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eturner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진짜 그림자 (1)
솟아오른 불길은 비로궁 밖에서 쉬이 볼 수 있었다. 이누한과 초원의 병사들은 성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교주님! 아군이 패퇴하였습니다.”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안으로 들어갔던 무인 중 하나였다.
명천은 그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적의 매복이 있었습니다.”
“매복이라고?”
비밀 통로의 입구를 누군가 발설한 것인가?
명천은 미간을 좁혔다.
‘아니다. 그랬다면 저런 불길이 솟아올랐을 리가 없다.’
불길이 솟아올랐다는 것은 비밀 통로 입구가 아닌 내궁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내궁을 확보했지만, 적의 숫자가 많아 성문을 여는 데는 실패 했을 수도 있다.’
수하가 물음에 답했다.
“사공자가 일군을 이끌고 내궁의 정원을 확보했을 때였습니다. 곳곳에서 불길이 일어나며 화살이 쏟아졌습니다.”
내궁을 불태워 아군의 공격을 막았다는 말이었다.
“어찌 그런 일이…….”
파괴적인 계책이었다.
‘운! 이놈!’
과거 명운이 비로궁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도 놀랍도록 당돌했던 그였다.
‘그 녀석이라면 이런 짓을 하고도 남을 것이다.’
계책과 무공.
그 두 가지에 있어 명운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뛰어났다.
‘놈이 정말로 운이 맞는 것인가?’
어렸을 때 모습을 생각한다면, 분명 그는 명운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의 머릿속은 짙은 안개에 휩싸인 것 같았다.
“준은 어떻게 되었느냐?”
사공자 명준.
그는 원래 명사산의 요새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이누한의 부하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신교십검 이승원으로 교체되었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이번 결사대의 지휘를 맡았다.
“지금은 생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생사를 알 수 없다?”
“죄송합니다.”
명천은 시선을 비로궁으로 돌렸다.
‘준도 갔는가?’
비로궁의 불길은 아직도 거침이 없었다.
‘비로궁에서 시작해서 비로궁에서 끝나는 모양이구나.’
이번 공격에 투입한 이들은 대부분 그의 부하들이었다. 만에 하나 그들이 전멸한다면 그는 부하가 없는 교주가 되는 것이었다.
“퇴각한 이들은 몇이나 되느냐?”
운이 좋다면 절반 정도는 도망쳤을 수도 있었다.
“십여 명에 불과합니다.”
“뭐라고?”
“불길이 일어나 많은 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명천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백암귀와 묘원수는?”
“그 둘도 안에 있습니다.”
명천은 명준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백암귀와 묘원수를 딸려 보낸 바 있었다.
“그 둘도 생사를 알 수 없다는 말이냐?”
“…….”
명천이 혀를 찼을 때였다. 이누한의 수하 장수 중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장공자, 성문은 언제 열리는 것입니까?”
이누한의 병사들은 성밖에서 성문이 열리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틀린 것 같네.”
그의 한마디에 장수의 가늘었던 눈이 동전처럼 커졌다.
“실패란 말입니까?”
“매복이 있었던 모양일세. 가한에게 가서 전하게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명천의 말을 전해 들은 이누한은 크게 화를 냈다.
“장공자가 일을 그르쳤다!”
그는 상대의 매복 때문에 이번 전투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잘못 쓴 것이다!”
능력이 부족한 명준을 지휘관으로 임명했기에 야습이 실패했다.
“가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명천은 돌아가자는 의견을 밝힌 바 있었다.
“공격한다.”
“예?”
“놈들은 내부의 적에 신경을 쓰고 있다. 지금 공격한다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이누한은 천인대 둘을 선봉에 내세웠다.
“나약한 놈들에게 초원의 힘을 똑똑히 보여 주자!”
두두두…….
말발굽 소리와 함께 이 천 기병이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공격! 성을 함락하라!”
“놈들을 다 죽여라!”
명천은 그 광경을 보고는 혀를 찼다.
“쯧, 기병으로 어찌 성벽을 공략할 수 있단 말인가?”
비로궁의 높은 성벽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경공을 익힌 고수들조차 공략이 힘든 성벽이다.’
일반적인 군대가 비로궁을 공격한다면 공성 병기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이누한의 군대는 공성 병기는커녕 사다리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슈슈슈슈슉!
