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십장로 (1)
소녀의 이름은 초예라고 했다.
살던 곳은 곤륜파와 가까운 청후의 작은 마을.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인간 사냥을 당했고, 아버지와 오빠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네 소원은 헤어진 동생을 찾는 것인가?”
초예가 대답했다.
“그러합니다.”
그녀의 말투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같이 끌려왔다면 그 아이의 소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초예가 말했다.
“동생은 그곳에 같이 있지 않았습니다.”
명운은 시선을 경은에게 돌렸다.
경은은 영리한 여인이었기에 그가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노예 시장은 한 곳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명운은 노예 시장이 열린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세한 부분까지는 알지 못했다.
“대명궁 밖에서도 열린단 말이냐?”
경은이 붓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대명궁에서 거래되는 것은 가장 상급의 노예입니다.”
명운은 혀를 찼다.
“쯧, 초예는 이목이 뚜렷하고 얼굴이 갸름하여 대명궁까지 왔고, 동생은 그러지 못해 성 밖에서 팔렸다는 말이군.”
경은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러할 것입니다.”
명운이 말했다.
“대명궁 밖이라면 쉽진 않겠군.”
그가 시선을 초예에게 돌렸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을 알고 있느냐?”
초예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명운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기만 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네 동생을 찾아준다면, 너는 무엇을 내게 주겠느냐?”
초예는 노예 시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수많은 사내의 눈을 기억하고 있었다.
“동생을 불행에서 구할 수 있다면, 제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명운은 그녀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다독이듯 말했다.
“모든 것을 내어 줄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원할 때, 딱 한 가지 일을 해 줬으면 좋겠구나.”
초예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일이 어떠한 것이든 공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명운은 다시 경은에게 시선을 돌렸다.
“경은, 이 아이는 네게 맡기도록 하겠다. 동생이라 생각하고 돌보도록.”
경은이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
“공자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녀는 초예와 함께 방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명운은 경은이 기록한 문서를 확인했다.
‘초예는 딱히 신교와 관련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저 아이가 아니라 비슷한 얼굴을 한 미인을 기억하고 있는 건가?’
명운은 그럴 가능성도 낮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인의 얼굴이란 비슷한 경우가 많으니까.’
그는 관심을 초예에게서 더 중요한 사람으로 옮겼다.
“후…… 석준명이라.”
석주가 말한 석 장로는 귀주석가의 가주인 석준명을 뜻했다.
“정문과 접촉한 것이 성과를 본 것일까?”
애초에 그와 강하원은 정문을 통해 귀주석가와 연결하고자 했다.
“언젠가는 석가와 접촉하고자 했지만, 이건 너무 빠르군.”
빠르기만 한 게 아니었다.
접촉 대상도 너무 거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귀주석가에 먹혀 버릴 수도 있다.’
귀주석가의 힘을 이용하고 싶지만, 그들의 패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귀주석가에 치우치지 않고 대등한 관계를 형성한다.’
가능하다면 이것이 가장 좋았다.
“힘이 있는 상대가 힘이 없는 이쪽의 바람대로 움직여 주진 않겠지. 게다가 상대는 십장로 중 하나, 희망은 버리는 것이 좋을지도.”
그는 천마신교의 십장로가 어떠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마물 중에 마물이지.’
명운은 눈을 감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 * *
어제 내린 폭설은 대명궁의 길을 모두 막아 버렸다.
현무대 대원들이 아침부터 눈을 치우기 시작했지만, 그들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사신대 전부가 투입되어도 이틀은 걸릴 것 같군.”
“올해는 왜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걸까?”
“그러게 말이야.”
현무대원들의 불만을 뚫고 두 마리의 말이 내달렸다.
두두두…….
대원들은 말들이 눈 위를 미끄러지지 않고 내달리자 혀를 찼다.
“보통 말이 아니군.”
“보나 마나 높으신 분의 행차시겠지.”
