이는 사대호법의 필두 장기남이었다.
“장 호법의 장가인가?”
“그렇습니다.”
유청은 장가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연비도 장가 출신입니다.”
혜선단 단주 장연비 또한 무원장가 출신이었다.
“호법과 삼단주라면 충분히 가능하겠군요.”
명운의 마음이 무원장가로 기울 무렵, 신교우사 공복진이 도착했다.
“공 우사가 도착하였습니다.”
원영재의 전갈에 명운이 오른손을 가볍게 들었다.
“들라 하라.”
그의 명이 떨어지자 공복진이 안으로 들어섰다.
“속하, 서장에서 지금 막 귀환하였습니다.”
공복진의 복장은 좌사의 무복이 아니었다.
‘저 복장은 일개 무사의 복장이 아닌가?’
명운은 그에게 자리를 권하는 대신 말끝을 올렸다.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군.”
공복진이 두 손을 모은 채 말을 받았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안다함의 성채를 떠난 것은 명운이 교주가 되기 전이었다. 중간에 일이 없었다면 장로회의가 끝나기 전에 도착했을 터였다.
“여러 일인가?”
“하나하나 말씀드리면 시간이 걸릴 것이고, 큰일만 말씀드리면 파천궁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순간 명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파천궁의 위치를 알아냈단 말인가?”
공복진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양대충의 원정 덕분에 그는 파천궁의 위치를 대략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얻은 성과는 대략적인 것이 아니었다.
“어디인가?”
공복진이 호흡을 가다듬은 뒤 대답했다.
“안다함에서 남동쪽으로 팔백 리 떨어진 곳입니다.”
“팔백 리면 그렇게 멀지 않다는 말이군.”
팔백 리.
빠른 말로 달리면 사흘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물론 서장의 거친 지형을 생각하면 그보다는 더 오래 걸릴 터였다.
“북쪽으로 향하는 도중 파천궁의 전서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서구를 추격하였다?”
“그렇습니다.”
날아가는 새를 추격하는 것은 경공이 뛰어난 고수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생했겠군.”
“대적을 상대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걸렸나?”
공복진이 답했다.
“전서구가 겨우 이틀 만에 도착하더군요.”
전서구가 이틀 만에 파천궁에 도착했다는 말은 공복진도 이틀 만에 팔백 리를 뛰었다는 말이었다.
‘이틀 만에 팔백 리를 뛰었다. 공 우사의 경공이 대단하군.’
이것은 명운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부교주 유청과 호법 송원표도 공복진의 경공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훌륭하군.”
“과찬이십니다.”
“파천궁의 경계는 어떻던가?”
공복진이 두 손을 풀며 대답했다.
“제법 삼엄했습니다. 하나 뚫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갔는가?”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공복진은 안의 상태를 상세히 살피는 것보다는 이쪽이 파천궁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파천궁이 경계를 강화하거나 거처를 옮기면 모두 끝장이니까.’
그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파천궁의 위치를 이야기했나?”
“교주님께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명운은 고개를 끄덕은 뒤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파천궁의 위치가 새어 나간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이 범인일 것이다.”
그의 한마디에 부교주 유청은 물론이고 송원표와 경은, 그리고 원영재까지 무릎을 꿇었다.
“속하, 반드시 비밀을 지킬 것입니다.”
명운은 그들의 외침을 듣고 나서야 시선을 다시 공복진에게 돌렸다.
“그대는 파천궁의 위치를 내게 알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가?”
“아닙니다.”
“음?”
“속하는 교주님을 돕기 위해 대산으로 향한 것이었습니다.”
명운은 그가 자신의 교주 경쟁을 돕기 위해 귀환하였음을 깨달았다.
‘공 우사는 충신이군.’
그는 가볍게 호흡을 고른 뒤 목소리를 높였다.
“전서의 내용을 바꾸겠다.”
“준비되었습니다.”
“신교좌사 양대충에게 서장과 남쪽 전선의 모든 지휘를 맡기도록 할 것이다.”
명운은 양대충을 불러들이는 대신 신교우사 공복진에게 양대충의 역할을 맡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