초원의 기병들이 화살을 쏘면서 성벽 위 병사들을 노렸다. 하지만 성벽 위에 선 이들은 쉬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성벽을 오르라!”
초원의 병사들은 말에서 내린 뒤 올가미를 던졌다. 이 올가미는 초원의 야생마들을 잡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그 솜씨는 중원의 고수들조차 따를 수 없었다.
휘익! 탁.
순식간에 수백 개의 올가미가 성벽에 걸렸다.
이누한과 그의 수하들은 이 올가미를 믿고 공성에 나선 것이었다.
“사다리 따위는 나약한 놈들이나 쓰는 것이다.”
함성과 함께 병사들이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공격!”
“성벽을 빼앗아라!”
이누한은 그 모습을 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천마신교라고? 진짜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다! 내가 놈들에게 진짜 전쟁을 보여줄 것이다.”
그는 자신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황도(皇都)의 대장군뿐이라고 생각했다.
“와아아아아아!”
병사들이 고함과 함께 성벽 위에 올라섰을 때였다. 사방에서 매복한 무인들이 쏟아졌다.
“놈들을 쳐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천마신교 무인들과 함께 나타난 이는 비로궁주 등명군이었다. 그는 내궁 전투가 시작한 이후 적비단과 함께 이누한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을 모조리 베어라! 너희에게 성존의 가호가 함께할 것이다!”
파악! 타아앙!
격렬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커헉!”
“으으윽!”
기선을 제압한 것은 매복하고 있던 적비단 쪽이었다. 초원의 병사들은 맹렬히 저항했지만, 본대와 분리되어 있었기에 마음껏 싸울 수가 없었다.
“아악!”
“허허헉.”
짧은 비명과 함께 성벽 아래로 떨어진 병사만 수십 명이었다.
이누한은 그 광경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엇 하고 있느냐!”
그가 호통을 내지르자 천인장들이 전장으로 나아가 병사들을 독려했다.
“겁먹지 마라! 적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천마신교는 분명 수에서 밀렸다고 하지만, 성벽이라는 좁은 장소에서는 수적 우위가 발휘되기 힘들었다. 게다가 천마신교 무인들에게는 뛰어난 무공이 있었다. 그들은 그 무공을 바탕으로 초원의 병사들을 압도했다.
“신교 만세!”
“모조리 죽여라!”
적비단 무인들의 우세가 확실해지자 성벽 위에 올랐던 병사들이 밧줄을 타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길 수 없다.”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실제로 수가 많은 것은 그들이었지만, 상대의 우위와 기세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포위되었다고 생각했다.
성벽 위에 선 백인장들은 전황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퇴각하라!”
“성벽 아래로 물러서라!”
그들의 퇴각 명령이 떨어지자 성벽과 그 주변 병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두 천인장은 그 모습에 미간을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겁쟁이들!”
천인장 중 하나가 직접 칼을 빼 들고 성벽을 오르려 했으나 그는 성벽을 절반도 오르기 전에 비명과 함께 떨어졌다.
“으윽.”
그가 성벽 아래로 떨어지자 방패를 든 병사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장군!”
“장군께서 쓰러지셨다!”
“장군을 보호하라!”
병사들은 쓰러진 천인장의 상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화, 화살이 아니다.”
“이 구멍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천인장의 복부에 구멍을 낸 것은 다름 아닌 등명군의 검기였다. 초원의 무인들은 검기를 본 적이 없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괴이한 수법이다.”
병사들은 방패로 천인장을 보호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누한은 그것을 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오늘은 날이 아니구나.”
그는 오른손을 든 뒤, 가볍게 아래로 내렸다. 이것은 바로 퇴각 명령이었다. 그의 퇴각 명령이 떨어지자 신호수들이 뿔 나팔을 길게 불었다.
뿌우우우웅!
긴 나팔 소리가 들리자 성벽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자들마저 모두 뒤로 물러났다.
천마신교의 대승이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성벽 위에 선 무인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자 명천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다 틀렸다. 다 틀렸어.”
마지막 남아 있던 희망마저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교주님, 이누한의 물러납니다.”
명천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 위에 올랐다.
“우리도 물러난다.”
“존명!”
그의 주변을 지키고 있는 수하는 겨우 오십에 불과했다.
비로궁에서 수천이 넘는 무인을 거느리고 있을 때를 생각한다면 망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 * *
“강 총관.”
“예, 교주님.”
“만족을 얼마나 지원했지?”