“신경 끄자고, 괜히 눈 마주쳤다가는 좋을 일이 없으니까.”
대원들은 다시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워, 워.”
두 마리의 말이 멈춘 곳은 신교원이라는 약재상 앞이었다.
“누구 없는가?”
말에서 내린 이가 목소리를 높이자 바짝 마른 사내가 나타났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대북피 한 근에 두충이 두 근일세.”
마른 사내는 주문을 듣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바람이 찹니다. 안으로 드시죠.”
말을 타고 온 두 사람은 사내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사내가 문을 열자 눈 쌓인 내원이 눈에 들어왔다.
내원의 규모는 기이할 정도로 컸는데, 약재상보다도 그 규모가 컸다.
“드시죠.”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마른 사내는 문을 닫았다.
철컥.
뒤에 선 무인은 경칩 소리를 듣자마자 검에 손을 가져갔다.
하나 앞에 선 소년은 경계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함정은 아닐 걸세.”
무인이 미간을 좁혔다.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소년이 앞서 걸으며 말했다.
“그들이 우리를 죽이려 했다면 진즉 그렇게 했을 걸세.”
그는 가슴을 편 채 나무 사이에 난 길을 통과했다.
“훌륭하군.”
감탄사를 터트린 소년은 바로 명운, 그의 호위를 맡은 것은 조광이었다.
조광이 호위로 따라온 것은 귀주석가에서 강하원을 배제했기 때문이었다.
“연못이군요.”
눈 덮인 연못은 그 자체만으로도 운치가 있었다.
“약재상 안에 이런 곳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명운은 연못 한가운데에 위치한 정자를 주시했다.
“이곳에서 기다리게.”
조광은 명운 혼자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공자님, 동행하겠습니다.”
명운이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저쪽은 혼자가 아닌가?”
“고수일 수도 있습니다.”
명운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손을 쓰면 자네도 무사하지 못할 걸세.”
“이기지 못하더라도 공자님께서 피신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습니다.”
명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불가능할 걸세.”
상대는 귀주석가 아니 천마신교에서 손꼽히는 고수였다.
‘전생의 무공을 전부 회복한다고 해도 그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지금의 조광은 어림도 없다.’
명운은 연못 가운데 걸린 다리를 건너 정자 앞에 섰다.
“명운이라 합니다.”
정자 안에는 한 노인이 화로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자 안으로 들어섰다.
“힘이 없으니, 부름에 응할 수밖에요.”
뼈가 돋아 있는 한마디.
“힘이라. 이 노인에게 무슨 힘이 있단 말입니까?”
명운이 노인 앞에 앉으며 대답했다.
“석 장로가 힘이 없으면, 대체 누가 힘이 있단 말입니까?”
노인의 정체는 귀주석가의 가주 석준명이었다.
“신교는 교주님의 것입니다.”
명운이 차갑게 말했다.
“아버지가 아닌 명가와 대산팔가의 것이겠죠.”
석준명은 석주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열세 살 소년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곳에는 그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평소 그를 수행하던 강하원은 서숙에 남았고, 호위로 따라온 조광도 연못 건너편에 있었다.
‘밖에서 전음을 이용한다고 해도 여기까지는 닿지 못할 것이다.’
지금 명운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스스로 생각한 것이었다.
“공자님, 교주님께서 들으시면 섭섭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명운이 그를 바라보며 말을 받았다.
“진실을 말하는데도 섭섭함을 느낀다면 교주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위험한 발언입니다.”
석준명은 말을 마치자마자 순간적으로 내력을 펼쳤다.
이것은 소년인 명운을 힘으로 위협하기 위함이었다.
명운은 내력을 끌어올려 그것을 받아치는 대신 기운을 흘려보내려 했다.
‘큭…… 가슴에 통증이…….’
고수의 기운을 흘려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까짓 기운.’
천마신공에 가슴이 뚫리는 것도 견뎌 냈던 그였다.