명운의 물음에 강하원이 대답했다.
“교주님께서 서역에서 귀환하신 이후 지금까지 약 이만 냥을 지원하였습니다.”
명운은 대산으로 돌아오면서 만족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 지원은 서숙의 이름으로 이뤄졌다.
“생각보다는 많지 않군.”
“귀중품이나 무기보다는 곡식을 위주로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줬어야 했는데 말이야.”
명운은 만족에게 더 큰 빚을 남겼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쯧, 이만 냥으로는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을 텐데 말이야.’
강하원이 오른손으로 셈을 하며 물었다.
“교주님, 지금이라도 지원을 늘릴까요?”
“지금 지원을 늘리면 너무 속이 보이지 않겠나?”
“속이 보이더라도 아무것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강하원은 빤히 보이는 뇌물이라도 주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입장이었다.
명운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준다면 얼마나 더 주면 되겠나?”
천마신교의 재산은 백만 냥이 훌쩍 넘었으며, 이는 모두 교주의 재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만 냥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명운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건 너무 많지 않나?”
“돈이 아까우신 것입니까?”
“그럴 리가?”
“하면 왜 많다고 생각하신 것입니까?”
명운이 오른손을 들며 답했다.
“지금까지 지원한 것이 겨우 이만 냥인데 갑자기 오만 냥을 준다고 하면, 지금까지는 ‘조금밖에 주지 않은 것이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강하원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지원한 금액의 절반인 만 냥을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만 냥으로 되겠나?”
“교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너무 많이 주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하, 어쩔 수 없군.”
강하원이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혔다.
“일만 냥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강하원의 옆에는 관흠이 서 있었다. 명운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관흠.”
“예, 교주님.”
관흠은 과거 매일 같이 명운을 대했으나 그가 교주가 된 이후, 그를 만나는 것이 무척 힘들어졌다.
“자네에게 맡길 일이 있네.”
관흠은 바로 두 손을 모았다.
“어떠한 일이든 맡겨 주십시오! 목숨을 걸고 완수하겠습니다.”
명운은 오른손을 가볍게 저었다.
“목숨을 걸고 완수할 정도의 임무는 아닐세.”
“…….”
관흠의 비장함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만족의 족장 자이안에게 편지를 보낼 걸세.”
듣고 있던 강하원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교주님, 자이안이 글자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명운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것까지 생각해서 만족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관흠에게 붙일 걸세.”
“아, 그러면 괜찮을 것입니다.”
관흠은 명운에게 편지를 받으며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반드시 편지를 자이안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중요한 편지이니,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네.”
“명심하겠습니다.”
관흠이 물러나려 하자 명운이 오른손을 세웠다.
“편지가 한 통 더 있네.”
관흠이 멈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이번에는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까?”
“일함에게 보내는 것일세.”
일함 군주.
관흠은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광명좌의 주인이 되셨으니, 혼례를 올리실 생각이시구나.’
그는 밝은 얼굴로 편지를 받았다.
“도민국에 다녀오라는 말씀이시군요.”
명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이안에게 첫 번째 편지를 전달한 이후 도민국으로 향하게.”
안다함을 거쳐 도민국까지 다녀온다면 긴 여정이 될 것이 분명했다.
“당분간 교주님을 뵙지 못하겠군요.”
“내가 아니라 싸움터가 그립겠지.”
명운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 식지를 세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일이 있네.”
관흠은 그 자리에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 명을 내려 주십시오.”
명운이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헌충이 도민국에 머무른 지 오래되었네. 그대가 가서 교대해 주어야 할 것이야.”
관흠은 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교대 말입니까?”
“안 된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제가 어찌 교주님의 명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얼마나 머물러야 하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일 년이면 충분할 걸세.”
관흠은 일 년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 년 뒤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일 년 정도라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식은 좀 입에 맞지 않아도 미인이 많은 나라니까.’
명운은 경은에게 관흠을 전송하게 한 뒤 강하원에게 물었다.
“양위청은 어떤가?”
현재 양위청은 강하원 휘하 무인 중 한 명이었다.
“제가 쓰기에는 너무 거물입니다.”
명운이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정도도 다루지 못하면 곤란해.”
“교주님, 그것은…….”
“강 총관, 더 뛰어난 이도 다룰 수 있도록 그릇을 키우게.”
강하원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의 심복이었다. 그는 강하원을 지금보다 더 높이 쓰고자 했다.