명운이 주먹을 쥐며 입을 열었다.
“형편없군요.”
석준명은 기운을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
“노부의 무공이 형편없단 말씀입니까?”
명운은 그의 두 눈을 주시했다.
“믿음으로 사람을 대하지 못하니, 형편없다고 할 수…….”
그는 통증 때문에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석준명은 명운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아니다. 천음선(千音線)은 내력을 키우면 키울수록 고통이 배가 되는 것이니까.’
그가 흘려보낸 기운은 내력공 중 하나인 천음선이었다.
“교주님을 모독하는 자는 고하를 막론하고 벌을 받게 됩니다.”
명운이 가슴을 손으로 쥐어짜며 그의 말을 받았다.
“대명궁 안에서만 통하는 법이겠죠.”
그는 조금도 석준명에게 지지 않았다.
“대명궁 안이라 했습니까?”
명운이 얼굴을 찡그린 채로 대답했다.
“중원의 위군자들은 오늘도 마교니, 마교주니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갑니다. 그들을 벌할 수 없으니, 대명궁 안에서만 통하는 법인 것입니다.”
석준명은 천음선을 거두었다.
“공자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명운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되물었다.
“대업을 이루지 못한 자, 어찌 죽음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석준명은 열세 살 소년이 아니라 한 명의 대장부를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겉은 소년이지만, 속은 아니다.’
그가 화로에 숯을 넣으며 말했다.
“다시 묻겠습니다. 대업을 이룬다면 여한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명운이 가슴을 펴며 답했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석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십니다.”
그는 명운을 상대한 석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열세 살 소년이 이 정도라니,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겠군.’
석준명은 화로 위에 작은 주전자를 올렸다.
“항산의 화차는 그 향기가 운남의 병차와 대등하다고 합니다.”
명운은 한쪽에 찻잔이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하며 말했다.
“정말로 대등했다면 가격이 같았겠죠.”
값이 더 비싼 것은 운남의 병차였다.
“공자께서는 항상 날이 서 있으십니까?”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했는데 날이 서 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석준명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 일은 사과드리죠. 하나 대명궁에서 교주님을 모욕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명운이 말했다.
“그런 경고를 하려고 절 여기까지 부르신 것은 아니겠죠?”
석준명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당할 수가 없군요.”
그는 웃음을 거두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공자께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명운은 선수를 쳤다.
“힘을 빌려줄 테니, 이쪽의 말이 되라는 제안입니까?”
석준명이 얼굴을 굳혔다.
“어찌 그런 제안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명운이 되물었다.
“그럼 어떤 제안입니까?”
주전자 안의 화차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귀주석가가 공자님의 후견인이 되겠습니다.”
명운은 냉소했다.
“후견인이라. 앞서 제가 말한 것과 다르지 않군요.”
“공자님, 저희 석가는 깊은 생각 끝에 공자님께 이런 제안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명운은 생각했다.
‘여기서 어설픈 모습을 보이면 잡아먹히고 만다.’
그가 무릎 위에 손을 얹으며 말끝을 올렸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석준명이 찻잔을 준비하며 되물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석준명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첫 번째는 공자의 후견인으로 나선 가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전 날 때부터 후견인이 없었습니다. 이제 와서 후견인이 되어 주겠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석준명은 명운이 혀가 벼려진 검과 같다고 생각했다.
‘방심하면 이쪽이 당하겠군.’
쪼르르륵.
찻잔에 차가 반쯤 담겼다.
“지금에 와서 움직인 것은 공자의 자질이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전 그 누구에게도 이렇다 할 재능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석준명이 찻잔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훌륭한 재능입니다.”
명운은 그가 건넨 화차의 짙은 향을 맡자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렇구나! 운남의 병차는 형들을, 항산의 화차는 나를 지칭하는 것이었구나.’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아 가격은 낮지만, 그 향기는 병차에 버금가는 화차.
석준명이 화차를 내민 것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은 명운을 택하겠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